제복의 빛나는 칭찬주인공에게 박수
검색 입력폼
칼럼

제복의 빛나는 칭찬주인공에게 박수

+
나경택 본지 고문·칭찬합시다운동본부 총재
겉보기엔 평온하고 유유히 흐르는 한강이지만, 물속은 완전히 다른 세상이다. 오염과 부유물 등 때문에 수경 앞에서 자기 손을 흔들어도 안 보일 정도. 물속엔 공사장 등에서 떠내려온 통나무 철근 등 온갖 고체들이 빠른 속도로 흘러간다. 서울 한강경찰대 수상구조요원 유재국 경위가 투신자 수색 중 숨졌다. 교각 돌 틈에 몸이 끼었는데 빠져나오지 못해 변을 당했다고 한다.
2018년 8월에는 민간 보트 구조에 나섰던 심모 소방교 등 소방대원 2명이 급류에 휩쓸려 사망했다. 한강 평균 수심은 5m에 불과하지만 베테랑 구조대원들도 잠수했다가 위험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 앞이 안 보이는 상태에서 순간적으로 몸이 뒤집히면 위아래를 구별하지 못해 당황하게 되는데, 이때 심장마비에 걸리기 쉽다. 강에 투신해 물속으로 사라져버린 사람을 찾는 것은 쉽지 않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강바닥에서 일렬로 줄을 잡고, 한 손으로 더듬어 가며 찾아야 한다. 체력 소모도 극심한데 공기통만 20kg이 넘는 데다, 떠내려가지 않기 위해 수 kg의 추를 차고, 수색 내내 물살을 거스르며 헤엄을 쳐야 한다. 한강 하류는 유속이 시속 5km 정도인데 2km만 넘어도 몸을 가누기가 힘들다.
심야에 출동하는 구조대원들은 한강 잠수교 인근을 지날 때면 등골이 오싹해진다. 밤에 잠수교 위에서 불법으로 낚시를 하는 이들이 있어 출동하던 대원의 목에 낚시줄이 감긴 적도 있다. 안타까운 건, 재난 상황 자체도 위험하지만 구조대원들의 선한 마음 때문에 더 큰 위험에 빠지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는 점이다. “아직 살아있을 것”이라며 지푸라기라도 잡으려는 실종자 가족들에게 “어두워져서 오늘은 그만해야 한다”고 말하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한 사람이라도 더 살려보려는 마음에 스스로 ‘조금만 더’를 외치며 잠수 횟수와 시간을 늘리다가 변을 당하기도 한다.
서울 홍제동 2층 주택에서 불이 났다. 소방관 46명이 출동했지만 다른 차 때문에 소방차가 진입하지 못했다. 소방관들이 소방 호스를 끌고 수십 미터를 달렸다. 구조대는 불 속에 뛰어들어 집주인과 세입자 가족을 구출했다. 그런데 집주인이 “아들이 안에 있다”고 울부짖었다. 소방관 3명이 다시 불속에 뛰어들었지만 찾을 수 없었다. “분명히 있는데 왜 돌아왔느냐”는 집주인의 항의에 방화복도 입지 않은 소방관 10명이 또다시 뛰어들었다. 얼마 후 굉음과 함께 집 전체가 내려앉았다. 동료를 구하기 위해 소방관 수십 명이 다시 달려들었다. 굵은 눈발 아래 처참한 잔해 속에서 소방관 6명의 시신을 발견했다. 수색을 멈추지 못했다. 애를 태우는 집주인을 외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한참 후 아들이 화재 현장이 아니라 친척 집에 있다는 것이 확인되자 구조 작업이 끝났다. 이 아들이 불을 지른 방화범이었다. 이때 순직한 소방관 책상에서 미국에서 유래했다는 ‘소방관의 기도’가 발견됐다. ‘신이여, 제가 부름을 받을 때/뜨거운 화염 속에서도/한 생명을 구할 수 있는 힘을 주소서.’ 2001년 일어난 홍제동 방화 참사는 소방관의 열악한 처우 문제와 함께 공직의 직업적 소명에 대학 철학적 질문을 이 사회에 던졌다. 이 소방관들의 죽음은 허무했던 것인가? 아들이 방화범이란 사실을 알았어도 불 속에 뛰어들어야 했을까? 이런 상황에서도 목숨을 걸고 한 생명을 구하라는 것이 신의 부름일까? 소방관은 모두 “그렇다”고 한다. 그것이 그 책임의 소명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살기 위해 탈출하는 곳으로 달려들어야 하는 군인, 경찰, 소방관이다.
한국은 역사적으로 이런 직업의 역할이 빛나는 나라다. 6·25전쟁 이후 연평해전과 천암함까지 수많은 군경의 희생이 없었으면 오늘의 번영도 없었다. 하지만 번영과 안정 속에서 직업적 화재 진압과 인명 구출만큼 소방관의 안전도 소중하다. 이 숭고함이 우리 사회를 지탱하고 있다!
나경택 본지 고문·칭찬합시다운동본부 총재 gnp@goodnewspeople.com

오늘의 인기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