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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논평> 포토라인 망신주기
입력시간 : 2019. 04.13. 15:28


중세에 '시련 재판'이 있었다. 피고에게 고통을 가해 버텨내면 무죄, 거부하거나 견디지 못하면 유죄로 판단했다. 무죄 증명을 하려면 불길 속에서 살아나오거나 찬물에 들어가 죽을 때까지 있어야 했다. 펄펄 끓는 기름에 손을 넣었다 꺼내야 하는데 화상을 입으면 유죄가 됐다. 결론을 이미 내놓고 하는 재판이었다.

한 법관이 검찰의 포토라인 세우기가 중세 시련 재판을 연상시킨다고 했다. "수십 대 카메라 앞에 선 피의자는 중압감과 수치심을 극복하고 당당한 태도를 유지해야 유·무죄 1차 관문 통과한 것으로 여겨진다"고 했다. 실제가 그렇다. 경험자들은 "포토라인에 서는 순간 팔다리는 후들거리고 머릿속이 하얗게 되더라"고들 한다. 그 법관은 "형사소송법엔 피의자가 공개 소환하고 포토라인의 시련을 감내해야 할 의무 조항이 없다"고 했다.

이른바 '포토라인'은 수사기관에 공개 소환된 사람이 잠시 멈춰 서게 바닥에 테이프로 만들어 놓은 선이다. 26년 전 재벌 회장이 카메라에 맞아 다치면서 관행으로 굳어졌다. 문제는 검찰의 공개 소환이다. 아직 유죄가 확정되지 않은 사람이 한국에선 공개 소환돼 카메라 앞에 서서 사실상의 범죄자 취급을 받는다. '국민의 알 권리'라는 주장도 있다. 언론이 공개 소환을 요구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는 무죄 추정을 받는 한 개인의 인권도 보호받아야 한다. 법조계에선 세상에 두 개의 법정이 존재한다고 한다. 하나는 현실의 법정이고, 다른 하나는 '여론의 법정'이다.

현실 재판은 판사가 주재하지만 여론 재판은 검찰이 조종한다. 검찰은 포토라인 세우기를 수사 대상자에 대한 공격 압박카드로 쓴다. 한국에선 죄 없는 사람도 검찰에 의해 여론 법정에서 얼마든지 인민재판 당할 수 있다. 요즘 검찰은 재판 시작 전에도 끊임없이 혐의를 흘려 사람을 만신창이로 만든다. 피의사실 공표는 범죄이지만 사문화됐다. 검찰 공소장은 범죄와 상관없는 개인 흠집내기와 추측으로 가득하다. 판사에게 선입견을 두려고 만든 '노래하는 기소장'이다. 별건 수사나 뭐든지 나올 때까지 털고 또 터는 압수수색은 일상이 됐다. 심지어 수갑도 자기들 멋대로 채운다. 박상기 법무부 장관은 검찰이 포토라인을 수사 목적으로 이용해온 관행을 인정했다. 그는 취재진이 포토라인을 만들지 못하도록 "검찰에 누구를 언제 부르는지 미리 언론에 알리지 말라고 지시했다"고 밝혔다.

할 말이 있는 사람은 포토라인이 없어도 기자를 찾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을 카메라 앞에 세우고 뻔한 질문을 던지며 "죄종합니다"라는 알맹이 없는 답을 듣는 것은 '망신주기'일 뿐이라는 이유에서다. 옳은 말이다. 이는 포토라인의 운용자인 언론계도 함께 고민할 문제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비공개 소환이 원칙이 돼도 포토라인은 검찰에 유용한 무기다. 수사에 협조하지 않으면 조사 도중 언론에 몰래 흘려서 청사를 나갈 때 포토라인에 맞닥뜨리게 할 수 있다. 또 그런 일을 빌미로 피의자를 압박할 수 있다. 포토라인으로부터 피의자의 명예를 제대로 지켜주려면 검찰이 과거에 몇몇 특별한 피의자들에게 그랬던 것처럼 더 확실한 보호조치를 제공하는 것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박 장관의 지시가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검찰청 앞 포토라인을 '페싱'하며 검찰의 공개소환에 무언의 항의를 한 일을 계기로 나온 점은 입맛이 쓰다. 10년 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 직후에 피의사실 공표를 막겠다며 '수사공보준칙'을 만든 일을 연상케 한다. 법은 누구에게나 평등해야 하는데, 높은 분이 고통을 겪은 후에야 잘못된 관행을 손본다는 것은 후진적이다. 법이 아니라 폭력이다.



나경택 본지고문, 칭찬합시다운동본부 총재         나경택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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