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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례> 예양강과 탐진강 역사
장흥 유치면 대리서 발원, 강진읍 목리에 이르러
장흥 구간은 예양강, 강진 구간은 탐진강 부른다
입력시간 : 2019. 05.18. 15:01


탐라(제주도)와 탐진( 강진)은 신라 조공 때부터 고려 때까지 장흥에 세금을 바쳤다.

전라도 풍수를 말할 때 물길이 사방으로 향하니 산발(散發)형이라 한다. 그 해석은 긍정일 때 개방성, 부정일 때 분열성이다. 영산강과 섬진강 사이 탐진강은 전남 3대강이다. 탐진은 곧 바다로 이어져 강진만으로 가유도 출렁다리 거쳐 마량항으로 탐라(제주) 가는 고금대교, 완도 약산 지름길로 통했다. 탐진강은 장흥 유치면 대리와 부산 기동마을 북서쪽 수인산 범바위골, 수대골, 성터샘에서 발원하여 강진읍 목리에 이른다(57㎢) 장흥구간에서는 수령천 예양강이라 칭했다.

수령은 장흥의 옛 고을터의 이름이고 예양은 장흥읍내에 있다. 강진에서는 탐진강이라 칭한다. 1417 태종17년 도강(道康)과 탐진(耽津)을 합해 강진이라 되었기 때문이다.

탐진 현 터는 대구면 장어로 유명한 구강포, 여자의 질구 모양형이라 유독 강진에서 부자가 많다고 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지에는 구십포가 된다. 신라의 3대 여왕인 진성여왕, 성덕여왕, 경덕여왕때 건립한 보림사와 중앙교회 옛 읍교회 자리 중간사이가 사창(부두)이라 칭하였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구십포는 현의 남쪽 6리에 있다. 근원은 월출산에서 나와 남쪽으로 흘러 고을 서쪽물과 합쳐 구십포가 된다. 탐라의 사신이 신라에 조공할 때 배를 여기에 머물게 했으므로 이름을 탐진이라 했다”고 기록돼 있다

강진문헌연구회 강진문화원 차원장 양광식 회장의 증언을 따라가 본다. 강진군 대구면 저두리 하저마을이 옛 구심포요, 탐진이다. 이 동네 포구 동편 골짜기에 ‘앙(아흔)골(九十谷)이란 땅 이름이 남아 있다. 이 포구의 바로 서편에 가우도가 있다. 이곳이 일제가 하구로 정한 곳보다 12km 하류지점이다.

탐라는 13세기에 제주로 명칭이 변경 됐다. 제(濟)는 바다를 건너가는 섬의 뜻을 담고 있다. 고려 때까지 탐진은 제주가는 주요 항구로 활용되었다. 조선시대에는 해남 관두량과 이진성, 일제강점기 이후에는 목포 코스를 택하고 있다.

제주는 전라도에 속했다가 광복 이듬해 도로 승격 독립했고, 금년 7월에는 특별자치도가 됐다. 진도문화원 김정호 원장이 1990년 쓴 제주~서울 간 호남대로 현장답사에 추자도 박성현씨의 제보를 기록하고 있다. “지금도 목포가 제주보다 배나 먼 거리(추자~제주 28마일, 추자~목포 58마일)지만 목포가 가깝게 느껴진다. 제주는 훨씬 먼 곳으로 생각되고 별로 갈 일도 없다. 하지만 추자가 제주도로 속하지 않았다면 큰일 날 뻔했다. 보길과 노화도를 자주 가 보지만 추자도에 비하면 개발이 안되었다. 추자가 제주도에 속한 것이 천만다행이다” 탐진(전라도 강진군)과 탐라(제주도)가 갈렸다.





백남선 장흥발전협의회장 gnp@goodnewspeople.com        백남선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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