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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수록 의미 퇴색해가는 명절 ‘설’
음식·놀이 알고 쇠면 "가치 2배"
입력시간 : 2005. 12.28. 16:12


"까치 까치 설날은 어저께고요, 우리 우리 설날은 오늘이래요∼♪♬"

어릴 적, 설날이면 즐겨 부르던 노래다. 하지만 시대가 흐르면서 점차 잊혀져가는 노래가 되고 있고, 설날의 의미도 많이 퇴색해버렸다. 특히 최근 들어 설날이 그저 가족이 모이는 1년에 몇 번 안 되는 명절이며, 명절증후군과 교통대란 등으로만 인식되고 있는 듯하여 안타깝다.

원래 설날에는 한복 등을 깨끗이 차려 입고 아침 일찍 세찬과 세주를 마련해 제사를 지내고, 장손의 집에 모여 조상에게 차례를 지내는 것으로 새해 아침을 기쁨과 축복으로 시작하였다. 이어 집안 어른과 이웃 어른께 세배를 하고 어른은 아랫사람에게 덕담으로 답례를 한다. 그리고 나서 조상의 묘소를 찾아 성묘를 하는 것으로 설날 아침을 분주하게 보냈다. 또 일년 동안 사용할 복조리를 사두고 2∼3개는 묶어 방에다 매달아 한 해의 복을 빌기도 하고, 설날 새벽에 돌아다니며 처음 듣는 소리로 1년의 운수를 알아보는 풍습도 있었다.

새해 1월 말에 낀 우리 전통 명절 설날을 앞두고, 점차 희미해져가는 설날의 의미를 되새겨보고, 설날에 먹는 전통 음식과 놀이도 짚어본다.

#설날의 의미와 역사

설은 음력 정월 초하룻날로 원단(元旦), 세수(歲首), 정초(正初), 연수(年首), 원일(元日)이라고도 부른다. 이것은 모두 한 해의 첫날이라는 뜻으로,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 첫 아침을 맞는 명절임을 뜻하고 있다. 그러므로 사람마다 새로운 기분과 기대를 가지고 명절을 맞았다.

설에 관한 기록은 삼국시대부터 찾아볼 수 있다. 고구려에서는 해마다 음력 정초가 되면 강(패수)에서 놀았다. 이 날에는 돌팔매 놀이와 눈 끼얹기 같은 편싸움 놀이를 하였는데, 서로 쫓고 쫓기다가 그쳤다. 설날의 이러한 놀이는 고구려에만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삼국사기》에는 ‘신라에서 651년 정월 초하룻날에 왕이 조원전에 나와 앉아 백관들의 새해 축하를 받았는데, 이 때부터 왕에게 새해를 축하하는 의례가 시작되었다’고 씌어 있다. 하지만 이 기록을 가지고 신라에서 설을 민속 명절로 쇤 것이 7세기 중엽부터였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7세기 초엽 이전의 역사를 기록한 책인 《수서》에 이미 신라에서 설날에 축하도 하고 놀이도 하였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면, 신라에서도 벌써 오래 전부터 설 행사를 진행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백제에서도 261년에 설 맞이 행사를 하였으며. 왕이 정월 초하룻날에 큰 소매가 달린 자줏빛 겉옷(대수자포)과 푸른 비단 바지, 금꽃으로 장식한 검은 비단판, 흰 가죽띠로 차려입고 남당에서 정사를 처리했다. 이것은 백제에서도 설 맞이를 초기부터 국가적인 행사, 궁중 행사로 진행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설은 복잡다난한 생활로 가득 찼던 한 해를 보내고 새로운 희망을 안고 맞는 새해 첫날이라는 의미를 가진 명절인 만큼 특별히 더 잘 준비했으며, 당일에는 조상들과 웃어른에게 예의를 표시했고 흥미 있는 다양한 놀이도 즐겼다. 우리 민족은 우선 설날을 앞두고 명절맞이를 성대하게 준비했다. 설날이 가까워오면 여인들은 식구들의 설옷(설빔 또는 세장)을 마련했다. 또 설을 깨끗한 환경 속에서 쇠기 위하여 집 안팎을 청소하고 손질하기도 하였다. 집 안팎을 손질하는 것은 묵은 먼지와 때를 지난해와 함께 시원스럽게 털어버리고 깨끗한 기분과 마음을 가지고 새해를 맞이하기 위해서였던 것.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가정에서는 집 안팎을 청소한 다음 설 그림(세화)을 벽장이나 미닫이문 같은 데에 붙여 장식하기도 했는데, 이 그림에는 십장생 혹은 범과 닭을 그리기도 하였다. 이 그림들은 모두 장수와 길한 것을 반영한 것들이었다. 설날 아침에는 일찍 일어나서 새해 아침에 입는 새 옷인 ‘설빔’을 입고 돌아가신 조상들께 절을 드리는 차례를 지낸 다음, 나이가 많은 순으로 어른들에게 새해 인사, 즉 세배를 드렸다. 세배를 할 때에는 새해 첫 날을 맞아서 서로의 행복을 빌고 축복해주는 덕담을 주고받는다.

#설날 먹는 전통 음식

우리 민족의 설 맞이 준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음식을 마련하는 일이었다. 설 음식을 잘 마련하는 풍습은 오랜 연원을 가지고 있다. 설 대목에 만든 떡은 역사적으로 전해오는 풍습으로 미루어보아 흰 가래떡이 아니면 설기떡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이 때 설 맞이 떡을 만들기 위해 떡방아를 찧고 가루도 냈으며 떡을 빚어 삶거나 찌기도 하였다. 지짐도 지지고 만두도 만들었으며 고기도 볶았다. 이처럼 설 전날 여인들은 설 음식을 만드느라 바빴다.

다음은 대표적인 설 음식 몇 가지다.

▩떡국=떡국은 병탕이라고도 한다. 어린 아이에게 몇 살이냐고 물을 때 "떡국 몇 그릇 먹었냐?"라고 묻는다. 이것은 우리나라 사람이면 누구를 막론하고 정초에는 꼭 떡국을 먹는다는 얘기다. 근래에는 만두를 푸짐하게 빚어 함께 끓이는 떡만두국이 유행이다.

떡국을 맛있게 끓이려면 양지머리로 맑은 국물을 내고, 어슷하게 썬 떡을 씻어 건져 퍼지지 않도록 끓인다. 이때 꼭 청장으로 간을 맞추어야 제 맛이 난다. 충청도 지방에선 쌀가루를 반죽하여 가래떡처럼 길게 늘여서 어슷하게 썰어 떡국과 같은 방법으로 끓이는 생떡국이 있고, 개성 지방은 가래떡을 가늘게 비벼 늘여서 나무칼로 누에고치 모양으로 잘라 끓이는 조랭이 떡국이 유명하다.

북쪽지방은 만두국을 끓이거나 삶아서 초장에 찍어 먹는데, 크기는 매우 큰 숟가락 모양의 병시 만두로 빚으며, 개성에서는 모자 모양으로도 빚는다. "만두는 속을 먹자는 만두요, 송편은 껍질을 먹자는 송편"이라는 말이 있듯 만두는 껍질을 얇게 해야 맛있다. 예전엔 꿩고기로 국물도 내고 다져서 속을 넣은 생치 만두도 하였으나, 요즈음은 꿩 대신 쇠고기로 많이 한다.

▩떡산적=말랑한 떡과 고기, 파, 또는 버섯류를 꼬치에 꿰어 양념장을 발라 구운 것이다.

▩전골=신선로와 비슷하나, 서민층에서 간편하면서 뜨끈하게 화로를 끼고 둘러앉아 먹는 것이다. 찌개와는 달리 주재료가 특별나지 않고 여러 가지 재료가 들어가는데, 끓는 것을 보면서 먹는 것이 다른 점이다.

전골틀은 군사들의 전립(벙거지)에서 유래되었으나 토정 이지함 선생의 철관에서 왔다는 설이 있다. 전골틀은 화로에 올려 냄비전에 기름을 바른 다음, 각색 재료를 늘어놓고 가운데 깊은 곳엔 육수를 간 맞추어 붓고 고기완자를 넣어 익히면서 달걀을 넣어 국물과 함께 먹는다.

▩약과=밀가루에 참기름을 넣고 손으로 비벼 섞어서 채에 친 다음 꿀, 청주, 생강즙을 넣고 뭉쳐서 약과판에 박는다. 온도가 낮은 기름에서 높은 기름으로 천천히 튀긴다. 약과를 맛있게 하는 비결은 가볍게 반죽해야 연하고, 천천히 튀겨야 약간씩 부풀면서 속까지 튀겨진다는 것. 뜨거울 때 집청꿀에 담가 꿀물이 들어가는 소리가 나야 맛있다.

#설날 민속놀이

우리 선조들은 섣달 그믐날은 여러 가지 설 맞이 준비를 하느라고 밤늦게까지 불을 밝히고 일했다. 아이들과 늙은이들은 한옆에서 윷놀이를 하면서 유쾌한 시간을 보냈다. 최근에는 그런 놀이를 즐길 새도 없지만, 짬을 내어 아이들과 전통 놀이를 해본다면 가족 화합의 좋은 장이 될 듯.

_윷놀이=남녀노소가 함께 하는 가장 보편적인 놀이인 윷놀이는 주로 정월 초하루부터 보름 사이에 가족은 물론 마을 사람이 함께 모여 즐기는 한국의 대표적인 명절 놀이이다. 둥근 나무토막이나 콩 따위를 반으로 쪼개어 네 쪽으로 만들고, 이것을 던져서 엎어지고 젖혀진 모양을 셈하여 말을 쓰는 놀이. 보통 많이 사용하는 장작윷은 길이 15∼20㎝, 직경 3∼5㎝ 정도의 윤목(輪木) 두 개를 각각 반으로 쪼개어 네 개비를 만든 것이다. 한국인이면 누구나 그 노는 방법을 알고 있을 만큼 보편적이고 대중적인 전승 놀이로, 놀이 방법은 윷판을 놓고 쌍방이 각각 윷을 던져 나온 결과대로 말 네 개를 진행시켜서 최종점을 모두 통과시키는 편이 이기는 것이다.

놀이의 기원지는 인도이며 중앙아시아와 실크로드, 그리고 중국을 거쳐서 들어왔다. 윷놀이를 통해 예전에는 농사의 흉·풍작이나 전쟁의 승패 따위를 점치기도 하였다.

_칠교놀이=정사각형을 일곱 조각으로 나누어 인물·동물·식물·건축물·지형·글자 등 온갖 사물을 만들며 노는 놀이다. 중국에서 처음 시작된 칠교놀이는 ‘지혜판’으로 불렸으며, 탱그램이란 이름으로 세계에 퍼졌다.

칠교판은 크고 작은 삼각형 다섯 개, 정사각형 하나와 평행사변형 하나로 되어 있다. 이를 적절하게 배치해 칠교도 속 그림을 만든다. 칠교도에는 무려 512개 형상이 있다. 주변에서 널리 쓰는 생활용품부터 사물의 이치와 우주의 원리 같은 추상적인 것까지 형상화했다. 선인의 섬세한 손끝과 생활의 지혜를 엿볼 수가 있다.

오늘날 칠교 조각의 재료는 매우 다양한 것을 이용할 수 있다. 종이 아크릴 나무토막 등을 쓸 수 있으나, 학교에서 사용할 때에는 색종이를 잘라서 코팅하거나, 하드보드를 이용해서 제작하면 오랫동안 쓸 수 있다. 다른 놀이보다 많은 사고력이 필요하며, 특히 어린아이들 두뇌 발달을 촉진시킨다. 어른들의 치매 예방을 위한 뇌 운동에도 좋다.

_투호놀이=고려 때부터 궁중이나 양반 집에서 손님 접대용으로 행해져왔던 것으로, 마당 한복판에 항아리를 놓고 편을 갈라 화살을 던져 넣던 것이 원형. 이 놀이는 본래 중국 당나라에서 성행되었던 것인데, 우리나라에는 삼국시대에 전해졌다.

양반이나 귀족들의 놀이여서 놀이를 할 때면 예(禮)를 갖추었다고 한다. 일반인들은 놀이 도구를 마련하는 일이며 절차가 복잡하여 감히 엄두도 못 내다가 오늘날에 이르러 우리 전통 놀이가 새롭게 조명되면서 고궁이나 명절 행사 때 단골로 등장하며 누구나 쉽게 해볼 수 있게 되었다. 항아리 대신 원통형 목기나 빈 화병을 놓아두고 화살 대신 동전이나 조약돌, 구슬 등을 던져 넣어도 된다. 한 사람씩 12개를 던지는데, 한 개 들어가는 데 10점씩 계산해 120점을 만점으로 해 가장 많은 점수를 얻는 사람이 이긴다.

_널뛰기=설날, 여자들의 대표적인 놀이이다.

조선조 양반사회에서 여자들의 자연스러운 몸놀림을 억제했음에도 사림 사회에 깊숙이 뿌리내린 널뛰기는 오늘날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널 양끝에 한 사람씩 올라서서 줄을 잡고 천천히 뛰기 시작한다. 이 때 널 가운데 한 사람이 앉아 널을 널받침 위에 고정시키는 역할을 한다. 가장 높이 뛴 사람이나, 힘껏 굴러 상대편을 떨어뜨린 사람이 이긴다.


방수진 차장 gnp@goodnewspeople.com        방수진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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