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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 안좌도(安佐島)
조용·한적·넉넉함 충만
세월을 낚기에 좋은 섬
국보급 서양화가 김환기의 고향
입력시간 : 2005. 10.22. 10:58


막바지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여름날, 바닷바람을 맞으며 더위를 식힐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안고 신안군 14개 읍·면의 한 중앙에 위치한 ‘안좌도’라는 섬 취재를 위해 배에 올랐다. 선풍기도 에어컨도 작동이 안 되는 상태에서 40여 분이나 늦은 배 출발에 모든 탑승객들이 불평을 쏟아내고 있었다. “발전기 고장으로 상황이 이렇게 되었다. 죄송하다”는 사과 방송이 나오고서야 배는 안좌도를 향해 출발할 수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선풍기도, 에어컨의 시원한 바람도 나오지 않았고, 불행히도(?) 이날 바다는 바람 한 점 없이 잔잔하기만 했다. 다소 불만스런 목소리들이 여기저기서 튀어나오긴 했으나 여느 때와 다름없이 자리에 눕는 사람, 일행과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 신문을 뒤적거리는 사람 등 배 안은 금세 평온을 되찾았다.

‘스피드’ 시대라는 요즘 이날 배 안의 상황이 도시에서 발생했다면 야단이 났을 텐데…. 이것 또한 섬 여행의 한 토막 에피소드였다.



#”신안군의 중심에 위치” 자긍심

이렇게 어렵사리 도착한 곳은 안좌도의 복호선착장. 섬보다 먼저 ‘안좌도’라는 표지석이 우리를 반겼다. 신안군의 섬들이 대부분 그렇듯이 이곳 안좌도 역시 바다로 둘러싸인 어촌의 풍경보다는 넓은 농토가 광활하게 펼쳐진 농촌 색깔이 더욱 짙은 곳이었다.

안좌도의 역사는 1896년 지방 관제의 개편으로 기좌도가 지도군에 속하였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무안군에 편입되었다가 1917년 안창도와 기좌도를 합하여 안좌면으로 개칭되었다. 다시 세월이 흐르면서 1969년 신안군으로 분군(分郡)되었고, 1983년에는 안좌면에서 팔금면이 분면(分面)하였다. 그렇게 해서 지금의 전라남도 신안군 안좌면이 탄생했다.

유인도 6개, 무인도 57개 등 모두 63개의 도서로 구성된 안좌도는 신안군의 중심부에 위치한 면이라는 자긍심을 가진 섬이다. 1990년 신안군 최초로 안좌도와 팔금도가 연도교(신안 제1교)로 연결되어 같은 생활권이 된지 이미 오래인데, 다리의 정취 등이 보통이 아니어서 가볼 만한 곳이다. 또한 상수도가 2003년 준공되어 깨끗한 식수가 공급되면서 관광지로서의 더욱 깔끔한 면모를 갖추고 있다. 이밖에도 572㏊ 광활한 면적의 덕대간척지에는 각종 양식장이 즐비해 장관이고, 천연기념물인 고니 등 각종 철새들도 찾아들고 있어 조류 연구 탐사지로 활용되는 등 아름다운 천혜의 자원을 가진 지역이다. 특히 요력도, 상사치도, 자라도, 박지, 반월도 등 7개 마을에 자생하고 있는 300년 된 팽나무는 마을 우실(뭍의 담과 같은 개념) 역할을 하며 고고함과 아름다움을 자랑하고 있어 관광단지 조성의 기대와 가능성을 부풀리고 있는 아름다운 섬 마을이다.



# 백두산 나무로 지은 기와집

안좌도에 가면 빼놓아서는 안될 곳이 있다. 바로 읍동리에 있는 세계적인 서양화가 수화(樹話) 김환기(金煥基, 1913∼1974) 화백의 생가터. 김 화백은 1934년 일본에서 대학을 다니며 추상미술 운동에 참여하였고, 1936년 귀국하여 3∼4년 동안 고향에 살면서 작품활동을 했다. 1946∼1949년까지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교수로 재직하였으며, 이 때 신사실파(新寫實派)를 조직하여 새로운 창작활동을 함으로써 우리나라 현대 화단에 새 바람을 불러일으킨 거장이다. 김 화백은 동양의 직관과 서양의 논리를 결합, 한국적 특성과 현대성을 겸비한 그림을 구상과 추상을 통해서 실현시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서양화가. 한국 추상화의 개척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우리나라 화단의 거목이었고, 한국 미술사에 커다란 족적을 남긴 큰 예술가였다. 대표작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등 다수의 작품을 남겼다.

김 화백의 생가는 1910년 백두산에서 자란 나무를 이곳까지 운반하여 건축한 북방식 ‘ㄱ’자형 기와집(도지정 지방 기념물 제146호)으로, 잘 보존되어 있어 찾아오는 미술학도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고 한다. 설명을 듣자니 어렴풋이 그 당시가 환영처럼 떠오르는 듯 하다. ‘김 화백은 이 사랑채에서 예술적인 영감을 떠올려 힘찬 붓질을 했겠구나’ 하는 짐작과 함께. 생가를 나와 한적한 섬 도로를 따라가다 보니 여기저기에 고인돌들이 누워있다. 안좌도에는 청동기시대의 유물인 지석묘(고인돌)가 잘 보존되어 있다. 방월리 일대의 지석묘는 도지정 지방문화재자료 제117호로, 역사학도들이 즐겨 찾고 있는데, 형식은 바둑판형의 남방식으로 원래 7기가 있어 ‘칠성바위’라 불렀다고 전해지나 현재는 4기만 남아있다. 무덤 안에서는 주로 돌칼, 민무늬토기, 돌화살촉 등이 출토되었다고 한다. 안좌도에는 이곳을 포함, 6곳에 55기의 지석묘가 있다.



# 인기척이 반가울 정도의 조용함

안좌도의 이색적인 풍경 또 하나. 쉴새없이 돌아가는 대하 양식장의 물레방아 행렬이 그것이다. 국내 최초로 폐염전을 활용하여 대하를 대량으로 양식하고 있는 곳이 이곳.

‘대충∼ 아무 것이나 먹고 만다’는 사람도 큼직한 대하를 앞에 놓고 보면 순식간에 미식가로 변하고 말 것 같다. 통통한 살이 감칠 맛나게 다가오는 대하는 육질이 부드럽고 담백해 날것으로 먹어도 입안에 착착 붙는다.

안좌도에서는 구대리간척지의 대단위 양식장을 비롯한 여러 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대하 양식을 하고 있는데, 폐염전을 이용하여 바다와 가까운 곳에서 기르므로 그 맛과 영양이 자연산에 진배없으며 저칼로리 고단백 식품으로 비타민이 많아 성인병 예방에도 좋다고 한다. 또한 쌀, 마늘 등을 친환경 농법을 이용하여 품질 좋은 상품으로 출하하고 있으며, 청정해역에서 나오는 뻘낙지는 전국적으로 유명하다. 특히 겨울철 웰빙 식품인 감태, 석화(굴)가 대량 생산되어 주민소득 증대에 기여하고 있다.

바다 한가운데에 있는 섬인데도 좋은 민물낚시터도 있다. 신촌지가 그곳인데 붕어, 잉어, 민물장어가 올라온다고 한다. 바다 낚시는 말할 나위가 없다. 유명 포인트로는 북지, 도래도, 요력도, 우목도, 반월도 등이 있고, 감성돔, 농어, 숭어가 잘 잡힌단다. 사치도 또한 빼놓을 수 없는 바다낚시꾼들의 목적지라고 한다.

안좌도 본섬에는 모래사장이 없고, 부속 섬인 사치도 윗섬(상사치도)에는 조그맣고 아늑한 해수욕장이 있어 한적한 여행을 즐기려는 사람들에게는 제격이다. 안좌의 관문이라 할 수 있는 선착장 2곳에 설치한 표지석은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한 푼 두 푼 모은 돈으로 세워졌다. 외지인이 한눈에 안좌의 명소와 유래를 알 수 있도록 안좌의 유래, 관광지 등이 글로 새겨넣어져 있다.

빽빽이 들어선 아파트, 경쟁하듯 달리는 자동차, 각종 현대적인 소음들. 현대인들이 살아가고 있는 도심의 풍경들이다. 그러나 안좌도의 이곳저곳을 하루 내내 돌아다녔어도 도심에서 일상처럼 겪는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신호등이 없으니 자동차가 정체될 일도 없었으며, 시끄러운 도시의 소음도 들을 수 없었고, 담도 없는 시골집만이 그림처럼 조용히 앉아 있었다. ‘도대체 이 많은 농사를 누가 짓고 있나’ 하는 의문이 들 정도로 인적이 드문 들판에 간간이 모습을 드러내는 농부들의 모습이 반가울 정도였으니, 상상해보라. 그 조용하고 한적하고 넉넉하고 아름다운 섬마을 풍경, 그것이 안좌도가 이날 내 가슴에 담아준 선물이었다.



“지역민 숙원인 덕대간척지 양성화 시급”

안좌면 최 강 식 면장

명예퇴직이 얼마 남지 않은 최강식(59) 면장은 여전히 안좌면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

최근에는 읍동선착장과 복호선착장 2곳에 면 표지석을 세워 안좌면을 찾는 이들에게 편의를 제공하고 면민들에게는 애향심을 고취시키고 있다. 최 면장은 고향에서 한번 하기도 쉽지 않은 면장을 두 번씩 하면서 어려움도 있었지만, 보람과 아쉬움이 교차한다고 말한다. 후배 양성과 지역 활성화를 위해 명예퇴직을 결심하게 되었다는 최면장은 여전히 안좌면을 위해 할 일이 무엇인가를 고민하고 있다.

그는 “면민들의 애로점이 무엇인지를 가장 잘 알고 있기에 앞으로도 고향에 헌신하는 삶을 살고 싶다”고 했다.

-안좌면에 도착하자 맨 먼저 표지석이 눈에 띄던데.

▲섬사람들은 섬 모습만 보고 어느 섬인지 알 수 있지만 외지에서 온 사람들은 알기가 쉽지 않다. 그런 의미에서, 면장으로서 안좌면을 알릴 수 있는 표지가 없는 것이 늘 안타까워 이번에 읍동선착장과 복호선착장에 표지석을 설치하게 되었다. 이 표지석은 관광객들에게는 볼거리를 제공하고, 쾌적한 경관을 조성함으로써 면민들에게는 정서 함양과 지역 이미지를 제고한다는 의미가 있다. 출향민과 면민들이 힘을 합쳐 2개 선착장에 표지석을 세워 애향심을 고취시키게 되었다. 특히 읍동리에는 물양장을 설치해 축구장, 게이트볼장, 테니스장 및 롤러스케이트장 등을 설치하여 어르신들의 여가 시설로 활용되는 등 주민 건강 증진에 기여하고 있다.

-앞으로 지속적으로 추진하여야 일들은 무엇인가.

▲농업기반시설을 조기에 완공해 영농편익을 증대, 소득 향상과 정주 여건을 조성하는 것이 시급한 문제이다. 또한 웰빙 식품 개발과 친환경농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여야 할 것으로 생각되고, 청정해역의 수산자원 증식사업에 특히 역점을 두어야 할 것이다.

-제27대와 29대 면장을 역임 중인데, 안좌면의 애로사항은 어떤 것들이 있는가.

▲어느 지역이나 어려움은 많을 것이다. 우리 면의 경우, 특히 구대리 일대 덕대간척지가 현재 양성화되지 않아 불법어업 및 농지로 사용되고 있는 실정이다. 농어민의 소득 증대를 저해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양성화가 시급하다.

-경력을 간단하게 소개해달라.

▲1946년 5월 30일, 신안군 안좌면 마진리 400번지에서 3남 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나 고향에서 초·중학교를 졸업하고 목포 홍일고등학교를 1966년 졸업했다.

그 후 3년 간 병역을 마친 후 1971년 8월 지방공무원 공채에 합격하여 안좌면 근무를 시작으로 신안군청에서 28년 동안 재직했다. 1999년 사무관으로 승진, 장산면장, 제27대 안좌면장, 암태면장, 군의회 전문위원을 거쳐 2003년 9월 제29대 안좌면장으로 취임했다.

-명예퇴직이 얼마 남지 않았다. 퇴직을 결심하게 된 동기와 소감 한마디 해달라.

▲35년 간 공직생활을 하는 동안 많은 것을 느꼈고, 아쉬운 부분도 많다. 근무지가 섬이라는 지역 특색을 가지고 있다. 후배 양성과 조직 활성화를 위해 명예퇴직을 결심하게 되었다. 지금 심정으로는 35년 동안 과연 주민을 위해 무엇을 하였는가 하는 안타까움과 자부심이 교차하고 있다. 하지만 홀가분한 마음이 더욱 앞서고 있다. 퇴직을 하게 되면 사회인의 일원으로 고향을 위해 꿈과 희망을 줄 수 있는 헌신적인 삶을 살아가고자 한다.


방수진 차장 기자 koojin418@goodnewspeople.com        방수진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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