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2월 5일(일)
HOME 커버스토리 정치 경제 사회 문화 환경 국제 스포츠 여성.가정 건강 이웃 전국

이동하기
<시리즈> 선비정신을 찾아서… <78>/ 효열공 高從厚 장군
임진왜란에 몸을 사른 武人
아버지와 동생이 동시에 왜적에 희생되자
애국심-복수심의 화신이 돼 용맹을 떨쳐
어머니-처-자식의 정 뿌리치고 진주성전투 참가
호남 의병장 김천일-최경회와 남강에 투신 散華
입력시간 : 2013. 06.05. 13:56


작년 3월 27일 봉행된 제419주년 진주성 창렬사 제향 모습. 창렬사는 고종후 등 임진왜란 진주성 전투에서 장렬히 전사한 장수들의 신위가 모셔져 있는 곳이다.
고종후는 선조 3년 진사에 합격하고 정축별시(丁丑別試) 문과에 급제하여 임피현령을 지냈다. 계사(癸巳)년에 아버지 충열공(고경명)과 아우 의열공 인후가 함께 전사했다는 소식을 듣고 아버지를 따라 죽지를 못하였음을 통분하게 여기며 아버지와 아우의 시체를 거두고 끝까지 종군하여 복수하기를 맹세하고 말하기를 “부모의 원수도 갚지 못하고 나라의 수치도 씻지 못한 내가 어찌 살았다 할 수 있겠는가. 죽는 것이 마땅하다"하였다. '호남절의록'에 효열공 고종후(1554~93)의 의병활동이 자세히 적혀 있다.

그는 1577년에 문과에 급제하여 1588년에 임피현령을 지내다 집권층과 뜻이 안 맞아 파직 당하였다. 그리고 1591년에 지제교에 뽑혔으나 또 탄핵을 받았다. 고종후는 벼슬길이 잘 안 풀렸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그는 전라감사 이광의 2차 의병 모집 시 인솔부대장이 되어 의병들을 권율의 군대에 인계하여주고 다시 돌아왔다. 이때 고경명은 담양에서 창의하였는데 고종후는 태인에서 아버지를 만나뵙고, 폐현 금구현에 가서 인원을 모집하는 한편, 격문을 제주도로 보내어 말을 보내달라고 청하였다. 이 격문에는 이러한 구절이 있다. "바다 밖에서도 옷을 떨치고 일어날 사람이 있을 줄을 나는 안다. 채찍을 잡고 서서 천하에 말(馬)이 없다 하지 말라." 이것이 깨우치는 절구로서 당시 사람들이 서로 전해가며 외웠다. 1592년 7월 10일 금산전투에서 곽영의 관군이 먼저 무너지고 고경명 휘하의 의병들도 허망하게 무너지고 말았다. 중간에 있던 고종후는 낌새를 모르고 말을 채찍질하여 앞에 나가 싸우려 하였다. 그때 노비 봉이와 귀인이 달려와서 의병장 고경명이 선봉에서 위험하다는 말을 전하였다. 고종후가 급히 삼십 리를 달려간 뒤에야 고경명과 고인후가 순절한 사실을 알았다. 순간, 고종후는 말에서 떨어져 기절하였다. 한참 후에 정신이 들어서 맨손으로 적진에 나가 싸우려고 하자, 집안의 하인 봉이와 귀인을 비롯하여 주변 사람들이 껴안고 말렸다. 그들은 "일이 이미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그냥 죽는 일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부친과 동생의 시신이 싸움터에 있는 마당에 당신마저 죽으면 누가 시신을 수습할 것입니까"라고 간곡하게 말하였다. 이윽고 고종후는 의병과 승군의 도움을 받아 싸움터로 다시 들어가 부친과 아우의 시신을 수습하여 금산의 산중에 임시로 묻었다. 그리고 40여일이 지난 8월에 비로소 관을 마련하여 염습을 하였다. 시신을 보니, 더위와 비를 겪었지만 얼굴빛이 살아 있는 것 같아서 보는 이들이 기이하게 여겼다. 장례를 치른 다음날, 바람과 눈이 섞여 일어나고 긴 무지개가 무덤 왼쪽에서 생겨 수십 리에 뻗치고, 이상한 광채가 한 달이 넘도록 사라지지 아니하였다. 사람들은 이것을 충성과 분노의 감응이라고 하였다. 장례를 마친 고종후는 밤낮으로 통곡하였다. 부친과 동생이 순절하였는데 홀로 목숨을 연명하면 무슨 낯으로 세상사람들을 볼 것인가, 하면서 싸움터로 가려 하였다. 그런데 홀로된 어머니가 싸움터로 가는 것을 말리었다. 어머니는 "내가 먼저 죽겠다. 차마 너의 죽음을 생전에 다시 볼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공연으로 되살아난 진주성전투
고종후는 의리를 따르면 어머니의 뜻을 거역하는 것이고, 어머니의 뜻을 따른다면 나라를 지킬 의리를 저버리는 일이었다. 그는 문을 걸어잠그고 하늘도 보지 않고 오랫동안 식음을 전폐하여 거의 죽을 지경에 이르렀다. 마침내 고종후의 어머니가 지고 말았다. 어머니는 울면서 "내가 너를 말린 것은 너를 살리기 위한 것이었는데, 이제 네가 병으로 죽는다면 차라리 네 뜻대로 하다가 죽는 것이 더 낫겠다"고 말하였다. 어머니의 허락을 받은 고종후는 즉시 일어나 죽을 먹고 몸을 추슬렀다. 1592년 12월에 고종후는 광주에서 의병청을 설치하고 '복수'를 군의 구호로 삼고 여러 곳에 격문을 보내어 의병을 모았다. 그 격문에는 “불행한 때를 만나 집안의 화변이 망극하다. 불초고(不肖孤)는 상중에 앓고 누워 아직까지 왜적들과 한 하늘에서 살아 있다. 이번에 첨지 홍계남이 먼저 대의로써 아버지의 원수를 갚고자 의병을 일으키니 마음은 다 같은지라, 누군들 일어나지 않겠는가. 나도 비록 못났으나 아버지의 장례도 마쳤으니 이 몸이 죽어도 유감이 없다. 상복을 무릅쓰고 병든 몸을 붙들고 동지들과 더불어 적과 싸워 죽을 계획을 하고자 한다. 태인, 진원, 장성, 세 고을 수령들 또한 하늘에 사무치는 통분을 품고 있어, 도체찰사는 그들에게 군사를 합하여 원수를 갚도록 하고 법도와 규칙에 구애받지 않도록 허락하였다. 아아, 호남지방의 사람들뿐만 아니라 경기지방의 선비와 백성들 중에 남쪽으로 내려온 사람들도 어찌 부자형제의 원수가 없겠는가. 비록 다행히 적의 칼날을 피할 수 있었더라도 서리와 이슬 속에서 병을 얻어 그로 인해 죽게 되었다면 또한 이 원수를 잊을 수 없을 것이다. 내 선친이 담양(죽록원 뒤 추선관 자리)에서 의병을 일으켰을 때 전라도의 여러 분이 나랏일에 같이 죽기를 기약하여 향불을 피우고 하늘에 맹서하고서 선친을 추대하여 대장으로 하였으니, 진실로 형제같은 의리가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불행히도 대업을 끝까지 성취하지 못하였으니 여러분이 어찌 차마 길가는 사람의 일처럼 보고 있을 수 있겠는가. 그때의 부하 무인들은 이미 다 의병으로 달려왔다. 원컨대 나를 불초하다고 생각지 말고 담양에서 피를 마셔 맹세하던 일을 다시 한 번 회상하여 일제히 광주에 모여서 맹약을 맺고 함께 싸우자”고 하였다. 그런데 당시에는 군사 징발이 여러 갈래로 겹쳤기 때문에 민간에 있는 장정이 없어서, 모집된 군사가 겨우 수백 명에 불과하였다. 하지만 고종후는 조수준을 계원장으로, 승려 해정을 유격장으로, 김인혼과 고경신을 군관으로 삼았다. 그리고 집안의 종 봉이와 귀인 등도 종군으로 삼고, 고경명의 서제인 고경형도 의병에 참가시켰다. 영남으로 출발하는 날에 고종후는 어머니에게 재배하면서 막내 동생 고용후에게 말하기를 "오늘이 마지막 이별이니 어머니를 잘 모시고 공부에 힘쓰라"고 당부하였다. 이때 부인 이씨는 안동 본가로 피난하였는데, 고종후가 싸움터로 간다는 소식을 듣고 광주로 달려왔다. 부인은 절양루(지금의 광주광역시 누문동 광주일고 근처)에 있는 고종후를 뵙기를 청하였다. 그런데 공은 이미 출전 중에 있으니 이곳을 떠날 수 없다 하였다. 부인은 다시 두 아들을 보내어 아버지와 작별을 하고 오라고 하였는데, 이때 큰아들이 7살, 작은아들이 5살이었다. 공은 아들을 무릎에 앉히고 등을 어루만지면서 말하기를 "나는 너를 위하여 죽는 것이니, 오히려 사는 것이 아니냐"라고 하면서 속옷을 벗어주며 이씨 부인에게 전하도록 하였다. 이후 어느덧 진주성에 도착한다. 남강은 의기가 흐르고 있었다. 촉석루를 지나서 맨 먼저 가는 곳은 창렬사 사당이다. 1593년 6월 하순 진주성이 위기에 처하자 고종후는 휘하 병력 400명을 데리고 진주성 안으로 들어가 김천일의 부대와 합류한다. 그리고 6월 29일 진주성이 함락되던 날, 그는 김천일, 최경회 등과 함께 남강 물에 몸을 던진다.

고종후의 신위는 창렬사 중앙사당에 김천일, 최경회, 황진 등과 함께 모셔져 있다. 촉석루에 올라가 내려다보면 호남 의병장 고종후, 김천일, 최경회 세 장사가 몸을 던진 남강 물이 이런 시를 품고 흐른다. <촉석루 삼장사를 잔을 들고 굽어볼 제/ 뜻있어 흐르는 물, 웃는 가슴 미어지다/ 세월도 강물이거니 넋은 길이 남으리라.>


고운석 주필 gnp@goodnewspeople.com        고운석의 다른 기사 보기

기사 목록     프린트 화면     메일로 보내기     뉴스 스크랩    


굿뉴스피플 만평
<교육칼럼> 또 하나의 경로석
돈, 박물관이 코인을 만난 세상
<청강의 세상이야기> 왕이 후궁에게 교…
왕이 교접의 법도란 어떻게 하는 것인가 하고 하문하자 후궁이 대답한다. 평소에 단련…
<우수 농협을 찾아서> 신안…
신안 임자농협 주광옥 조합장은 "최근 소비자들 사이에서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이 사람/공무원 화가 윤창숙씨
만화를 활용한 지방자치단체의 홍보기법과 효과 등을 종합 분석한 을 펴내 관심을 모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