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4월 25일(목)
HOME 커버스토리 정치 경제 사회 문화 환경 국제 스포츠 여성.가정 건강 이웃 전국

이동하기
<藝人> 자연을 그리는 사람 _ 청해 고경보
“화가는 작품으로 말 한다”
학생들 가르치면서도 붓을 놓지 않다
미술교육대학원 진학, 2편의 논문 써
‘장전 미술관’ 큐레이터로 기획·연구
고향에 ‘작은 갤러리’ 마련 꿈 가져
입력시간 : 2019. 01.05. 17:27


목포하면 떠오르는 것이 예향의 도시이다. 오래전부터 많은 예술가들을 배출하고 있는 목포에는 특히 한국화가 들의 활약이 두드러지는데, 그 중 어려서부터 그림 그리는 것에 재능을 보이며 교직에 있는 동안에도 꾸준히 붓을 놓지 않으며 퇴직 후에는 전업화가로 끊임없이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한국화가 있다. ‘자연을 그리는 사람, 청해 고경보’ 화백이 그 주인공이다.


전남 완도군 노화도가 고향인 그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었다고 한다. 예술과는 떼어놓을 수 없을 것 같은 청해 선생의 인생 스토리는 꽤 특이하다. 고향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한 후 중.고등학교부터 광주광역시에서 다닌 청해 선생이 전공한 것은 운동이었다. 태권도를 한 그는 국가대표 선수, 청와대 경호실에서 근무한 제자들을 길러낸 체육 교사로 교단에 섰고 37년 동안 화원중·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다 퇴직을 한 교육자이다.

하지만 청해 선생은 교직 경력은 37년이지만 붓을 잡은 지는 40년 되었다고 하니 교사보다 화가 경력이 더 오래되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닌 듯싶다. 이렇게 끊임없이 붓을 놓지 않았던 청해 선생은 학교에 재직할 때도 그 재능을 발휘했던 것 같다 다. 당시만 해도 학교에서 수여하는 상장은 모두 손 글씨로 학년, 이름 등을 써야 했는데, 청해 선생이 모두 도맡아 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청해 선생은 학교에서 근무가 끝나면 집에서 붓글씨를 독학으로 공부했다고 하니 타고난 끼와 재능이 있었음에 틀림없다.

하지만 교사로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에 집중하며 그림 그리는 일은 단지 취미로 하고 있었던 청해 선생은 어느 날 문득 전문적인 그림 공부를 하고 싶은 생각에 경희대학교 미술교육대학원에 입학했다고 한다. 40세가 넘어 시작한 공부이니 웬만한 의지와 열정이 없으면 힘든 학구열이 아니었을까 싶다. 청해 선생은 석사 논문으로 「해남대흥사 불화에 관한 연구」을 썼다. 1년 6개월을 철저하게 연구하고 꼼꼼하게 기록했다. 논문 심사 교수들이 극찬을 아끼지 않았을 정도였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청해 선생은 또 우석대학교 교육대학원에서 「완도약산어두리해저유물에 관한 연구」에 관한 논문을 썼다.


이후에도 공부에 미련을 떨치지 못하고 청해 선생은 우석대학교 석사 과정에 편입해 또다시 공부를 한 후 같은 대학 겸임 교수로 강단에 서 학생들에게 강의를 하기도 했다.

개인전 4회와 단체전 및 초대전으로 자신의 작품을 선보이고 있는 청해 선생은 지금 특별한 작품을 시도하고 있다. 족자 하나에 봄과 여름 풍경을 함께 그리고 또 하나에는 가을과 겨울의 모습을 담고 있는 것이다.

청해 선생은 “화가는 작품으로 말 한다”며 “좋은 그림이란 자기방식대로 생각하고 느끼고 표현해 내는 것 유행을 따르고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따른다면 잘 그린 그림은 될 수 있으나 결코 좋은 그림은 될 수 없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작가는 무엇을 그릴 것인가를 중요하게 생각할게 아니라 어떻게 그릴 것인가를 더 중요하게 생각해야 한다”며 “작가로서 게으르거나 노력하지 않으면 좋은 그림을 그릴 수 없다”고 덧붙였다.

청해 선생은 현재 화가로 뿐 아니라 진도에 위치한 ‘장전미술관’에서 큐레이터로 활동하고 있다. ‘장전미술관’에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는 청해 선생은 미술관 소개도 잊지 않았다.

“진도읍에서 서남쪽 방면으로 8Km쯤 가다보면, 임회면 하미길 39에 거대한 한옥 마을을 옮겨놓은 것 같은 ‘장전 미술관’을 만날 수 있다. 웅장한 한옥 지붕이 갖고 있는 품위 때문에 ‘진도의 경복궁’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장전미술관은 서예가 장전(長田) 하남호 선생이 자비를 들여서 세운 미술관으로 1989년에 지상 3층 미술관을 개관했다.”

장전 선생은 진도 출신으로 소전 손재형 선생의 제자로 전서와 예서에서 탁월한 기량을 보이며 국선 4회 특선과 당시 문공부장관상을 수상하기도 하는 등 그 능력을 높이 인정받은 서예인이다.


청해 선생님은 교직에 있으면서 호남 미술 발전에 크게 기여하신 분입니다. 예서로는 당나라의 등완백의 서법을 이어받은 분으로 평가 받았을 만큼 그분의 실력에 필적할 만한 분이 없다. 거기다 인품이 좋아서 다른 분들의 부탁을 늘 거절하지 못해 항상 붓을 손에 들고 사셨다. 다작을 한다는 비판을 받으면서도 화가는 항상 붓을 들고 살아야 한다는 말로 대답하셨다. 대가로서 후학들은 물론 대중에게도 끊임없이 다가서려고 노력하신 분이다.”라고 설명했다.

장전 선생은 초등학교 교사로 시작해 전남도 교육위원, 전남대학교 예술대학 강사를 거쳐 광주예술고등학교 설립과 함께 10년 동안 교장으로 지내며 재능 있는 후학들을 양성하는데 앞장섰다. 일반인들이 쉽게 접할 수 있는 장전 선생의 작품들로는 대전 순국선열 충혼탑, 돌산대교 탑문, 완도 이충무공대비, 중국 산둥성 신라방 장보고 장군 공덕비, 판문점 ‘자유의 집’ 등의 현판이다. ‘장전미술관’에는 장전 선생이 평생 모은 서예 400여 점과 도자기 150여 점은 물론 서양화, 한국화, 조각, 분재 등이 전시되어 있다.

청해 선생은 장전 하남호 선생에 대해 “선생님은 서울에 멀리 떨어져 있는 지방에 살면서 작품 활동을 하셨지만, 그 중심과 크기는 온 세상을 품고 있는 것처럼 무겁고 깊은 뜻을 가지셨다고 생각한다. 붓을 들기 전에 먼저 마음으로 깨닫고 심상을 정한 것은 그 분이 다작을 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작품 하나하나가 불멸의 생명력을 갖고 있게 하는 원동력이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전했다.

청해 선생은 퇴직 후 고향에서 사회복지에 관련된 일을 하고 싶었지만 여러 가지 여건상 이루지 못했지만 고향을 위해 뭔가를 남기고 싶은 마음은 여전하다는 청해 선생이다. 그건 바로 ‘작은 갤러리’를 만들어 작가들에게는 작업 공간을 제공하고 갤러리를 찾는 관람객들에게 자신의 작품과 그동안 간직한 소장품 등을 전시해 볼거리를 제공하고 싶은 꿈을 가지고 있다. 그 목표가 이뤄져 예술의 고장, 완도에서 ‘청해 갤러리’를 만날 수 있는 그날을 기대해 본다.



≫약 력

-경희대학교 교육대학원 졸업 -한국화 개인전 4회 -단체전 및 초대전 수회 -녹조근정훈장 -전)화원중·고 재직 -전)우석대학교 교육대학원 겸임교수 역임 -(사)한국미술협회 회원 -한국미술교육연구회원 -창조회원


방수진 기자 gnp@goodnewspeople.com        방수진의 다른 기사 보기

기사 목록     프린트 화면     메일로 보내기     뉴스 스크랩    


굿뉴스피플 만평
<칼럼> 건전한 소득에 대해 징벌을 한…
<시사 논평> 포토라인 망신주기
<청강의 세상 이야기> ‘죽을죄’가 ‘…
황첨지네 집에서 5년이나 머슴을 살다 새경으로 초가집과 밭을 받아 나온 노총각 억쇠…
<초대석> 고창군수협 배한영…
경영의 신뢰성을 한층 높여 투명경영과 정도경영을 실현하며 수산인 조합원들로부터 두…
이 사람/공무원 화가 윤창숙씨
만화를 활용한 지방자치단체의 홍보기법과 효과 등을 종합 분석한 을 펴내 관심을 모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