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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남녀·인종 위에 사람-데이비드 미첼 '야코프의천번의가을'
입력시간 : 2019. 01.05. 16:56


"그녀와 같은 계급의 여자들은 데지마의 처가 되지 않는다는 거야. 그녀가 설령 자네의 애정을 받아준들, 붉은 머리 악마가 건드린 후에 제대로 시집을 갈 수 있겠나? 자네가 그녀를 진심으로 사랑한다면, 그녀를 피하는 것이 자네의 진심을 나타내는 길일세."

영국 작가 데이비드 미첼의 장편소설 '야코프의 천 번의 가을'이 번역·출간됐다. 2010년 뉴욕타임스 신문과 주간 '타임'이 올해의책으로 선정됐고, 2011년 커먼웰스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켄트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한 미첼은 일본으로 가 8년간 영어를 가르쳤다. 1994년 나가사키 여행 중 전차 정류장을 잘못 내리는 바람에 우연히 데지마의 존재를 알게 됐다. 그때부터 미첼은 그 장소가 품고 있는 이야기를 머릿속으로 구상하기 시작했고, 그로부터 10여년이 지나 한 편의 소설로 재탄생시켰다.

네덜란드 동인도회사 사무원 '야코프 더주트'이 주인공이다. 1799년 야코프는 일본 나가사키의 인공섬 '데지마'에 도착한다. 데지마는 일본이 쇄국정책을 고수한 시기에 서양과의 교류를 유일하게 허락한 곳이다.

네덜란드인은 오직 데지마에만 머물 수 있을뿐 본토로는 들어갈 수 없었다. 기독교 관련 서적이나 물건도 절대 소지할 수 없었다. 하지만 데지마에 막 도착한 야코프의 짐 속에는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시편이 들어 있었다. 일본인 통역관 오가와가 이를 눈감아주면서 두 사람은 우정을 쌓기 시작한다.

야코프는 몇 년 후 돈을 모아 고향으로 돌아가 사랑하는 여인 아나와 결혼하겠다는 부푼 꿈을 꾼다. 새로 부임한 상관장의 명령으로 그간의 부정을 파헤치기 시작하면서 야코프는 모든 직원의 공공의 적이 된다.

어느 날 야코프는 일본인 산파 오리토와 마주친다. 오리토는 영리하고 아름다운 여성으로, 나가사키 부교의 아들을 위험한 출산에서 살려낸 덕분에 데지마에서 의술을 배울 수 있게 됐다.

야코프는 지적이고 독립적인 오리토에게 점점 마음을 빼앗긴다. 아나에 대한 미안한 마음과 일본인인 오리토와 네덜란드인인 자신이 이뤄지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현실 때문에 괴로워한다.

혼자 속앓이를 하던 야코프는 긴 망설임 끝에 마음을 전하는 편지를 쓰고, 오가와 통역관에게 전달을 부탁한다. 그러나 이미 때는 늦었다. 오리토의 아버지가 빚을 남긴 채 세상을 뜨면서 오리토는 에노모토의 산사에 팔려가는 처지가 됐다. 시라누이산 협곡에 자리한 에노모토 승정의 산사는 겉으로 보기엔 일반적인 신사와 별다를 바 없지만, 사실은 기형이나 흉터가 있는 여성들을 모아놓고 반인륜적인 범죄를 저지르는 곳이다.

지난해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일본계 영국 소설가 가즈오 이시구로는 "미첼의 책을 처음 읽고 나는 완전히 다른 세계로 휩쓸려가는 기쁨을 느꼈다"고 평했다.

미첼은 어느 인터뷰에서 "다른 무엇보다 인간에 천착하는 소설"이라고 소개했다. "예술은 사람에 대한 것이지, 실험을 위한 것이 아니다. 우리가 소설을 사랑하는 이유는 그것이 인간에 대한 것이기 때문이다."송은주 옮김, 1권 548쪽 1만5800원·2권 292쪽 1만3800원, 문학동네



임신한 내연녀 죽여라-히가시노 게이고 '브루투스의 심장'

"대학원에 진학하기 직전,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 날아왔다. 뇌출혈이라는 소식을 들었을 때 다쿠야는 '드디어 내게도 운이 따르는군'하는 심정이었다. 고향에는 한 번도 돌아가지 않았지만 그 마을에 여전히 그 남자, 자신의 아버지라 칭하는 남자가 살고 있다는 게 가장 큰 고민거리였기 때문이다. 그런 남자의 아들이라면 취직에도 영향을 끼치지 않을까 걱정했던 것이다. 그날 밤, 다쿠야는 샴페인을 사서 혼자 이 행운을 축하했다. 무심결에 웃음이 새어나올 만큼 최고로 기분 좋은 밤이었다."

일본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장편소설 '브루투스의 심장'이 번역·출간됐다. 1989년에 발표한 작품이다. 공대를 나와 자동차 부품 제조회사에 다녔던 히가시노는 당시 기계화되어가는 사회에 주목했다. 거래만이 존재하는 인간관계, 인간의 자리를 대신하는 기계, 대기업의 정보 은폐 구조 등을 날카롭게 묘사했다.

'다쿠야'가 소설의 주인공이다. 주정뱅이에 폭력적인 아버지 밑에서 자란 그는 인간에 대한 짙은 불신과 권력지향적인 성격을 갖고 있다. 지독한 노력 끝에 로봇 개발자가 됐지만, 더 높은 곳으로 가기 위한 도전을 멈추지 않는다. 임원실 직원인 '야스코'에게 접근, 내연 관계가 됐다.

전무의 정보를 얻어내 전무 딸과 결혼할 기회까지 생겼다. 모든 게 계획대로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던 어느 날, 다쿠야는 야스코의 임신 소식을 듣게 된다. 야스코의 임신이 성공에 대한 방해물이라고 여기며 어떻게 문제를 처리해야 할지 초조해한다.

다쿠야는 뜻밖의 호출을 받고 자신의 처지와 같은 두 남자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아이의 아버지일지도 모를 세 남자는 야스코가 걸림돌이 된다고 판단하고 '릴레이 살인'을 모의한다. 서로에 대한 신뢰가 없는 사람들의 살인 계획이 틀어지면서 뜻밖의 국면을 맞이한다.

"그는 지금 상태에 만족하지 않았다. 현재 자신은 다른 사람보다 조금 뛰어난 '근로자'에 불과했다. 누군가의 지배를 받고 있다는 사실엔 변함이 없었던 것이다. 인간이 모두 평등하다는 건 환상일 뿐이라는 게 그의 오랜 철학이었다. 이 세상은 불공평과 차별로 가득 차 있다. 누구나 태어난 그 순간부터 다양한 계층으로 나눠진다. 언젠가 반드시 최상층의 인간이 된다, 지배자가 된다. 그것이 다쿠야의 최종 목표였다."

옮긴이 민경욱씨는 "'브루투스의 심장'에서는 모든 인물이 무언가를 잃는다"며 "그것은 소중한 생명이나 사랑하는 사람이며, 평생을 꿈꿔왔던 욕망, 피붙이에 대한 집착이기도 하다"고 소개했다.

"진흙탕 속에서 몸부림치며 벗어나려고 하지만 무언가를 잃어가는 인물들을 보다보면, 특히 아버지로부터 상처를 받고 그 상처로부터 벗어나려는 주인공을 비롯한 인물들에게 연민의 정이 생기게 마련이다. 이렇게 애를 쓰고 살았다면 누구 하나쯤은 행복해도 되지 않을까? 하지만 작가는 그런 바람을 쉽게 허락하지 않았다. 그래서 책을 덮는 순간 '이 작가, 정말 독한 사람이네'라는 생각이 든다." 428쪽, 1만4800원, 알에이치코리아



NP gnp@goodnewspeople.com        NP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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