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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점> 종교계, 낙태죄 '헌법불합치' 유감
"전 국민적 논의 시작해야 할 때"
입력시간 : 2019. 05.18. 14:34


헌법재판소의 낙태죄 위헌 여부 결정의 날! '낙태죄는 위헌이다.' 전북여성인권지원센터를 비롯한 전북지역 20여개의 단체 관계자들이 낙태죄 헌법불합치 판결에 축하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헌법재판소가 낙태죄(형법 제269조 1항과 제270조 1항)의 위헌 여부를 확인해 달라는 헌법 소원에 대해 지난 4월11일 헌법불합치 선고를 내린 것과 관련, 종교계가 우려를 표하고 있다.

낙태죄 폐지에 적극적으로 반대해온 천주교가 가장 먼저 유감을 표명하고 나섰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의장인 김희중 대주교는 "수정되는 시점부터 존엄한 인간이며 자신을 방어할 능력이 없는 존재인 태아의 기본 생명권을 부정할 뿐만 아니라, 원치 않는 임신에 대한 책임을 여성에게 고착시키고 남성에게서 부당하게 면제하는 결정"이라고 평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도 대변인인 허영엽 신부를 통해 유감을 표했다.

보수 개신교계도 즉각 우려를 표명하고 나섰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 대표회장 전광훈 목사는 "헌재는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했다고 판단을 내렸는데, 인간의 결정이 생명보다 더 중요하다는 지극히 인본주의적 사고에 근거한 결정에 대해서 규탄하며, 용납할 수 없음을 분명히 밝힌다"고 주장했다.



◇종교계 우려, 왜?

1953년 법이 제정된 이래 66년 동안 낙태죄를 둘러싼 갑론을박은 이어져왔다. 특히 낙태죄 위헌청구소송 관련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앞두고 천주교를 비롯한 종교계는 꾸준히 낙태죄 폐지 반대에 대한 입장을 밝혀왔다. 이들은 "태아의 독자적인 생명권을 존중해야 한다"는 입장을 강조해 왔다.

앞서 한국 천주교회는 지난해 3월22일 낙태죄 폐지에 반대하는 100만 천주교 신자들의 서명지를 헌법재판소에 전달했다. "아이와 산모를 보호하여야 할 남성의 책임을 강화할 것, 모든 임산부모를 적극 지원하는 제도를 도입할 것"을 요구해왔다.

천주교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추기경은 지난 3월16일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청년생명대회' 등에서 "인간은 수정되는 첫 순간부터 인격적 존재로서 고귀하고 존엄하다"며 가톨릭 교회의 생명수호 입장을 거듭 밝혔다.

전 목사 역시 "오늘의 헌재의 판결은 원한다면 자신이 결정권을 가지고 태아라는 귀한 생명을 죽일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한 극악한 판단이라 여겨진다. 이러한 범죄행위가 용서받을 수 있을 것인가. 누가 생명을 죽일 수 있는 권한을 주고 말고 할 수 있다는 말인가"라고 반문했다.

낙태죄 폐지 반대가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 종교계는 모자보건법을 들어 '자기결정권이 과도하게 제한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반박해 왔다.

낙태죄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팽배하자 정부는 1973년 일부를 합법화한 '모자보건법'을 제정했다. 부모가 유전적 질병을 갖고 있거나 강간 또는 준강간으로 인한 임신 등의 경우에 낙태를 허용했다. 이후에도 정부는 수차례에 걸쳐 모자보건법 사유를 넓히려 했다. 하지만 종교계의 벽에 부딪혀 진전은 못했다.

낙태죄 폐지 반대가 여성을 위한 배려가 아니라는 지적이 일자 염 추기경은 "여성을 위한 배려는 낙태의 합법화가 아니다"라는 공식 입장을 내놓기도 했다. "여성들에게 고통을 주는 것은 형법의 낙태죄 조항이 아니라 낙태로 내몰리는 여러 가지 상황"이라는 것이다.
유남석 헌법재판소장을 비롯한 재판관들이 낙태죄 처벌 위헌 여부를 판결하기 위해 지난 4월11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 착석해 있다.


전 목사도 "자기 결정권을 가지기 전에 그 사람도 모태에서 태어났고, 그들의 어머니가 생명의 소중함을 가지고 낙태시키지 않고 이 땅에 태어나게 했기 때문에 살아가고 있는 것"임을 분명히 했다.

그러나 최근 세계적으로 변화의 바람이 불자 한국 종교계는 긴장하기 시작했다. 지난해 가톨릭 나라인 아일랜드는 국민투표로 임신중지 합법화를 결정했다.

같은 해 프란치스코 교황이 낙태를 청부살인업자를 고용하는 것에 비유하며 비판하는 등 가톨릭계가 제동을 걸고 나섰지만, 낙태 합법화는 세계적인 추세다.

국내 일부 진보 종교계 역시 낙태죄 폐지를 지지하고 있다. 감리여성지도력개발원·기독여민회 등 6개 기독단체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천주교 주류와 극우 개신교 세력은 이성애·가부장제 중심의 정상가족 담론을 내세워 임신중단을 불온하고 불경한 범죄로 낙인찍고 있다"며 "우리는 교회가 여성에게 순응적 인간상을 강요하며 여성을 소유물이나 소모품처럼 대해 온 종교적 관성을 단호히 거부한다"고 밝혔다.

천주교성폭력상담소는 "존엄하고 평등한 여성의 온전한 삶을 위해 낙태죄를 폐지하라"고 주장했다. "낙태죄는 인간으로서의 존엄함을 국민으로서 보장되는 기본적 권리를, 개인으로서 침해당하지 않는 삶을 살기 위해 반드시 폐지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현재 살아 있는 존재들의 존엄성을 중시하기 위해 권리가 보장되길 원한다. 국가의 허락이나 처벌, 종교의 용서와 배려도 원치 않는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불교계는 따로 입장을 내지 않았다.



◇종교계, 향후 움직임은?

헌재는 낙태죄 불합치결정을 내리면서 2020년 12월31일까지 국회가 낙태 관련법을 개정하도록 했다. 개선 입법이 없을 경우 2021년 1월1일부터 낙태죄 조항은 효력을 상실한다.

개정에 1년반 이상 시간이 남아 있어 그동안 상당한 진통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천주교를 비롯한 종교계의 입장은 변함이 없기 때문이다. 김 대주교는 "낙태는 태중의 무고한 생명을 직접 죽이는 죄이며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는 행위라는 가톨릭 교회의 가르침에는 변함이 없다"고 강조했다.

천주교계는 우선 여성과 태아를 낙태로부터 지켜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쳐나갈 것으로 보인다. 앞서 염 추기경은 낙태 합법화의 대안으로 미혼모에 대한 배려 확대, 남성에게도 임신 출산 양육에 대한 책임을 지우는 법적·제도적 장치 마련,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가정에 대한 지원, 성·생명·사랑에 대한 올바른 교육을 강조했다.

허 신부도 최근 낙태죄에 대한 논란으로 태아를 포함한 생명의 존엄성과 여성을 포함한 인권 존중에 대한 논의가 활발히 이루어진 것은 바람직하다면서도 관련 후속 입법 절차는 신중하게 해야 한다고 짚었다.허 신부는 "국가는 어떠한 경우에도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해야 한다. 임신한 여성과 태아의 생명 모두를 지킬 수 있는 법적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기를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한기총은 강경 대응을 예고했다. 전 목사는 "헌재의 판단을 강력히 규탄할뿐 아니라 절대 반대하며, 헌재의 결정이 끝이 아니라 이제는 태아와 생명에 대해서 전 국민적 논의를 시작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한편 문화체육관광부 종무2담당관실을 포함한 정부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존중하며, 관련 부처가 협력해 금일 헌법불합치 결정된 사항에 관한 후속조치를 차질없이 진행해 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뉴시스 gnp@goodnewspeople.com        뉴시스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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