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시사 논평> 憲裁 20년…우리의 자화상 | | | | 입력시간 : 2008. 10.01. 11:22 |
 | | 나경택 본지 고문 칭찬합시다운동중앙회장 |
|
초대 헌법재판소장 조규광은 1989년 현충일 국립묘지 행사에 헌재소장 자리가 마련돼 있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전날 따로 참배했다. 그는 현충일에 다시 국립묘지에 와야 했다. 헌재소장 의전에 소홀했던 정부가 헌재 출범 9개월 만에야 3부 요인 옆에 헌재소장 자리를 마련했기 때문이다. 조 소장은 어느 날 청와대로부터 식사 초대를 받고는 "선약이 있다"며 거절했다. 정치적 중립을 해치는 일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조 소장의 1기 재판부는 6년 동안 30건 넘는 위헌 결정을 적극적으로 내려 헌법재판을 정착시켰다. 재판관을 지낸 한 법조인은 "조 소장의 공이 절반을 넘는다"고 했다. 1994년 바통을 이어받은 김용준 소장의 2기는 일반인도 법률의 위헌 여부를 물을 수 있게 해 헌법재판의 영역을 넓혔다. 윤영철 소장의 3기는 노무현 대통령 탄핵사건 등 정치적 사건을 처리해 헌재 위상을 높였다는 평을 듣는다. 헌재소장은 다른 8명의 재판관처럼 표결에서 한 표만 갖지만, 회의를 주도하는 막강한 권한이 있다. 무엇보다 정치권 등의 외풍을 막아내는 역할이 중요하다. 김용준 전 소장은 "배짱과 소신이 없으면 안 되는 자리"라고 했다. "이를테면 청와대에서 전화가 와도 답신을 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재판부는 쟁점을 정리한 뒤 결정을 내리는데, 소장도 재판관들도 표결할 때까지 자기 의견을 밝히는 법이 없다. 위헌 의견이 2표쯤 나올 줄 알았다가 6표가 나온 경우도 있다.
창립 20년을 맞은 헌재가 세계헌법재판소장회의를 열었다. 30개국 최고 재판기관 대표들이 헌법재판에 관해 벌이는 대규모 학술행사다. 독일 오스트리아 스페인 같은 유럽 국가는 우리처럼 헌법재판소를 두고, 미국 영국 일본 등은 법원이 헌법재판을 한다. 우리는 주로 법관출신이 헌재소장과 재판관이 되지만, 외국에선 헌법학 교수들이 많다.
우리나라 헌재는 20년 동안 1만5천663건을 심판하면서 5천 건의 위헌결정을 내렸고, 정치적 사건도 처리하면서 우리 사회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우리 헌재의 위상은 외국 재판관들이 부러워할 정도다. 헌재가 그럴 수 있었던 것도 따지고 보면 잘못된 법이나 헌법기관들 횡포에 시달려온 국민이 헌재에 힘을 실어주고 의지한 덕분이다.
그러나 헌법이 처한 현실은 아직도 수난의 연속이다. 지난 5월 이후 석 달 계속된 미국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시위에서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는 헌법 제1조를 가사로 붙인 노래가 거리를 가득 매웠다. 도로를 점거하고 경찰버스를 마구 부수고 경찰을 붙잡아 린치를 가하는 무법천지를 만들면서 헌법 제1조를 노래하는 것은 헌법에 대한 모독이며 자유민주주의를 부정하는 헌법 해석이다. 우리는 전쟁과 격심한 이념의 대립 속에서도 헌법의 대원칙인 자유민주주의와 법치주의, 시장경제를 흔들림 없이 지켜냈다. 대한민국의 지향점인 헌법적 가치를 부인하는 세력에 대해서는 우리 모두가 단호하게 대응해야 한다. 정부도 능률과 편의주의로만 흐르다 보면 헌법이념에 어긋나는 정책을 만들어내기 쉽다. 노무현 정부 시절의 신행정수도특별법을 비롯해 사립학교법, 신문법 등이 대표적으로 위헌 결정을 받거나 위헌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국회도 당리당략에 기울어 헌법정신을 훼손하는 법률을 만드는 사례가 드물지 않았다. 헌법의 제정권자는 주권자인 국민이다. 대통령과 국회, 그리고 사법부도 헌법의 규범 안에서만 그 권한을 행사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정의가 패배하고 기회주의가 득세하는 굴절된 풍토는 반드시 청산되어야 한다!
나경택 본지 고문 칭찬합시다운동중앙회장 나경택의 다른 기사 보기
|
|
 |
|
기사 목록 
프린트 화면 
메일로 보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