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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르포> '생명의 다리' 마포대교…
희망 되찾고 돌아가는 사람들
절박한 마음의 이들 "다시 힘을 내 시작할 것"
입력시간 : 2019. 06.15. 11:40


지난 5월20일 저녁, 서울 마포구와 영등포구를 잇는 마포대교에서 바라본 하늘에 노을이 짙게 깔렸다.
여름에 한층 가까워진 5월 말, 여의도와 마포를 잇는 마포대교에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잦아진다. 한강과 63빌딩, 국회 의사당이 보이는 탁 트인 전망이 사람들을 이끈다. 친구나 연인과 함께 사진을 찍고, 자전거로 쭉 뻗은 다리를 유유히 지나간다.
지난 5월24일 오후 여의도에서 마포로 향하는 방향의 마포대교 다리서 만난 윤정은씨. 윤씨는 생명의 전화를 건 후 다리 끝까지 걸어 집으로 가는 택시를 잡았다.


하지만 이곳에 다른 마음을 먹고 오는 이들도 있다. 그들은 함께보단 혼자이고, 얼굴은 미소 대신 그늘이 걸려있다 .

지난 5월20일과 21일, 24일 사흘에 걸쳐 마포대교의 사람들을 만났다. 생사를 고민하는 이들과, 이들을 구조하는 경찰들의 이야기를 함께 들어봤다.



◇대낮의 생명의 전화…"내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지난 5월24일 낮 3시. 햇빛이 내리비치는 마포대교에서 윤정은(가명·23)씨는 'SOS 생명의전화' 수화기를 들고 있었다. 바람 한점 없는 초여름 날씨에 얼굴은 땀과 눈물로 범벅이 된 채였다. 전동 킥보드를 타고 가던 이들이 윤씨를 힐끔 쳐다보았다.

이날 윤씨는 오전 11시부터 다리에 있었다. 홀로 술도 마셨다. 오기 전 친구들과 문자도 주고받고 전화도 했지만, 그곳에 있단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뭐하러 말해요. 제 마음을 알아줄 것도 아닐텐데." 윤씨가 휴대전화 메시지를 확인하며 말했다.

부모님도 윤씨에겐 힘이 되진 못했다. 어머니와 아버지의 사이는 좋지 않았다. "누구 하나가 틀린 게 아니라 서로 달랐"던 부모님 간 잦았던 다툼을 외동딸인 윤씨는 고스란히 기억했다. 하나뿐인 자식에게 모든 관심이 집중되는 것도 부담스러웠다. 집을 떠나고 싶었고, 그렇게 서울에 혼자 둥지를 튼 지 5개월째였다.

홀로 사는 삶은 녹록지 않았다. 외로운 타지였다. 온전히 마음을 나눌 친구도 없었다. 비밀을 나눴던 연인도 곁을 떠났다. 모든 고민이 얽히고 섥혀 "이제는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 끝에 마포대교를 떠올렸다.
지난 5월24일 오후 마포대교에서 바라본 63빌딩의 모습. 투신 방지를 위해 기존 난간 위에 1m 높이의 펜스가 설치돼있다.


전화를 끊은 윤씨는 40여분간 천천히 다리 위를 걸어 마포역으로 내려왔다. 집으로 향하는 택시를 잡기 전 "누구에게라도 내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집을 나선 20대 여성은 마포역 1번 출구에 있었다

서울시 소방재난본부에 따르면, 2014년부터 2018년까지 지난 5년간 마포대교에서 투신 자살시도 등으로 소방에서 출동한 건수는 총 915건이었다. 한강 교량 중 가장 많다. 같은기간 한강대교는 267건, 양화대교는 145건의 자살시도 신고가 있었다.

출동건수가 실제 자살 시도 건수와 일치한다고 보긴 어렵다. 다리를 지나치던 시민들이 '자살할 것 같다'며 신고해 출동하는 건수까지 합쳐져 오인신고의 경우도 포함된 수치기 때문이다. 실제 최근 5년간 마포대교 자살시도 출동 건수 대비 생존 구조율은 97.3%다. 투신 등으로 사망하는 이들은 매해 3~8명 정도다.

마포대교가 극단적 선택으로 널리 알려진 것은 2013년 즈음이다. 그해 여름 남성연대 대표 성재기씨가 마포대교에서 투신해 숨진 채 발견됐다.

성씨가 투신하기 2주 전쯤 마포경찰서 용강지구대에 왔다는 이정남(58) 경감은 "그날 이후 많게는 하루에 3명을 다리에서 구조해오기도 했다"고 기억했다. 용강지구대는 영등포경찰서 여의도지구대와 함께 마포대교 투신신고 출동을 담당한다.

그후 다리에는 자살방지를 위해 '희망의 메시지'가 담긴 '생명의 다리' 시설물이 설치되기도 했고, 난간에 높이도 올라갔다. 그래도 여전히 사람들은 마포대교를 찾는다. 윤씨처럼 다리로 가는 사람들도 있지만, 누군가는 마포대교 인근을 서성이기도 한다. 지난 21일 새벽 마포역 인근에서 발견된 박아라(가명·28)씨도 그중 한 명이었다.
서울 마포경찰서 용강지구대에 마련된 상담공간인 '희망의 숲'. 2016년 지구대가 이전하면서 마련된 공간이다. 이곳에서 박아라씨는 송경동 경위와 1시간 넘는 대화를 나눴다.


박씨는 전날 밤 9시 극단적 선택을 암시하는 글을 남기고 집을 떠났다. 11시53분, 용강지구대의 송동기 경위와 김경호 순경은 소방의 협조요청을 받고 순찰차에 몸을 실었다. 박씨는 전화를 받을 때마다 "그만 철수하고 찾지 말아달라"고 말하곤 끊었다. 송 경위와 김 순경은 박씨의 휴대전화 위치값과 잠깐씩 연결되는 박씨와의 통화에서 들리는 주변 소리로 어딘지를 추정했다.

1시간 정도의 순찰 끝에 박씨를 발견한 곳은 마포역 1번 출구였다. 고개를 들면 눈앞에 마포대교가 보였다. 박씨는 얇은 가디건을 걸치고 낮게 울먹였다. 구겨 신은 흰 운동화는 얼룩져있었다. 지구대에 도착한 박씨는 송 경위와 함께 상담공간인 '희망의 숲'에 들어갔다.

박씨는 어린 시절 아버지와 불화가 심했다. 공부를 잘했던 언니와 비교도 많이 당했다. '내가 뭘 할 수 있는지'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 우울증 치료를 받으면서도 '이렇게 살아서 뭐하나'라는 생각이 머리를 뒤덮었다. 그날은 유독 그 생각이 심했던 날이었다.

박씨는 이튿날 새벽 2시가 넘어서야 집으로 향했다. 딸을 기다린 부모님과 지구대를 떠나는 박씨에게 송 경위가 말했다. "다음에는 거기로 가지 말고 여기로 와. 힘들 때 전화도 해주고." 박씨가 보일듯 말듯 고개를 끄덕였다. 한 손엔 송 경위의 명함이 쥐어져 있었다.



◇마음을 알아준 이들의 다짐..."다시는 안 올게요"

지난 5월21일 오후 8시35분, '희망의숲'에는 강민수(가명·33)씨가 앉아있었다. 회색빛 반소매로 얼굴 전체를 감싸고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평소 빚에 시달렸고 그날 극단적 선택을 암시하는 문자를 여자친구에게 보냈다고 했다. 강씨는 마포대교 인근 건물 지하주차장 차에서 구조됐다.
용강지구대 희망의 숲 창문을 덮는 블라인드는 이곳을 거쳐간 마포대교 위 구조자들의 다짐들이 적혀있었다.


지구대에 온 강씨는 휴대폰 배터리를 분리시켜 놓았다. 가족 등에 연락을 취하자 "왜 자꾸 전화를 하냐"라며 거칠게 항의하기도 했다. 이 남성은 벌금 미납 경력으로 인근 경찰서로 인계됐다.

이 경감은 강씨가 떠나고 조용해진 지구대를 잠시 나섰다. 서늘한 밤이었다. 이 경감은 경찰 생활 35년 중 총 5년을 이곳에서 일했다. 대학 졸업 후 '되는 일이 없다'던 20대부터 사업에 실패한 가장까지 수많은 이들을 다리에서 구조했다.

이 경감은 "저마다의 사연들은 대개 특별하기보단 평범하다"고 했다. 누군가에겐 "담배 한 대 태우고 잊을 수 있는" 일이 누군가에겐 생사를 고민하게 했다. 중요한 건 그들이 다리에 온 이유보다 절박한 그들의 마음을 알아주는 일이었다.

지구대 '희망의숲' 창문의 블라인드에는 그 마음을 누군가가 알아준 이들의 다짐이 적혀있었다.

"여기 다시 안올게요.", "제 말을 들어줘서 정말 고마워요. 말을 들어준 사람은 처음이에요.", "다시 힘을 내서 시작해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가까운 서울에서부터 경기도와 대구, 광주와 제주도 등지에서 먼길을 돌아 다리에 섰던 이들은 그렇게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다.


뉴시스 gnp@goodnewspeople.com        뉴시스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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