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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奇人奇事<3> 詩人 연산군 | 폭군의 가슴에서 탄생한 125편의 詩
狂態의 절정에서 기이할 정도로 인간성 표출
"인생은 초로와 같아 만날 때가 많지 않다네"
절대권력의 허무함 설파한 절창…가슴 저며 | | | | 입력시간 : 2011. 03.30. 16:27 |
 | | 연극 '이'에서의 연산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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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누구나 연산군(1476~1506)에게서 '포악하다'는 개념을 찾아낸다. 물론 그가 재임했던 시기는 피를 부른 난정의 연속이었고, 그의 포악함은 수많은 사람들의 생목숨을 앗아가곤 했다.
그러나 폭군의 이름을 남기면서 보위에서 쫓겨난 연산군이 스스로 시인으로 자처하면서 무려 125편의 시를 남겼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흔치 않다. 연산군이 중종반정으로 왕위에서 쫓겨나자 정승과 판서들은 그가 보위에 있을 때 스스로 편찬했던 시집을 불태워버릴 것을 진언했다고 「조선왕조실록」은 기록하고 있다. 그렇게 「연산군 자제시집」은 불태워졌으나, 그의 실록인 「연산군일기」에 125편의 시가 고스란히 등재되어 있어 시인으로서의 연산군을 살피는 데는 아무 부족함이 없다.
연산군의 생애는 정말로 드라마틱하다. 성종의 첫 중전인 공혜왕후 한씨(한명회의 딸)가 세상을 떠나자, 후궁이었던 숙의 윤씨가 다른 후궁들의 시샘을 받으면서 새 중전으로 발탁되었다. 연산군은 성종과 그녀 사이에서 왕실의 적장자로 태어났다. 어릴 때의 이름은 무작금(無作金)이었고, 휘(諱, 공식적인 이름)는 융(隆)이다. | | 드라마 속에서 폐비 윤씨가 사약을 마시는 장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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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성이 착하고 효성이 지극했던 성종은 중전의 자리를 거치지 않고 대비의 지위에 오른 어머님 인수대비의 막강한 영향력을 뿌리치지 못했다. 또 중전 윤씨가 인수대비의 신임을 받지 못했던 것은 그녀를 투기하는 후궁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안타깝게도 중전 윤씨는 자신의 생일날에 성종의 용안에 손톱자국을 내게 된다. 인수대비의 격노는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처음부터 중전 윤씨를 탐탁히 여기지 않았던 인수대비는 그녀의 폐서인을 강행하게 되었고 성종은 어머님의 엄명을 뿌리치지 못했다. 폐서인이 되어 사가로 쫓겨 나왔지만, 폐비 윤씨는 인수대비의 철저한 감시를 받는다. 그리고 얼마 후, 폐비 윤씨는 소복을 벗고 화장을 했다는, 조금은 과장된 모함을 받으면서 인수대비의 노여움을 사게 되었고, 그것을 빌미로 사약을 마시고 세상을 떠나게 된다. 이때가 성종 12년(1481)이었고, 연산군은 6세였다.
성종과 인수대비는 대소 신료들에게는 물론 상궁들에게까지 폐비 윤씨의 비극을 입에 담지 못하도록 했다. 어린 연산군이 그 사연을 알게될까 두려워서였다. 소년이 된 연산군은 매사에 지나치게 엄격한 할머니(인수대비)의 훈도를 받으면서 성장하지만, 사모(思母)의 정은 날로 더해가기만 한다.
마침내 연산군은 19세가 되었을 때 아버지 성종의 뒤를 이어 조선왕조 열 번째 임금으로 보위를 이어가게 되었고, 그 다음해인 1494년(연산군 1년)에 부왕 성종의 묘지문을 읽으면서 친어머님인 폐비 윤씨가 사약을 마시고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을 비로소 알게 된다. 연산군은 내시를 시켜 볼품 없이 버려진 어머니의 무덤을 살펴보게 했다. "묘소가 무너진 채 여러 해를 수축하지 않아 장차 해골이 나와 여우와 삵에게 먹힐 지경이다"는 내시의 복명을 들으면서 연산군은 어머님을 향한 사모의 정을 폭발하게 된다. 연산군은 대신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폐비 윤씨의 무덤을 천장하게 하고, 신주를 모시는 사당을 세워 '효자묘'라고 이름지었다. 그리고 묘호를 효묘라고 했다. "주상, 부왕의 유고를 따르시오!" 참다못한 인수대비가 분노했다. 폐비 윤씨를 거론하는 것은 부왕(성종)의 유고(유언과 같은 것)를 어기는 패덕이라는 것이었다. 물론 조정 대신들도 인수대비의 뜻을 받들어 부당함을 고했다. | | 연산군의 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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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기야 연산군의 분노가 폭발한다. 자식이 모든 반대세력에게 철퇴를 내리면서 거칠게 솟아오른다. 그는 「성종실록」을 살펴서라도 어머니의 사사를 주청한 자를 가려낼 것을 명했고, 폐비 윤씨의 사사 당일 사약을 가지고 갔던 신하들까지 찾아낼 것을 명하면서 광태를 더해간다.
이런 와중에서 연산군은 시를 쓰게 되었다. 정말 이상한 일이다. 피눈물을 쏟으면서 세상을 떠난 어머님을 향한 연산군의 인간적인 고뇌가 점차 광태로 변하는 시점인데도 그의 시에는 그런 흔적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연산군은 정사에 관한 일을 담담하게 적었고, 신하들의 노고에 감사하는 시를 남기고 있는 것이다. <바람 이는 강에/ 물결 타고 건너기 좋아마오/ 배 뒤집혀 위급할 때/ 그 누가 구해주리.> 연산군은 자신의 주위에 아첨하는 무리들이 가득했다는 사실을 시로써 자탄하였고, 자신에게 종말이 다가오고 있음도 시로써 노래했으며, 또 그런 지경에 이른다면 자신을 구원해줄 신하들이 없을 것이라는 점을 시로써 개탄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그의 인간적인 번뇌를 짐작하게 한다.
연산군을 단순한 폭군으로 보는 것은 금물이다. 그보다는 시인의 감수성에 바탕을 두고, 사약을 받고 세상을 떠난 어머님에 대한 그리움과 복수심을 함께 불태운 것이 성품을 포악하게 했을 것이라는 견해가 온당하다. 또 어미 잃은 어린 손자에 대해 당연히 인자해야 할 친할머니 인수대비의 혹독한 훈도가 오히려 그의 성품을 삐뚤어지게 했을 것이라는 추리도 가능하다.
연산군의 광태가 절정에 이르렀을 때, 그는 어머니 폐비 윤씨를 괴롭혔던 부왕(성종)의 두 후궁을 그녀들의 자식들로 하여금 매질하여 죽게 하였고, 끝내는 친할머니 인수대비의 가슴팍에 술상을 던지는 패덕도 서슴지 않았다. 어려서 싹튼 불만의 응어리를 그렇게라도 풀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었을 것이리라.
연산군이 마지막 남긴 시는 자신의 종말을 처연한 심정으로 그리고 있다. <인생은 초로와 같아서/ 만날 때가 많지 않은 것.>
중종반정이라는 쿠데타로 임금의 자리에서 쫓겨난 연산군은 처자식과 함께 강화도 교동섬에 위리안치 되었다가 두 달 후에 역질을 앓으면서 세상을 떠난다. 임금의 특권을 마음대로 전횡했던 춘추 31세의 짧은 생애였지만…. 그야말로 파란으로 점철된 삶의 종말을 맞으면서 '인생은 초로와 같아서 만날 때가 많지 않은 것'이라는 절창을 남겼고, 그 절창은 지금도 우리의 심금을 울린다.
고운석 주필 gnp@goodnewspeople.com 고운석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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