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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필> 비록, 그 아픔이 진하더라도 | | | | 입력시간 : 2012. 05.08. 14:33 |
 | | 서춘자 문화전문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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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한 아픔, 이렇게 생각하면서 글을 쓰니 슬퍼진다고 할까 아픔이었던 옛날이 뇌리에 되살아난 것 같다.
사람들은 진하다느니 여리다느니 색깔만 생각하게 되는데 난 내 가슴 속 깊은 곳에 나만이 아는 진한 아픔이 가슴 깊은 밑바닥에 누구라도 들여다 볼 수 없이 감추어져 있다.
나도 한 때는 다른 사람과 똑같은 깨끗한 피부를 가지고 있었다.
남보다 더 긴 다리며 어깨 그리고 누가 보아도 깨끗한 피부라고 찬양해줬다.
여자라면 유독 누구나 다 깨끗하고 투명한 피부를 잘 가꾸고 싶어 하는데 나는 5년 전에 생각도 못했던 사고로 화상을 크게 입어서 명예롭지 못한 상처를 입고 진한 아픔을 마음속에 감추고 참으면서 또 쓰다듬으면서 남몰래 눈물 흘리며 산다.
"불행 중 다행이란" 말마따나 얼굴에는 다행히 흉터가 없었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삼복더위에도 남들처럼 반팔 블라우스를 입고 살지 못한다.
어느 날 유난히 더운 삼복더위에 긴팔 블라우스에 망사 장갑을 끼고 갈 길이 바빠 딸 아이와 함께 택시를 탔더니 운전기사가 하는 말이 "아주머니는 별난 멋쟁이시요, 잉"했다.
그도 그럴 것이 삼복더위에 장갑까지 끼고 다닌 그 아저씨의 눈에는 별난 멋쟁이 같이 보였을 것이다. 그런데 딸애의 성난 한마디 "아저씨는 이상하셔라 운전이나 잘 하고 가시지" 하면서 톡 쏘아 붙인다. 묻는 말도 대답하기가 부끄러울 정도로 순진하기 만한 아이가 얼마나 마음이 언짢았길래 나는 가슴이 찡하니 아파옴을 참느라 혼이 났다. 나는 그 뒤로도 긴 소매옷은 입었지만 장갑은 벗어던져 버렸다. 뜨거운 불덩이 같은 게 목으로 올라오면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볼을 적셨다. 이런 적도 있었다. 아이들과 같이 외출을 했는데 사람들은 내 손에 난 상처를 보고 으레 내 얼굴을 훔쳐보았다. 내 막내 아이는 무의식 중에 내 손을 감싸듯이 잡아 주었다. 그 느낌은 무어라 표현해야 할지……….
지금은 상처가 아문 지 5년
대학병원에 입원해 있었을 때의 그 처참함이란 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어떻게 그 비참한 모습,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아픔, 미치지 않고 견디어 내었을까 생각하니 꿈만 같다.
눈을 감고 생각해 보면 모든 일들이 주마등같이 스쳐 지나간다. 비대하신 몸을 주체도 못하면서 사력을 다해서 간호해 주신 친정어머니와 언니를 생각하면, 눈물이 앞설 뿐이다. 그리고 헌신적으로 간호해 주던 간호원 동생 또한 잊지 못하겠다.
주치의도 의무와 책임감 때문이었겠지만 항상 따뜻하게 대해 주어서 정신적인 면까지도 치유 되었다. 나는 그 사람들의 따뜻한 배려를 내 눈이 영원히 감기기 전에는 잊지 못할 것이다.
내 몸은 내 몸이기 전에 세 아이의 엄마와 한 지아비의 아내이기 때문에 더욱 생의 애착을 유달리 느꼈다. 그러므로 나는 내가 이 세상에 살아남아야 한다는 욕망을 강렬히 느끼게 되었다.
견딜 수 없는 아픔. 지탱하기 어려운 정신 상태는 나를 얼추 죽고만 싶게 했다. 어머니 이상으로 마음 아파하고 비참한 아내의 모습을 아파하는 아빠.
일그러진 내 얼굴이 떠올라 직장에서 제대로 일도 못하겠다는 아빠. 침대가 없어 병원 땅바닥에 자리를 깔고 그 수많은 날을 밤 새우시던 아빠.
그이는 집에서 편히 잘 수 있는데도 고통을 참지 못하는 나를 두고 그럴 수가 없어서 땅바닥에서 새우잠을 자곤 했다. 아내의 아픔을 나누어 가질 수만 있다면 “내 비록 고통스럽더라도 당신의 고통 10분의 1도 안 되어”하시며 아빠는 날이면 날마다 천방지축으로 쩔쩔매기만 했다.
우리를 천생연분이라고 친구들이 놀려대곤 했는데 불쌍한 아내를 볼 때 그 마음 또한 오죽이나 진한 아픔으로 가득 했을까 싶다.
우리는 남들처럼 많은 것을 가진 게 없다.
있다면 정신적으로 풍요롭다고나 할까……….
언제인가 아빠가 나에게 이렇게 얘기하셨다. “여보 미안해 내가 당신을 위해서 해 줄 수 있는 게 이것뿐이라니. 마음은 그게 아니고 이 세상을 난 당신을 위해서 태어난 사람처럼 생각되는데 미안해………. 하셨을 때 난 가슴이 찡, 했고 눈물이 그렁그렁 정말 고마웠다.
이젠 병원 침대 모서리를 붙잡고 걸음마 연습하던 그때가 한때의 악몽과 추억으로 남았고, 그 아픔도, 허참했던 꼴도 잊혀져 가는데 역시 말 못할 오뇌는 지워지지 않으니 세월이 더 가면 그것이 약이 되어 잊혀질 날이 오리라 믿고 싶다. 내 마음 속에 숨겨둔 진한 아픔이 있다고 해도 따뜻한 아빠의 마음이 와서 닿으면 또 그 아픔도 서서히 잊혀져 가겠지.
이룰 수 없는 꿈도 이상도 생각할 나이는 훨씬 지나고 오직 내 사랑하는 아들딸 그리고 믿음직스럽고 날 아껴주는 아빠의 건강한 모습을 지켜보며 욕심 부리지 않고 굳건히 살아가려고 한다.
오직 아빠의 하고 싶은 오페라 공연을 앞두고 난 그이의 건강을 부지런히 체크해 드려야 할 한 가지만 생각하자고 다짐한다. 진한 아픔일랑 진한 행복으로 바꾸고 그이의 따뜻한 사랑으로 모든 진한 아픔 지워 버리고 이젠 밝게 웃으면서 살고 싶다. -1983. 봄.
서춘자 문화전문기자 gnp@goodnewspeople.com 서춘자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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