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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리즈> 선비정신을 찾아서…<27> 黃喜 | 60년 관직 중 18년 영의정
조선 관리의 우뚝한 師表
나랏일의 시시비비는 철저히 가려
바른말 잘해 귀양살이 등 자주 해 | | | | 입력시간 : 2009. 02.27. 15:40 |
 | | 황희정승 초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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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부패한 관리를 보면 생각나는 사람이 있는데, 그가 곧 조선 세종 때의 영의정 황희(黃喜, 1363~1452)다. 그에 관한 인품을 나타내는 일화를 여러 문헌에서 볼 수가 있다. 또 황희는 조선시대 초기의 문화를 꽃피운 세종대왕의 업적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기도 하다. 황희는 20세에 생원시에 합격하고 26세에 문과에 급제하여 고려의 마지막 임금인 공양왕 때부터는 성균관의 학관이 되었는데 이것이 그의 관직 생활의 시작이었다.
흔히 옳고 그름을 가리지 않는 사람을 가리켜 '황희정승'이라고 하는데, 그것은 다음과 같은 일화 때문에 생긴 말이다. 하루는 종들 사이에 싸움이 벌어졌다. 결말이 나지 않자 두 노비는 황희에게로 가서 자기의 정당성을 주장하고 싶었다. 먼저 한 노비가 황희에게 오더니, 먼저 싸움을 건 상대방의 잘못을 자세히 말하고 자신에게는 잘못이 없음을 밝혔다. 그러자 황희는 그의 말을 시인하였다. "과연 네 말이 옳구나." 그러나 이번에는 다른 노비가 들어와 역시 상대방의 잘못을 낱낱이 밝히고 자기에게는 잘못이 없음을 주장하자 황희는 그의 말도 시인하였다. "과연 네 말도 옳구나." 이와 같은 모습을 지켜보던 황희의 조카가 말했다. "아저씨, 어떤 일이든 옳고 그름이 있는 법인데, 아저씨는 둘 다 옳다고 하셨으니, 왜 그렇게 아리송한 말씀을 하십니까?" 그러자 황희는 조카를 보고 깨달았다는 표정으로 대답하였다. "네 말 또한 옳구나." 싸움에는 그의 조카의 말대로 잘잘못이 있으므로 옳고 그름을 가려내야만 할 것이다. 그러나 그런 이치를 몰라서 세 사람의 말을 옳다고 한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다만 자질구레한 일이었으므로 남을 꾸중하지 않았을 뿐이었다. | | 황희정승의 유적인 파주 반구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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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희는 89세로 세상을 떠나기까지 60여 년이란 긴 세월을 관리로 있었다. 또 그 중 18년 간은 세종 임금 밑에서 영의정을 지냈다. 이러한 관직 생활을 하며 황희는 나랏일에 대해서는 철저한 시시비비를 가려 옳은 일이 아니면 행하지 않았다. 오히려 늘 곧고 바른 말을 잘하여 더 낮은 관직으로 내려앉은 것이 두 번이었고, 파면을 당한 것이 세 번, 양반에서 서민으로 몰린 것이 한 번, 귀양살이를 한 것이 4년 간이었다. 그는 또 60여 년을 관리로 지내고 18년 간이나 영의정을 지내면서도 늘 가난하게 살았다. 하루는 임금이 황희의 집에 들렀는데, 자리를 보니 화문석이 아니고 짚으로 만든 멍석이었다. 임금은 이렇게 말하였다. "이 자리는 가려운 데를 긁기는 좋겠소." 또 한 번은 병조판서를 지내는 황희의 장남 호만이 새 집을 짓고 잔치를 열어 조정의 전 관리들을 모두 초대하였는데, 황희도 그 집을 처음으로 방문하였다. 그런데 황희는 온 집안을 두루 살펴보더니 잔치에 참석하지도 않고 돌아가버렸다. 그러자 다른 사람들도 마음이 불편하여 곧 돌아가고 말았다. 병조판서 황호만은 뉘우치고 다시 그보다 작고 간소하게 집을 지었다. 황희의 청백함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런 황희가 53세 때였다. 태종 임금(왕자의 난의 주역 이방원)은 양령대군, 효령대군, 충령대군, 성령대군 등 네 명의 아들을 두었는데, 황희는 첫째아들인 세자 양령대군을 감싸주다가 호조판서에서 공조판서로 좌천되었다. 그는 또 2년 후에 충령대군(훗날 세종대왕)을 세자로 정하게 되자 서인이 되어 경기도 파주로 쫓겨나고 말았다. 그러나 황희는 그곳에 가서도 좌의정 이직과 함께 첫째아들인 양령이 세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주장하다가 이번에는 남원으로 쫓겨갔다. 태종 임금은 다른 신하들의 눈 때문에 그를 쫓아냈지만, 그의 마음 속은 그렇지 않았다. 임금은 황희의 조카에게, 대신들이 황희를 처벌하라고 하여 한성이나 개경에는 있을 수 없으니 어머니를 모시고 시골에 가 있으라는 말을 전해달라고 부탁하였다. 태종 임금은 4년 만에 그의 아들 세종 임금에게 황희의 귀양살이를 풀고 관직을 되돌려주라고 부탁하였다. 세종 임금은, 황희가 자기의 세자 책봉을 반대하다 그렇게 되었지만 그 인품과 학식을 존경하여왔으므로 곧 이렇게 하였다. 이로써 황희는 다시 중요한 직책을 맡아 충성을 다했으며, 특히 세종 임금 때 더욱 빛나는 업적을 남겼다. 황희는 67세 때 허조와 함께 '오례의'를 지었다. 그것은 제사, 혼인, 외교, 군사, 상례 등에 관한 예절을 정리한 책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처음 나온 것이었다. 황희가 69세 때에는 북쪽 국경지대에서 야인들이 노략질을 일삼아 최윤덕이 군사를 이끌고 가 이들을 물리치게 되었는데, 곧 승전 소식이 들어왔다. 이에 임금은 크게 기뻐하였다. "과인이 왕이 된 이후 국토 방위에는 힘쓰지 아니했는데도 이처럼 승리하였으니 기쁘기 한량없으며, 어떻게 하면 이 공을 보전하여 후환이 없게 할 수 있겠소?" "전하, 옛 사람들은 큰 일에 힘쓰는 것을 경계하였습니다. 큰 승리를 거두었다고 너무 기뻐하시지만 말고 성을 굳게 쌓고 군인들의 양식을 준비하여 뜻밖의 변에 대비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황희는 그렇게 아뢰었다. 황희가 74세 때 임금은 천홍사라는 절의 건립을 기념하여 보석과 여러 가지 물건을 많이 하사하였다. 그러자 한 해 동안에 머리를 깎고 중이 되는 사람이 수만 명에 이르렀다. 이에 정극인 등은 불교에 대한 숭배를 반대하였으나 임금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아 성균관 학생들이 모두 나와 시위를 하게 되었다. 임금은 정극인을 불러 시위하는 이유를 물었다. "전하께서 불교를 중히 하시므로 여러 유생은 모두 돌아가 머리를 깎고 중이 되고자 합니다." 이에 임금은 크게 화를 내며 정극인을 당장 처형하려고 하자, 황희가 임금을 말렸다. "만일 전하께서 정극인을 죽이신다면 역사책에다 무어라 쓰시겠습니까?" 황희의 말을 들은 임금은 정극인을 죽이지 않고 귀양보냈다. 얼마 후 정극인은 돌아오고, 임금의 관심을 핑계로 야단스럽게 굴던 승려들은 모조리 제주도로 귀양을 갔다. 황희는 시를 짓는 데도 능숙하여 맑고 고운 마음을 잘 나타내었다. 황희는 부모에 대한 효도 또한 지극하였다. 아침저녁으로는 꼭 관복을 입고 부모님께 인사를 드렸고 맛있는 음식을 손수 갖다 드리며 부모님의 뜻을 거슬린 적이 없었다.
황희가 늙었을 때의 모습은 얼굴이 불그스레하고 머리가 희어 마치 신선과 같았다. 그는 86세가 되던 해에 60년 간의 관직생활을 끝내고 영의정에서 물러나, 89세가 되던 해 한양 석정동에서 세상을 떠났다. 조선시대 세종 때에 이르러 찬란한 문화의 꽃이 핀 것은 거룩한 임금 밑에 청백하고 어진 재상이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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