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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의 갑작스런 이산상봉 보이콧 | | 꿈이 조각난 가족들의 애끊는 사연 | | | | 입력시간 : 2013. 10.21. 11:46 |
 | | 북한이 돌연 남북 이산가족 상봉 행사를 연기하겠다고 밝힌 9월 21일 오전 서울 중구 남산동 대한적십자사. 이산가족 상봉행사 참가를 희망하는 한 어르신(가운데)이 관계자에게 뭔가를 하소연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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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지난 9월 21일 돌연 '남북 이산가족 상봉' 계획을 취소했다. 남북은 9월 25~30일 금강산에서 추석계기 이산가족 상봉행사를 갖기로 하고, 참석자 최종 명단을 9월 16일 교환까지 한 상태여서 이산가족의 가슴을 더 아프게 했다. 교환된 최종 명단에는 우리측 96명, 북한측 100명의 가족이 이름을 올렸었다.
생시에 마지막일 수도 있는 만남에 대한 들뜸에서 죽음과도 같은 절망의 나락으로 갑자기 떨어져버린 우리측 몇 가족들의 안타까운 사연 속으로 들어가본다. <편집자>
♥경기 부천 김영준(91) 할아버지
계획 백지화도 모르고 갑자기 별세
이번 남북 이산가족 상봉행사 참가자 명단에 오른 90대 할아버지가 안타깝게 숨을 거뒀다.
9월 19일 부천소방서에 따르면, 이산상봉 최종 명단에 이름을 올렸던 김영준(91) 할아버지는 이날 오후 4시 56분께 경기 부천시 원미동 자택에서 의식을 잃고 인근 병원으로 옮겨졌다. 119구급대는 후송 중 호흡과 맥박이 멎은 김 할아버지에게 심폐소생술을 실시했지만 김 할아버지는 의식을 회복하지 못했다.
평양이 고향인 김 할아버지는 한국전쟁 당시 인민군으로 참전했다가 포로로 잡힌 뒤 60여년을 남쪽에서 살아왔다. 김 할아버지는 이산가족 상봉행사에서 북에 남겨두고 왔던 딸과 누나, 남동생을 만날 예정이었다.
♥전북 진안 이효국(90) 할아버지 | | 9월 16일 오후 전북 진안군 부귀면 궁항리 이효국(90) 할아버지가 한 장뿐인 가족사진을 꺼내 보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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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번이 탈락하다 이번에 첫 기회 잡았건만
"그동안 밤잠도 설쳐왔는데 이게 무슨 청천벽력 같은 소리란 말입니까…" 죽기 전에 혈육을 만날 수 있다며 상봉을 손꼽아 기다려왔던 이효국(90, 전북 진안) 할아버지는 갑작스런 소식에 메마른 눈물만 삼켰다.
68년 동안 단 한 번도 가족들을 잊은 적 없던 이 할아버지는 북에 있는 가족들이 사무치게 그리워 두 딸의 이름을 '이남(李南)'과 '이북(李北)'으로 지었을 정도다.
이번 상봉자 명단에 포함됐다는 소식을 접하고서 남동생 효승씨의 딸 리명심(53), 명희(51)씨를 위해 준비한 속옷과 생필품 등의 선물을 한 아름 준비하며 들뜬 마음으로 추석 연휴를 보냈다. 또 추석을 맞아 온 가족과 함께 북쪽에 보낼 가족사진도 준비하며 만날 날만을 손꼽아 기다려왔다.
이 할아버지는 "남동생 효승이의 두 딸이 살아있는 것만으로 위안을 삼으며 죽기 전에 만날 수 있겠구나 하며 기다려왔는데, 이게 웬 날벼락이냐"며 울음을 삼켰다.
평안북도 용천군 양광면 산두동이 고향인 이 할아버지는 학생들의 반공 투쟁 사건인 '신의주 학생 사건'이 터졌던 지난 1945년 친구들과 함께 서울로 내려왔다가,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이처럼 반세기 넘게 걸리는 험한 길이 될 줄 몰랐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이산가족 상봉을 여러 차례 신청했지만 번번이 탈락하다 올해 첫 기회를 잡았다.
이 할아버지는 "조카들을 만나면 '부모님과 남동생들이 언제 돌아가셨는지'를 가장 먼저 물어보고 싶었다"면서 "또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느냐, 죽기 전에 만날 수는 있는 것이냐"며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경기 용인 김명도(90) 할아버지
1946년 대학 진학하러 서울 왔다 생이별
"평생을 기다렸는데 연기라니…. 답답할 따름입니다." 김명도(90·경기 용인) 할아버지는 착잡한 심경을 감추지 못했다. 황해도 은율군 출신인 김 할아버지는 해방 이듬해인 1946년 서울에 있는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 가족들과 생이별을 했다.
할아버지, 할머니와 아버지, 어머니, 여섯 동생까지 대식구의 장남이던 김 할아버지는 적십자사를 통해 가족들이 모두 죽고 동생 셋만 살아남았다는 소식을 접한 뒤로 동생들을 만날 날만 손꼽아 기다려왔다. 이번 상봉 때 73세인 넷째동생을 만나려 했다는 김 할아버지는 "동생이 4살 되던 해에 헤어졌다. 다시 만날 생각에 밤잠을 설치면서 옷가지며 면도기 등 선물을 준비했는데, 이렇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얼마나 고생했을지 안 봐도 훤하다. 편안하게 살았을 리 만무하다. 손이라도 꼭 잡아주고 싶었는데…"라며 끝내 말을 잇지 못했다.
♥제주 이종신(72) 할아버지 | | 이종신 할아버지가 가족사진을 보여주며 북한에 있는 큰형 종성씨에 대한 기억 등을 이야기 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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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줄 알았던 형 만날 기회 놓쳐
이번 이산가족 방문단 명단에 북측 신청자인 리종성(84)씨의 가족으로 포함된 동생 이종신(72, 제주시 삼도1동)씨. 이씨는 “형이 오래 살아주셔서 감사하다”며 “8월 26일 형의 생일에 맞춰 제사를 지내고, 어머니가 ‘한번이라도 보고 죽었으면’ 하고 노래를 불렀는데…”라고 말끝을 흐렸다.
이씨는 2남3녀 중 4번째로, 7세이던 제주4·3 당시 형이 군경에 의해 잡혀가면서 제주시 애월읍 유수암리(당시 금덕)에서 헤어졌다. 이씨는 “형이 4·3으로 인천소년형무소로 끌려갔고 형무소에 있는 동안 한국전쟁이 터져 행방불명된 이후 생사를 확인할 수 없었다”며 “돌아가신 줄 알고 45년 전에 금덕리에 비석도 세우고 형님 생일마다 제사도 지내기 시작했다. 이렇게 살아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고 했다. 이씨는 “어머니는 돌아가시기 전까지 형님이 보고 싶다는 얘기를 입버릇처럼 했다. 그걸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진다”고 안타까움을 표했다.
♥경기 부천 김세린(84) 할아버지
북에 혼자뿐인 79세 여동생 보려나 했는데…
황해도 황주군 출신인 김세린(84·경기 부천) 할아버지도 상봉 연기 소식에 큰 충격을 받았다. 3남2녀 중 장남인 김 할아버지는 북에 혼자 남은 79세 여동생을 볼 생각에 옷과 사진첩, 생활필수품을 손수 챙길 정도로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김 할아버지의 딸(49)은 "연세가 많으신 데다 건강이 좋지 않은 상태에서 충격을 받으셨다. 더 늦어지면 안 되는 상황"이라며 "이산가족 상봉은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울산 이근수 할아버지 | | 이근수(83) 할아버지가 누이동생을 생각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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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 가물가물한 여동생…연민만 더 깊어져
상봉자 최종 명단에 이름을 올린 울산지역 3명의 이산가족 가운데 1명인 울산 중구 남외동 이근수(83) 할아버지. 전남 고흥에서 2남 2녀의 장남으로 태어난 이씨는 부친의 일 때문에 함경도로 이주했다. 고등학교에 다니던 이씨는 "학교에 다녀오겠습니다"라는 말을 전하고 집을 나선 이후 더는 함경남도 북청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인민군에 끌려갔다가 한국전쟁 때 국군에게 포로로 잡혀서 수용생활을 하다 이승만 정권 때 특사로 풀려나와 광주 등지에서 살았다. 이후 1974년 울산으로 이주해 목수로 활동을 하면서 생활해왔다. 슬하에 4남을 두고 꽤 다복하게 살고 있었으나, 항상 북에 두고 온 가족을 잊지 못해 가슴앓이를 해왔다.
그러던 중 남북적십자사의 이산가족 상봉에 신청해 살아있는 막내여동생의 소식을 접하게 됐고, 이산가족 상봉 명단에 이름이 올랐다. 여동생의 이름은 생각나지만 얼굴은 가물가물하다고 말했다. 어릴 적 얼굴을 아무리 기억해내려고 해도 그동안 세월이 너무 많이 흘러버렸다고 애통해했다. "험한 세상을 어떻게 살아왔을지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집니다. 직접 만나게 되면 아무 말도 할 수 없을 것 같아 걱정했는데, 그마저도 내 복이 아닌가 싶으니 하늘이 야속하기만 합니다."
♥경기 파주 문정아(86) 할머니
휠체어 타고 두 여동생 만날 날 손꼽았는데…
함경남도 여흥군이 고향인 문정아(86·경기 파주) 할머니는 거동이 불편해 적십자사에서 준비해준 휠체어를 타고 두 여동생을 만날 예정이었다. 문 할머니는 지난해 평생 동반자였던 남편과도 사별해 그나마 이번 상봉 소식이 위안거리였다. 2남3녀 중 장녀인 그는 "63년만에 두 동생을 만날 생각에 말할 수 없이 기뻤는데, 이렇게 돼 너무 속상하다"며 "그래도 언젠가는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이란 기대를 버리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강원 속초 이명호(81) 할아버지
"동생과 조카들에게 줄 선물 어떡하나"
6·25전쟁 당시 부모와 14세 동생을 남겨놓고 2명의 형제와 함께 피난 나온 이명호(81·속초) 할아버지는 "동생이 살아있는 것만으로 위안을 삼으며 이제나 저제나 만나기를 기원하며 살아왔는데…"라며 울음을 참지 못했다. 또 "동생을 만나면 주려고 조카들 겨울옷 1인당 두 벌씩과 감기약, 영양제 등을 선물로 준비하고 만날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며 뜬눈으로 지새우고 있었다"며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 | 9월 16일, 대한적십자사 경기도지사 강효정 사무처장과 구리지구협의회 백상순 회장이 김철림 할아버지 자택을 방문, 축하 선물을 전달하고 이산가족 상봉 대상자 최종 명단을 확인하며 기뻐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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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 통천이 고향으로, 당시 18세였던 이 할아버지는 1951년 12월 25일 인민군에 징용될 나이가 되자 2명의 형들과 남으로 피난 나왔으며, 현재 북한에는 막내동생인 철호(77)씨와 두 명의 조카들이 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기 구리 김철림(94) 할아버지
1.4후퇴 때 두고 온 가족 5명과의 만남 무산
"북에 가족들이 5명이나 있어 60년만에 보려 했는데…." 경기도 상봉 대상자 중 최고령자인 김철림(94·경기 구리시) 할아버지는 60여년만에 북에 두고 온 가족들을 만날 수 있게 됐다는 소식을 듣고 기대와 기쁨에 들떠 있었다.
함흥이 고향인 김 할아버지는 북에 1.4후퇴 때 헤어진 아내와 아들 2명, 딸 2명 등 5명의 가족이 있으나 모두 생존하고 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그는 "큰아들이 헤어질 당시 9살이었는데 60여년이라는 세월이 흘러 얼굴이 잘 기억나질 않는다"며 “하루도 가족과 고향을 잊은 적이 없다"고 슬픔을 감추지 못했다.
GNP gnp@goodnewspeople.com GNP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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