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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신목재 한운교 대표의 감동 인생

\"‘신용’있으면 안 되는 일 없지요
책임전가·회피 세태 아쉬울 뿐\"
조실부모 후 가구 기술로 자수성가

양광석 실버기자 gnp@goodnewspeople.com
2006년 03월 03일(금)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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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신목재 한운교 대표
우리는 간혹 성공한 기업인들 중 자수성가(自手成家)한 입지전적인 인물들의 인생 스토리를 통해 감동 받곤 한다. 그런 인물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기업인이 있다.
본지 양광석 실버기자와 인터뷰 중인 한운교 대표
본지 양광석 실버기자와 인터뷰 중인 한운교 대표
전라남도 구례군 구례읍에서 성신목재를 운영하고 있는 한운교 대표가 그 주인공. 작달막한 키에 단단한 체격을 자랑하는 한 대표. 그러나 그의 나이는 올해로 67세.
둘째아들에게 경영 수업을 시키고 있는 그에게서 70을 바라보는 노인의 모습을 찾기는 쉽지 않았다. 그의 일터를 찾은 날은 막바지 겨울을 아쉬워하는 듯 눈발이 날렸다. 쌓인 눈을 치우는 한 아주머니의 안내를 받아 사무실에 들어섰다. 나중에 알았지만, 그 아주머니가 바로 한 대표의 부인이라는 사실이 한 대표를 만나기도 전에 내심 놀라게 했다. 제법 성공한 사업가의 아내가 직접 나서서 목재소의 이곳저곳을 청소하고 있다니…. 성공한 인물들에게는 꼭 여느 사람들과 다른 부분이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닫는 순간이었다.
한운교 대표. 제법 부유한 집안의 막내로 태어난 그에게 고난의 순간은 일찍 닥쳤다. 7살 무렵에 아버지를 여읜 것. 정확히 기억할 순 없지만, 얼마 후에는 어머니마저 저세상으로 떠나보내는 청천벽력을 겪어야 했다.
바르게살기운동본부 회원들과 함께
바르게살기운동본부 회원들과 함께

일찍 부모를 여읜 탓에 부모님 얼굴도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한 대표. 넓은 마당을 가진 커다란 기와집에서 살았던 것으로 보아 그 시절 그런 대로 살만 하지 않았을까 짐작한다고 했다. 하지만 재산이 있었다 해도 어린 자식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의 기억에 의하면, 10살 위의 누나가 한 대표를 포함한 동생들을 돌봤었다고 하는 걸 보면 말이다.
그는 학교를 어떻게 다녔는지도 기억할 수 없다고 했다. 하지만 어찌어찌 구례중학교까지 마치고 선택의 여지도 없이 사회생활에 뛰어들었다고 한다. 구례에서 순천으로 옮겨 그가 처음 시작한 것은 바로 가구 만드는 일. 최선을 다해 기술을 익히고 있던 중 그에게 입영통지서가 날아들었다. 육군 만기 복무를 마치고 24살에 재대한 다음해에 바로 고향 구례에서 입대 전 익혀놓은 기술을 가지고 ‘성신가구’를 창업했다. 1960년대 당시에는 수공예 가구가 성행하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이것만 가지고 사업에 성공하기는 쉽지 않았을 터. 그만의 사업 노하우가 있을 듯 했다. \"열심히 일하는 것 밖에 아무런 노하우가 없다\"고 말하는 그가 자연스레 내뱉는 한마디가 있었다. ‘신용’이 바로 그것이었다. 거래처나 고객들에게 날을 새고 끼니를 거르는 한이 있어도 지켜야 하는 것, 바로 ‘믿음’과 ‘신용’이었다. 그것을 밑거름으로 오늘날의 성신목재가 있게 된 것이다.
승승장구하던 가구제조업에서 업종을 ‘목재사’로 전환한 것도 그의 사업가로서의 식견이 작용한 듯. 그는 이에 대해 \"세월이 흐르면서 주변의 모든 것들이 기계화되기 시작하고 가구에도 메이커라는 것이 등장하면서 수공예 제품들에 대한 인식이 소비자들로부터 멀어지기 시작했다\"며 \"그래서 사업의 아이템을 바꿔야겠다고 결심했다\"고 설명했다. 목재사로 전환하면서 모든 사업 내용이 바뀌었어도 한가지 바뀌지 않은 것이 있다. 바로 ‘신용’이었다. 자신으로부터 사업을 물려받아 ‘성신목재소’를 운영하고 있는 둘째아들에게 지금도 늘 강조하는 말이 신용이다. \"사장이라고 해도 가만히 앉아서 아랫사람을 시키기만 해서는 돈을 벌기 어려운 일\"이라고 말하는 한 대표는 \"목재사를 시작하면서 차량 운전을 맡은 사람이 늑장을 부리거나 하면 직접 운전해 고객과의 약속을 꼭 지켜내곤 했다\"고 했다.
성신목재 전경
성신목재 전경

한 대표는 이제는 둘째아들에게 사업체를 맡기고 바르게살기운동 구례읍 위원장과 광주지방법원 순천지원 가사·민사조정위원회 등에서 사회활동을 하고 있다. 또 그가 좋아하는 활쏘기를 취미 삼아 하면서 ‘대한궁도협회 구례 봉덕정’ 사두로 활동하며 건강한 삶을 영위하고 있다. 그는 사업 외에 이렇게 자신이 맡고 있는 모든 활동에 있어서도 책임감을 가지고 열심히 해내고 있다. 지난 2003년 11월에는 행정자치부장관으로부터 ‘바르게살기운동’에 앞장 선 공로를 인정받아 표창장을 받기도 했다.
한 대표는 슬하에 조선대 교수인 장남과 전남도청에서 공무원으로 재직 중인 장녀, 아버지의 사업을 물려받아 ‘성신목재’를 운영하고 있는 둘째아들을 두고 있다. 그래서 사업은 물론 자식농사에도 성공했다는 주변인들의 부러움도 한 몸에 받고 있다.
그는 인터뷰 말미에 \"커다란 어려움 없이 어린 시절을 보내는 젊은 세대가 문제가 닥치면 해결하려고 노력하기보다는 회피하거나 남에게 책임을 돌리는 세태가 아쉽다\"고 요즘 젊은이들의 나약함에 따끔한 충고를 했다. 그랬다. 그의 인생은 어려움을 모르고 자란 요즘 젊은이들에게 분명 하나의 나침반이었다.
양광석 실버기자 gnp@goodnewspeopl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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