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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 노승봉과 노적봉
장흥군 관산읍 하발1구 발산마을에 위치한 진산(珍山)
해적을 격퇴시킨 전설과 실화가 혼재하는 지역의 보물
입력시간 : 2019. 04.13. 16:46


노적봉
노적봉은 장흥군 관산읍 하발1구 발산마을에 위치하고 있으며 용산면 상발리와 풍길리 초당, 송정 이웃을 가르는 경계의 산이다. 이 산을 중심으로 해서 북으로는 산적들이 있다하여 도둑산으로 일컬으며,

남쪽으로 떡시리봉과 묘반바위(밥지어), 지방바위(지방을 써서 제사 지냄), 강정방아명단(찍어서) 떡재와 자라섬으로 이웃 남포 소등섬 풍어제(일제시대 군함을 못들어오게 방어턱을 설치하는 것)장재도에서 해적들 격퇴시킨다는 전설과 실화가 혼재하는 오래오래 간직하고 있는 큰 보물이야기가 있다.

노적봉에서 쳐다보면 서산봉과 천관산, 부용산, 억불산 윗면이 보인다. 이조시대 김덕영 장군이 하루저녁에 성터를 1㎢정도 쌓았다고 하는데 현재 잔재가 보전되고 있다. 북동쪽으로 사자산, 안양면 사무소 정면이 보이며 해창과 사촌마을이 선명하게 보인다.

비록 노적봉 높이가 해발 280㎡에 불과하지만 비교적 바다와 평야지대에 위치함으로 해서 멀리서도 우뚝 솟아 보이는 장흥의 진산이라고 하겠다. 이곳 일대의 지명이 노승봉이 듯 산 이름도 제사지내는 유래의 풍습에서 지었다고 보겠다.

또 한편으로는 신출귀몰한 공적을 자랑하는 노승봉으로 일컬으며 남쪽하늘을 바라보면 서산봉이 보이고 그 옆을 보면 득량면의 바다가 보이고 오늘의 노승봉이라는 한문의 글자가 보인다.
노승봉


마을이 성촌하여 있을 때 떡재 부근에 12대문을 지나 안채가 나오는 큰 부자가 살고 있고 있었다. 역사 뒤안길에 묻혀있는 몽고족들이 여자 인피 가죽을 공출하라는 임금님의 어명으로 처녀들을 원나라에 상납해야 하기 때문에 부자 아버지는 딸을 살리기 위해 상발리 베짱골 굴 속에 딸과 베를 짤 수 있는 기구와 식량을 넣어 주었다고한다. 나라에서는 딸을 숨겼다는 이유로 아버지를 고문하여 아버지가 반항하자 때려 그 피가 한에 맺힌 빈대로 변했다고 한다.

아랫마을에서는 백장사가 살고 있는데 부모님 말씀을 안 드는 아주 게으름뱅이었다. 조상의 제사를 지내기 위해서 어머님께서 “아들아 시루떡을 좀 옮겨다오”라고하자, 마지못해 백장사는 중얼거리며 올라가고 있는데 갑자기 하늘에서 “불효자식 놈아”하는 소리가 나고 비바람과 함께 천둥소리가 요란하게 낫다. 그 소리에 놀란 백장사는 떡시루를 그만 잘못 놓고 어디론가 행불되었는데 떡시루가 동쪽으로 약간 기울려 있어 가득 찬 떡이 바다 쪽 상발 마을로 흩어져 떡재가 되었다는 전설이다.

노승봉이란 늙은 여승이 성욕이 강한 서방의 수청을 못 이겨 여승이 되었다는 전설이다. 좌우절경 풍요로운 들판을 사이에 두고 변강쇠 서방과 여승이 서로 사랑싸움이 지나쳐 농담으로 먼저 죽으라고 돌맹이를 며칠 계속 던진 것이 화근이 되어 저수지에서 각시가 나왔다하여 각시둔봉이라는 전설로써 서산봉과 노승봉 그리고 각시봉이 성욕 불만족의 대명사가 아닌가 싶다.

솔재와 베짱골 용치골 실화현장은 12대문의 부자와 여승 등의 실화는 고려 중엽 외침을 정벌한 원나라 솔장군에서 유래한다고 전한다. 즉 그가 몽고에서 출전한 곳이 솔장군의 내주이며 이곳에 와서 머물렀다고 해서 솔재산이 되었다는 것이다.아마도 그것은 원나라의 원정을 사대적으로 비화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전설일 듯하다.

동촌의 장군이 나온다는 투구바위와 칼바위 그리고 군마등, 말머리 등 흡사한 전설이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우리 조상들의 중심이 되는 거룩한 땅을 이룬 솔에서 어원을 찾아야 할 것 같다. 솔재 솔지재, 솔치마을 솔 혹은 솔뫼는 소슬뫼의 와음이며 머리되는 산을 뜻하는데 오늘날의 솔재 등이 그 흔적이다. 아무튼 그 때문일까? 산기슭에는 대소의 명당이 많다.

그중에 하발 지영구 부장 판사와 근래 정형근 변호사, 백형동 판사, 박판사, 사법고시 패스하는 지행옥 의학박사, 백인석 공학박사가 탄생한 곳은 조상 제사의 후덕으로써 그에 얽힌 전설로 전한다. 그런데 산중의 병풍바위에 선각된 개미절은 향토유적 불상이 고려중엽의 것으로 추정되는데 머리에 쓴 연화글씨가 무엇을 뜻하는지 몰라도 불교의 불공의 시주에 개미가 많아서 불길한 대목이라 할 만하다.

그런가 하면 여러 규모의 절들이 많은데 중성굴, 불교 불상들이 흩어져 있다. 당시 이 지방(인주)의 호적 세력과 관련지어 생각할 수 있다. 즉 불교가 국교였던 만큼 호적들이 다투어 사찰을 창건 불사를 열어 세를 과시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 풍화가 진행 중이어서 형상을 알아보기 힘들 정도라고 한다. 문화재의 의미는 무엇이며 보물 지정의 뜻은 어디에 있는가 선인들의 숨결이 서려있는 흔적을 간수함이 후손들의 사명이라 하겠다.


NP gnp@goodnewspeople.com        NP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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