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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 선비정신을 찾아서… <144>/ 이효정과 박진홍
우리에게 다소 생소한 ‘여성 독립운동가’
여고 동기생-친구로 함께 옥살이하는 등 항일 의지 불태워
가혹한 고문 속에 전향 요구 받았지만 끝까지 굴하지 않아
박진홍은 “식민지 철창에 한이 맺힌다”며 아들 이름 ‘철한’으로 짓기도
입력시간 : 2019. 04.13. 16:32


서대문형무소 '3.1운동·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 특별전-문화재에 깃든 100년 전 그날'에 전시돼 있는 일제의 주요 감시 대상 인물카드들. 특별전은 지난 2월 19일부터 오는 4월 21일까지 서대문형무소역사관 제10, 제12 옥사에서 진행된다고.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를 붙잡아 고문하고 처형했던 서대문형무소. 형무소에 들어서면 왼편으로 여성 독립운동가들을 수감했던 여옥사가 보인다. 유관순 열사가 옥사한 8번방 옆 7번방 철문, 낯선 두 여성의 사진이 담긴 안내판이 걸려있다. 이효정(1913~2010)과 박진홍(1914~?)이 그 주인이다. 이들은 동덕여고 동기생으로 1930년대 이재유의 지도 하에 함께 일신공장의 노동운동을 주도하였다. 이 과정에서 각각 일본 경찰에 피체되어 서로 소식을 모른 채 이곳 여옥사에서 1935년 4월경 만났다. 동료를 만난 기쁨을 나누는 한편 독립운동의 뜻을 굽히지 말 것을 서로 다짐한다. 이때 박진홍은 임신한 상태로 수감되었고, 1935년 8월경 출산하였으나 아기는 채 2년을 넘기지 못하고 사망했다고 한다. 철문 옆에는 1935년 당시 여옥사에서 조우한 두 사람의 대화를 들을 수 있는 벨이 설치돼 있다. 당시 각종 기록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대화다. 벨을 눌렀다. “힘들더라도 참고 살아 나가서 나라를 되찾자”(이효정). “독립운동이 끝난 게 아니야”(박진홍). 그렇게 두 사람은 투지를 불태웠다. 안내판에는 노파가 아기를 안고 있는 사진도 실려 있다. 박진홍의 친어머니가 딸의 재판정에 손자를 안고 나온 모 일간지 1936년 7월 16일자 보도다. 아이 이름은 ‘철한’. 식민지라는 ‘철’창에 ‘한’이 맺힌다는 의미로 박진홍이 지었다고 한다. 모진 고문을 견디며 낳았기에 아이의 운명은 짧았다. 여옥사 5번방에는 일제의 ‘독립운동가 블랙리스트’인 두 사람의 감시 대상 인물카드가 붙어 있다. 전시실의 ‘경성 트로이카’ 안내판에서도 그들을 만날 수 있다. 그만큼 두 사람이 역사에 남긴 흔적은 뚜렷했다.

박진홍과 이효정은 한국 사회엔 생소한 독립운동가이다. 그러나 이들은 1930년대 국내 독립운동을 이끈 주인공이다. 특히 박진홍은 서대문형무소에서 4차례나 징역을 살아 독립운동가 중 가장 많이 수감됐다. 두 사람은 사회주의자였다. 1930년대 이후 국내 독립운동은 지하에서 대중운동을 조직한 사회주의자 몫이었다. 그들의 제1 목표는 일제 타도와 조선 독립. 간도지역 반일시위로 1936년 서대문형무소에서 사형당한 18명 역시 사회주의자였다. 그 1930년대 항일투쟁의 중심에 동덕여고 동기생이자 친구였던 두 사람이 있다.
지난 2010년 8월 14일 백희영 당시 여성가족부장관이 인천의료원에 마련된 여성 독립운동가 이효정 할머니 빈소를 찾아 조문하고 있다.


동덕여고는 3·1운동을 주도했고, 이후 수많은 독립운동가를 배출한 ‘민족학교’이다. 두 사람은 작가를 꿈꾸는 문학소녀였다. 공부도 잘했다. 박진홍은 줄곧 전교 1등을 해 ‘개교 이래 최고의 수재’로 불렸다. 이효정은 전국서예대회에서 우승한 인재였다. 그러나 그들의 선택은 당연히 항일이었다. 둘은 1929년 광주학생운동 시위에 가담했고, 1931년 동맹휴학을 주도했다. 이 일로 박진홍은 퇴학, 이효정은 무기정학을 당했다.

이후 그들은 사회주의자의 길을 걸었다. 왜 사회주의를 선택했을까. 이효정은 생전에(2006년) 이렇게 증언했다. "사회주의는 현실에 맞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당시에는 순수한 사람들, 그리고 가장 똑똑한 사람들이 대부분 사회주의에 동조했습니다. 사회주의가 일본에 맞서는 가장 합리적인 방안이라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박진홍과 이효정은 ‘전설적 혁명가’로 불린 이재유가 경성에서 조직한 ‘경성 트로이카’라는 이름의 지하혁명조직원으로 활동했다. 경성 트로이카는 1930년대 국내 좌익독립운동의 중심이었다. 두 사람은 여성 노동자를 조직하는 역할을 맡았다. 이를 위해 그들은 공장으로 들어갔다. 여성노동자의 인권 향상과 반일 투쟁을 세력화하기 위해 ‘위장취업’ 했던 것이다. 투쟁과 수감을 반복했다. 박진홍은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로 총 5차례 붙잡혔다. 4번의 실형을 선고받아 10여년 징역을 살았다. 두 번째 수감 당시인 1936년 첫 남편 이재유의 아이인 철한이를 낳았지만 2년 만에 죽었다. 그는 가혹한 고문 속에서 전향 요구를 받았지만 끝까지 굴하지 않았다. 박진홍은 33살이던 1946년 11월 5일자 ‘독립신보’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10년의 감옥생활을 빼면 이제 겨우 23살이라니까요.” 이효정도 마찬가지 길을 걸었다. 그는 1933년 공장 파업을 지도한 혐의로 체포돼 동대문경찰서에서 고문을 당했다. 또 모교인 동덕여고에 몰래 들어가 항일 격문을 넣고 나오다 수차례 일본경찰에 체포돼 고초를 겪었다. 1935년 노조활동 혐의로 붙잡혀 13개월간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됐다.

해방 후 두 혁명가의 삶은 뒤틀렸다. 박진홍은 출소 진후인 1944년 11월 두 번째 남편인 경성제대 교수 김태준과 함께 조선의용군과의 연대를 모색하기 위해 연안(延安) 행을 택했다. 이재유는 그해 10월 혹독한 고문 끝에 옥사한 후였다. 해방 후 귀국한 박진홍은 조선부녀총동맹 문교부장 겸 서울지부 위원장을 맡아 각종 강연을 통해 여성 해방을 설파했다. 1946년 11월 5일 ‘독립신보’ 인터뷰에서 김태준에 대해 “집사람”이란 ‘혁명적’ 표현을 사용하기도 했다. 새 세상건설이라는 그의 꿈은 오래가지 못했다. 서울대 총장 후보로 거론됐던 김태준은 남로당 간부로 활동했고, 1949년 지리산유격대 격려 공연을 갔다가 국군 토벌대에 붙잡혀 총살됐다. 두 번째 남편마저 죽자 박진홍은 월북을 선택했다. 그가 북한 정권 초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등을 했다는 기록은 남아 있다. 일찍 죽었다는 증언은 있지만, 그 사유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이효정의 삶은 더욱 각박했다. 해방 후 고향에서 교사 생활을 시작했지만 남편의 좌익 활동 때문에 교직에서 쫓겨났다. 6·25전쟁 이전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됐던 남편은 전란 중 월북했다. 이효정은 북한을 선택하지 않았다. 북한 체제의 경직성을 경험한 혁명 동지와 친척의 영향이 컸다. 그는 남한을 선택했지만 연좌제의 굴레는 지독했다. 친일 경찰에게 끌려가 고문을 받아 팔이 부러졌다. 이유 없이 정보기관에 붙잡혀가 두들겨 맞는 것은 일상사였다. ‘빨갱이 자식’으로 불린 아들은 학교를 다닐 수 없었다. 독립운동가 가족이지만 민주화 이전까지 그들은 ‘죄인’이었다. 2006년 노무현정부는 이효정을 독립유공자로 서훈했다. 그는 당시 “동지들은 다 가고 없는데 나 혼자서 이걸 어떻게 받느냐”며 “뒤늦게라도 독립운동 활동을 인정받아 이제 한 사람의 대한민국 국민이 된 느낌”이라고 했다. 대한민국 정부가 인정한 독립유공자가 됐지만 죽기 전까지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는 사망 한 해 전인 2009년 “지금도 괜찮지 않다. 무슨 이야기만 하면 좌파니 뭐니, 애들에게 해가 될까 두렵다”고 했다.

여옥사 7번방 안내판에는 이효정이 남긴 시가 실려 있다. 1995년 펴낸 시집 [여든을 살면서]에 실린 시 ‘가슴으로 울고’의 일부다. <가슴으로 울고 짜내어도 나오지 않는 눈물/ 통곡해도 소리 없는 울음/ 가슴으로 울고 가슴으로 울고/ 아, 가슴에 불이 붙고 가슴엔 재가 쌓인다.>

박진홍과 이효정은 일제가 극도의 악마성을 보인 1930년대 국내에서 목숨을 걸고 투쟁한 독립 운동가들이다. 그들의 삶은 ‘재’가 됐지만, 그들이 젊음을 바쳐 싸웠던 역사는 언제 재대로 평가될 수 있을 것인가.


고운석 주필 gnp@goodnewspeople.com        고운석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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