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비정신> 지눌과 결사운동
정혜결사 조직한 시점이 이론적·실천적 절정 단계
지눌의 사상적 요체는 '불즉시심, 종혜쌍수, 돈오점수'
결사운동은 고려중기 불교계의 자성·정화운동으로 중요한 의미
송광사는 송광산 길상사→ 송광산 조계사→ 조계산 송광사로 바뀐것
입력시간 : 2020. 12.29. 15:07


조계산 송광사 일원.
무신집권기 불교계에서는 오늘날까지도 한국불교계에 커다란 이정표가 될 수 있는 그런 새로운 움직임이 있었다. 조계종의 성립과 신앙결사운동이 그것이다. 그중에서도 결사운동은 고려중기 불교계의 보수화와 그 폐단에 대한 반발로 일어난 자성운동, 정화운동으로 특히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결사운동이라고 할 때 결사라는 말은 무엇일까? 결사란 말은 우리 헌법에 '결사의 자유'라 해서 기본권의 하나로 보장한다고 할 정도로 비중 있게 쓰이고 있지만 평상시에 흔히 쓰는 말은 아니다. 비밀 결사라는 말도 있긴 있다. 어쨌든 결사란 말은 이러저러한 경우를 종합해 볼 때 같은 목적을 위해서 여러 사람이 합동해서 단체를결성하는 것, 또는 그 만들어진 단체를 뜻한다고 할 수 있다. 물론 무인집권기에 나타나는 결사는 지금 말하고 있는 그런 의미의 결사와는 또 약간 다르다. 이 시기의 결사는 승려와 신도가 조직을 만들어서 수양하는 종교단체의 의미를 주로 갖고 있었다.

대표적인 결사체로는 수선사의 정혜결사와 백련사의 백련결사가 있다. 수선사는 16국사를 배출할 정도로 고려후기 이래 불교 사상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된다. 지눌과 그의 제자인 혜심에 의해 이루어진 수준 높은 불교론은 우리나라 불교사에서 성취한 가장 높은 경지였다고 평가받고 있다.

지눌은 1185년(의종12)에 태어났다. 종파상으로는 선종구산문의 하나였던 사굴산파의 승려였다. 1182년 승과에 합격하고 여러곳을 돌아다니면서 수도를 했다. 전라남도 창평의 청원사라는 절에 머물때 육조혜능의 「법보단경」을 읽다가 깨우치고 보문사로 옮겨 화엄론을 공부하기도 했다.

1190년에는 공산(지금의 팔공산)의 거조사로 옮겨서 정혜결사를 조직하고 그 유명한 「정혜결사문」을 발표한다. 그리고 7년 뒤에 송광산 길상사로 옮기던 도중 대혜종교의 어록을 읽어 깨달음을 얻고 1200년 (신종3) 길상사로 옮겨 본격적으로 정혜결사의 취지를 실천하게 된다. 송광산 길상사는 송광산 조계사로, 다시 조계산 송광사로 바뀌어 오늘에 이르고있다. 말하자면 여러 수행단계를 거쳐 오던 중 정혜결사를 조직하고 정혜결사문을 발표하는 시점이 지눌의 이론적·실천적 절정의 단계라고 할수있다.

우리들이 아침저녁으로 하는 행적을 돌이켜보니 불법을 빙자하여 자기를 꾸미면서 남과 구별하고는 구차스럽게 이익 기르는 일만 도모하고 풍진의 세상일에 골몰하여 도덕을 닦지 않고 의식(衣食)만 허비하는구나. 비록 출가하였다 하더라도 무슨 덕이 있겠는가.아! 무릇 삼계(三界)를 떠나려 하면서도 속세와 끊으려는 인연이 없으니 한갓 남자의 몸이 되었을 뿐 장부의 뜻은 없도다. 위로는 도를 넓히는 데 어긋나고 아래로는 중생을 이롭게 하지 못하여 중간으로는 사은(四恩)을 저버렸으니 아! 부끄럽구나!…마땅히 명예와 이익을 버리고 산림에 은둔하여 정혜사를 결성하여 항상 선정을 익히고 지혜를 고르게 하기에 힘쓰자. 또 예불과 독경을 하고 나아가서는 노동하기에도 힘쓰자. 각기 소임에 따라 경영하고 인연에 따라 심정을 수양하여 한 평생을 자유롭게 지내며 멀리 달사와 진인의 고행을 좇는다면 어찌 쾌하지 않으리오.

이 글이 바로 「정혜결 사문」이다. 지눌이 정혜결사를 결성한 의의가 잘 나타나 있다. 여기서는 우선 당시의 불자들이 자신의 수양에 몰두하지 않는 모습을 비판하고 있다. 불법을 빙자해서 이익 기르는 일을 도모하고 풍진의 세상일에 골몰하여 도덕을 닦지 않고 의식(衣食)만 허비한다는 지적이다. 이런 바람직하지 못한 현상을 수정하기 위해서 산림에 은둔해서 선정을 익히고 지혜를 고르게 하기에 힘쓰자고 독려하면서 그 방법으로 정혜결사의 결성을 주장했던 것이다.

무인집정자들은 자기들에 대해 적대적인 태도를 취하는 교종보다는 선종을 중심으로해서 불교교단을 재편하려는 정책을 추구했다. 그래서 이 정혜결사가 조직되자 1204년에 수선사라는 사액을 내리고 적극적으로 지원했다. 수선사를 자신들의 사상적인 지원자 로 삼으려 했다고나 할까. 이 때문에 수선사도 본래의 취지와는 다르게 타락해 가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지만, 무인정권은 이 수선사와 선종에 대해서는 적극적인 후원을 아끼지 않았다.

지눌의 사상적 요체로는 크게 '불즉시심', '종혜쌍수', '돈오점수' 등을 들 수 있다. 먼저 '불즉시심'은 부처가 곧 마음이다. 즉 인간의 마음이 곧 부처의 마음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이런 마음의 본성을 공적영지로 표현하여 진심 또는 일심이라고도 한다. 공적이라는 것 은 허공처럼 텅 비어서 고요하다는 뜻으로 마음의 본체를 가르키는 것이며, 영지는 명경처럼 밝고 맑아서 영묘하게 안다는 뜻으로 마음의 작용을 가리키는 것이다. 이 마음의 본체와 작용, 양자의 관계에 대해 서는 지눌이 '마니보주'라는 구슬의 예를 들어서 설명한 것이 있다. 그 설명에 의하면 '마니보주'라는 구슬은 투명해서 구슬을 어디에 놓느냐에 따라 색깔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검은 바탕 위에 놓으면 검게 보이고, 붉은 바탕 위에 놓으면 붉게 보인다는 것이다. 이것은 '마니보주'의 변하는 모습이다. 그러나 '마니보주'의 불변하는 점도 있다고 한다. 불변하는 사실은 '마니보주'가 투명하다는 것이다. 이처럼 마음도 변하지 않는 면과 변하는 면이 있으며, 우리의 참된 모습은 이 변하지 않는 모습을 똑바로 보는 데에 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변하지 않음의 뜻을 안다면 변하는 것이 변하지 않는 것과 통하는 이치, 즉 변을 떠나서 불변이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는 것이다.

'정혜쌍수'는 '공적영지' 한 마음의 본성을 스스로 찾아내기 위해서정(定)과혜(慧)를 아울러 닦는 것을 말한다. 정은 본체고 혜는 작용임이다. 작용은 본체를 바탕으로 해서 있게 되므로 혜가 정을 떠나지 아니하고, 본체는 작용을 가져오게 하므로 정이 떠나지도 않는다. 그러므로 정은 곧 혜인 까닭에 허공처럼 텅비어서 고요하면서도 항상 명경처럼 밝아 명료하게 알고, 또 혜는 곧 정인 까닭에 영묘하게 알면서도 항상 허공처럼 고요하다는 것이다. 결국 본체와 작용인 선정과 지혜를 함께 닦자는 것이다.

'불즉시심'이니 하는 것은 사실 지눌만의 독창적인 이론은 아니다. 오히려 지눌의 독창적인 이론의 모습이 가장 잘 드나드는 것은 '돈오점수' 이다. '돈오점수'는 '선오후수'라고도 하는데 '정혜쌍수'의 이론적인 기반이라고 할 수있다. 우리의 마음은 본디 공적영지한 것이어서 부처와 티끌만큼의 차이도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 돈오이고, 깨달은 뒤에 그 신념을 굳게하고 차츰차츰 부처에게로 나아가는 길을 닦는 것이 점수이다. 깨닫는다고 해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우리들이 비록 깨달았다고 하더라도 오랫동안 익혀온 망령된 습속은 갑자기 제거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수양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간단히 말하면, 돈오는 선종의 특징이고, 점수는 교종의 특징이다. 따라서 돈오점수는 바로 선종의 입장에서 교종, 즉 화엄종의 장점을 취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지눌의 사상체계를 교·선일치의 완성된 철학체계라고 한다. 균여의 화엄종을 교·선양립, 의천의 천태종을 교·선절충이라고 한다면 이런 단계들을 거쳐서 지눌이 조계종에 오면 교·선일치의 완성된 철학체계가 이루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이처럼 지눌에 의해서 주도되었던 수선사를 중심으로 한 무인집권기의 결사운동은 고려 중기의 부패하고 보수화 된 불교를 새로운 불교로 만들기 위한 하나의 신앙결사운동이었고 불교계 의 개혁운동이었다.


고운석 주필 gnp@goodnewspeople.com        고운석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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