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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 선비정신을 찾아서… (110)/ 白山 安熙濟 선생
“국가가 망했는데 선비는 어디다 쓰일 것입니까?”
21세 때 상경 신식교육 받은 후 구국운동 투신
청소년 교육과 독립운동 연락-자금 조달 등에 헌신
만주서 붙잡힌 뒤 고문 시달리다 병보석 직후 운명
1943년 8월 3일 “일제 망할 날 목전이니 한이 없다” 유언
입력시간 : 2016. 05.20. 20:09


2011년 11월 부산 중구 백산기념관에서 열린 제14회 사랑의 쌀 모으기 운동 헌미식. 이 운동은 일제 강점기 때 활약한 백산 안희제 선생의 민족사랑 정신을 계승하고 이웃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 부산 중구청 주도로 열리고 있다고.
온 생애를 구국운동에 바친 대개의 선열들과 같이 백산 안희제(白山 安熙濟) 선생에 대한 항일 구국운동사를 정확하게 엮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선생의 고결한 품성은 자신이 몸소 실천한 빛난 업적을 숨겨왔고 휴척(休戚)을 같이하던 동지들에게 누를 끼칠까하여 보안조치가 치밀하였기 때문이다. 일제무리에게 탄압을 받을 때에는 항상 선생 자신만이 감당하는 희생정신이 투철하여 그 파급효과가 그 자신에게만 그치고 말았다.

선생은 1885년 8월 5일 경남 의령군 부림면 입산리에서 안발 선생의 네 자녀 중 맏아들로 태어났다. 15세까지 한학을 공부하며 청명하고 타고난 재능은 사서삼경에 통달하였으며, 그 인품과 도량은 장래가 촉망되었다. 1903년(19세) 7월부터 3개월간 합천, 삼가, 단성, 진주, 하동 등지의 선비 30여명과 함께 지리산 일대와 하동 쌍계사, 악양 고소성, 섬진강 등을 두루 돌아다녔으며, 그 문장 실력이 과시된 32수의 한시(漢詩)가 '남유일록'에 남아있다.

1905년(21세) 을사늑약이 늑결되어 조국의 명맥은 끊어진 것이나 다름없이 되었을 무렵, 선생은 비장한 심경으로 조부님 앞에 나아가 고했다. "국가가 망했는데 선비는 어디다 쓰일 것입니까? 고서(古書)를 읽고 인의(仁義)를 실행(實行)치 못하면 도리어 무식자만 같지 못합니다. 시대에 맞지 않는 학문은 오히려 나라를 해치는 것이니, 내일 당장 서울로 가서 시대에 순응한 지식을 구하여 국민 된 본분을 다하는 것이 가위 선현의 도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어찌 산림 속에 파묻혀서 부질없이 글귀만 읽고 있겠습니까?" 처음 조부는 반대하다가 그 뜻이 굳은 것을 나중에야 이해하였다.

선생은 여장(旅裝)을 갖추고 상경하여 보성학교에 입학하였다가 중퇴하고 양정의숙으로 전학하여 재학 중 1907년(23세) 국가-민족의 동량이 될 청소년의 교육이 급무임을 느끼고 이 해부터 구국교육운동에 앞장서게 되었다. 먼저 교남학우회를 조직하고 그 임원이 되어 학우들을 규합해나갔다. 일변 빈궁한 학생들의 학비를 보태주고, 방학 때면 지방을 순회하면서 구국 강연으로 민중계몽, 애국사상 고취에 심혈을 기울였다. 1908년에는 지방 유지들과 손을 잡고 구포에 구명학교와 의령군 중동에 의신학교, 또 자신의 고향인 입산리에 창남학교를 설립하였다.

1911년(27세), 조국의 현실은 더욱 절망적이었다. 그는 남몰래 두만강 건너 블라디보스토크로 가서 약 반 년 간 체류 중에 속속 모여든 수많은 망명 지사들과 알게 되어 많은 시사(示唆)를 받았다. 당시 이곳은 독립전쟁의 기지로 변해가고 있을 때였다. 1922년(28세) 정월에는 모스크바로 가서 수많은 망명 지사들과 더불어 조국광복을 위한 결사를 조직하고 혈맹을 하는 등 3년간 눈부신 활약을 하였다. 이곳에서 만난 고향인 최병찬이 폐병에 걸려 고생하는 것을 보고 그를 봉천까지 옮겨 입원 가료케 해주었다.

1914년(30세) 만주를 편력 중 수많은 독립운동가와 만나 구국 방략을 논의한 결과, 역시 자금 문제를 절실히 느끼고 스스로 운동자금조달을 책임지고 국내로 잠입하여 동년 9월 청진항에서 배편을 이용하여 부산항에 도착하였다. 선생은 동지 이유석, 추한식 등과 더불어 선생의 호를 딴 백산상회를 설립하였다. 이 상회는 일제 무리의 눈을 피하기 위하여 표면상으로는 영리기관으로 가장하였으나 내실은 독립운동의 국내 연락과 자금 공급에 목적을 두고 있었다. 그 뒤 경주의 최준, 윤현태 등 많은 동지들의 찬동을 얻어 백산상회를 주식회사로 하여 백산무역주식회사로 확장하였다. 3·1운동 전후의 회사의 구성을 보면, 취체역사장 최준, 취체역 윤현태·안희제·강복순, 지배인 최준, 감사역 전석준·김시구였다. 총 주수 2만 주, 주주 182명에 안희제 2500주, 최준 1800주, 안익상 850주, 윤현태 400주 등이었다. 사장 최준은 경주의 부호로, 여러 민족기업에 관여하고 있었다. 이와 같이 선생은 영남의 부호들을 규합하여 회사를 설립하고 독립운동자금을 공급하는 기관을 만들었다. 1916년에는 대구, 서울, 원산, 안동, 봉천 등지에 백산회사의 지점과 연락사무소를 설치하였다. 그런데 회사의 수지는 항상 결손을 면치 못하였다. 결손을 거듭한 것은 경영의 부실이 아니라 독립자금을 회사 수지와는 관계없이 공급하였기 때문이었다.

1919년 3·1운동이 발발하자 남향우와 모의한 후 무력봉기의 기반을 구축해갔다. 그리고 외국에 유학시킨 이극로 등이 국내외의 연락을 위하여 안희제 선생을 찾아왔다. 선생은 일본유학생으로부터 온 비밀 연락을 서울 동지들에게 전달하는 한편 동지 남향우, 윤현지 외 몇 사람은 상해로 보내고 여기 소요되는 경비는 모두 선생이 조달하였다. 이같이 암중비약한 사실을 눈치챈 일제 무리는 그동안 계속적인 수색과 감금, 고문, 장부 검열을 하고 또 관계 기관과 관계 인물을 탐지하려고 염탐을 하였으나, 단서를 잡지 못하였다. 미리부터 닥쳐올 일들을 예측한 선생은 장부상의 기록을 전부 결손으로 꾸며놓도록 하였는데, 적의 수사가 있을 경우에 대비한 것이다. 동년 겨울에는 기미육영회를 조직하여 유망한 청년들을 선발하여 해외 유학을 시켜 국권회복선동에 동량이 될 인재를 양성하기도 했다. 1922년(38세) 봄에 선생은 민족언론기관에 뜻을 두고 시대일보(時代日報)를 인수하여 중외일보로 개칭하고 그 경영에 착수하였다. 여러 번 필화사건에 걸려 발행정지 처분 또는 휴간 처분을 받아 부채가 쌓여갔으나 선생은 조금도 후회하지 않고 사비로 청산한 다음, 깨끗이 언론에서 손을 뗐다.

국내에서는 더 이상 적의 마수를 피할 수 없음을 절감하고 적의 세력범위이기는 하나 비교적 적의 마수가 덜 미칠만한 만주를 재차 두루 다니다가 여러 곡절을 거친 다음, 1931년(47세) 10월 3일 대종교에 입교하여 독실한 신자가 되어 국조단군을 신봉하는 민족종교에 모든 것을 바치기로 결심하였다. 대종교는 나철을 교조로, 우리 민족혼을 계승하려는 사상에서 창건되었는데, 망명지에서의 배달민족에게는 정신적 횃불과 같아서 서일·이동녕·김좌진·신규식 등의 기라성 같은 선열들이 이를 발판으로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1933년(49세)에 선생은 발해 고도인 북만 동경성에 도착하여 그의 최후 사업이 되는 발해농장을 설치하였다. 선생은 가산을 정리하고 농지 천수백 경을 매수하여 동포 농민 300여가구에 토지를 분배해주어 자작농을 경영케 하였다.

그리고 선생은 신병 치료를 위하여 1942년(58세) 일시 귀국하였다. 동년 10월에는 조선어학회사건이 일어나자 지난날 수록해두었던 모든 비밀문서는 모두 소각해버렸다. 하지만 일제 무리는 대종교 탄압을 위해 만주와 국내 각지에 산재한 대종교의 간부급 21명을 동시에 체포하였다. 이를 대종교에서는 임오교변이라 하고, 이 사건으로 순국하신 분들을 순국 10현 또는 임오십현이라 한다. 선생도 이들 십현 중의 한 분이다. 선생은 치병생활 중 괴뢰 만주국 경무청에 수감되었다. 9개월 동안 혹독한 고문과 회유를 받았으나 끝내 불복했다. 1943년(59세) 8월 3일 사경에 이른 선생은 병보석으로 출감 후 그곳 족제(族弟)가 경영하는 영제의원에서 3시간 반만에 세상을 떠났다. 죽음을 재촉하는 순간, 그는 단정히 일어나 앉아서 "대전 상황이 어떻게 되어가느냐?"고 묻고 "이미 이태리가 패망하고 연합군이 득세하고 있습니다"라는 주위 사람들의 대답에 만족한 미소를 띠며 "일제가 망할 날도 목전에 있으니, 죽는 나는 유한이 없다" 하고 운명하였다.


고운석 주필 gnp@goodnewspeople.com        고운석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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