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0월 18일(월)
HOME 커버스토리 정치 경제 사회 문화 환경 국제 스포츠 여성.가정 건강 이웃 전국

이동하기
<시리즈> 선비정신을 찾아서… <141>/ '과거왕' 栗谷
科試에서 무려 9차례나 장원 차지
유학 경전 탐독하여 자신의 철학으로 승화시켜
젊은 나이 때 학문적 사유도 상당한 경지 올라
성리학 탐구 거봉 成渾과 함께 조선 중기 학문의 큰 줄기 돼
“털끝만큼이라도 聖人에 미치지 못하면 내 일은 끝난 게 아니다”
입력시간 : 2019. 01.05. 17:29


경기도 파주시 법원읍 동문리에 있는 율곡의 묘.
조선 중기의 대학자 율곡(栗谷) 이이<李珥, 1536(중종 31)~1584(선조 17)>는 자는 숙헌, 호는 율곡, 아명은 현룡, 시호는 문성(文成), 본관은 덕수(德水), 강릉 출신이고, 신사임당의 아들이다. 공부를 잘해 조선시대 '과거왕'으로 불린다.

한데, 지금 우리는 입학-입사-승진 등 끝없는 시험 속에서 살고 있다. 말 그대로 대한민국은 시험공화국이다. 시험, 하면 종종 논란이 되는 것이 부정행위인데, 이는 조선시대 과거시험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잘 알려진 것처럼 과거는 시험을 통해 훌륭한 인재를 선발하던 제도다. 조선의 선비들은 관직에 올라 가문을 일으키기 위해 과거시험 준비에 고군분투했다. 과거시험은 입신양명(立身揚名)을 위한 필수 코스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과거시험에서도 부정행위가 적지 않았고, 그 폐단 또한 심각했다. 고려 광종 때 처음 시행한 과거시험은 조선에 와서 더욱 발달했다. 조선의 과거는 문과-무과-잡과의 구별이 있었다. 또 예비시험의 성격을 지닌 소과(小科), 즉 생원·진사시험도 있었다. 문치주의를 표방한 조선에서는 생원-진사시와 문과가 중시되었고, 많은 선비들은 문과 급제를 최대의 목표로 설정하였다. 문과시험은 3년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시험을 치는 식년시(式年試) 외에도 증광시(增廣試), 별시(別試), 알성시(謁聖試) 등 다양한 특별시험이 있었다. 조선 후기, 특별시험이 점차 늘어나면서 선발인원도 증가했다. 하지만 이를 능가하는 응시자의 증가로 경쟁은 더욱 치열해져 합격자의 나이가 갈수록 높아졌다. 생원·진사시험 합격자의 평균연령이 15세기 25세에서 19세기 후반 37세로 무려 12세나 높아졌다. 문과 합격자의 평균연령은 18세기 후반에 오면 39세로 거의 사십에 육박했다. 생원·진사시험 중 서울에서 시험이 열리는 한성시 응시자가 세종 때 1000여명에서 선조 때 2000여명으로 늘어났다가 숙종 33년에는 1만1000여명에 달했던 것으로 추산된다. 가히 폭발적인 증가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사정은 문과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는데, 특히 정기시험인 식년시보다 특별시험의 응시자 증가가 눈에 띌 정도로 많았다. 이처럼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과거시험을 둘러싼 과열현상은 더욱 심해졌다. 이렇다 보니 합격률이 낮아진 상황에서 부정한 방법을 꿈꾸는 자들이 늘어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시험장의 좋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서로 먼저 입장하려고 하는 과정에서 응시생들 간에 치열한 몸싸움이 전개되어 인명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1686년(숙종 12년) 4월에는 숙종이 성균관에 행차하여 시험을 주관한다는 소문을 들은 선비들이 시험장에 서로 먼저 들어가려고 다투다가 여덟 명이나 밟혀죽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런 과장 문란으로 야기된 과거 부정행위로 당시 자주 거론된 것이 이른바 '수종'과 '협서'의 문제였다. 수종은 응시생을 보좌하는 자들을 말하는데, 이들이 함부로 시험장에 들어가서 부정을 저지르는 일이 자주 있었다. 협서는 요즘으로 치면 커닝페이퍼를 말하는데, 가장 고전적인 부정행위라 할 수 있다.
'율곡 이이 선생가 분재기' 진본(보물 제477호). 율곡 등 7남매가 아버지(이원수)가 세상을 떠난 뒤 남겨진 유산을 똑같이 나누고 그 내용을 기록한 문서다.


그래도 공부를 잘했는지를 측정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은 시험을 치르는 것이다. 더구나 율곡이 과거를 보던 시대는 100년을 앞선 시기라 부정과는 무관한 때였다. 그러기에 시험이라는 제도를 통해 공부의 최강자를 꼽자면 단연 율곡 이이(李珥)다. 그는 과거시험에서 무려 아홉 번이나 장원을 차지했고, 특히 29세 때 치른 대과에서는 초시·복시·전시에서 모두 장원을 했다. 시험 하나만을 놓고 볼 때 그야말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시험왕’이었다. 게다가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학문적 사유 또한 상당한 수준을 이루었다. 그가 스물세 살의 나이로 문과 별시 초시에서 장원을 차지했을 때, 답안으로 제출한 '천도책(天道策)'은 성리학의 우주자연관을 기반으로 논리정연하게 전개한 글로 유명하다. 조선시대 과거시험을 치르기 위해서는 '사서오경'의 경전을 포함한 유학서적을 탐독해야 했다. 선비들 대다수가 과거시험을 위해 경전을 암송하고 글을 짓는 데 온 정열을 쏟는가 하면, 일부 선비들은 시험과는 별개로 경전의 의미를 철학적으로 치열하게 사유하였다. 율곡은 그 두 가지를 모두 성취한 학자였다.

그런데 시험에 합격하기 위해 공부하는 것이 일부 학자들 사이에서 썩 자랑할 일은 아니었나보다. 왜냐하면, 절친했던 우계 성혼<成渾, 1535(중종 30)∼1598(선조 31)>에게 보낸 편지를 보면, 출세와 이득에만 관심을 쏟는다는 지적에 율곡이 집안의 생계를 위해 어쩔 수 없었던 상황이라고 답변하는 대목이 보이기 때문이다. <'과거를 중시하여 과거에 합격하는 것에만 마음을 쓴다'라고 한 것에 대해, 내가 어찌 그 책임을 피할 수 있겠습니까? 이 또한 제가 어쩔 수 없었던 것입니다. 저는 대대로 내려오는 생업이 없으므로 곤궁하여 가계를 꾸려나갈 수 없었습니다. 나이 드신 어버이가 계시는데 맛있는 음식을 못 해드리니, 자식이 되어 마음이 움직이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다만, 과거시험을 보는 길이 있어 나이 드신 어버이를 봉양하는 밑천으로 삼을 수 있었기 때문에 어버이를 위하여 몸을 굽힌 것입니다. 감히 가난 때문에 녹을 구하는 것을 공맹(孔孟)의 정맥(正脈)으로 삼으려 했던 것은 아닙니다.>('答成浩原', 1554년 19세 때 쓴 편지). 대과 장원은 언감생심! 소과에 합격하여 생원-진사가 되는 것만으로도 양반가문을 계속 유지할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었다. 대과에 합격하여 관직에 나아가는 것은 그야말로 가문의 영광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과거시험에 목을 맬 수밖에 없었던 것이 조선시대 양반사회의 모습이었다. 그런데 우계는 생원시와 진사시의 초시에만 합격했을 뿐 과거시험에 연연하지 않았고, 성리학의 의미를 탐구하는 공부에 집중하였다. 그런 우계의 성품으로 봤을 때, 과거시험에 나아가려는 율곡의 모습은 썩 바람직해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율곡은 우계의 진심어린 염려에 어쩔 수 없는 자신의 형편을 이해하기를 바라며, 자신이 유학의 본령 공부를 잊은 것이 결코 아니라고 답하고 있다. 과거시험을 위한 공부가 아니라 학문의 본령과 그 의미를 치밀하게 사유했던 두 사람은 조선 중기 학문의 큰 흐름을 형성한 기호학파의 원류가 되었다.

유학의 본령을 결코 잊지 않았다는 율곡은 공부할 때 어떤 마음가짐을 가졌을까. 그는 16세 때 어머니 신사임당을 여읜 후 3년간 무덤 곁을 지키다가 홀연히 금강산으로 떠났고, 1년이 지나 산속 생활을 청산하고 세상에 나왔다. 이때 유학의 본령에 의지하겠다는 결의를 확고하게 다지고 '자경문'을 지었다. <먼저 뜻을 크게 가져 성인(聖人)으로 표준을 삼아야 한다. 털끝만큼이라도 성인에게 미치지 못하면 내 일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율곡은 자기 삶의 목표를 성인이 되는 것에 두었다. 성리학에서 성인은 뭇 사물을 쉼 없이 낳는 천지의 마음을 세상에 실현한 사람이다. 같은 맥락에서, 성인은 자신과 다른 사물의 존재 의미를 모두 실현하는 이상적 인간형이다. 사람은 누구나 배움, 즉 공부를 통해 성인의 경지에 다다를 수 있다는 것이 성리학 이념이다. 성인이 되기 위해서는 철저한 자기수양을 거쳐 세상에 나아가야 한다. 율곡이 성리학을 본격적으로 공부하는 초학자들을 위해 저술한 책이 '격문요결'이다. '무지한 사람을 깨우치는 핵심 비결'이라는 의미로 책의 제목을 정했다. 이 책은 조선시대에 아동 교육을 위한 중요한 학습서로 사용되기도 했다. 여기에는 율곡이 생각했던 공부의 의미가 담겨 있다.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서 공부를 하지 않으면 사람다운 사람이 될 수 없다. 그런데 그 공부는 세상과 동떨어진 특별한 것이 아니다. 평소의 일상적인 삶 속에서 마주하는 사람들과 사태에 마땅하게 대응하는 것을 배우는 것이다. 일상의 삶을 넘어서는 기이하고 신기한 곳에 마음을 두거나 그런 효과를 바라는 것이 아니다. 공부를 하지 않는 사람은 마음이 잡초로 뒤덮여 식견이 어두워진다. 책을 읽고 이치를 탐구하여 사람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길을 밝힌 다음에야 올바른 경지에 오를 수 있고, 실천에 중도(中)를 얻을 수 있다.>('序文'). 율곡은 사람다운 사람이 되기 위해서 반드시 공부를 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 출발점은 선현이 남긴 책을 읽고 그 의미를 세밀하게 탐구해서 반드시 자기 것으로 소화시키는 것이다. 조선의 선비들이 했던 '어떤' 공부는 일상의 삶에서 존재의 의미를 깨닫고, 타인과 올바른 관계를 성취하고 확정하려는 노력이었다.


고운석 주필 gnp@goodnewspeople.com        고운석의 다른 기사 보기

기사 목록     프린트 화면     메일로 보내기     뉴스 스크랩    


굿뉴스피플 만평
<교육칼럼> 또 하나의 경로석
돈, 박물관이 코인을 만난 세상
<청강의 세상이야기> 왕이 후궁에게 교…
왕이 교접의 법도란 어떻게 하는 것인가 하고 하문하자 후궁이 대답한다. 평소에 단련…
<우수 농협을 찾아서> 신안…
신안 임자농협 주광옥 조합장은 "최근 소비자들 사이에서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이 사람/공무원 화가 윤창숙씨
만화를 활용한 지방자치단체의 홍보기법과 효과 등을 종합 분석한 을 펴내 관심을 모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