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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 현대무용 발레 입시전문 한빛무용학원 원장 장연향
(사)한국학원총연합회 광주지회 무용분과 회장
25년을 한결같이 제자 양성에 전념
무용 전공 대학입시 명문 학원 명성 자자
출중한 실력의 인재들 보며 “보람”
입력시간 : 2012. 05.10. 11:03


지난 4월 전세계 무용인들의 등용문이라 할 수 있는 뉴욕발레콩쿨에서 정연재(동아여중 2학년) 학생이 우수한 성적을 거둬 무용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길고 난다는 유망한 무용인들을 재치고 지방에서 공부한 학생이 이런 뛰어난 실력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출중한 학생 뒤에는 반드시 그 재능을 발굴해 가르친 스승이 있기 마련. 수소문해 찾아 간 곳은 광주광역시 남구의 한 무용 학원이었다. 문화 중심도시, 빛고을 광주광역시에 전국 더 나아가 세계 어디에 내 놓아도 뒤지지 않는 실력으로 빛을 내는 ‘한빛무용학원’.

광주에서 무용을 전공하고픈 학생들이라면 이미 널리 알려진 명문 현대무용 발레 입시전문학원이다.

발레로 다져진 완벽한 몸매에 까칠하고 완고할 것이라는 선입견과는 달리 장연향 원장은 얘기를 나누다보니 자식을 걱정하는 전형적인 한국 엄마의 모습이 겹쳐져 따뜻함을 느낄 수 있었다.


무용학과로서는 전국적인 명문이라 할 수 있는 조선대학교에 입학해 무용인으로 성장하기 위해 정말 열심히 춤을 췄었다. 그러던 장 원장이 학원을 운영하게 된 것은 어쩌면 운명 같은 것이었다고. 전도유망한 무용인이었던 그녀는 당연히 대학에 남아 공부를 계속하고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가 되고 싶었다. 그러던 중 대학 졸업을 앞두고 외국에 나가 더 많은 공부를 하고 싶던 차에 여러 가지 학교 사정으로 모든 것이 중단되었고 중등학교 2급 정교사 자격증을 가지고 있던 그녀에게 학교 선생님이 되라는 권유가 있었다. 그렇게 되면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무용을 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어질 것 같아 과감히 포기하고 대학 시절부터 아르바이트로 학생들을 가르치던 경험을 살려 어린 나이였지만 학원을 운영하기로 마음을 먹은 것.

학원을 하게 되면 자신이 그토록 좋아하는 무용을 하면서 안무도 짜고, 제자들을 양성할 수 있으니 비록 대학 교수가 되지는 못하겠지만 원하는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아 시작했다. 열정을 가지고 제자들을 가르치다보니 그동안 학생들이 참가한 각종 콩쿨이나 무용대회에서는 우수한 성적을 거두며 셀 수 없을 정도로 상을 수상했고, 장 원장 역시 한국종합예술학교를 비롯 한양대, 세종대, 성균관대 등 대학교와 광주무용연합회, 광주 발레무용협회, 광주광역시 무용협회, 춤과 사람들 등의 단체에서 수여하는 ‘안무상’과 ‘지도자상’이 수두룩하다.

장 원장은 가르치는 일에 올인했다. 결혼을 하고 나서 아이를 늦게 가진 것도 그 이유 중 하나였다. 그러던 중 광주에서 학원을 운영하는 것이 자신의 운명이라고 생각하게 하는 일이 또 한가지 있었다. 대전에 있는 대학에서 겸임 교수로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던 것. 1남 1녀의 어린 자녀들을 두고 자신의 꿈을 위해 강단에 선다는 것에 대한 고민을 하다 가족과 함께 생활하며 제자를 양성하는 것 또한 보람된 일이라고 생각하고 전념했다.


이렇게 생각을 바꾸고 나서는 더욱 열심히 학생들을 가르치니 많은 제자들이 본인들이 원하는 대학에 진학해 지금은 전국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며 스승이 못다 이룬 꿈을 대신 이뤄주고 있다.

장 원장은 제자들을 가르치는 일 외에 무용가와 안무가로서도 큰 활약을 했다. 한국현대무용제에 2~5회 공연 출연을 했으며 87~2001년까지는 ‘빛고을 무용단’ 단원 및 회장을 역임하며 무대에 섰다. 88~90년에는 CBS '현대무용 대 축전‘에서 안무 및 출연을 했으며 90년에 서울무용제에 참여하기도 했다.

24시간도 부족해 보이는 장 원장은 그 와중에 공부하는 것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91년 Amerecan Dance Festival 연수를 시작으로 92년에는 L`ACAD`EMIE international DE LA dance를 수료했으며, 97~2001년 ‘Winter intensive couse' 뉴욕 연수 및 공연을 했다. 또 98년에는 프랑스에서 La Academie Interemati nale de la Dance를 수료했다.

장 원장의 그동안 활동을 보면 어떻게 생활했을까 하고 의아하다. 광주예술고등학교, 전남과학대학교, 조선대학교에서 강사를 역임했으며 개인 발표회를 5회하고 2005년에는 장연향 현대무용단 ‘파노라마’에서 안무를 맡았다. 지난 2010년 제4회 광주현대 춤 페스티발 ‘turning point'의 안무를 맡아 무대에 올렸으며 1985~89년에는 광주시립소년소녀합창단의 안무가로 활동했었다고 하니 놀랍기만 하다.

수십년의 세월동안 ‘무용’이라는 한 분야에서 앞만 보고 달려 온 장 원장. 그녀는 이제 뒤로 물러설 때가 되었다고 했다.
현재 (사)한국학원총연합회 광주지회 무용분과 회장이며 광주광역시 무용연합회 부회장이자 한국발레협회 광주지부 부회장을 맡고 있다. 실력 있는 유형근 부원장을 영입하고 좀 시간의 여유가 생긴 때문이다. 지금까지는 오직 아이들 가르치는 일에 전념했으나 나이가 들면서 자연스럽게 후배 무용인들의 적극적인 권유와 스스로 무언가 할 일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대외적인 활동에 나서고 있다.

이렇게 대외 활동을 하면서 학원 내에서 장 원장은 스스로 강사 선생님들이 시간이 없을 때 수업을 해 주는 ‘땜방(?) 선생님’이라고 말하며 활짝 웃어 보였다. 아직 그녀를 찾는 학생들과 학부모들이 많을 것 같다고 했더니 장 원장은 “가장 좋을 때 떠나라”는 말에 공감한다고 했다. 부원장과 유능한 강사들이 있으니 지금까지처럼 재능 있는 학생들에게 길을 열어주는 일은 계속할 수 있을 것으로 자신하고 있다. 자신은 안무에 집중해 좋은 작품으로 제자들이 공연할 수 있도록 뒷받침하는 일을 하고 싶다. 그러기 위해 장 원장은 수도권에 있는 후배 강사들을 초빙해 새로운 것들을 지도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연구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유치원생부터 대학 입시반까지 운영하고 있는 한빛무용학원은 그 명성만큼이나 실력이 뛰어난 학원생들이 많다. 학원 졸업생들 중에는 전국의 명문대학에서 강단서 학생을 가르치는 교수도 있고, 무용단에서 수석 무용수로 활약하고 있는 이들도 많다. 장 원장의 ‘보람’이다.

1년에 10번 정도의 콩쿨에 학생들을 데리고 참가해야 하며 그것이 끝나면 대학입시가 이어지니 1년이 어떻게 지나가는 줄 모르겠다는 장 원장. 그러는 중에도 학원생들에게 무대에 오를 기회를 주기 위해 학원 발표회를 갖기도 하고 또 일본의 한 단체와 인연을 맺어 일본 4곳의 도시에서 공연을 하기도 했다.

1남 1녀를 두고 있는 장 원장은 딸이 엄마의 뒤를 이어 뒤늦게 무용을 전공하고 싶다고 해 공부 중이라고 했다. 하지만 딸은 직접 무용을 하는 것보다는 이론 분야를 공부하는 게 낫겠다 싶어 그쪽으로 진학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다. 아들은 중학교 2학년으로 현재 호주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데 선견지명을 가진 장 원장은 앞으로 중국으로 보내 글로벌 인재로 키우고 싶다. 어려서부터 “세계의 대통령이 되라”고 자신감을 불러 넣어준 때문인지 아들은 어디서나 잘 적응하고 있어 “기특하다”고 했다.

한 분야에서 명성을 날린다는 것은 그만큼의 희생과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임을 몸소 보여주고 있는 장 원장이다.


서춘자ㆍ방수진 기자 gnp@goodnewspeople.com        서춘자ㆍ방수진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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