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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 선비정신을 찾아서…<46>/ 梅泉 黃玹
"무궁화 이 강산 속절없이 망했구나"
1910년 한일합방에 분개 자결
우리 시대 마지막 우국충절
입력시간 : 2010. 10.07. 10:24


매천시집
<길짐승 날짐승도 구슬피 울고 강산도 찡그리네/ 무궁화 이 강산 속절없이 망했구나/ 가을 등잔불 아래 책장 덮고 지난 일 돌아보노라/ 인간 세상 글 읽는 선비노릇 차마 못하겠구나/ 나라 위해 아무 일 못한 나 같은 사람이야/ 살신성인하련다마는 이것이 과연 충(忠)일는지.> 매천이 남긴 '절명시'의 한 대목이다.

매천 황현(梅泉 黃玹)의 출생지는 전남 광양군(광양시) 문덕봉 밑 서석촌이다. 몰락한 시골선비 황시묵과 풍천 노씨 사이에서 2남 3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세종대의 뛰어난 영의정 황희(黃喜)와 임진왜란이 한창일 때 충청병사로 있다가 진주에서 왜군과 싸우다 장렬히 전사한 황진(黃進)의 피를 받았다. 비록 양반가는 아니지만 선조의 후광이 지역사회 내에 암암리에 작용해 15세 때 이미 조선 후기의 거유 노사 기정진을 비롯한 몇몇 선비들이 기억해줄 정도였다.

1883년 매천은 부모의 권유에 못 이겨 특별보거과라는 과거시험에 응시했다. 문제는 '나라를 다스리는 방법에 대해 적어내라'는 것이었는데, 시험관리들이 모두 깜짝 놀랄 정도로 내용과 문장이 탁월했다. 모두가 1등이라고 믿고 있었다. 그러나 시골 출신이란 이유로 2등을 했다. 매천은 격분해 귀향하고 말았다.

매천은 광양에서 강줄기를 거슬러 올라 구례군 만수동으로 이주해 자리를 잡고 독서생활에 들어갔다. 그러나 벼슬을 안 해도 좋으니 과거에 합격해 집안의 체통을 세우라는 아버지의 간곡한 뜻을 좇아 생원회시에 응시, 장원급제해 생원이 되었다. 이때 나이 34세니 만학이었다.
매천의 초상화


매천은 벼슬에 생각이 없었다. 나라가 처한 현실이 너무 가슴아프고 답답해 고향으로 발길을 돌렸다. 희디흰 속살을 맨사댕이로 드러내놓은 조국 현실에 울분을 삭이며 고향에 구안실(苟安室)이란 초가집을 짓고 파묻혔다. 매천은 개화라 해서 외국 문물만 급급하게 들여올 것이 아니라 그 근본인 정신적 풍요로움과 인간의 계발에 참 의미를 두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개화라는 의미가 정신적 사회윤리를 무시한 물질화의 진행이 아니라 진정한 사회윤리의 회복을 말하며, 그것은 나아가 개화라는 이름 아래 외세를 끌어들이고 대신 국내의 여러 이권이 그들 손으로 들어가 국민의 생활이 날로 핍박해지는 불안한 현실상황을 고발했다.

1910년의 한일합방. 오래 전부터 이런 슬픈 일을 당할 줄 미리 알고 있었던 매천이었지만 막상 눈앞에 당하고 보니 그 마음을 걷잡을 수가 없었다. 가슴이 미어져 방문을 걸어 잠그고 며칠동안 음식을 입에 대지 않은 채 통곡을 했다. 비통한 마음으로 몇 날을 보내고 가까스로 마음을 가다듬은 뒤 다섯 수의 한시를 짓기 시작했다. 우리나라가 망해가는 것을 막기 위해 노력한 인물, 끝까지 자기의 굳은 애국정신을 지키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거나 죽음을 당한 민영환·홍만식·조병세·최익현·이건창의 높은 뜻을 칭송하는 오원시(五袁詩)를 지었다.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았다. 나라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 중국으로 건너가 여러 사람들과 힘을 합쳐 일본이 우리나라를 뺏으려는 뜻을 만방에 알리고 선진국의 도움으로 일본의 침략을 막아내는 방법을 찾자. 때마침, 몇 년 전 중국으로 망명한 친구 김택영이 하루속히 중국으로 건너오라는 전갈을 보냈다. 매천은 망명의 뜻을 굳혔다. 그러나 여비를 마련할 길이 없었다. 망명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나라는 그의 의지와 무관하게 일본에 치욕스런 합방조약을 하고 말았으니…. 매천은 까무러쳤다. 일어나서도 살고싶지 않았다. 8일 저녁 술을 석 잔 마신 후 가족들에게 방에 근접하지 말라고 이른 후 방문을 잠그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한 자 두 자 쓸 때마다 붓을 쥔 손이 떨리고 한 줄 두 줄 써내려갈수록 두 볼에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4수의 마지막 시와 유서는 다음날 끝났다. 글을 마친 매천은 몸가짐을 단정히 하고 아편봉지를 약사발에 털어넣었다. 그리고 무릎을 꿇고 눈을 감았다. 이제 모든 것에 마지막을 고한다. 눈을 뜨고 약사발을 입에 대고 단숨에 들이켰다. 오후 늦게 매천의 방안에 인기척이 없음을 이상히 여긴 동생 원이 방문을 열어보았다. 온가족이 놀라 목숨을 건지려고 했으나 회생이 불가능했다. 식어가는 매천의 몸을 붙들고 울부짖는 가족들을 만류한 매천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죽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구나. 약사발을 세 번이나 입에 대었다 떼었다 하였으니 말이다. 나의 죽음을 슬퍼하지 말고 모두들 나라 잃은 슬픔을 생각하여라. 그리고 내 뜻이 적혀 있는 이 시와 유서를 보아라." 곧 혼수상태에 들더니 새벽닭이 두 회째 울자 조용히 숨을 거두었다. 그는 군주의 신하가 아니라 국가와 국민에 대한 지식인(선비)으로서 책임을 다하기 위해 자결함을 밝혔다.

올해는 경술국치 100주년과 함께 황현 선생 순국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하여 '매천야록(梅泉野錄)'과 1천 수가 넘는 한시를 남긴 매천의 삶과 사상을 되돌아보는 학술대회가 잇달아 열렸다. 매천 황현선생기념사업회와 우리한문학회는 9월 9일 전남 구례군 구례읍 섬진아트홀에서 '매천 황현 순국 100주년 기념학술회의'를 열었다. 그의 문학작품에 스며있는 사상에 초점을 맞췄다. 순국일인 9월 10일에는 한국근대사학회가 주관한 '매천 황현과 역사 서술'을 주제로 한 학술대회가 광양문화예술회관에서 열렸다. 하우봉 전북대 교수는 '근대 여명기의 계몽적 역사가, 매천 황현' 발표문에서 "매천은 죽음에서 적극적인 구국운동에 참여하지 않은 것을 부끄러워하는 시를 남겼지만 '매천야록'을 저술하고 곤양학교라는 신학교를 건립하는 등 누구보다 시대를 아파하며 치열하게 살았던 지식인이었다"고 평가했다. 한국고전번역원은 최근 그의 문집인 '매천집'을 처음으로 번역, 출간했다.


고운석 주필 gnp@goodnewspeople.com        고운석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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