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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 선비정신을 찾아서… <135>/ 남도 남종화의 脈
윤두서→김정희→허련 이어지며 꽃피워
사군자와 시서화의 합일 등으로 선비정신 담아내
남도 남종화로 응축돼 현대까지 후배들 미의식에 큰 영향
입력시간 : 2018. 07.10. 16:08


소치 허련의 ‘매화’.
우리나라 회화사에 19세기 소치 허련(1809~1892)이 있었기 때문에 고유의 남종화가 현대까지 계승된다. 허련은 27세 때 해남 녹우당 윤두서의 그림에 감동을 받아 윤두서 가문의 화풍을 익힌다. 그리고 28세부터 해남 대둔산 일지암에서 기거하고 있던, 다성(茶聖)으로 불리는 초의선사에게 가르침을 받으면서 그의 소개로 1839년 추사 김정희(1786~1856)를 스승으로 모시게 된다. 이후 김정희의 각별한 사랑을 받으며 남종화의 대가로 인정받은 허련은 김정희의 이론과 필치를 계승한 남종문인화를 남도에 정착시킨다. 추사 김정희는 허련을 제자로 삼았으며, 이를 통해 우리나라 남종화의 전개에 있어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김정희는 전(前) 시대 서화가의 법(法)을 비판하며 자기의 법(法)을 이론화한 미의식을 전개하였다. 추사의 작품은 사물이 아닌 사물에 자신의 마음을 표현한 인간이 도달한 격(格)을 보여주며 문인사대부의 예(禮)에 도달하고자 하였다.

허련은 조선 말기 선비화가 가운데 조희룡, 전기 등과 함께 김정희파이다. 김정희는 제자인 허련의 그림을 사랑해서 소치라는 호를 지어주고 "압록강 동쪽에 소치를 따를 사람이 없다"고까지 말하였다. 소치는 31세 때 해남 대흥사 초의선사의 소개로 서울에서 당대 최고의 학자이자 서화가인 추사의 문하에 들어가 서화 수업을 받기 시작한다. 이듬해인 1840년 김정희가 제주도로 유배를 떠나자 몇 차례 제주도를 왕래하며 스승으로 모시고 그림 수업을 받았다. 김정희로부터 중국 북송의 미불, 원말의 황공망과 예찬, 청나라 석도 등의 화풍을 배웠으며, 그의 서풍도 전수받아 남조문인화의 필법과 정신을 익혔다. 이는 김정희가 황공망을 염두에 두고 지어준 소치라는 호와 운림산방(雲林山房)이라는 당호(堂號)에서 확인된다. 조선 말기 김정희에 의해 문기 외 서권기를 중시하는 남종화풍이 기반을 다졌으며, 김정희의 남종화는 허련에게 계승되어 남도를 중심으로 현대까지 남종문인화의 명맥이 이어지고 있다.

또한 허련은 김정희를 통해 당대의 명사들과 폭넓게 교유하였다. 36세 때인 1843년 김정희의 소개로 전라우수사 신관호의 막중에 머물면서 그림을 그렸으며, 39살 되던 해에 신관호를 따라 서울로 올라가 영의정 권돈인의 집에 머물렀다. 41세 때인 1848년 헌종의 배려로 고부감시(古阜監試)를 거쳐 과거시험인 회시무과에 급제하여 지중추부사에 올랐으며, 42세 때 대궐에 들어가 헌종 앞에서 직접 그림을 그려 바치기도 하였다. 허련은 김정희의 이론과 필치를 계승하였으며, 남종문인화의 화풍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회화세계를 구축하여 남종화풍을 남도에 정착시킨다. 소치는 운림산방을 마련하고 그림에 몰두하며 만년을 보내다가 1892년 84세로 세상을 떠났다. 허련의 남종화는 이후 아들인 미산 허형에서 의제 허백련과 남농 허건으로 이어졌으며, 이후 운림산방을 중심으로 아산 조방원, 임전 허문, 오당 허진 등으로 계승되어 남도 남종화의 전통이 되었다.

소치 허련은 중국의 남종화를 바탕으로 먹물을 적게 묻혔으며, 진한 먹물을 기피하여 정신적인 세계를 나타냈다. 인물, 소나무, 매화, 모란 등 다양한 소재를 다루었으며, 헌종 앞에서 그린 <산수화첩>을 비롯한 많은 남종화를 그렸다. 허련의 산수화는 소림모정도의 작품이 주류를 이루며, 대체로 황공망과 예찬의 구도와 필법을 위주로 하였고, 끝이 닳아 무뎌진 몽당붓을 사용하였다. 특히 푸르스름한 개성적인 담채를 화면 곳곳에 사용한 차별화된 개성적인 화면을 보여준다. 주요 작품으로 <산수도첩>, <방예찬죽수계정도>, <누각산수도> 등이 있다. 김정희의 영향으로 때로는 손톱·손등·손바닥 등을 이용하는 지두화(指頭畵)를 그렸다. 허련의 지두화는 구도나 준법에서 남종화의 성격이 강했음을 36세에 그린 '소치화품'으로 알 수 있다. '소치화품'에서 볼 수 있는 지두화는 지두화 특유의 일격적 표현을 통해 거침이 없다. 근경에는 언덕 위에 수종이 다른 나무와 인적 없는 초가를 배치하고 중경과 원경에는 물과 원산을 펼친 구도의 작품이다. 허련 작품의 독자성은 사군자에서 잘 나타나며, 사군자 외에 팔군자, 십군자 형식의 병풍 그림을 많이 그렸다. <팔군자도>의 네 폭에는 사군자인 매화, 난초, 국화, 대나무를, 다른 네 폭에는 소나무, 오동나무, 파초, 연꽃 등을 그렸다. 각 폭에는 식물을 괴석과 함께 배치하였으며, 그 옆에는 해당 식물의 미덕을 칭송하는 시를 넣었다.

이러한 허련의 작품에서 다루어진 꽃과 나무들은 모두 동양에서 예로부터 사랑을 받고 군자에 비유된 소재로, 시와 그림이 함께 그려진 것이다. 40대 이후 허련의 작품은 이전의 경향에 비하여 호방한 필치로 그려졌다. 이 시기 매화 그림은 화첩이나 병풍에 매화 가지의 일부분을 그리거나 노매(老梅) 한 그루를 여러 폭에 그렸으며, 허련 특유의 호방한 필치가 잘 나타난다. 덩치가 큰, 줄기가 부러진 노매에 매화가 성글게 피었는데, 줄기의 표현은 거칠게 묘사하였으며 꽃잎은 앙증맞고 예쁘고 경쾌하다. 투박함은 졸(拙)이지만 곁들여진 화사한 꽃의 흐드러짐은 교(巧)로 교졸합일(巧拙合一)의 내면의 질박함과 외면의 반듯함을 보여주고 있다. 허련은 정처 없는 주유를 할 때 묵희에 가까운 작품을 많이 그리기도 하였으며, 노년에는 생계를 위하여 묵모란을 많이 그렸다. 현존하는 많은 묵모란도는 다분히 형식화된 구성과 소재, 필치를 구사한 경우가 많다. 이러한 작품으로 인하여, 독창적인 다양한 화법의 허련의 작품이 저평가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러한 묵희와 생계를 위한 작품은 예술가의 삶과 연관된 사회적인 측면에서 평가를 받아야 할 것이다.

소치 허련의 화풍은 아들인 미산 허형으로 이어져 사군자와 흑목단의 수작을 남겼다. 허형은 허련의 화법을 충실히 본받은 남종화풍의 산수화와 매화, 모란, 소나무 등을 소재로 수묵담채 기법으로 작품을 그렸다. 이러한 허련의 남종화풍은 허형을 거쳐 남농 허건과 의재 허백련에게 이어졌으며, 이후 허백련과 허건에 의해 남종화의 전통이 화가들에게 전해진다. 소치 허련의 직손이며 허형의 아들인 남농 허건은 할아버지인 허련과 아버지인 허형의 작품을 계승하였다. 허건은 전통의 계승과 함께 이를 발전시켜 현실적 시각과 사생을 바탕으로 한 독자적인 작품을 그렸다. 1940년대에는 전면적 채색과 장식적 화면의 전개로 당시의 새로운 화풍을 수용하여 색채에 의한 감각을 살린 작품을 그렸다. 이후 허건은 남종화의 문기 넘치는 필법을 바탕으로 한 현실 감각으로 재현한 소나무가 어우러진 산수를 그렸다. 거친 파선과 개성 있는 담묵을 사용한 새로운 감각의 허건의 남종화는 목포를 중심으로 많은 후학을 배출한다. 허건의 제자들은 남종화의 특징인 문기 있는 정신을 추구하는 산수화와 전통산수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실경산수를 동시에 추구한 개성 있는 작가들이다. 허건의 '남화연구소'에서 지도를 받은 제자는 조방원, 신영복, 김명제, 곽남배가 있으며, 이들은 각기 독자적인 작품세계를 전개하였다. 현대 남도 남종화의 다른 줄기를 형성한 의재 허백련은 광주에서 1938년 '연진회'를 발족시켰다. 허백련의 문하에 구당 이범재, 근원 구철우에 이어 옥산 김옥진, 희재 문장호, 금봉 박행보를 비롯한 많은 남종화가들을 배출하였다.

남도 한국화의 정신적 근간은 남종화이며, 남종화의 정신과 기법에 남도인의 정신적 가치를 담아 그린 작품이다. 소치 허련을 종조로 한 남도 남종화의 정신과 미는 현대까지 작가의 미의식에 큰 영향을 주었으며, 전통을 새롭게 재해석한 현대적인 새로운 남종화가 나오고 있다. 남종화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여 먹으로 담백함을 표현하고 현대적 감각을 혼합하여 만든 개성적인 화풍의 작품이 제작되며, 그 뿌리는 윤두서, 허련에서 시작된 남도 미술의 가장 큰 줄기다. 남도 미술의 정신적 근간은 남종화로, 우리 민족의 정신적 가치와 삶을 담아온 소중한 예술양식이다. 윤두서는 시서화에 뛰어난 문인화가로, 정신적으로 맑은 세계를 나타냈으며, 그의 남종화는 중국 남종화의 단순한 모방에 그치지 않는 독창적인 남종화를 구현하였다. 이와 같이 남도 남종화는 남도의 풍경과 정서가 가미된 깨끗하고 담백한 정신을 근간으로 시대의 철학을 담은 남도의 소중한 문화자원이다.



고운석 주필 gnp@goodnewspeople.com        고운석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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