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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가 띄우는 희망 편지 / 김경미 제주여성장애인상담소장
아무리 겨울이 추워도 봄은 꼭 옵니다
장애인으로 장애인을 돌보는 뿌듯함에 늘 감사
입력시간 : 2007. 12.28. 15:03


나는 3살 어린 나이에 소아마비가 되어 40년 동안 중증 1급 지체장애 여성으로 살아오고 있다.

꿈 많은 여고생 때, 한 의사선생님은 여고생의 풋풋함을 가져보라고 격려하셨지만, 나는 현실을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자살이라는, 해서 안 될 일을 저지르고 말았다. 중환자실에서 눈을 떠보니 온 몸은 의료기기들로 둘러싸여 있고, 어머니는 그 가냘픈 손으로 나의 손을 잡고 소리 없이 울고 계셨다. 내가 어머니에게 무슨 짓을 한 것인가? 소리 없이 고개 숙여 울고 계시는 어머니의 떨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나를 키우기 위해 마음 고생하시고, 아버지 폭력으로부터 나를 지키기 못함에 늘 죄인이셨던 나의 어머니! 어머니…'를 되뇌었다.

긴 병원생활을 청산하고, 나는 다시 태어났다. 어머니와 나와 같은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해 살겠다는 다짐을 병원에서 얼마나 많이 했는지 모른다. 다시 주어진 삶이기에 정말 최선을 다해서 살아보겠노라고 얼마나 많이 다짐했는지 모른다. 그렇게 긴 병상 시간은 나를 거듭나게 하였다.

고2 때 병원에 들어가서, 고3 때 정상 등교를 하던 날, 선생님이 어떤 이야기를 하셨는지 친구들의 환대는 나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그런 친구들과 봉사단체를 조직하였고, 내가 초대 회장을 맡았다. 처음으로 한 일은 청각장애인들과 친구가 되기 위해 수화를 배웠다. 청각장애인도 아닌데 왜 배우냐고 핀잔하던 시대였다. 우리는 수화를 배우고 청각장애인들이 다니는 특수학교를 정기적으로 방문하였다. 나는 거기서 많은 위안을 받았다. 그들을 위해 갔다는 표현은 하고 싶지 않다. 나를 위하여 더 많이 갔고, 더 많이 만난 것이 사실이기에….

고등학교 졸업 3일 후에 나는 타지로 돈을 벌기 위해 떠났다. 봉사단체는 부회장에게 맡기고, 타지에서 철저하게 혼자 돈을 벌면서 2년을 보냈다. 2년 동안 몸무게가 13㎏이 빠질 정도로 힘이 들었다. 어머니 목소리가 듣고 싶어서 수화기를 들고 번호를 누르다가 맨 마지막 번호를 차마 누르지 못하고 끊었다. 남들은 명절에 집에 내려간다고 부산을 떨어도, 나는 돈을 아끼려고 혼자 쓸쓸하게 지냈다. 2년 만에 구정을 맞이하여 집에 내려갔는데, 살이 엄청 빠진 내 모습을 보고 어머니는 또 우셨다. 그래서 2년 동안 벌어온 돈으로 가게를 하나 차렸다. 22살을 살아오면서 가장 안정된 시기였다.

나는 다시 봉사단체 활동을 시작했고, 수화노래를 무대 위에 올려 수화를 보급하였다. 처음으로 수화노래가 무대에 올려지자 많은 매스컴의 관심으로 봉사단체 홍보도 되었지만, 청각장애인들을 위해서도 큰 도움이 되었다. 공연 후원금을 받아 전액 특수학교 학생들 장학금으로 전달하였다. 10년 동안 나는 그렇게 인권 노래를 무대 위에서 수화로 공연하였고, 보육원 특수학교 학생들 장학금 전달, 봉사활동으로 장애인 권익을 위한 투쟁을 함께 하였다.

이렇게 활동하다가 지금의 남편을 만나게 되었다. 타 단체 부장으로 활동하고 있었는데, 우리 봉사단체와 자매결연을 맺게 되면서 서로 만나게 되었다. 자연스럽게 만날 기회가 많았고, 그러다 보니 정도 깊게 들었다. 나는 그다지 남자들과의 관계가 부드럽지 못하고 신뢰를 하지 못하는 단점이 있었다. 그러나 남편은 달랐다. 자상함과 배려가 가득한 남자였다. 집에서 귀하게 자랐을 것이라고 추측하며 지내다가 남편의 과거를 듣고 더욱 정이 갔고 대단해 보였다. 남편은 초등학교 3학년 때 주사 부작용으로 장애인이 되었다. 1년 동안 집에서 누워만 지내다가 어느 정도 걸을 수 있게 되어 4학년으로 복학을 했다고 한다. 초등학교 졸업 후 형편이 안 좋아 중학교 진학을 하지 못하고 타지에서 공장생활을 했다고 한다. 혼자 의식주를 해결하면서, 교복을 입고 다니는 친구들 모습이 부러웠고 옷 한 벌 사는 돈이 아까워 주위 형들이 주는 옷을 입고 살았다고 한다. 지금도 그 시절에 쓴 일기를 보면서 눈가에 눈물이 고여 있는 남편을 발견하곤 한다. 고2, 중3 딸들은 자신보다 더 어린 나이에 타지에서 혼자 독립생활을 한 아빠를 존경한다면서 어깨를 주물러드리곤 한다. 남편은 힘든 타지에서도 공부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해 낮에는 공장, 밤에는 야학을 다녀 전기기술 2급 자격증까지 받았다고 한다. 자격증이 있어도 회사들이 장애인은 고용하지 않는다고 하여 늘 변두리 공장에서 때론 월급을 떼여 방값, 쌀값이 없어서 고생도 많이 했다고 한다. 그래서 자신의 꿈은 가정만큼은 그 어떤 고생을 하여도 잘 지켜 자식들을 학교만큼은 제때에 다닐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는 말에 나는 큰 감동을 받았다. 이런 고생들을 해서 그런지 남편은 정말 가정적이다. 그리고 나에게, 딸들에게 자상한 남편이고 아빠이다.


내가 대학을 그렇게 가고 싶어했다는 것을 안 남편은 나 몰래 방송대학교 입학원서를 내주었고, 1996년 남편 지지 아래 방송대학교에 입학하였다. 그 당시 남편이 두 딸을 키우고, 나는 편안하게 학교를 다닐 수 있었다. 동아리 활동까지 할 수 있도록 힘을 주어 방송대학교에 수화동아리를 만들었고 학교에 수화보급까지 할 수 있었다. 2000년에는 상담 공부도 할 수 있게 되었다.

같은 해에, 이제는 남편과 함께 봉사단체를 이끌 수 있어서 더 힘이 났는지 장애부모의 자녀들을 위한 어린이집을 운영하였다. 교회에서 어린이집을 할 수 있도록 교육관을 내주었고, 장애부모의 자녀들을 후원자들과 연결하여 원비를 해결하였다. 그러나 장애부모의 자녀들과 연결된 후원자들의 원비가 들어오지 않고, 교사들 월급을 줘야 하다 보니 나와 신랑은 4년 만에 어마어마한 빚을 지게 되었다. 그래도 아이들에 대한 책임감이 있어, 모두 졸업을 하고 취학을 한 다음 어린이집 문을 닫았다. 문을 닫는 마지막 재롱잔치 때 많은 원아 어머님들이 우셨고, 통합교육을 함께 한 복지관 선생님들도 쓰라린 가슴을 어루만져야 했다.

지금도 우리는 그 빚에 허덕이고 있다. 그러나 자라서 초등학교에 잘 다니는 녀석들을 보면, 지금의 곤란한 상황도 잊어버리고 웃음을 짓는다. 어떤 분은 나보고 미쳤다고 하였지만, 나는 사람에 대한 투자는 정말 아깝지가 않다. 어릴 적의 나도 누군가로부터 그런 손길을 간절히 바랐고, 남편도 그런 손길을 기다렸던 한 사람이기에…. 다만, 우리 아이들에게 미안하다. 흔한 학원 한 번 보내지 못하고, 엄마 아빠랑 놀러갔던 유년시절 추억을 주지도 못하고, 지금도 빚이 많아 궁색하게 살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19세부터 시작한 나의 인권 투쟁은 빚이라는 커다란 짐을 지워주었지만, 어릴 적 아픔보다는 감사가 더 커서 지금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에는 먼저 뛰어들게 된다.

여성장애인상담소 소장으로 일한 지도 4년째가 되고 있다. 어린이집 문을 닫는 과정에서의 책임감을 높이 사신 분이 이력서를 제출해보라고 몇 번을 권유하여 일하게 되었다. 여기서 일하면서, 옛날 인권 노래 공연 수익금으로 장학금을 주었던 장애학생을 성폭력 피해자로 만났을 때 가슴이 미어졌다.

40이 넘으면 선두에 서는 것이 두렵다고들 한다. 나도 무척 두렵다. 그래서 때론 장애 여성들의 인권과 복지를 위한 험난한 길에서 빠져나오고 싶을 때가 많다. 그러나 나는 그럴 수 없다. 가정폭력으로 울고 있는 장애 여성, 성폭력으로 벼랑끝에 몰린 장애 여성, 아이를 낳아도 엄마로서의 권리 주장을 못하는 장애 여성, 빈곤과 폭력 속에서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몸부림을 치는 장애 여성들이 지금도 내 곁에 있고, 이게 장애 여성의 현실이기에….

나는 상담을 하면서 많은 장애 여성들을 만난다. 그 만남 속에서 나를 발견하기도 한다. 그런 나를 발견할 때면 남편과 함께 차를 타고 바다를 보고 온다. 바다와 이야기를 하고 온다. 다음 세대 장애 여성들에게 나와 같은 고통을 주지 않으려면 고통 속에서 해결해야 함을. 설령 그것이 힘들어서 가슴을 에고 피부를 파고드는 고통이 따를지라도.

내가 이와 같은 일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버지처럼 든든하게 지지해주고 내 삶에 희망을 심어준 남편이 있었기에 가능하였다.

오늘도 나는 장애 여성의 권익을 위한 투쟁의 자리에 간다.





김경미 제주여성장애인상담소장        김경미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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