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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비의 정신을 찾아서<99>- 천문·복서의 대가 崔知夢
고려 태조 왕건의 의중을 꿰뚫어 본 인물
왕인박사, 도선국사 등 큰 인물 배출한 영암 구림 출생
입력시간 : 2019. 06.15. 11:28


영암왕인박사유적지
최지몽이 출생한 영암의 옛 지명은 달과 연관돼 있다. 백제시대에는 월내(月奈)군, 고려 성종 때에는 낭주(朗州)군이라 불렸다. '달 밝은 고을'이라는 의미다. 995년부터 1018년까지는 지방행정 기구인 안남도호부 소재이기도 했다. '신령스런 바위'라는 뜻의 영암이라는 지명은 1096년(현종 9년)때부터 비롯됐다. 구림마을에서 월출산 위로 솟아로는 달을 바라보면 왜 옛날부터 이곳에 달과 관련된 지명을 붙였는지 미뤄 짐작할 수 있다. 명산과 바다, 포구를 두루 품은 구림마을은 민휴공 최지몽(907~987)선생을 비롯한 왕인박사, 도선국사, 형미·경보·수미선사 등 큰 인물을 배출했다.

최지몽이 출생한 당시의 영암에는 아직 도처에 선사(先師) 도선이 끼친 학덕의 영향이 배어있다. 최지몽은 원보상흔(元甫相昕)의 아들로, 처음 이름을 총진(聰進)이라 하였다. 원보란 고려초 관리나 지방 호족에게 주던 고위 관계의 하나였는데, 그의 아버지가 원보였던 점으로미루어 그의 가문은 태조의 나주 진공 이후 일찍부터 태조에게 귀부한 영암의 호족이었던 것 같다. 그는 본성이 청백 검박하고, 인자 온화하며, 총명 영민한데다 학문을 좋아했다고, <고려사열전>은 그의 사람됨을 높이 평가했다. 대광현일(大匡玄一)에게 수학하였는데 경사(經史)에 통달하고 특히 천문·복서에 정통하였다는 점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바로 한걸음 직전의 동향 선배 도선의 사적과 후진인 최지몽의 그것 사이에는 공통점과 유사점이 매우 많다는 것이다. 풍수지리·음양참위설과 점을 치는 천문·복서는 대동소이한 영역이다. 최지몽은 도선의 사후에 태어났으므로 직접 상면한 바는 없었을 것이나 두 사람의 생존의 시간적인 상거(相距)가 겨우 8년이니, 도선의 유형무형의 행적이 생생하게 남아 있어서 그는 알게모르게 도선국사의 영향을 받으며 성장했을 것이다. 도선은 풍수지리·음양참위설로, 최지몽은 천문·복서에 바탕한 해몽을 수단으로 삼았다는 점만 달랐다. 최지몽은 태조 보필에 그치지 않고 2대 혜종·3대 정종 양대에 걸쳐 끈질기게 감행된, 왕에대한 시해 음모를 사전에 감지하고 봉쇄하여 왕위 보전에 공헌하였다. 이처럼 같은 고장 출신인 두 사람이 비슷한 능력을 바탕으로 고려왕조의 창업과 왕실보위에 헌신한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었다 할 것이다. 최지몽은 18세(태조 6년), 아직 소년 티를 벗지 못한 젊은 나이에 고려 태조의 부름을 받는다. 학문이 이미 숙성(夙成)한 그의 명성은 나주·영암 일대만이 아니라 널리 국도(國都)에까지 자자하여 태조가 알게 되었던 것이다. 태조는 최지몽을 대궐로 불러들였다. 그리고는 이 연소 기예한 최지몽에게 자신의 꿈을 점치게 하였다. 어떤 꿈이었는지 꿈의 내용은 다음에 나온다. 당시 지몽은 서슴지 않고 "폐하께서 장차 반드시 삼한을 통일하여 다스릴 길조이옵니다"고 대답하였다고 한다. 태조가 얼마나 듣고싶어하고 속으로 바라던 말인가. 18세 젊은이가 50을 바라보는 국왕 앞에서 그의 흉중을 꿰뚫어 보고 정확하게 짚어 말한 것이다. 태조는 흡족하고 기뻤다. 그래서 총진이라는 이름을 지몽으로 고쳐 부르게 하고, 비단옷을 하사하고 공봉직에 등용했다. 이 대목에 대해 어떤 문헌에서는 태조가 나주에 진출하면서 최지몽을 고문으로 삼았다고 잘못 전하고 있기도 한다. 그는 907년 생이고 왕건이 처음 나주에 진공한 해는 903년, 따라서 그가 출생하기 전이다. 왕건이 즉위 전 마지막 나주에 나아간 914년을 고려하더라도 최지몽은 겨우 8살인 셈이다. 그러니 그가 18살 때라면, 태조가 즉위하여(918) 송악에 정도하고(919) 적어도 4~5년이 지난 후가 된다. 따라서 태조가 나주에 진출하면서 그를 고문으로 삼았다는 말은 맞지 않는다. 18세 소년이 태조 앞에서 길조라고 해몽한 소이연을 생각해보자. 그의 해몽의 비결은 천문·복서 능력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는 아직 권력세계에 오염되지 않은, 청순한 젊은이로서 학문을 쌓은 지성과 해맑은 감수성을 지니고 있었다. 그런 그인지라, 이미 천하의 대세와 민심의 향방, 여망 등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으며, 태조가 위대한 왕기(王器)임을 간파하고 있었다. 삼국의 정립이라 하지만, 신라는 맥을 못추고, 고려와 후백제의 싸움인데, 견훤은 용맹하고 강성하나 왕자다운 덕이 없고 민망을 잃었으니, 삼한이 돌아갈 곳이 어디인가. 시간문제다. 왕건이 삼한의 주인됨이 마땅하다. 그는 이렇게 대국(大局)을 읽고 해몽에 의탁하여 태조에게 자신의 믿음을 피력하고 태조의 기와 웅도를 북돋아 주었으리라. 이것이 그의 해몽의 비결이었을 것이다. 그 뒤 그가 조정에서 처신한 것을 보면, 한 점 사정이나 사특한 야심없이 공명정대하고 청렴하고 충성스러웠던 점으로 보아, 결코 재사나 술객이 아니었다. 해몽을 듣고 난 후부터 태조는 최지몽을 총애하여 항상 곁에 두고 잠시도 떠나지 못하게 하였다. 한데 그런 민휴공 최지몽 선생의 흔적을 영암에서 찾기가 쉽지 않다. 그나마 낭주 최씨 문중에서 세운 영암군 군서면 동구림리 성기동 왕인박사 유적지내 '유허비'와 서구림리에 위치한 사당 '국암사'에서 숨결을 느낄 수 있다. 지난 2001년 건립된 유허비는 돌거북 등 위에 우뚝 서있다. 오석에 새겨진 비문은 "호남은 오동지일 대방면이요, 영암은 호남 중 수려고치다"라는 문장으로 운을 뗀다. 그리고 민휴공이 왕건을 처음 만나 닭과 오리가 한 둥지에 있는 꿈에 대해(앞에서 뒤로 언급) '삼한통일' 이라는 해몽을 하고, 이후 어떠어떠한 활약을 펼치다 세상을 떠났는지 일생을 자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1972년 낭주 최씨 문중에서 주도해 건립한 국암사는 민휴공을 주벽하고 후손인 죽계 최안우, 덕암 최운, 묵암 최진하, 양오당 최몽암을 배향하고 있다. 민휴공이 돌아가신 음력 3월 초이튿날에 맞춰 매년 문중에서 제향을 지내고 있다. 사당 내에는 아쉽게도 민휴공 영정은 모셔져 있지 않고 위패만 놓여있다. "일제가 펴낸 '전선(全鮮) 명승고적'이라는 책에 보면 황해도 '려태조영전' 항목에 '재(在) 미두산이라 동서 벽에 화(畵) 37공신 12장군 상(像)하다'라고 기록돼 있어요. 37명의 개국공신과 12명의 장군초상이 모셔져 있었다는 거죠" 최기옥 전 영암향교 전교의 설명이다. 낭주 최씨 문중은 혹시 북한에 남아있을지도 모를 민휴공의 영정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다. 그래서 후손들은 최근의 남북 해빙 분위기를 누구보다 반기며 선조의 영정을 찾을지 모른다는 기대감을 품고있다. 민휴공 최지몽이 돌아가신 후 가문에서 8년간 사당에서 위패를 모시고 있다가, 성종 13년(994년)에 '경종 묘정에 배향을 했다'라고 고려사에 기록돼 있다. 또한 민휴공의 묘소 역시 남아있지 않다. 다만 족보에 '영암 북십리(北十里)라고 기록돼 있는 것을 토대로 덕진면사무소인근에 묘소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문중에서 묘소로 유력한 대밭 한 곳을 시굴해 보기도 했으나 아무런 유물도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그쪽에 최정승 묘가 있다고 구전으로 내려와요. '염소가 누워있는 형국'에 묘를 썼다고 합니다. 나중에 고려가 망하니(묘소에 세워졌던) 비석도 빼서 노두해버렸다고 그래요" 이처럼 후손들이 민휴공 묘소를 잃어버린 까닭은 조선 건국과 관련돼 있다. 고려를 멸망시키고 조선이 세워질 때 죽계 최안우공은 "두 임금을 섬길 수 없다"면서 나주시 봉황면 만봉리 산속에 은둔해 버렸다. 태조 이성계가 벼슬을 내리며 회유해도 끝내 거부했다. 죽계는 형제(운방)를 슬하에 뒀고, 형인 최운공이 6형제를 낳았다. 이들이 6파를 형성됐는데 이 가운데 두파가 소멸되고, 나머지 네 파가 낭주 최씨 명맥을 잇고 있다고 한다. 현재 영암 관내에 80여 가구가 거주하고 있다. 국암사앞 국암서원에는 '낭주덕성'과 '덕성당' 현판이 걸려있다. '덕성'은 중국 산동성에 있는 한 마을 이름으로, 제나라에서 건너온 낭주 최씨의 정체성을 담고 민휴공을 기리고 있다.


고운석 주필 gnp@goodnewspeople.com        고운석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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