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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리즈> 선비정신을 찾아서…/ 필문 李先齊 | 광산 이씨(光山 李氏) 가문의 우뚝한 인물
세종 원년에 과거 급제…史官 등으로 맹활약
郡으로 강등된 광주를 牧으로 복귀시킨 주인공
광주 최초 향약 실시하여 고을 풍속 바로잡기도
그를 기려 남광주역~조대 앞~서방사거리 ‘필문로’ 명명 | | | | 입력시간 : 2012. 05.08. 14:54 |
 | | 필문이 심었다는 왕버들인 ‘괘고정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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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남구 원산동 포충사(고경명 선생을 모신 사당) 옆에 난 논길을 지나 산 아래 만산마을로 들어서면 필문 이선제(李先齊, 1389~1453)가 태어나고 자란 곳이 나타나는데, 지금도 이 마을에는 20대 종손인 이진호(52)씨가 고려 때부터의 터를 지키고 살고 있다.
필문은 어려서부터의 영특함을 커서도 나타내 광산 이씨(光山 李氏) 가문을 빛낸다. 세종 원년(1419) 증광문과(增廣文科)에 급제했으며, 1423년 「고려사」를 개수(改修)할 때 사관(史官)으로서, 사실과 다른 점이 많다고 지적하여 그 부분을 원전(原典)에 따르게 했다. 세종 13년(1431) 집현전 부교리로서 춘추관 기사관이 되어 「태종실록」 편찬에 참여하는 한편 형조와 병조의 참의, 강원도 관찰사, 예조 참의, 호조 참판 등을 역임했다. 세종 30년(1448) 명(明)나라에 다녀와서 집현전 부제학 정창손, 우찬성 김종서, 이조판서 정인지와 함께 「고려사」 개찬(改撰)에 참여하였다. 뒤에 예문관 제학을 지냈다. | | 필문의 신도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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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에는 필문 이선제를 기리기 위해 옛 남광주역에서 조선대 앞을 지나 서방사거리까지를 필문로로 지정했다. 필문로의 지정은 제봉로나 금남로를 지정하여 고경명과 정충신의 충절을 기리는 것과는 또 다른 의미가 있다. 노성태 선생 등에 따르면, 필문이 41세 되던 세종 12년(1430) 광주는 광주목(牧)에서 무진군(茂珍郡)으로 강등된다. 만호 벼슬을 지낸 광주 사람 노흥준의 애첩인 기생 소매(小梅)를 광주 목사인 신보안이 꼬드겨 간통을 해 노흥준이 분을 참지 못하고 신보안을 구타한 사건 때문이었다. 당시 수령을 구타하고 모욕한 죄인 강상죄는 매우 무겁게 취급되어 일가친척까지도 피신하고, 고을의 호칭이 강등되기도 했다. 허나 필문은 긴 세월 강등은 억울하다고 여겨 문종 원년(1451) 광주의 원로들과 함께 임금에게 상소하여 무진군을 다시 광주목으로 복귀시킨다. 강등이 된 지 21년만이다.
함에도 필문 이선제는 도로명만큼이나 광주사람들에게 생소하다. 하지만 관심을 가지고 그의 발자취를 살피면 살필수록 빛난다. 광주우체국 자리에 희경루(喜慶樓)를 지었으며, 남구 칠석동 부용정의 주인공 김문발(1358~1418)과 함께 광주 최초의 향약을 실시하여 고을의 풍속을 바로잡는 등 향리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광주읍지'의 성씨조를 보면 탁, 노, 이라 부른 탁(卓)씨, 노(盧)씨, 이(李)씨를 비롯해 김(金)씨, 채(蔡)씨 등 13개 성씨가 광산(光山)을 본관으로 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 중 가장 돋보이는 가문이 필문 이선제부터 시작하여 5대에 걸쳐 과거 합격자를 배출한 광주 이씨다. 그러나 지금 필문이 태어난 광주 남구 원산동에는 더 이상 광주 이씨 가문의 영광은 남아있지 않다. 필문의 5대손인 발(1544~89)과 길(1547~89) 형제가 정여립 모반사건이라고 불리는 기축옥사에 연루되면서 가문이 멸문(滅門)의 화를 당했기 때문이다. 30년이 넘게 주요 관직을 역임했던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필문은 최근까지 생몰 연대마저 알 수 없는 잊힌 인물이 되었다.
그러나 하늘은 광산 이문의 숨은 정기와 업적을 버리지 않았다. 1997년 기쁜 소식이 문중으로 날아들었다. 그야말로 꿈같은 소식이었다. 청자에 새겨진 필문의 묘지(墓誌)가 일본으로 밀반출되기 직전 김해공항에서 문화제 감정관이던 양맹준에 의해 필사됨으로써 극적으로 정확한 생몰 연대가 알려지게 되었기 때문이다. 필문은 죽은 지 360여 년이 지난 순조 20년(1820)에 가서야 강진의 수암서원(秀岩書院)에 배향될 수 있었다. | | 필문의 부조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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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화순군 도곡면 죽청리의 죽산사(竹山祠)와 화순읍 앵남리의 오현당(五賢堂)에도 배향되었다.
원산동 포충사 옆길을 건너 필문이 태어난 마을에는 그의 불천위 신주를 모시는 사당인 부조묘가 있고, 뒷산 언덕에 그의 무덤이 있다. 불천위는 나라에 큰 공훈을 세운 사람이 죽으면 그 신위를 사당에 영구히 모셔도 좋다고 임금이 허락한 신위를 말한다. 마을 입구에는 필문이 가문의 번영을 희구하면서 심은 왕버들나무(광주광역시 기념물 24호)가 있다. 필문은 나무를 심으면서 "이 나무가 죽으면 가문이 쇠락할 것이니 관리를 잘하라"고 특별히 당부했다고 한다. 이후 필문의 후손들은 과거에 급제를 하면 이 나무에 급제자의 이름과 북을 걸어놓고 두드리면서 잔치를 벌였다. 그래서 이 왕버들나무는 괘고정수(掛敲亭樹)다.
이선제를 필두로 그의 두 아들인 시원과 형원이 과거에 합격했고, 형원의 아들 달손, 달손의 아들 공인, 공인의 아들 중호, 중호의 아들 발과 길이 대를 이어 합격하면서 가문의 영광을 알리는 북소리가 연이어 울렸다. "이 나무가 죽으면 가문이 쇠락할 것"이라는 필문의 예견대로 5대손인 발이 정여립 모반사건에 연루되어 멸문지화를 당하자 괘고정수도 말라죽기 시작했다. 그런데 300년이 지나 발의 억울함이 밝혀지자 왕버들나무에 다시 잎이 피어 살아났다고 한다.
한데, 이 빛나는 광산 이씨가 왕손의 후손이요, 경주 김씨의 후손이다. 광산 이씨는 시조가 각기 다르다. 이정(李靖)은 원래 김씨로서 김알지의 후손 헌안왕의 7세손이다. 이정의 8세손 순백이 고려 충숙왕 때 상서좌복야로서 왕이 토번(吐蕃)으로 갈 때 그가 혼자 호위하여 따랐다. 그래서 은청광록대부로 광산부원군(光山府院君)에 봉해졌다. 그 뒤 이씨로 성을 하사받았다. 그러나 이와 같은 사적이 실전되어 후손들은 그의 선대에 대해 확실히 알지 못하였다. 그러던 중 최근에 문헌이 발견되면서 경주 김씨의 후손임이 밝혀져 이정을 시조로 했다. 그리고 이순백을 득성득관중조(得姓得貫中祖)로 하여 세보를 수정하고 있다. 반면, 신라 제48대 경문왕의 아들(일설에는 헌안왕의 아들이라고도 한다)로 전하는 태봉왕 궁예의 5대손 이종금(李宗金)을 시조로 전하기도 한다. 문헌에 의하면, 이종금은 본명이 김일형(金日炯)으로, 서기 1010년(고려 현종 원년) 거란족이 침입해왔을 때 장사(壯士)로서 강감찬 장군의 휘하에 들어가 강화성에서 적을 격파하는 데 큰 공을 세웠다. 그 뒤 1032년(덕종 2년) 이씨의 성과 종금이라는 이름을 하사받고 광산군에 봉해졌다. 그래서 후손들이 광산을 본관으로 삼고 세계(世系)를 이어왔다. 그의 8대손 이순백이 공을 세워 상서좌복야에 이르렀다. 광산 이씨는 이순백의 아우 숙백과 승백이 직제학을 역임하는 등 3형제가 가문을 크게 중흥시켰다. 순백, 숙백, 승백 3형제를 중시조로 하여 상서공파, 한림공파, 제학공파로 크게 갈리어 영남과 호남을 비롯한 평남북 일원에 집중 세거하고 있다.
고운석 주필, 사진=박양수 기자 gnp@goodnewspeople.com 고운석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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