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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 선비정신을 찾아서…<47> 普照國師 知訥
늘 명예-이익 멀리, 道는 가까이
정혜결사 통해 한국불교 바로잡아
현대인에겐 자기수양과 깨침의 길 제시
입력시간 : 2010. 11.03. 13:24


보조국사 진영
보조국사 지눌(普照國師 知訥, 1158~1210)은 황해도 서흥군 출생으로 8세 때 출가했다. 출가 동기는 병약했다는 설과 신분상의 제약설(말단 관직의 아들)이 있다. 출가 후 18년간 어디에서 어떻게 수행했는지 밝혀져 있지는 않지만, 25세에 승선(僧選)에 합격했다.

지눌은 남쪽으로 내려와 전남 창평의 청원사에서 큰 사건을 일으켰다. 어느 날 육조단경을 읽다가 깨달음의 종교체험을 한다. 이 깨침 후 "명예와 이익을 싫어하고, 항상 숲 속에 숨어 힘쓰면서 잠깐도 도를 버리지 않았다" 하니 이때 정혜결사의 출발점이자 결론이기도 한 정혜쌍수(定慧雙修)가 정립된 듯 하다. 3년 후에는 자리를 보문사로 옮겨 선과 교가 계합하는 것을 찾기 위해 3년간 대장경을 열람, 화엄론에서 선교가 둘이 아님을 확인하고 "세존이 입으로 설한 것이 교요, 조사가 마음에 전한 것이 선"이라는 결론에 이른다. 이런 수행과 탐구를 통한 체험과 확신을 바탕으로 33세에는 팔공산 거조사로 옮겨 정혜결사를 실천에 옮기니, 당시 불교를 일신하려는 혁신운동으로 크게 번졌다.

지눌의 깨침을 향한 피나는 정진은 마침내 41세 때 완성됐다. 지리산 상무주암에서 「대혜어록」을 읽다가 활짝 열린 것이다. 바로 이 구절이다. "선정은 고요한 곳에도 있지 않고 또 시끄러운 곳에도 있지 않고 생각하고 분별하는 곳에도 있지 않다. 그러나 먼저 고요한 곳이나 시끄러운 곳이나 날마다 반연에 응하는 곳이라 생각하고, 분별하는 곳을 버리고 참구하라. 만일 갑자기 눈이 열리면 비로소 그것이 집안일임을 알 것이다." 이제 남은 일은 중생을 위한 자비행이다. 거조사의 정혜결사를 송광사로 옮겨 수선사로 개칭, 한국불교 개혁에 앞장섰다. 이런 선풍은 오늘날까지 이어져 송광사는 지눌 이후 16국사를 배출, 한국불교 승보사찰로서의 위치를 굳건히 지켜오고 있다.

대표적인 저술로는 「수심결」 「권수정혜결사문」 「계초심학인문」 「직심직설」 「법집별행록절요」 등이 있다.

늦가을 낙엽 밟으며 지눌의 사상에 기대니, 평상시 강조한 그의 법어 한 대목이 문득 스쳐간다. "말법·정법(末法·正法)시대의 다름은 말할 것이 없고, 제 마음의 어둡고 밝음을 걱정할 것이 아니며, 다만 믿는 마음으로 분수를 따라 수행하여 바른 법의 인연을 맺을 뿐이요, 비겁하거나 나약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걸출한 민족사상가

성철(性徹) 큰스님이 열반했다. 저 광활한 깨달음의 세계로 떠났다. 그러나 아시다시피 불교계는 오열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기뻐했다. 깨달음의 빛이 죽음으로 인해 더 넓게 퍼질 것을 믿기 때문이다. 마음을 닦아 남을 구제하는 것은 어려우면서도 지극히 쉬움을 가르쳐준 성철. 늦가을 찬바람과 함께, 그의 뜻을 가슴에 새긴 세속 사람들은 스님의 고행이 시사하는 바를 따라가며 자신을 조용히 되돌아보고 있다.
지눌의 맑은 정신인 양 송광사에 활짝 핀 백련


한국불교는 끊임없이 성철 같은 큰스님을 낳았다. 혼란과 위기 때마다 평화와 공존을 모색하는 지도자가 나타났다. 원효, 의천, 지눌. 그중 지눌은 원효와 함께 한국 불교의 최고봉으로 한국불교의 사상적 전통을 확립하는 데 기여한 민족사상가로 기록돼 있다. 원효가 회동(대립과 갈등이 높은 차원에서 해소된 하나로의 만남)불교의 기초를 다졌다면, 지눌은 원효의 정신을 계승하여 회동의 전통을 확립한 대가다. 따라서 불교계는 지눌이야말로 한국 불교 사상의 원류요 기둥으로 믿는다. "엎드려 바라노니, 선문(禪門)의 사람이나 교종(敎宗)의 사람, 나아가 유교나 도교의 사람을 막론하고 속세를 싫어하는 뜻이 높은 사람으로서 티끌세상을 벗어나 세상 밖에 높이 노닐면서 마음 닦는 도를 오로지 하여 이 뜻에 부합하는 이는 비록 지난날 서로 모여 결사한 인연이 없었더라도 결사문 뒤에 그 이름 쓰기를 허락한다." 정혜결사문의 핵심은 정토신앙의 비판과 선교통합의 문제를 검토하는 것이었고, 결론으로 정혜쌍수 하자는 취지였다. "우리는 지금 아름다운 기약을 맺고 미리 비밀한 계약을 펴 깨끗한 행동을 닦게 되었다. 그러한 즉참된 귀풍을 우러러 사모하여 스스로 비겁하여 물러나지 말고 계율, 지혜로써 심신을 수련하여 번뇌를 덜고 또 덜어서 물가와 수풀 아래에서 성태(聖胎)를 길러야 한다. 달빛을 보면서 거닐고 시냇물을 들으면서 자재하여 거리낌없이 허공을 나는 활발한 새와 같아야 한다. 그리하여 몸의 형상은 이 우주에 나타내었으되 그윽한 영혼은 법계에 잠겨서 기록을 따라 감응하여 일정한 한정이 없으리니, 사모하는 뜻이 여기에 있다." 여기까지가 제1차 정혜결사 시기다. 제2차 시기는 앞에서 썼듯이 1197년 송광사에서 벌어진다.

시대적인 과업을 자각하고 한국불교를 바로잡는 일에 헌신한 지눌의 정혜결사 과정에서 나타난 사상 특징은 '묘합'과 '회통'을 기본으로 하는 '원융'이다. 막힘이 없다는 뜻의 원융은 그의 돈오점수, 정혜쌍수, 선교융회 사상에 그대로 나타난다. 지눌에 있어서 깨침과 닦음은 분리될 수 없는 것으로, 깨침을 통한 닦음을 게을리 하지 않는 끼침의 체계로 요약된다.



♣한국 禪의 전통 확립

오늘날 지눌사상이 미친 영향과 의의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눠볼 수 있다. 첫째, 한국 선(禪)의 탈중국적인 전통 확립이다. 지눌 이전의 선이 중국 선의 연장 혹은 강한 영향 아래 있었다면, 지눌에 이르러 비로소 선과 교, 깨침과 닦음, 돈과 점을 하나로 보는 회통선의 전통이 이 땅에 수립된 것이다. 이는 외래사상의 주체적이고도 창의적인 수용의 훌륭한 예다. 둘째, 무엇보다도 우리는 지눌사상에서 인간이 가장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길에 대한 철저한 규명을 볼 수 있다는, 움직일 수 없는 확신을 그의 사상에서 볼 수 있다. 지눌에 의하면, 우리들 모두는 부처의 성품을 본래부터 가지고 있다. 그 성품으로 볼 때 우리는 부처와 조금도 다르지 않다. 문제는 우리가 그 밝은 지혜의 등불, 부처의 성품을 등지고 살고 있는 것이다. 그 본래의 성품에 돌아가 본래부터의 밝음에 눈뜨고 지혜 속에 사는 것이 우리들 삶의 진정한 모습이요 우리답게 사는 것이다. 깨침과 닦음이란 바로 우리가 우리의 본래 모습에 돌아가 우리답게 살기 위한 과정에 불과하다. 이는 자기회복, 자기형성의 가장 직접적인 메시지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지금 겨울 채비를 서두르고 있는 승주 송광사에 가보면 '보조사상연구원'이란 큰 간판이 눈에 들어오고, 그 안에서 지눌에서 현재까지 한국불교를 연구하는 예비스님들을 만날 수 있다. 자기상실의 깊은 늪에서 허덕이는 현대인에게 자기닦음과 깨침의 길을 명확하게 가리키는 지눌의 손끝을 보라.

호남 사상에 큰 봇물을 대준 보조국사 지눌의 마지막 장면도 독특하다. 타계하던 날 새벽 목욕재계하고 법당에 올라 향을 사르고 큰북을 쳐 송광사 내 대중을 법당에 운집시켰다. 그리고는 육환장을 들고 법상에 올라 제자들과 일문일답으로 자상에게 진리에 대한 대담을 벌였다. 마지막으로 한 제자가 물었다. "옛날에는 유마거사가 병을 보였고, 오늘은 스님께서 병을 보이시니 같습니까 다릅니까?" 같은가 다른가 하는 질문은 선가에서 진리를 시험해보는 질문이다. 임종이 가까운 스승께 이렇게 날카로운 질문을 던질 수 있는 것은 오직 진리의 세계에서만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이 질문에 지눌은 육환장을 높이 들어 법상을 두어 번 내리친 다음 "일체의 진리가 이 가운데 있느니라" 하고는 법상에 앉은 채 조용히 숨을 거두었다. 1210년 3월 27일이다. 향년 53세. 이 마지막 장면은 최후의 순간까지 제자들에게 진리에 대한 가르침으로 일관한 불타의 입멸을 연상케 한다. 진리 속에 살다가 진리 속에 간 큰 스승의 족적은 짧지만 굵고 선명하다.


고운석 주필 gnp@goodnewspeople.com        고운석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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