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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 선비정신을 찾아서… <82> 丹齋 申采浩
뼈 속까지 항일정신 꽉 찬 ‘대쪽’ 志士
筆鋒으로, 몸으로 일제 규탄하다 긴 옥살이
출옥 거부하고 57세 일기로 여순 감옥에서 눈감아
‘조선상고사’ 등 다수의 저술로 민족 자존감 고취 업적도
입력시간 : 2013. 11.11. 13:11


작년 2월 21일 충북 청원군 낭성면에 있는 선생 묘소에서 열린 신채호 선생 서거 76주기 추모제
우리나라 근대사에 뚜렷한 발자취를 남긴 단재 신채호 선생은 1880년 11월 7일 충남 대덕군 산내면 도림리에서 가난한 선비 신광식 선생과 밀양박씨의 둘째아들로 태어났다. 본관은 고령. 선생의 나이 7세 되던 해 부친이 38세의 젊은 나이로 서거함에 조부 성우 공과 형 재호, 모친으로 가정을 이루었다. 그 뒤 곧 청원군 낭성면 귀래리로 이사하여 조부가 가르치는 사숙에서 공부할 때 하나를 들으면 열 가지를 아는(聞一知十) 총명은 9세에 통감을 해독하고 10세에 행시(行詩)를 지었으며 13세에 사서삼경을 독파하여 모두 신동이라고 불렀다. 1897년 형 재호가 요절하고 선생은 조부 밑에서 계속 교육을 받았으며, 이때부터 목천에 있는 대학자 신기선 집에 드나들면서 그 풍부한 서고에서 많은 서적을 독파하게 되었다. 1898년에는 성균관에 입학하고 이종원의 총애를 받게 되었으며, 1901년에는 문동학원 강사로 있으면서 신규식 선생 등과 애국계몽운동을 전개하였다. 1905년에는 성균관 박사가 되고, 장지연 선생의 초청으로 황성신문의 논설기자로서 활동하던 중 5조약의 늑결로 민충정공(閔忠正公)이 자결 순국함에 「시일야방성대곡」이란 논문을 쓴 장 선생이 필화사건으로 투옥되자 선생이 그 뒤를 이어 날카로운 필봉을 휘두르게 되었다. 1906년 양기탁 선생의 요청으로 대한매일신보의 주필로 취임했다. 이 신문은 영국인 배설(裵說)이 경영하고 있었으므로 언론의 자유가 보장되고 있었다. 이때부터 단재 선생은 기울어져가는 나라꼴을 가슴 아프게 느끼고 예리한 필봉으로 일제의 침략상과 악질 친일 부자를 규탄하기 시작하여 실물 폭탄의 위력을 능가할 수 있는 ‘종이폭탄’을 살포하였다. 또 많은 사람들 입에서 회자되는 이탈리아 독립의 지도자인 삼걸(三傑)의 업적을 절찬하는 전기 서문에 쓴 구절구절은 당시 지각이 모자라는 사람들에게 애국심을 분발시키는 활력소 구실을 하였다. 1907년에는 국권회복운동의 요람인 비밀결사 신민회 조직에 참가하여 그 취지문을 기초하였고, 같은 해 청년학우회 취지문도 기초하였다. 한편, 대구를 중심으로 경향 각지에서 일어난 국채보상운동에 적극 참가하여 필봉으로써 이를 고무하면서, 즐기던 담배까지 끊었다. 1908~9년에는 여성계몽을 위한 한글 잡지 발행, 그 다음 대한협회와 기호홍학회 등 월보(月報)에 논문으로 「역사와 애국심의 관계」, 대한매일신보에 연재물로서 「성웅 이순신」, 「조선 고대사 연구초(硏究草)」, 「동국거걸, 최도통전」, 「을지문덕」 등으로 많은 명저(名著)를 남겼다. 1910년에는 안창호, 이갑, 이종호 선생 등과 중국으로 망명하여 동지들과 청도(靑島)에 모여서 독립운동 방안을 논의하였는데, 이것을 청도회의라 한다. 그러나 자금 문제로 무관학교 설립 등 기도한 사업을 착수하지 못하고 선생은 해참위로 가서 이종호의 자금으로 해조보문(海朝報聞)을 발행하여 독립 사상 고취와 동지 규합에 노력하였다. 이 신문은 김하구 등과 함께 발행하다가 일제 무리들의 방해로 1914년 발행 금지를 당했다.
76주기 추모제에서 단재 선생 묘소에 헌화하는, 선생의 며느리 이덕남(67) 여사


1913년 병과 가난으로 사경에서 헤매던 선생은 신규식 선생의 초청을 받고 상해에 도착하여 동제사 조직에 참가하는 한편 박은식, 문일평, 조소앙 선생 등과 박달학원을 세워 교포 청년 교육에 노력하였다. 다음해에는 윤세복 선생의 초청을 받고 봉천성(奉天省) 회인현으로 가서 동창학교의 교재로 국사 저술과 학교 경영에 참여하는 한편 이길용, 신백우, 윤세복 선생 등과 독립군 양성기지도 시찰할 겸 백두산 등반에 이어 남북 만주 일대의 고구려의 옛터를 답사하다가 광개토대왕비를 찾았는데, 선생은 허다한 사적이 저 무지한 토민(土民)들의 손에서 없어져가는 것을 참을 수 없는 것이라고 개탄하였다.

1915년에는 북경에서 도서관 생활을 하면서 「조선상고사」 집필을 구상하면서 혁명 동지 규합에 노력하였다. 다음해에는 「꿈하늘」을 집필하고, 8월 대종교 1대(一代) 교주 나철 선생이 구월산에 올라가 자결 순국함에, 애통하여 도제문(悼祭文)을 지었다. 1918년 북경 보타암에 있으면서 역사서 집필에 전념하였으며, 동년 음력 12월에는 여준, 윤세복, 김좌진, 박은식, 조소앙, 신규식 선생 등 각지에서 망명 중인 저명한 독립운동가 39명이 서명한 무오독립선언서에 서명하였다. 1919년 4월 임시정부수립에 참가하여 평정관이 되고, 다음 임시정부 제5회 의정원회의에서 전원위원회 위원장으로 추대되었으며, 또 신문 「신대한」의 주필이 되어 철저하고도 준엄한 혁명론을 전개하여 각광을 받았다. 그리고 임시정부 기관지인 「독립신문」과 대립하는 경우가 빈번하였으며, 특히 여운형 선생의 도일한 사건과 이승만 박사가 미국에 제출한 위임통치청원사건에 대하여 추상열일과도 같은 혹평을 가한 뒤에 점차 임시정부 자체가 대의에 어긋났다고 하여 큰 파문을 일으켰다. 1920년에는 상해를 떠나 북경으로 가서 연학(硏學) 중인 박자혜 여사와 결혼하였고, 다음해에는 김창숙 선생과 위임통치를 규탄하는 성토문을 발표하였다. 1922년 북경대학 교수 이석중 등의 소개로 관음사에 들어가 중이 되었다. 선생은 불교를 좋아하여 절에 있으면서도 조선 역사 연구에 몰두하였다. 1924년에는 상해에서 북경으로 옮겨 활동했으며, 본국의 지식인들이 초청하는 환국을 거절하고 동아일보에 「삼국사기」 「조선의 문자와 시가의 변천」 등을 연재하였다. 1927년에는 너무 지나치게 학문에 열중한 탓으로 시력을 해하여 급속도로 악화되어서 아들 수범과 부인이 북경으로 찾아왔다. 1928년 4월에는 조선인 무정부주의자들의 북경회의에 참가하여 주동적 역할을 하였다. 이 회의에서도 독립운동의 선전기관을 설치할 것과 일제의 기관건물 파괴를 위한 폭탄제조서 설치를 결의하고, 이를 실천하기 위한 자금 마련책으로 북경 우정국에 근무하는 대만인 임병문과 결탁하고 활동하다가 대만 기륭 항에서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대련(大連)으로 압송되고 10년 징역 언도를 받아 여순 감옥에서 옥고를 치르게 되었다. 그 뒤 선생의 주옥같은 글은 국내 동지들의 주선으로 동아일보에 장기 연재물로 실려졌다. 선생이 옥고를 치르는 중에도 선생의 글을 소중히 여기는 국내 친지들의 노력으로 그 옥고를 모두 정리하여 지상에 발표하려 하였으나, 조국을 침략한 일제의 연대로 표시하는 신문에는 더 이상 자기가 쓴 글이 실리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하여, 그 불후의 대문장을 다 발표하지 못하였다.

1935년에 이르러 긴긴 옥고로 건강이 더욱 악화되자 일제는 보호해줄 사람만 있으면 출옥시키겠다고 통고하였으므로, 서울의 친지들이 선생도 잘 알고 있는 어느 친일파 부호 한 사람을 설득하여 연락하였으나 선생은 친일파에게 몸을 맡길 수 없다는 대의를 내세워 이를 거절하였다. 그 대쪽 같은 지조야말로 무슨 말로 다 표현하랴! 장하신 그 기백, 그 정신! 1936년 2월 18일 마침내 여순, 적의 감옥에서 병세가 최악의 상태에 빠지게 됨에 급보를 접한 부인과 아들 수범, 그리고 동지 서세충이 여순으로 달려갔으나 2월 21일(음력 1월 28일) 오후 4시 의식불명으로 유언도 남기지 못한 채 57세를 일기로 한 많은 생애를 적의 감옥에서 마치었다. 그 뒤 유해는 본국으로 봉환하여 고향 상당산 기슭에 안장하였다.


고운석 주필 gnp@goodnewspeople.com        고운석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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