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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124선비정신을 찾아서…秋岡 金祉燮 의사
용맹과 정연한 논리로 일제 간담 서늘케 해
관동지진 때 우리 동포 학살 보복하려 일본에 밀항
의회-왕궁 폭탄 투척 불발 후 잡혀 44세로 적지에서 순국
입력시간 : 2017. 07.05. 13:47


일본 사회주의 계열에서 발행한 잡지인 '씨뿌리기 잡기' 창간호인 1924년 1월호에 게재된 '학살된 한국인의 시체더미' 사진. 김지섭 의사는 이 학살에 대한 보복에 나섰다가 한을 풀지 못하고 적지에서 순국했다.
침략자가 이 땅에서 물러가던 8·15 전야까지 구국운동 단체며 의사들을 다 헤아릴 수는 없다. 하지만 신출귀몰하며 일제 무리를 공포로 내몬 추강 김지섭(秋岡 金祉燮) 의사를 잊을 수는 없다.

김 의사는 갑신정변이 있는 다음해인 1885년 경북 안동군 풍북면 상미동에서 태어났다. 그는 유년시절 한문서당에서 공부할 때 하나를 가르쳐주면 열 개를 깨우치는 총명으로 신동이라고 불렸다. 사서(四書)와 삼경(三經)에도 능통했고 독학으로 일본말을 공부해 21세 때에 상주보통학교 교원이 되었다. 이어 금산 지방법원 서기 겸 통역으로 재직하였다. 그러나 일본의 침략으로 기울어져가는 조국의 운명을 개탄한 나머지 표연히 고국을 떠나 만주와 시베리아 곳곳을 편답하면서 의인(義人), 지사(志士)들을 두루 방문하였다. 마침내 상해에 이르러 의열단원 소해(宵海) 장건상과 만나 가담하였고, 때마침 크렘린이 약소민족 해방운동자금이란 명목으로 자금을 제공했기 때문에 극동민족대회에 1922년 4월 소해와 함께 참가하였다.

러시아에서 돌아온 추강은 지극히 어려운 혁명과업에 참가하여 효사지추만 대기하고 있었는데, 김약산, 김시현, 유석현 등이 모의하고 조선총독부와 착취의 복마전인 동척(東拓)과 총독 이하 적의 고관들을 파괴-격살할 폭탄, 권총, 조선혁명선언(의열단선언)문 등 다량의 물건을 국내로 반입할 계획을 세웠고, 김시현과 같은 중견 인물들의 설득력과 포용력으로 경기도 경찰부의 황옥 경부를 포섭하여 다량의 폭탄과 기밀문헌이 들어있는 대형트렁크를 황옥 경부로 하여 무사히 국내로 운반하였으나 적에게 탄로되어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

또한 유석현, 윤병구 등과 공모하여 권총을 사용하여 독립운동자금을 모집하기로 결정하였다. 1922년 12월 23일 오전 9시 30분, 서울 무교동 조선총독부 관사 백윤화 집에 도착하여 추강이 말하기를 나는 조국의 자주독립을 위하여 생명과 재산을 희생하고 있다고 기재한 서면(書面, 령 제69호)을 백윤화에게 교부한 즉, 백윤화는 독립운동자금을 강요하는 것이라 생각하고 자기가 아직 재산 상속을 하지 않았으므로 대금(大金)을 조달할 수 없지만 연내에 상여금을 받게 되므로 이를 제공하겠다면서 실내에 걸려 있는 양복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 주려 할 때 유석현 등이 백윤화에게 권총을 들이대고 그의 아내 백운영을 그 방으로 호출하여 돈 5만원을 제공하라고 했더니, 그와 같은 대금을 조달하기 불가능하다면서 점포에서 금고를 가져다가 들어있던 500원을 제공코자 했지만 그러한 소액의 돈을 목적한 것이 아니라고 호통을 치고 백윤화의 집을 떠났다.

다음날, 추강은 백윤화에게 생명을 존중하지 않으면 최후수단을 취하겠다고 위협하였다. 그리고 25일 밤 윤병구는 약속했던 자금을 받기 위해 백윤화의 집으로 갔다가 대기하고 있던 일경에게 체포되고 말았다. 그때에 추강은 상해에 있었기 때문에 적에게 잡히지 않았으나, 미구에 제2차 대암살 파괴 계획이 무참하게도 실패로 돌아가고 김시현, 황옥, 홍종우 등 10여명의 독립투사들이 체포되어 중형을 받게 되었다.

다시 1923년 9월 1일은 우리 민족이 영원히 잊지 못할 날 중의 하나가 되었다. 이날 일본 관동지방에는 큰 지진이 일어났다. 이러한 천재지변을 일제의 군벌들은 그들의 흉흉한 민심을 무고한 조선인들 때문이라고 날조, 선동하여 “조선놈들이 수도에 독약을 넣어 일본인들을 몰살시키려든다”느니 하면서 죽창과 곤봉, 일본도, 단총 등 흉기를 들고 우리 동포를 닥치는 대로 학살하여, 확실히 알려진 숫자만도 7000명이 넘는 천인공노할 만행을 저질렀다. 이에 김지섭 의사는 약산과 함께 뜻을 모아 보복할 방법을 강구하고 있었다. 마침 들리는 소문에 새해 벽두, 즉 1924년 초에 동경에서 의회가 열리고 조선총독 이하 각 대관이 모두 참석한다는 것이었다. 향관을 떠난 이후 나라와 겨레를 위해서 죽기만을 기다리던 김 의사는 그때야말로 얻기 어려운 기회라고 여기며 기어코 결사대를 조직하여 동경까지 보내고 싶었다. 일본의 국회가 열리는 날, 그 방청석으로 들어가 일본의 관료와 군벌, 조선총독이 함께 모인 가운데 폭탄을 던져 그들을 살해하여 일본제국주의의 죄악을 천하여 폭로시키고, 아울러 진재(震災) 속에 무참히 학살된 우리 동포들의 영혼을 위로한다는 의거는 생각만 해도 피가 끓었다. 마침내 추강은 막중한 사명을 띠고 장도에 올랐다. 이때 약산은 두 명의 일본인을 소개했는데, 한 명은 일찍이 기자 생활을 한 사람이었고, 한 명은 당시 상해에서 이발사를 하던 청년이었다. 추강은 중촌언태랑이라 인쇄한 명함 3매와 폭탄 3개를 지니고 1923년 12월 20일 배 석탄창고 속에 몸을 숨기고 상해를 떠났다. 상해를 떠난 지 약 10일 뒤인 그달 31일 밤 늦게 일본 후쿠오카 현 야하다 제철소 안벽에 도착하였다. 추강은 그곳 비전옥이라는 여관에 투숙하여 여비 백원을 선원들에게 나누어주고 거기서 3일간 쉬면서 그간의 사정을 기록한 서신을 상해의 동지들에게 발송하고, 여비가 떨어져 시계며 담요까지 전당포에 잡혔다. 그러나 새해 1월 3일 동경으로 가는 차 안에서 읽은 신문에서는 제국의회는 휴회 중이라 하였다. 멀고도 험한 길에 위험물을 지니고 일생일대의 계획을 품고 천신만고 끝에 목적지에 도착하였으나 목적한 바의 일이 기대에 어긋났으니 안타까운 심정을 비할 데가 없었다. 1월 5일 새벽 역에 내려 조반을 사먹고 일왕의 거처인 궁성을 찾아가기로 하였다. 이왕 일이 이렇게 된 바에 위험물을 지닌 채 시간만 보낼 수도 없는 절박한 사정이라 차선책으로 일본의 상징적 존재인 궁성에라도 폭탄을 던져 박해받고 학대당한 겨레의 가슴속에 맺힌 원한을 달래보자는 마음을 히비야(日比谷) 공원에서 생각을 굳혀 이날 석양에 궁정광장으로 내려왔다. 때마침 구경꾼 두 명과 동행인 것처럼 가장하여 거닐고 있는데, 밤이 깊어도 돌아가지 않으므로 경찰이 속히 물러가라고 다그치는 순간, 추강은 이중교로 벼락 같이 뛰어들었다. 이중교를 지키던 근위의 보초는 총을 겨누고 길을 막으려할 즈음에 폭탄 한 개를 던졌으나 불발되었고, 그 순간 재빠르게 순사를 떠밀고 이중교 중간까지 돌진하였다가 성문을 지키던 수위병에게 체포되고 말았다. 두 번째 던진 폭탄도 결국 불발이었지만 우리 조국을 강탈한 왜왕에 대한 온 겨레의 원한을 알린 김 의사의 길이었다.

이 일이 발생하자 적의 정부는 극도로 당황하여 신문 게재를 금하고 경시총감 등 여러 고관은 파직되었으며, 재판은 지루하게 예심만 9개월을 끌었다. 긴긴 법정 투쟁 중에 의사의 자약(自若)한 태도와 일제의 죄악사를 실례를 들어 지적하면서 우리 민족 대일항쟁의 당위성을 정연한 논리로 전개하는 모습은 적의 재판관으로 하여금 당황하게 만들었다. 의사의 종형 되는 김완섭 변호사 등의 변론과 일본인 변호사 송곡이 “이번 사건은 조국을 위한 열성에서 나온 일이다. 이 사건 배후에 잠겨 있는 총독 정치의 횡포를 먼저 생각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차원 높은 변론이 전개되었으나 사형 구형부터 마침내 무기징역으로 종심이 언도되었다. 그런 다음 20년으로 감형되었고, 결국 1927년 북해도의 형무소로 이감되었다가 옥고의 여독으로 그해 2월 20일 44세를 일기로 옥중에서 순국하였다. / 고운석 주필


고운석 주필 gnp@goodnewspeople.com        고운석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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