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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奇人奇事<90>‘황조가’와 ‘자명고’ | 시앗싸움 속 유리왕의 탄식이 낳은 最古의 詩
국경 초월한 사랑이 낳은 비극에 찢겨버린 북 | | | | 입력시간 : 2018. 08.22. 12:02 |
 | | 지난 2011년 국립발레단 제138회 정기 공연 '왕자 호동'의 한 장면. 호동 왕자가 낙랑공주의 주검을 안고 슬퍼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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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의 주몽은 나라를 세운 뒤, 부근에 있던 송양국·행인국·북옥저 등 여러 나라를 무찌르고 영토를 넓혔다. 주몽은 40여 살에 세상을 떠났다. 그 뒤를 이어 유리왕이 왕위에 올랐다. 유리가 세상에 태어나기도 전에 아버지 주몽은 이미 남쪽으로 내려가서 나라를 세웠다. 유리는 주몽이 북부여에 있을 때의 정실부인 예씨와의 사이에서 태어났다. 어느 날, 유리는 활을 가지고 놀다가 잘못하여 부인이 이고 가는 물동이를 맞혔다. 그 부인은 유리에게 욕설을 퍼부었다. "아비 없는 후레자식이구려!" 유리는 주눅이 들어 어머니한테로 가서 아버지가 누구냐고 물었다. 어머니 예씨는 숨겨온 이야기를 아들에게 해주었다. "너희 아버지는 남쪽으로 내려가서 나라를 세우셨다. 너희 아버지가 떠나실 때, 칼을 부러뜨려 한쪽을 일곱 모진 돌 위 소나무 아래에 묻어두었으니 찾아가지고 오라고 하셨다." 그날부터 유리 소년은 산과 골짜기를 헤매며 유물인 칼 도막을 찾기 시작했다. 하지만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루는 유리가 유물을 찾으러 나서려고 하는데, 집 주춧돌 틈에서 무엇인가 이상한 소리가 들려오는 듯 했다. 유리는 곧 기둥 밑을 살펴보았다. '아! 여기에 일곱 모진 주춧돌이 있구나!' 그 주춧돌이 소나무로 만든 기둥을 받치고 있었다. 유리는 곧 아버지가 숨겨둔 칼 도막을 찾았다. 유리 소년은 고구려로 가서 아버지인 주몽에게 칼 도막을 보여드렸다. 아버지가 가지고 있는 칼 도막과 아들이 가지고 온 칼 도막을 맞추어보니 딱 맞았다. "너는 내 아들이다!" 그날로 유리는 왕자가 되었다. 이 유리 왕자가 주몽의 뒤를 이어 고구려의 왕이 된 것이다. 유리왕은 바로 옆의 나라 송양국의 딸을 맞아 왕비로 삼았다. 또 즉위한 지 3년에는 졸본을 떠나 국내성으로 도읍을 옮겼다. 국내성에 위나암성을 쌓고 그 안에 왕궁을 지었다. 왕비 송씨가 죽자 유리왕은 골천 사람의 딸 화희와 한나라 사람의 딸 치희를 맞아들였다. 두 여자가 한 임금을 섬기므로 질투의 싸움이 매일 벌어졌다. 유리왕은 두 개의 궁전을 지어 한 궁에 한 여자씩 살도록 해주었다. 이로써 두 여자의 싸움이 가라앉았다. 어느 날, 유리왕은 가산으로 사냥을 나갔다가 7일 동안 돌아오지 않았다. 그 동안에 화희와 치희가 싸움을 하였다. "너 같은 천한 한인 계집이 무례하게 덤비다니!" 화희가 대들자 치희는 분함을 참지 못하고 자기 집으로 가버렸다. 왕이 사냥터에서 돌아와 보니, 사랑하는 치희가 보이지 않았다. 유리왕은 치희의 집을 찾아가서 좋은 말로 달래었으나 듣지 않았다. "소녀를 천한 계집이라 하니 갈 수가 있겠습니까?" 치희는 눈물이 글썽하였다. "노여움을 풀고 함께 돌아갑시다." 유리왕이 달래어도 치희는 끝끝내 돌아가려고 하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왕은 혼자 돌아오는 수밖에 없었다. 때는 마침 화창한 봄날이었다. 왕이 고개를 넘어 잠시 쉬고 있을 때, 새 잎이 돋아난 버들가지에 황금 같은 꾀꼬리들이 짝을 지어 훨훨 날고 있었다. '아, 새들도 저토록 화합하여 노는데, 나 홀로 쓸쓸히 돌아가게 되니 안타깝구나!' 유리왕은 그 마음을 한 수의 시로 지어 읊었다. <훨훨 나는 꾀꼬리들아/ 너희들은 암수가 서로 화합하는데/ 나 홀로 돌아가면 /그 누구와 함께 노닐거나> 이것이 바로 유리왕이 지은 '황조가'이다. 황조가는 원문이 한자로 되어 있으며,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노래로 손꼽히기도 한다. 유리왕은 그 뒤, 부왕의 뜻을 이어받아서 만주에 웅거하던 선비족, 부여의 대소왕과도 싸우는 등 주변의 여러 나라를 빼앗아 영토를 넓혔다.
그렇다면, 고구려의 제3대 왕은 누구일까? 대무신왕인데, 대무신왕보다는 그의 아들 호동왕자가 더 알려져 있다. 호동은 잘생겼으며, 성격이 쾌활하기로 소문이 자자했다. 어느 날, 호동은 자기의 영토인 옥저에 놀러갔다. '아주 잘생겼군! 저런 청년은 처음 보겠어.' 낙랑국의 어떤 작은 나라의 왕인 최리가 호동을 보고는 첫눈에 마음에 들었다. '내 사위로 삼아야지.' 최리왕은 호동에게 낙랑공주를 보였다. 호동도 낙랑공주가 마음에 들어 아내로 맞고 싶었다. 고구려로 돌아온 호동은 부왕인 대무신왕에게 "낙랑공주를 아내로 맞게 해주십시오" 하고 아뢰었다. 대무신왕도 반대의 뜻을 보이지는 않았으나 왠지 꺼림칙한 눈치였다. "부왕마마, 최리의 딸을 아내로 맞도록 허락해주옵소서." 호동은 애가 탔다. "그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다. 저 낙랑국의 한인들을 모두 정복하여 우리의 영토를 되찾아야 해." "부왕마마의 뜻을 어찌 소자가 모르겠습니까? 그것은 걱정 마십시오." 부왕은 그제서야 낙랑공주를 맞도록 허락을 했다. 호동은 그날로 낙랑국으로 달려가서 최리의 딸을 왕자비로 맞았다. 젊은 왕자 부부는 행복한 결혼생활을 보내었다. 한편, 부왕은 낙랑국을 정복하려는 계획을 비밀히 진행시켜나갔다. 낙랑국에는 자명고라는 큰 북이 있었다. 이 북은 외적이 쳐들어오면 저절로 울렸다. 고구려에는 낙랑국을 정복하려면 무엇보다도 자명고를 먼저 없애야만 하였다. 왕은 왕자 호동을 불렀다. "네 처에게 일러서 낙랑국의 자명고를 없애도록 하여라. 그래야 우리 고구려가 군사를 일으킬 수가 있어." "그렇게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호동은 부왕의 말씀을 거역할 수가 없어서 아내에게 말했다. 낙랑공주 또한 남편의 말을 거스를 수가 없었다. "제가 자명고를 찢어버리겠어요. 그러면 소리가 나지 않습니다." 오랜만에 낙랑공주가 돌아오자 최리는 반가이 딸을 맞았다. "고구려의 요즘 형편은 어떠하냐?" "무슨 형편 말씀이어요?" "군사들은 얼마나 돼?" 최리왕은 고구려에 대한 것을 딸에게 꼬치꼬치 캐어물었다. 낙랑공주는 속으로 한탄을 하였다. '아버지가 나를 고구려의 왕자에게 시집보낸 것은 고구려를 정복하기 위한 속셈이었구나!' 낙랑공주는 양쪽 나라 모두가 서로 정복하려고 벼른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국경을 넘어 맺은 왕자 호동과의 사랑만은 진심이었다. 낙랑공주의 마음은 진심 쪽으로 기울어졌다. 사랑을 따르느냐 조국을 따르느냐로 그동안 고민을 해왔던 것이다. 한데, 조국은 낙랑공주를 상대국의 정벌 미끼로 삼고 있는 것이었다. 마침내 낙랑공주는 아무도 몰래 자명고를 칼로 찢어버렸다. 한편, 호동은 군사를 이끌고 선봉장이 되어 낙랑국으로 쳐들어갔다. 낙랑국에서는 자명고가 울지 않아서 고구려가 쳐들어오는 것을 알지 못했다. "고구려가 쳐들어온다!" 낙랑국의 백성들은 뜻밖에 외적의 침입을 당해 아우성을 쳤다. 최리는 이 소식을 듣고 대뜸 울지 않는 자명고를 살펴보았다. 자명고는 갈기갈기 찢어져 있었다. '음, 공주가 이따위 짓을 해놓았군!' 최리는 곧 낙랑공주를 불러 문초를 한 뒤에 죽여버렸다. 물밀듯이 쳐들어온 고구려 군사들은 궁궐에까지 들이닥쳤다. 왕자 호동은 낙랑공주부터 찾았다. 그러나 왕자 호동의 앞에는 싸늘해진 낙랑공주의 시체가 놓여 있을 뿐이었다. '아, 사랑하는 아내를 죽이면서까지 영토를 넓혀야 하다니…' 왕자 호동은 눈물을 흘리며 고구려로 돌아갔다. 부왕과 신하들은 왕자의 공을 칭찬했다. 그럴수록 호동의 가슴은 찢어지는 듯 아팠다. 왕자 호동 앞에는 또 한 가지의 슬픔이 겹치게 되었다. 왕의 원비가 호동의 용맹함과 세력이 커지는 것을 시기하여 왕에게 이렇게 고해바쳤다. "호동 왕자가 왕의 자리를 넘보고 있습니다." 부왕은 호동을 의심하기 시작했고, 호동은 아내를 잃은 터에 그와 같이 억울한 말을 듣고 낯빛이 점점 나빠져갔다. 부하들은 호동 왕자에게 부왕 앞에 나가서 억울한 사정을 호소하라고 권했지만, 호동은 듣지 않았다. "내가 만일 죄 없음이 밝혀지면, 어머니의 악함이 드러나게 되오. 그러면 나는 어머니를 배반하는 일이 되고 부왕에게는 근심을 끼치는 일이 되오." 호동 왕자는 끝내 한 많은 일생을 비극으로 마치고 말았다.
고운석 주필 gnp@goodnewspeople.com 고운석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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