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만 대통령의 역사적 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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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이승만 대통령의 역사적 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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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경택 본지 고문·칭찬합시다운동본부 총재
4·19 혁명 주역 50여 명이 이승만 전 대통령의 148번째 생일을 맞아 국립서울현충원 묘소를 참배했다. 63년 전 “이승만 하야”를 외치다 옥고를 치르는 등 고초를 겪은 이들은 “이 전 대통령의 과오뿐 아니라 공을 다시 봐야 한다”고 했다.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으로서 이 전 대통령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기틀을 잡고 김일성의 침략에서 나라를 지키고, 거부하던 미국을 이끌어 한미동맹을 맺었다. 어느 하나라도 없었으면 지금의 대한민국은 존재할 수 없다. 이 전 대통령은 농지개혁의 결단을 내리고 지금의 교육제도를 정착시켰으며, 황무지 같은 나라에 원자력 연구소를 세웠다. 역대 모든 한국 대통령에겐 공과가 있다. 이 전 대통령에겐 집권 연장과 독재라는 큰 과오가 있다. 말기엔 고령으로 잘못된 판단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전 대통령처럼 거대한 공적을 세우고도 철저하게 과오만 부각된 지도자도 없을 것이다. 많은 사람이 이 전 대통령이 3·15 부정선거로 당선된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당시 대통령 후보는 이승만 혼자였다. 부정선거로 당선된 것은 이기봉 부통령이었다. 이 전 대통령은 세계에서 가장 극단적인 반일 주의자였다. 미국의 동의 없이 일방적으로 ‘이승만 라인’을 그어 독도를 한국 땅으로 지킨 사람이다. 일본에 조금이라도 이익이 되는 미국의 모든 정책을 대놓고 반대했다. 심지어 재일동포들의 모국 방문조차 막기도 했다. 이 전 대통령의 반일은 너무 심해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 지경이었지만 한국에선 엉뚱하게 ‘친일’이란 딱지가 붙게 됐다. 일제 때 관료들을 일부 기용했다고 하지만 4·19 후 민주당 정권은 일제 관료들을 더 많이 기용했다.
국내 반대파들은 사사건건 미국과 대립한 이 전 대통령을 친미주의자로 둔갑시키기도 했다. 몇 권의 책과 일부 세력의 집요한 선전 공세는 반일주의자를 ‘친일’로 용미주의자를 ‘친미’로 둔갑시켰다. 이들에게 이승만의 ‘좌파’는 소련과 김일성을 막은 것이겠지만, 한국에서 ‘이승만 죽이기’는 ‘독재’ ‘친미’가 더 효과적이었던 것이다. 이들은 심지어 있지도 않은 ‘불륜설’까지 지어냈다. 반 이승만 가짜뉴스가 가장 판친 곳은 수십 년간 학교 교실이었다.
지금 청년들은 이승만의 본모습을 전혀 모르는 지경이다. 문재인 정부는 아예 이 전 대통령을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취급하기도 했다. 윤석열 정부에서도 같은 일이 반복됐다. 담당 공무원들조차 이승만을 모르고 알려고 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건국 대통령이 역사의 폐륜아로 낙인 찍혔다”고 한 보훈처장의 말은 과장이 아니다. 서울대 정치학과 3학년 재학 시절 4·19 학생 시위를 주도했던 이영일 전 국회의원은 “과오도 뚜렷하지만 초대 대통령으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지향의 정부 수립을 주도한 점, 6·25전쟁 이후 한미상호방위조약을 맺어 경제 발전이 가능한 안보 토대를 마련한 점 등은 분명한 공적”이라고 평가했다.
손병두 전 KRX이사장은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그렸던 이 전 대통령의 정신과 부정선거를 거부했던 4·19 세대의 정신과 갈등할 이유가 없다”고 참배의 이유를 설명했다. 이날의 화해까지 우여곡절이 적지 않았다. 이 전 대통령의 양자인 이인수씨 등이 2011년 서울 강북구 수유리에 있는 국립 4·19민주묘지를 찾아 참배·헌화하려다 무산됐다. 1960년 당시 희생자와 유족에게 사죄 성명을 발표하려 했으나 일부 4·19 단체회원들의 지지로 발길을 돌렸다. 이 전 대통령은 임시정부 초대 대통령을 역임하며 항일운동에 헌신했고,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의 건국을 주도했다. 특히 1953년 한·미 동맹을 성사시켜 경제 발전의 토대를 굳건히 한 공로가 크다. 올해 한·미 동맹 70주년의 역사적 시점에 피해자가 가해자를 용서하고 화해와 통합의 길로 가자고 선언하며 국가적 에너지인 ‘이승만 대통령 기념관‘ 건립을 환영한다!
나경택 본지 고문·칭찬합시다운동본부 총재 gnp@goodnewspeopl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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