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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 선비정신을 찾아서… <75>/ 竹山 曺奉岩
대학 시절 독립운동 수단으로 공산주의 수용
이를 빌미로 이승만 정권이 간첩죄 씌워 처형
2011년 대법 재심서 반세기만에 무죄로 복권
그의 정신을 복지-통일국가 에너지로 승화를…
입력시간 : 2013. 03.26. 11:35


2010년 11월 18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법정. 헌정사상 '사법 살인'의 첫 희생자로 꼽히는 조봉암 선생에 대한 재심(再審) 첫 공판에서 장녀 조호정(82)씨 등 유족들이 공판을 기다리고 있다.
죽산 조봉암(竹山 曺奉岩, 1898∼1959)은 경기 강화에서 빈농의 아들로 출생, 소학교와 농업보습학교를 마치고 군청 급사로 일했으며, 3·1운동에 참가해 1년간 투옥됐다. 그 후 일본으로 건너가 대학에 다니며 공산주의 사상을 수용했다. 많은 청년 인텔리겐치아들이 그랬던 것처럼 공산주의가 조국 독립을 위한 최선의 방편이라고 판단했던 것이다. 1922년 귀국해 공산주의 그룹에 가입하고, 고려공산당연합대회 국내 대표로 뽑혀 베르후네우딘스크에 갔다가 모스크바로 가서 동방노력자공산대학을 다녔다. 고국으로 돌아와 조선공산당 창당에 기여하고, 다시 모스크바로 가서 조선공산당과 고려공산청년회의 승인을 받았다. 이후 중국 상하이(上海)에서 독립운동에 가담하는 한편, 만주로 가서 조선공산당 만주총국을 조직했다. 그것은 뒷날 항일 파르티잔 투쟁의 기초가 되었다. 상하이에서 조선유일독립운동 등 항일연합전선을 만들려는 노력도 했다. 1932년 체포당해 신의주형무소에서 7년을 복역하고 인천에서 미강(米糠)조합 일을 하다가 일제 말 예비검속으로 구속되었다. 해방 후에는 인천에서 건국준비위원회, 민주주의민족전선 지부를 조직해 이끌었다.

1946년 전향 성명을 내며 공산주의와 결별하고, 좌우합작운동을 전개했다. 인천에서 제헌 국회의원이 되었고, 이승만 정권의 농림부장관, 국회 부의장을 지냈다. 1952년 대통령선거에서 79만 표를 얻고 차점자로 낙선했다. 죽산은 이후 박기출, 서상일 등과 함께 혁신정당 구성을 추진했으나, 서상일이 떨어져나갔다. 그는 결국 1955년 강릉 회합에서 이승만 정권에 반대하고 민주당에 들지 않은 혁신세력을 결집시켰고, 석 달 뒤 사회민주주의 정당인 진보당 창당준비위원회를 발족 시켰다. ‘책임 있는 혁신정치, 수탈 없는 계획경제, 민주적 평화통일’의 3대 정강을 내걸었다. 죽산은 다시 1956년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다. 공약 10장 중 평화통일을 첫째로 앞세웠다. ‘남북한에 걸쳐 조국의 통일을 저지하고 동족상잔의 유혈극의 재발을 꾀하는 극좌-극우의 불순세력을 억제하고 진보세력이 주도권을 장악함으로써 국련(UN) 보장 하의 민주방식에 의한 평화적 통일을 성취한다’는 것이었다. 진보당이 아직 창당되지 않았으므로 이번에도 무소속 출마였다. 야권 단일화를 위해 민주당 공천을 받은 신익희와 협상해야 했다.
2009년 7월 29일 오전 국회 귀빈식당. 조봉암 선생 서거 50주년 추모 토론회 '21세기 진보정치와 죽산 조봉암의 재조명'이 열리고 있다.
죽산이 양보해 신익희가 3대 대통령 후보로 나서고 차기는 죽산이 나서기로 묵계를 맺었는데, 선거를 열흘 앞두고 신익희가 급서했다. 결국 이승만과 죽산의 대결로 좁혀졌고, 죽산은 신변의 위협을 느껴 잠적했다. 1956년 5월 15일 예정대로 치러진 대통령 선거에서 죽산은 216만4000표를 얻었다.

그 결과는 세상을 놀라게 하고 이승만 정권이 큰 위협으로 여겨 제거를 결심하게 만들었다. 그때부터 죽산의 머리위에 사신(死神)이 어른거리기 시작했는데, 죽산은 생명까지 빼앗길 위험으로는 느끼지 않은 것 같다. 일제강점기 독립투쟁 시절부터 앞날을 예리하게 예측하며 수많은 고비를 뛰어넘고, 때로는 과감한 변신을 했던 죽산이 왜 그랬을까. 김성주 사무처장이 고문으로 죽은 일도 있고, 3대 총선에서 탄압을 받아 후보 등록조차 하지 못했다. 진보의 길, 제3의 길을 가려던 김구와 여운형이 암살당했다. 그런데 그는 자신에게 위함이 닥쳐올 걸 예감하지 못한 걸까. 반공을 국시로 삼는 상황에서 이승만을 꺾고 당선될 수 있을 거라 믿었을까. 죽산은 무엇을 믿었던 것일까.

명망 높은 장로교 목회자로서 정치적 성향이 강했던 강원룡 목사의 글에 관련된 내용이 있다. 강 목사는 죽산에게 지금 상황에서 절대 대통령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미국의 공산주의 거부운동인 매카시 선풍을 예로 들어, 미국의 전진기지인 우리나라에서는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자 죽산은 “나는 미 대사관이나 미국 책임자들을 자주 접촉하는데 그들이 남북문제 해결을 위해 내가 대통령이 돼야 한다며 고위 장교를 보내 영어를 가르쳐준다”고 대답했다는 것이다. 확실한 근거는 없지만, 죽산은 미국이 자신을 지지하고 지켜줄 걸로 믿은 것 같다.

그런데 이승만 정권의 탄압은 주도면밀하게 진행됐다. 조총련에서 밀파했다는 정우갑 사건을 시작으로 박정호 사건(조작이 아니라 고정간첩이었다) 등 신문에 오르는 간첩사건마다 죽산의 이름과 사진이 같이 실렸다. 검찰은 죽산과 진보당 간부들이 마치 북한 김일성의 지령을 받고 평화통일론을 주창한 것처럼 몰고 갔으며, 상하이 망명 시절 죽산과 가까웠던 남북무역사업자 양이섭을 군 특무대가 체포해 죽산에게 북한 공작금을 줬다는 진술을 하게 만들었다. 1958년 1월 11일 그에 대한 구속영장이 발부되고 12일에는 측근인 박기출, 윤길중, 조규희, 조규택, 이동화가 체포되었다. 죽산은 13일 오전 집에 전화를 걸어 가족을 안심시키고 서울시경에 전화를 걸어 자진출두를 통고했다(연구가들의 글이나 신문 자료들과 달리, 죽산의 차녀 조임정 여사는 부친이 경찰 출두 전날 심야에 약수동 집에 잠깐 들렀다고 함).

죽산을 옭아매는 조작된 수사는 각본대로 진행되었다. 재판에서 유병진 재판장과 같은 양심적인 판사가 그를 지키려 했으나 결국 사형선고로 귀결되고 말았다. 2월 27일 대법원 상고심에서 재판장 김세완과 대법관 김갑수, 허진, 백한성, 변옥주는 국가 변란 목적 진보당 결성 및 간첩 혐의를 인정해 이례적인 파기자판으로 사형선고를 확정했다.

6월 20일 주한미국대사관은 본토의 국무부로부터 이 문제에 대한 우려와 함께 그 원인을 비공식적으로 부각시키고, 영향력 있다고 생각되는 관료들로 하여금 조봉암이 사형당하거나 추방당할 가능성이 없게 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다울링 미국대사는 이기붕을 만나 사형을 막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장택상은 죽산의 딸 조호정의 호소를 듣고 홍진기 법무장관을 찾아가 ‘공산당이 아니라는 성명만 발표하면 내년 대통령 선거까지 집행을 늦춘다’는 약속을 받아냈으나 지켜지지 않았다. 결국 1959년 7월 30일 대법원이 재심청구를 기각했고, 죽산은 다음날 사형이 집행되어 파란만장한 60년의 생애를 마쳤다.

이 억울한 죽음은 민주화 바람을 타고 반세기만에 복권과 명예회복의 길이 열렸다. 2007년 대통령 직속 진실화해위원회는 ‘조봉암 간첩누명사건은 정권에 위협이 되는 야당 정치인을 제거하려는 의도에서 표적수사에 나서 극형인 사형에 처한 것으로, 민주국가에서 있어서는 안 될 반인권적 정치탄압사건이므로 유가족에게 총체적으로 사과하고 대법원 재심 등 상응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결정했다. 이에 따라 2011년 1월 대법원 재심은 무죄를 선고했고, 12월 서울민사지법은 유족에게 24억 원을 지급하라고 선고했다.

죽산 선생의 명예회복은 부끄러운 과거를 씻는 국가 양심의 상승을 의미한다. 죽산을 거물 정치가로 키워냈던 인천 시민들은 새얼문화재단(이사장 지용택)을 중심으로 죽산 선생 동상건립운동을 조용히 벌이고 있고, 이미 8억 원이 넘었다는 소식이다. 여러 가지 기념사업이 펼쳐져 선생의 억울한 넋을 위무하고 선견적 이념과 사상을 발전시켜 미래의 이상적인 민주복지국가, 통일국가를 기약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고운석 주필 gnp@goodnewspeople.com        고운석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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