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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 선비정신을 찾아서… <106>/ 秋汀 李甲 선생
독립협회서 2년여 동안 눈부신 활약
이상재·이승만·남궁억 등 선각자들과 힘 합쳐
많은 재산을 구국운동과 교육사업에 흔쾌히 투자
입력시간 : 2016. 01.16. 12:01


대한민국 독립의 염원을 담아 독립협회가 세운 독립문의 현재 모습. 1896년 독립협회 발의로 3825원을 모금해 그해 11월 21일 정초식을 한 뒤 이듬해 11월 20일 완공했다.
추정 이갑(秋汀 李甲) 선생은 조국 근대사의 선각자로서 광복운동에 심대한 영향을 준 안중근·안창호·김구·신채호·김동삼 등의 선열들이 모두 1870년대에 태어난 것처럼 1877년 6월22일 평안남도 숙천군 서해면이라는 한 농가에서 이응오 선생의 3남으로 태어났다.

본래 뛰어나게 총명하여, 부친으로부터 글공부를 시작한 6세 때 그 두되는 범인(凡人)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그가 12세 되던 1888년, 고종의 태자 융희황제가 나이 15세 되던 갑술생으로 정부에서는 그를 기념하는 갑술과라는 과거를 보게 되었다. 소년 추정(秋汀)은 자신만만하게도 과거를 보고 싶으나 왕자보다 세 살 아래이므로 세 살을 올려서 갑술생으로 나이를 속이고 과거에 응시하여, 사서삼경을 이미 모두 통달한지라 급제하여 소년진사(小年進士)가 되었다. 그러나 가엾게도 선의의 속임, 요즘 말하는 거짓말이 누설되어 당시 악명 높은 평안감사 민영휘에게 트집이 잡혀 부친 이응오 선생은 감금되고 매질을 당했고 대대로 물려 내려온 문전옥토를 몰수당하여 이 선량한 가정은 삽시간에 알거지가 되었다. 이 사건으로 어린 추정의 가슴에는 빼지 못할 원한의 못이 박혀 버렸다. 본래 정의감에 넘치는 소질을 지닌 추정인지라, 장성하면서 첫째는 기울어져가는 나라를 구해야겠고, 그 다음은 부친을 고문하고 가산(家産)을 강탈한 민영휘에게 보복할 결심을 마음에 굳게 다짐하였다.

그리고 당시의 습속으로 조혼(早婚)은 하였으나 시골에서 세월을 보낼 선생은 아니었다. 20세가 되던 해에 추정은 누구와도 상담한 바 없이 혈혈단신으로 가출하여 서울로 올라왔다. 항상 가슴속에는 더럽고 악독한 소위 민 대감에 대한 복수심과 함께 자유평등사회 구현의 꿈을 안고 몸에는 빼앗긴 토지 문서를 지닌 채 상경하였다. 서울에 와서 보니 부패한 정치를 개혁하려다가 미국으로 망명하였던 서재필 박사가 귀국하여 정부의 고문으로 추대되고 우선 사대사상을 지양하고 자주독립사상과 근대화 민주주의 사상을 고취하기로 하여 제일 먼저 사대사상의 잔재물인 영은문(迎恩門)을 헐어버리고 그 자리에 독립문을 세우고 <독립신문> 발간, <독립협회> 조직 등으로 조국이 희망에 찬 여명기에 들어선 듯 보였다. 추정은 주저하지 않고 독립협회에 가담하여 이상재·이승만·남궁억 등 선각자들과 회무(會務)를 위하여 동분서주하였다. 독립협회는 1896년 7월에 창립되어 1898년 12월까지 2년여 동안 눈부신 활동을 전개하였다. 그런데 아직도 사대당의 잔재가 남아있고 또 김옥균 같은 지사(志士)를 암살한 홍종우 같은 악인이 소위 황국협회라는 반동단체에 관여하여 있었고 또 김홍육이란 자가 고종황제의 러시아어 통역관으로 한때는 욱일승천(旭日昇天)의 세력(그 뒤 고종을 독살하려다가 개죽음을 당한 악한)을 뽐내고 있어서 서 박사를 비롯한 선각자들의 운동에 반동적 음모를 자행하여 마침내 서 박사는 겨레의 앞날을 위하여 눈물을 머금고 다시 고국을 떠나게 되었고, 이상재·이승만·윤치호 등 수많은 선각자들은 영어(囹圄의 몸이 되어버렸다.

그 뒤 추정은 뜻한 바 있어 일본 육군사관학교에 관비생으로 입학하여 면학에 몰두하였으며, 1904년 제15기생으로 육사를 졸업하고 근위사단에 배속되어 근무 중 노일전쟁이 발발하자 전쟁 경험을 체득하기 위하여 만주 봉황성에 잠시 출전했다. 곧 귀국하여 국군에 입대하였는데, 15기생 동창인 8형제파도 모두 노일전쟁에 참전하였던 엘리트로서 그 중에는 조국독립운동에 크게 이바지한 백범 선생을 비롯한 4위(四位) 중 한 분으로 영예로운 지위에 있다가 일제의 패전 8·15해방으로 귀국한 유동설 장군도 있었다.

추정은 8형제파의 좌장으로 효충회(效忠會)를 주재하였으며, 참위에서 부위로 승진하고 이 해 겨울 민보국사건을 일으켜 빼앗긴 선대의 재산을 탈환하여 서울 장안의 큰 화젯거리가 되었다. 어느 날 어떤 연회에서 악명 높은 민 대감을 만나 추정은 정중한 인사를 하면서 "대감 언제 한번 찾아뵈오리까?" 하였으나 그의 눈에는 청년 장교인 추정쯤은 대수롭지 않게 보였고 백안시하는 태도가 역력하였다. 오랫동안 벼르고 벼르던 숙원을 앙갚음해보려는 보복일념으로 그 뒤 몇 날이 지난 어느 날, 군도(軍刀)를 찬 채 궁전 같은 민 대감댁 문앞에서 "민 대감을 뵈러 왔소이다" 하며 삼엄한 파수꾼들에게 검문할 틈도 주지 않고 대문 안으로 들어섰다. 파수꾼들을 뿌리치고 민 대감이 기거하는 방으로 향하여 문을 열어제치고 들어서니 민 대감은 뜻밖에 찾아온 청년 사관을 거절하지 못했다. 추정은 민 대감 앞에 정중히 절을 하고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고 어디까지나 공손하게 예절을 갖추었다. "대감께서 저를 아시겠습니까?" 하면서 유심히 살폈다. 이윽고 민 대감의 얼굴빛은 흑색으로 변했다. 민 대감은 자기가 악형을 가해서 빈사지경의 몸으로 만들어놓았던 추정의 선친의 모습을 발견하였기 때문이었다. "대감께서 평안감사 시절에 빼앗은 우리 집 재산을 찾으러 왔습니다." "허허, 그건 오해라구, 오해야. 그대가 너무 어린 시절이라 잘 모른다구. 오해를 풀게나, 젊은이…". 추정은 큰 목소리로 반문하였다. 허나, "그 땅으로 말하면, 내가 돈을 주고 산 땅이야" 하면서 변명을 늘어놓았다. 이때 추정은 품안에서 토지문권을 꺼내어 그의 눈앞에 들이대면서, "문권이 이렇게 제 손에 있는데도 그런 말 하는 거요?" 하고 다그쳤다. 그러자 민 대감은 강경한 말로 화를 내면서 "서북놈들은 어쩔 수 없어"라고 일갈했다. 추정은 이 순간 온전한 말이 소용이 없음을 깨닫고, ‘왜 우리 동포는 이렇게도 지방색을 띠어야 하는가? 거물이라는 민 대감의 입에서조차 이런 말이 함부로 나올 수 있다니’라는 생각이 미치자 차고 있던 군도를 빼어 들고 집이 떠나갈 듯이 호통을 쳤다. "대감의 배때기에는 이 칼이 들어가지 말라는 법이 있던가요?" 하며 시퍼런 칼날을 번득였다. 불시에 이런 변을 당하자 민 대감은 혼비백산하여 뒷문으로 달아나버렸다. 그 길로 집에 돌아온 추정은 대책을 강구하였는데, 노백린·유동렬 장군들도 이 사실을 알고 숙의한 결과, 민 대감과 자주 접촉하는 백한기 등을 중간에 넣어서 민 대감이 강탈한 재산에 이자에 이자까지 합산해서 모두 지불한다는 승락을 받고 이 사건은 추정의 요구대로 마무리되고, 그 명성은 장안의 호랑이로 떨쳤으며 많은 사람들의 추앙을 받았다.

추정은 방대한 재산을 사적으로 소모하지 않고 구국운동자금, 또는 교육사업에 모두 바쳤다. 서북학회며 협성학교·오성학교 등은 모두 이 재산으로 경영하였다. 추정은 육군 정위로부터 미구(未久)에 참령으로 승진하였다. 이 시기에 나라의 명맥은 풍전등화처럼 망해가는 판이라 미국으로부터 돌아온 안창호를 비롯한 애국지사들과 구국운동기관인 비밀결사 <신민회>를 조직하고 추정, 양기탁, 이동녕, 김구 등과 같이 회(會)의 목적인 조국광복을 위하여 활약하다가 일제무리의 탄압이 가혹하여 더 이상 국내에서는 도저히 활동이 불가능하므로 1910년 2월 안창호 등과 해외로 망명하기로 하고 안창호와 같이 산동성 청도를 거쳐서 해외로 나가 민족운동을 전개하였다. 이동녕-이동희 등은 북간도로, 이시영-최석하 등은 서간도에서 각자 독립운동의 기반을 닦고, 청사 조성환은 북경에 근거하여 활동하였다.

그러나 추정은 일경의 탄압에 시달리다가 병까지 얻어 1917년 3월 41세를 일기로 한 많은 생애를 마쳤다. 같은 해 봄, 이상설 선생도 와병 중 세상을 떠났다.





고운석 주필 gnp@goodnewspeople.com        고운석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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