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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 선비정신을 찾아서… <142>/ 고려 申崇謙 장군
王 대신 죽음으로써 ‘최고의 忠’ 실천
견훤과 전투 때 위기 빠진 왕건으로 변장하여 戰死
조선시대에 이어 현재까지도 충신으로 추앙되는 인물
고향인 곡성서 매년 享祀 올리고 유적 살리는 등 재조명 노력
입력시간 : 2019. 02.02. 15:43


壯節公 신숭겸 장군 영정.
신숭겸(申崇謙, ?~927·고려 태조 10년)은 고려의 개국공신이다. 초명은 능산(能山), 시호는 장절(壯節), 본관은 평산이다. 몸이 장대하고 무용이 있었다. 궁예 말년의 장수로, 배현경·홍유·복지겸 등과 모의하여 왕건을 추대해서 고려 개국의 대업을 이룬 인물이다. 927년 신라를 도와 공산(公山)에서 견훤과 싸우다가 포위를 당하여 형세가 위태할 때 김낙 등과 함께 역전하다가 전사하여 태조의 위급을 모면케 하였다. 태조는 그의 죽음을 슬퍼하여 숭겸 장군의 아우 능길(能吉)과 아들 보(甫)로 원윤(元尹)을 삼고 지묘사(智妙寺)를 새로 세워 그의 명복을 빌게 하였다. 일찍이 숭겸이 태조를 따라 삼탄에 사냥을 나갔을 때에 마침 세 마리의 기러기가 나는 것을 보고 태조가 말하는 대로 셋째 놈의 왼쪽 날개를 쏘아 맞췄다. 태조가 크게 칭찬하고 평주(平州 : 平山)라는 본관을 주고 기러기를 쏜 근방의 밭 300결(結)을 주어 자손대대로 조(租)를 받게 하였으니, 이 땅을 궁위(弓位)라 불렀다. 고려사에 기록되어 있다.

한데, 이런 위대한 신숭겸 장군은 우리 고장 곡성군 목사동면 구룡리 태생이며, 평산신씨의 시조이다. 장군은 918년 고려 태조 왕건을 왕으로 세웠고, 927년 후백제 견훤과 맞선 공산전투 때 왕건이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하자 왕과 갑옷을 바꿔 입고 나가 순절했다. 이에 고려시대는 물론 조선시대를 거쳐 현재에 이르기까지 충절의 상징으로 빛나고 있다.

출생지인 곡성 일대에는 다양한 유적이 남아있고, 신격화된 설화가 구전되고 있다. 요즘은 경향 각지에서 많은 사람이 이곳을 찾고 있는데, 전라도 천년을 맞아 신숭겸 장군과 관련된 설화를 스토리텔링화해 지역 역사문화자원으로 활용하면 좋을 듯하다.

927년 9월. 후백제 견훤 군이 통일신라 수도인 경주를 점령하자 고려에 구원 요청을 한다. 이에 왕건이 5000명을 이끌고 출전했으나 대구 팔공산 인근에서 도리어 포위당해 전멸 위기에 처한다. 그러자 왕건과 용모가 비슷한 신숭겸 장군이 왕의 옷으로 바꿔 입고 나가 싸우다 장렬히 전사한다. 머리가 없는 시신은 발등에 있는 북두칠성 모양의 콩알만한 점을 찾아 수습할 수 있었다. 태조는 공산 전투 현장과 가까운 현 대구시 동구 지묘동에 절(지묘사)을 지어 공의 명복을 빌었다. 또 고려 태사(太師)로서 태조 묘정에 배향됐다. 1120년 10월에 예종은 서경(평양) 순행 때 팔관회에서 신숭겸과 김락 장군을 추모하는 향가 '도이장가'(悼二將歌)를 지어 백성들에게 두 장군의 충절을 본받도록 했다.

고려 개국 공신인 장절공의 충절은 역성혁명으로 왕조를 바꾼 조선시대에도 높이 평가됐다. 1000년이라는 시간을 초월해 충의의 대명사로 지역 유림-문중에서 추앙해왔던 것이다. 신숭겸 장군은 곡성 덕양서원과 용산재, 대구 표충사, 춘천 도포서원, 평산 태백산성사, 동양서원 등에 배양되고 있다. 현재 장절공의 묘소는 곡성의 장군단과 강원도 춘천, 두 곳에 전한다. 태안사 경내에 위치한 묘소는 장절공 전사 후 그가 타고 다니던 용마(龍馬)가 공의 잘린 두상을 물고 달려와 태안사 뒷산에 와서 사흘간 울다가 굶어 죽어, 이곳에 마련됐다고 한다. 실제로 일제강점기인 1934년에 장군단 아래를 파헤쳐보니 석함이 나왔다고 한다. 또 강원도 춘천시 서면 방동리에 위치한 묘역은 특이하게도 봉분이 세 개인 일인삼분묘(一人三墳墓)다. 이에 대해 학계는 이렇게 해석한다. 머리가 잘린 장절공의 시신을 수습한 왕건이 목공을 시켜 얼굴을 조각해 만든 다음, 조복을 입혀 장례를 치렀다. 그런데 황금두상으로 알려지면서, 도굴을 피해 봉분 3개를 조성했다고 한다. 출생지나 전사지와 멀리 떨어진 춘천에 묘역을 조성한 까닭에 대해서도, 본래 이곳은 도선국사가 왕건의 묘자리로 알려준 명당이었는데, 자신을 위해 희생한 장군을 위해 묘자리를 양보한 것이라 전한다.

용산재(전남 곡성군 목사동면 구룡리)는 장절공이 탄생하고 자란 곳을 중심으로 이뤄진 유적지이다. 1868년(조선 고종 5년)에 후손 신명희가 부지를 마련했고, 1897년에 유허비(선현의 자취가 있는 곳을 후세에 알리고 추모하기 위해 세우는 비)를 세웠다. 1929년에 후손들이 태를 묻었다는 곳에 석축으로 단을 만들어 용산단이라 이름 붙였다. 매년 음력 9월 중정(中丁)에 제사를 지낸다. 용산재에는 장군의 동상이 우뚝 서있다. 동상 뒤편에는 장절공이 순절하던 대구 공산전투를 묘사한 '충렬도'와 기러기를 활로 쏴 맞추는 '사안도'가 그려져 있다. 덕양서원(곡성군 오곡면 덕산리)은 1589년(선조 22년) 지방 유림들이 뜻을 모아 장절공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한 서원이다. 1659년(숙종 21년)에 덕양이라고 사액(임금이 서원 이름을 지어서 새긴 편액을 내리던 일)돼 장절공 배향과 지방 교육의 일익을 담당했다.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됐다가 1934년 지방 유림들에 의해 복원돼 현재에 이르고 있다. 매년 음력 2월 중정(中丁)과 8월 중정에 향사를 지낸다. 곡성군 목사동면 일대에는 장절공과 관련된 지명과 설화들이 많이 전해져온다. 지명은 용(龍)과 연관돼 있다. 대황강(보성강)에 여울과 소(沼), 바위가 많은데 용소(龍沼), 용암(龍岩)으로 불린다. 탄생지인 구룡리 주변 마을 이름도 용사리, 용정리이다.

곡성군은 장절공 신숭겸 장군의 충절을 널리 알리기 위해 발 벗고 나섰다. 1981년 전라남도 기념물 56호로 지정해 관리하고 있는 덕양서원과 용산재를 국가 지정 사적지로 승격시켜줄 것을 2017년 정부에 건의해 현재 심의 중이다. 또한 압록유원지에서 목사동면 평리 삼거리까지 대황강변 13km에 3구간으로 된 도보길 '신숭겸 장군길(대황강 둘레길)'을 조성했다. 장군이 젊은 시절 무예를 연마하고 용마를 타고 다닌 곳으로 알려져 있는 곳이다. 실제 장절공이 말을 매어두었다는 높이 3.65m 크기의 계마석이 대황강 출렁다리 인근 죽곡면 삼태리 도로변에 서있다. 계마석을 통해 일정한 지역적 기반을 가지고 있었던 호족 출신으로 추정된다. 문중에서도 장절공 재조명 학술대회를 지난 2015년 11월 개최하는 등 선양사업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평산신씨 시조 유적지 덕양서원 신인현 도유사(전 조선대 교수평의회 의장)는 "조선에 이순신 장군이 있었다면, 고려에는 신숭겸 장군이 있었다. 고려와 조선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았는데, 근래 들어 빛을 발하지 못하고 있다. 덕양서원과 용산재도 국가사적지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후대에 나라 소중함과 충절을 심어주기 위해서라도 중앙정부와 전남도가 장절공 성역화 사업을 서둘러야 할 것으로 보인다.





고운석 주필 gnp@goodnewspeople.com        고운석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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