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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 선비정신을 찾아서…<28> 景烈公 鄭地
麗末 혼란기에도 꼿꼿함 잃지 않아
해전에 능해 왜구들 벌벌 떨게 한 將帥
문중 사람들 "겨레의 영웅…아직 대접 소홀"
입력시간 : 2009. 03.30. 19:49


경렬사
일본은 지금뿐 아니라 600년 전에도 한반도의 두통거리였다. 먹을 것이 부족할 때라 틈만 있으면 노략질을 일삼고 침공할 기회를 엿보았다. 현 정치에서 보듯, 정치가 어지러워지고 외교나 외침에 소홀했던 고려나 조선 왕조는 가까운 일본에게 공격의 말미를 내주곤 했던 것이다.

3·1절을 보내면서 수많은 애국지사들을 떠올렸지만, 고려 말엽 해군의 영웅 경렬공 정지(景烈公 鄭地, 1347~91) 장군이 생각난다. 광주광역시에서 담양으로 가는 국도 오른편 광주광역시 청옥동에 위치한 경렬사의 주인이 바로 정지 장군이며, 광주시 구 농촌진흥원에서 광주역 사이 경렬로도 이 분을 기리는 도로다. 그러나 우리는 사실 정지가 어떤 인물이며 어떤 공을 세웠는지 잘 모른다.

정지는 나주 문평 출신이다. 생김새가 깨끗하고 거방졌을 뿐 아니라 마음 씀이 너그럽고 후덕하였다고 전한다. 어려서부터 큰 뜻을 품고 글읽기를 좋아했다. 대의를 통달해 주위 사람들에게 해설해주기를 좋아했고, 출입 시 항상 책을 갖고 다녔다 한다. 1365년 19세 때 하마시에 장원, 다음해 문과에 급제해 문관으로서의 자질을 획득했다.

1374년 공민왕 중랑장으로 왕을 지근에서 모시고 있을 때의 일이다. 검교중랑장 이희(李禧)가 상소를 올려 "배 저을 줄도 모르는 병사로써 해전을 치르게 하니 늘 질 수밖에 없으므로 배에 익숙한 사람들로 수군을 편성하여 싸우면 이길 수 있다"고 아뢰었다. 이것을 본 왕은 "초야의 미관인 이희 같은 사람도 이런 계책을 올리는데 백관이나 위사 가운데 이만한 사람도 없는가" 하고 개탄했다. 이때 위사 유원정이 "중랑장 정지가 일찍이 왜군을 평정할 계획을 세워 그 초고를 만들어두었으나 아직 올리지 못하고 있다"고 아뢰자 때마침 뜰에 있던 정지가 주머니 속에서 그 헌책을 올렸다. 우리나라 최초의 수군 창설을 계획한 건의문이었다. 왕은 그것을 보고 크게 기뻐하며 그 날로 정지를 전라도 감사로 임명, 이때부터 수군의 창설과 조련에 힘쓰게 되었다. 공민왕은 정지를 전라감사로 임명하면서 군신들에게 "이번 정지에게 벼슬을 준 것을 경들은 이상히 여기지 말라. 짐은 다만 정지가 성공적으로 백성들을 감화시키기를 바라 따름이다. 다른 날 공이 없으면 마땅히 용서하지 않을 것이니 그리 알도록 하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정지는 재임 중 왜구 막는 계책 수십 조를 올렸다. "육지에 사는 백성들은 배를 부리는 데 능숙하지 못하므로 왜구를 막기 어려울 것이니, 섬에서 나서 섬에서 자란 사람들을 골라 신들로 하여금 거느리게 하면 5년 기한으로 하여 바다에 임하여 있는 여러 도(道)를 깨끗이 정돈할 것 같으니 도순간사(都巡間使)가 헛되이 식량을 소비하고 백성을 괴롭히는 일을 그치게 하소서." 왕은 이런 건의문을 받아들였다. 차츰 해안지방의 폐단이 바로잡혀가는데, 정 감사 재임 중 공민왕은 시중들던 최만생에게 시해를 당하고 만다.

1377년 순천도병마사가 된 정지는 순천·낙안 등지를 침범한 왜적과 싸워 18명의 목을 베고 3명을 생포하는 전과를 올리고, 이어 영광·광주 등에 다시 왜적이 나타나자 뒤를 쫓아 옥과에서 수많은 적을 불태워 죽이고 말 100필을 얻는 큰 전과를 거두었다. 이후 남해에서 불과 47척의 배로 120척의 왜적을 맞아 대승을 거둬 왜의 준동을 봉쇄했고, 1388년에는 이성계를 따라 위화도 회군에 종군했는가 하면, 전라·경상도에 성곽을 구축하기도 했다. 그 해 11월 이성계는 창왕을 내쫓고 공양왕을 추대하면서 김저(金佇)의 옥사를 일으키고 정지도 그에 연루시켜 귀양을 보냈다가 곧 풀려났다. 1390년 또다시 윤이 등의 옥사에 연루되어 횡천으로 귀양을 떠났다가 홍수가 나자 풀려났다. 이후 이 같은 정쟁에 싫증을 느낀 정지는 광주로 내려와 쉬고 있다가 45세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왜의 병란 극성기, 국내 정치의 혼란 중에 출사해 역사적 소임을 누구보다도 통감하고 실천한 우국지사요 탁월한 정치인, 전략가로서 우리 역사에 우뚝 선 입지전적 인물임에 틀림없다. 역사가 위기를 만나면 반드시 비상한 인물의 등장과 역할이 요청된다. 이를 극복할 사람을 얻지 못하면 나라와 민족은 멸망하게 된다. 비록 정지는 고려 왕실을 지켜내지는 못했지만 왜군을 물리쳐 백성들에게 안정감을 주고 이성계파의 탈권 과정에서 의지사의 대도를 살펴 만세의 사표가 된 것이다.

봄 내음 속 청옥동 경렬사. 찾는 이는 없지만 단정한 자태로 무등산을 엄위하며 꽃과 나비를 부르고 있는 장군의 영정 눈빛이 매섭다. 정치를 하는 법도, 그것을 조용히 얘기하는 듯.

하동 정씨 문중은 "정지 장군이 실로 한 시대의 인물이나 문중의 인물만이 아니요 겨레 전체의 영원한 영웅이다"고 말한다. 시대에 따라 이 인물에 대한 평가와 대접이 달랐다는 점을 무척 서운해하며 "현재도 다른 인물에 비해 썩 제 대접을 받고 있는 건 아니다"고 토로한다. 문중은 그 원인이 1391년의 대사건과 관계가 있다고 믿는다.

1389년 8월, 이성계파의 노골적인 반격으로 이숭인 등이 유형 당한다. 11월 김저 등이 이성계를 암살하고 우왕을 복위시키려는 음모를 세웠으나 곽충보의 밀고로 적발되어 대참사가 일어났다. 이를 빌미로 이성계 등 9명은 군사를 흥국사에 집결시켜 삼엄한 호위 속에 창왕을 폐하고 공양왕을 옹립하는 정변을 일으킨다. 그러나 공양왕 즉위 직후 김저가 갑자기 옥에서 죽자 이것에 관련된 정지 등 27명이 연좌되어 귀양을 간다. 이때 이성계의 수하인 함전림 등은 유배지에서 심한 고문을 하지만 자복을 얻지 못했다. 1391년 5월, 이성계파의 세력 강화를 위한 조작이 극에 달해 30여 중신을 단죄하는 한편 앞서 죄를 받은 정지 등을 청주에 다시 수감, 심하게 추궁했다. 마침 홍수가 나 감옥에 물이 넘치는 바람에 150명을 석방, 정국이 한때 안정 기미가 보였다. 특히 조정 내에서 공양왕의 즉위가 승인되고, 명망 있는 정지를 수도 치안 요직인 판개성부사로 임명한다. 그러나 끝내 유배지 광주 동구 동명동에서 병으로 일어나지 못하고 45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나니, 마지막 관직의 임명장을 받지 못한 셈이다.

1395년, 세상을 달리한 지 4년 후 국가는 나주에 정지 장군의 정려각을 세우도록 했다. 당시 전라도 관찰사로 부임한 조박이 현지 부로(父老)들의 여론을 들어 '죽은 정지는 처음으로 전함을 만들어 능히 왜구를 막아냈으며 장포의 승리와 남원의 승첩에 그 공이 커서 한때 유명하였고 그 덕택에 지금 바닷가에 있는 백성들이 옛날과 같이 생업을 회복하였다. 하오니, 그 집을 정표하여 후세를 권장하십시오' 하는 내용의 공적서를 올린 것이다. 이런 정지 장군의 공훈포장은 그의 가문과 후손에 대해서 뿐 아니라 여러 가지 법제적 특전의 보상책이 수반되는 것이었다. 이로써 그의 가문은 조선조 명문 거족을 이룰 수 있는 근거를 제공받게 된다. 직접적으로 고려 왕조 공민왕 2년 7월에 회군이등공신에 책봉됐던 법제적 특전이 정지 장군 경우에도 추인되는 의미를 갖는다. 창왕의 옹립과 공양왕 폐위에 이르는 5년 간 이성계 공조집단의 권력 강화를 기도한 조직적인 정치적 숙청의 대표적인 희생자였던 정지. 그러나 고려말기 전공무장들의 대대적 숙청을 통해 수립된 조선 왕조가 정지 장군에 한해서는 그 역사적 위업인 '왜를 근절하고 백성을 편안케 한 공로'만은 외면할 수 없어 만세의 사표로서 역사적 위치를 가늠해준 것이다.

전라도 태생으로, 전라도를 지키는 데 일생을 바친 그는 지금 광주시 청옥동에 누워 있다. 묘지 형태는 기묘하여 문화재로 지정돼 있지만 묘지 앞엔 잡나무가 무성하게 무등산을 가리고 있어 답답함이 느껴진다. 후손들은 이 나무들을 베어내고 그 앞에 꽃을 심으면 가슴이 확 트이고 찾는 이들도 보기 편할 것이란 생각에 시청에 건의를 해보았지만 묵살당했다는 얘길 전한다. 책상 앞에서의 문화행정이라 현실감이 없다는 하소연이다.

그 시대에 가장 필요한 인물이 된, 변혁기의 실천하는 현장 사람 정지. 대의를 위해선 명분을 따지지 않았던 지식인상 아닌가.


고운석 주필        고운석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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