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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사 3주년 기획/ 시리즈> ‘웰빙’에 산다①-천연염색가 안화자씨
"좋은 옷을 입는 것은 건강을 입는 것"
쪽풀·홍화 등 염료원료식물 사랑 14년
건강한 자연 버무린 수제 비누도 각광
입력시간 : 2006. 06.29. 13:08


문명이 발달하는 것과 정비례해 ‘웰빙’은 각광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그런 우리의 관심을 충족시키는 데 조금이라도 보탬을 줘야겠다는 의도에서 『‘웰빙’에 산다』 시리즈를 마련했다.

우리 주변에서 ‘웰빙’을 실천하고, 만들고, 전파하는 이웃들이 그 주인공들이다. 그들을 통해 그들만의 노하우를 알아봄으로써 일반인들의 삶에도 건강한 ‘방법’을 제시해보고자 한다. <편집자 註>



전통 천연염색가 안화자씨. "의복을 골라 입는다는 것은 건강을 입는다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화학섬유시대에서 천연섬유시대로의 변화가 가속화되고 있어요."

지금으로부터 14년 전, 그도 서울이라는 복잡한 도시 한복판에서 많은 사람들과 부대끼며 살아가는 전형적인 도시인이었다. 하지만 천연염색의 매력에 ‘물든’ 이후 그는 더 이상 서울에 머물며 시간을 지체할 수 없었다.

“천연염색은 말 그대로 자연의 빛깔을 재현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원료를 풍부하게 구할 수 있는 곳에서만 ‘제대로’, 그리고 ‘마음껏’ 표현할 수 있는 법이죠.” 좀더 아름다운 색상을 찾아 전국 각지는 물론, 천연염색이 발달된 세계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연구하는 ‘고생’을 마다하지 않았던 그의 이력을 감안하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천연 염료 식물을 재배하고 다양한 염색 재료들을 쉽게 구할 수 있는 남도 지방에 마침내 둥지를 튼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는지 모른다.

전라남도 구례의 한 산골에서 전통 ‘천연염색’을 하고 ‘천연비누’를 만들며 산다는 그를 찾아가 처음 봤을 때, 순간적으로 ‘사람의 얼굴에는 자신이 살아온 삶이 그대로 드러난다’는 오랜 진리가 머리를 스쳤다. 화장기 없는 맑고 꾸밈없는 얼굴, 그리고 온화하고 소박한 인상에서 배나오는 자연을 닮은 여유 있는 모습….


우리 선조들은 계절이 바뀔 때마다 새로이 피어나는 풀과 꽃들을 염색원료로 삼아 계절에 맞는 색들을 일구어내었다. 쪽풀에서 하늘색을, 소나무껍질에서 붉은 색을, 황련 뿌리에서 짙은 노란색을, 울금 뿌리에서 연노랑을, 치자나무에서 노란색을, 감 밤 수수에서 갈색 계통의 색을…. 그밖에도 홍화(잇꽃), 오배자 등등 모든 자연에서 색소를 뽑아 썼다. 이 천연염색재료들은 또 대부분 한약재료로 쓰이며, 방부 방충 방습 성분이 있어 옷감을 오래 보존하는 데뿐만 아니라 천연 식용색소로도 활용하였다.

안씨가 천연 염색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1980년대 중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원래 우리 고유 문화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당시 인사동에서 화랑을 경영하고 있었다. 직업 특성상 자연스럽게 늘 우리네 골동품들을 접하던 중 그는 유독 그 빛깔에 눈이 가더란다. 전통 조각보는 물론이거니와 여자들의 화장도구, 반짇고리, 그리고 한지까지…. 처음에는 이 모든 것들이 천연염색으로 표현되었다는 것을 몰랐다. 그러던 중 언제부터인가 더 이상 ‘감상’하는 데 머무르지 못하겠다는 욕구가 커지면서 천연염색과의 인연을 맺기 시작했고, 그가 홀로 염색을 ‘창조’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들 무렵, 남편은 직장 생활을 정리하고 기꺼이 자연으로 동행할 준비를 서둘렀다.


그야말로 산 좋고 물 좋은 곳에 자리하고 있는 안씨의 보금자리는 현대판 ‘안빈낙도’(安貧樂道)의 터전이라고나 할까. 화려하진 않지만, 보통의 농가보다 멋스러운 집의 외모는 모두 남편 이성운씨가 직접 빚은 것이다. 현재 이씨는 재래식 된장을 담그고 있다. 이 집은 모두 ‘재활용품’으로 지어졌다. 담장과 집 외벽에 켜켜이 쌓아올린 기왓장은 근처 화엄사에서 나온 것이고, 집의 나무 골조며 문짝, 마루 등은 모두 아파트 모델하우스가 철거될 때 구해온 것들이다. “한 2년 정도 걸렸습니다. 모든 것을 혼자 했기 때문에 시간이 오래 걸리기도 했지만 되도록 친환경적으로 자연의 섭리를 따르며 짓다 보니 두 해가 바뀌더군요.” 담과 벽은 모두 흙과 기와로 쌓았다. 시멘트 대신 흙을 사용하여 기와 담장을 올리다 보면 하루에 겨우 3단 정도밖에 쌓지 못한다고. 집을 짓다가 모자란 자재는 이전 것과 꼭 같지는 않더라도 그것과 유사한 것을 구하여 하나씩 완성해갔다. 실내 또한 마찬가지다. 어느 하나 새로 장만한 것 없이 그동안 갖고 있던 고가구들과 남미와 동남아 등지를 여행하면서 모은 장식품들을 매치하여 나름대로 운치 있게 꾸몄다.

안씨가 15년 이상 매진해온 염색 작업도 그러고 보면 그의 집을 지은 여정과 비슷하다. 이미 가지각색의 화학염료들이 개발되어 있고, 원하는 색상을 얼마든지 쉽게 만들 수 있는 요즘 한 가지 빛깔을 내기 위하여 염료가 되는 식물을 일일이 재배하고 구해 원하는 색상이 나올 때까지 많은 손길과 오랜 시간을 들이는 과정이란 웬만한 신념 없이는 하기 힘든 작업이다. 한 예로 쪽빛의 경우, 재료인 쪽풀은 8월 중순 안개가 자욱한 꼭두새벽에 베어내야 제 색깔을 얻을 수 있다. 그 다음 큰 항아리에 냇물과 함께 꼭꼭 쟁여 일주일을 썩힌다. 이어 1천800℃ 이상의 가마 불에서 구워 빻은 조개 가루를 쪽풀 썩힌 물에 아주 정확한 비율로 섞어 2시간 정도 저으면 염색의 가장 중요한 징표가 되는 가지빛 거품(꽃거품)이 일게 된다. 꽃거품이 난 이틀 뒤 석회가 색소를 머금고 가라앉으면 위에 분리된 물을 쏟아내고 여기에 쪽대와 콩대를 태워 만든 잿물을 정확한 비율로 섞어 두어 달 동안 가끔 저어준다. 그러면 석회와 쪽물 색소가 분리된다. 맑은 날, 쪽물 색소에 양조식초를 알맞게 섞어서 열 번 정도 계속 물을 들여 말린 다음 흐르는 냇물에서 불순물을 제거하고 다시 말리면 우리 겨레의 색인 쪽빛이 살아나게 된다.


이렇기 때문에 솔직히 그도 천연염색이 힘들다는 것을 인정한다. 염색을 배우고 재료를 구하기 위해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니고, 동남아시아를 오가기도 수 차례. 도중에는 큰 사고를 당해 7개월을 꼼짝없이 병원에 누워 있어야 했던 시절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그가 천연염색과의 인연을 돈독히 쌓아가고 있는 것은 다양한 자연 재료를 응용하면 응용할수록 이전에 볼 수 없었던 자기만의 빛깔을 창조할 수 있는, 그 무한한 매력 때문이다.

그는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빛깔을 얻기 위해 자연 속에서 지내며 염료 채집을 하고, 또 자주 쓰는 색상의 식물염료는 밭을 일궈 직접 가꿨다. 그리고 주로 모시와 명주 등에만 했던 천연염색을 털실에까지 적용하는 새로운 시도 또한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 결과, 지난 1989년부터 2000년까지 대한민국 전승공예대전에서 매년 입선과 장려상을 수상했으며, 대학 강단에서 강의를 하고, 한복 디자이너 이영희씨의 작품에 사용하는 옷감을 염색하거나 전통 의상 패션쇼에도 참가하는 등 왕성한 활동을 펼치기에 이르렀다.


몇 해 전, 그는 또 한번 새로운 자연의 세계를 발견했다. 비누에 좋은 식물성 기름과 각종 식물과 약재, 그리고 열매 등을 넣어 만든 수제 천연비누가 그것이다. 이미 유럽 등에서는 천연비누를 집에서 만들어 쓸 만큼 필수품으로 인식하고 있지만,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낯설었던 것이 사실. 그러나 이런 자연의 선물을 많은 사람들에게 전해주고픈 마음에 과감히 천연비누 개발에 뛰어들었다. 그리하여 자신의 염색 노하우를 적용시켜 고운 빛깔을 띤 비누를 만드는 한편 허브와 한약재를 혼합하여 각종 질환 치유 효능과 더불어 피부 타입에 알맞은 다양한 천연비누를 개발해냈다.

1999년 신지식인에 선정된 그는 현재 ‘자연주의’라는 회사를 설립, 인터넷 쇼핑몰을 통해 수제 천연비누를 판매하고 있다. 그리고 요즘 들어 부쩍 자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터라 서울과 구례를 오가면서 비누 강좌를 열고 있으며, 광주광역시 광산구 자활센터 강사로도 나가고 있다.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노하우를 ‘아낌없이’ 나눠주는 그는 일년 중 어느 때보다 요즘이 가장 바쁜 때다. 쪽과 홍화 등 염료 원료식물 농사를 지어야 하기 때문이다. 또 여름이 지나도 염료 식물들을 거둬들여 앞뜰의 빨랫줄이 쉴 날 없이 염색한 천들을 말려야 한다. 그리고, 해마다 거르지 않고 진행하는 전통 염색 강좌도 준비해야 한다.

그녀는 이렇게 우리의 '전통'에 푹 빠져 산다,


김영춘 부장 gnp@goodnewspeople.com        김영춘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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