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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인기사<30> 백사-율곡의 첫 만남 | 조선 선조 때 이름 날린 大臣 이항복
청년기엔 妓房 드나들던 천하 난봉꾼
어머니 최씨부인이 李珥 선생에 보내
철부지 무릎을 꿇게 한 대학자의 賢答
이에 탄복하여 학문에 정진 끝에 출세 | | | | 입력시간 : 2013. 07.04. 14:52 |
 | | 제향에서 백사 이항복의 신주 앞에 향을 올리는 종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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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선조 때 대신 이항복(李恒福, 1556~1618)은 청년기엔 말썽꾸러기였다. 최씨 부인은 이를 참고 참다가 끝내는 아들 이항복에게 호통을 쳤다. “공부는 뒷전이고 허구한 날 기방이나 출입하는 천하에 난봉꾼이라는 소문이 장안에 파다하다. 정녕 우리 가문을 욕되게 하려는 게냐? 네 행실이 이러하니 죽어서 조상님의 얼굴을 뵐 면목이 없느니라.” 그 같은 꾸지람을 듣고 방을 물러나온 이항복은 그날부터 며칠 동안 두문불출하며 지난 자신의 행동을 돌아보고 어머니의 질책을 되새기며 깊이 깨닫는 바가 있었다. 이항복은 어머니 앞에 꿇어앉아 진심으로 자신의 잘못을 뉘우쳤다. “어머니, 용서하십시오! 소자 그 동안 어머니께 불충한 모습만 보여드렸습니다. 그러나 이제부터라도 굳은 각오로 학문에만 힘쓰도록 하겠습니다.” 항복이 눈물까지 흘리며 말하자 최씨 부인은 노한 마음이 조금 누그러졌다. 이항복은 어머니에게 머리를 한 번 숙인 뒤 다시 말을 이었다. “며칠 동안 곰곰이 생각해보았는데, 소자는 이제부터 학식과 덕행이 뛰어난 스승을 찾아 그 밑에서 수학하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어머니께서 아시는 분을 알려주시면 당장 그분을 찾아가 제자로 받아주기를 청하겠습니다.” 최씨 부인은 항복의 각오가 굳은 것을 보고 미소를 띠며 말했다. “이제부터 남에게 부끄러운 짓을 삼가고 열심히 학문에 정진하여 나라에 보탬이 되는 사람이 되어야 하느니라.” 최씨 부인은 아들의 손을 잡고 부드럽게 다독이며 말했다. “스승을 찾으려는 네 생각이 기특하구나. 허나 늘 규중에만 있는 내가 바깥일을 제대로 알겠느냐. 다만, 네 아버지와 여러 어른들이 말씀하시는 것을 잠깐 들으니 율곡이라는 분이 성품이 어질고 학문도 깊다고 들었다. 많은 젊은이들이 그분 밑에서 학문을 닦는다고 하니 너도 찾아가 배움을 청해보려무나.” “알겠습니다. 어머니.” | | 강릉 오죽헌 율곡 선생 동상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는 관광객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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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이항복은 의관을 갖추고 이율곡(1536~84)의 집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그는 율곡이 대학자인지 확인해보려고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그야말로 율곡에 대한 칭송이 대단했다. 그러나 이항복은 의구심이 가라앉지 앉았다. “아무리 명성이 높아도 사람들 말만으로는 알 수 없어. 겉으로는 공자맹자를 줄줄 읊어도 실상은 아무것도 모르는 이가 허다하지 않은가. 게다가 글깨나 읽었다는 학자들도 벼슬길에 오르면 세도가의 집 앞에서 머리를 굽실거리느라 여념이 없는 법인데…. 율곡 선생이 그 명성에 합당한 인물인지 확인해보아야 할 텐데, 무슨 방법이 없을까….” 잠시 생각에 잠기던 이항복은 이내 입가에 기묘한 미소를 띠었다. 그는 장난기 어린 웃음을 한번 터뜨리고는 빠른 걸음으로 율곡의 집으로 갔다.
율곡의 집에는 벌써 문하생들이 가득하게 모여 있었다. 이항복이 들어서자 그들의 시선이 일제히 그에게 집중되었다. 이항복은 보란 듯이 율곡이 있는 방으로 들어가 큰절을 올린 뒤 무릎을 꿇고 말했다. “소생 이항복이라 하옵니다. 비록 지난날 학문을 도외시하고 못된 짓만 일삼다가 비로소 잘못을 뉘우치고 이제라도 고명하신 선생님의 밑에서 학문에 전념하고자 하옵니다. 부디 저를 너그럽게 받아주신다면 소생 열심히 학문에 정진하여 그 은혜에 보답하겠습니다.” 율곡은 따뜻한 미소를 지으며 이항복을 바라보았다. “이항복이라 했는가?” “예.” “자네 이름은 익히 들어서 알고 있네. 난봉 부리기로 유명하다 들었네, 허허!” “송구하옵니다.” 한바탕 파안대소를 한 율곡은 이항복을 찬찬히 뜯어보며 말했다. “난 그저 자네보다 나이가 좀 많을 뿐, 덕이 깊지 않고 아는 것도 많지 않네. 허나 자네가 묻는 것이 있으면 성심성의껏 답해줄 터이니 어려워하지 말고 친숙하게 대하게.” 율곡이 한양 사람이라면 모르는 이가 없는 천하의 난봉꾼 이항복을 받아들이자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크게 놀라며 한마디씩 하느라 소란스럽게 웅성거렸다. 그러자 이항복은 주위를 한번 둘러보고는 율곡에게 말했다. “하오면 선생님, 처음 뵙는 자리에서 무례하다 생각하실지 모르겠습니다만, 소생이 여태껏 풀지 못하고 품어온 의문이 하나 있기에 감히 여쭤보려 합니다.” “말해보게. 내 아는 데까지 대답해주겠네.” 율곡은 한껏 부드러운 어조로 대답했다. “이제껏 제가 기방을 드나들면서 늘 품어온 의문이 한 가지 있사옵니다. 사람의 생식기를 일러, 남자아이의 그것은 ○지라 하고 여자아이의 그것은 ○지라고 하다가, 어른이 되면 각각의 명칭이 남자는 ○, 여자는 ○으로 변하는 까닭이 무엇이온지 참으로 궁금하옵니다. 소생은 아둔하여 알 수가 없으니 선생님께서 명쾌히 가르쳐주십시오.” 이항복이 대학자 앞에서 이렇듯 당돌하고도 해괴한 질문을 하자 거기 모인 문하생들은 눈이 둥그레지며 아연실색했다. 그러나 율곡 선생은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아니, 자넨 지금까지 그것도 모르고 기방을 드나들었단 말인가. 잘 듣게. 우선 여자 ○지는 ‘걸어다녀야 감추어진다’는 뜻의 보장지(步藏之)라는 말이 잘못 발음된 것이요, 남자의 ○지는 ‘앉아야 감추어진다’는 뜻의 좌장지(坐藏之)를 잘못 발음한 것일세. 또한 ○과 ○은 별다른 뜻이 있는 것이 아니라 단지 ‘마를 조(燥)’와 ‘습할 습(濕)’을 뜻하는 것일세. 이제 알겠는가?” 문하생들은 이항복의 질문에 이어 율곡 선생의 답변에 또 한 번 크게 놀랐다. “고맙습니다, 스승님. 소생 이제야 십년 넘게 풀어온 의문이 풀렸습니다.” 이항복은 자신의 기이한 질문에 현명하게 답한 율곡에게 탄복하며 말했다. “소생, 스승님께 한 가지만 더 여쭙겠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옛 성현군자 가운데 어느 분을 가장 존경하고 본받으려 하시는지요?” “우리들에게 있어 공자 외에 누가 있겠느냐만, 난 항시 은나라 대신 이윤과 북송의 대신 범중엄의 말씀을 생각하며 지낸다네. 이윤께서는 ‘사람은 제각기 자신이 있어야 할 자리가 있으매, 자신의 자리를 못 찾는 것만큼 어리석은 사람은 없다’고 하셨고, 범중엄께서는 ‘관직에 오른 이는 응당 백성을 걱정해야 하고, 그 직함을 놓았을 때는 임금을 근심해야 한다. 또한 선비는 백성들보다 앞서서 걱정해야 하며, 백성들이 즐거워한 후에 비로소 즐거움을 느껴야 한다’고 하셨네.” 이항복의 눈빛이 예사롭지 않게 빛났다. “입신양명을 위해 학문을 하는 것은 당연하나, 백성을 다스리는 자리에 있는 사람은 나보다는 남을 위하는 마음과 신념이 있어야 한다네. 자네가 만일 백성을 다스리고자 한다면, 이 분들의 말씀을 항시 유념하여 따라야 할 것이네. 민심은 곧 천심이요, 백성이 없는 나라가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이 점 잊지 말도록 하게.” 이항복은 율곡 앞에 엎드려 큰 절을 올렸다. 그리고 이항복은 흡족한 마음으로 집에 돌아와 “어머니 과연 율곡 선생님은 학문이 깊은 분이셨습니다.”
이항복은 이때부터 기방 출입을 삼가고 율곡의 문하생이 되어 학문에 정진했다. 그러나 이항복의 타고난 장난기는 벼슬길에 오른 후에도 여전하여, 포복절도할 일화들을 곳곳에 남겼다.
고운석 주필 gnp@goodnewspeople.com 고운석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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