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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인기사<103>- 회화 애호가 박지원·박제가
안동 김씨 집안 영향 받았다
1930년대 조선고미술품 시장 호황기
경성미술구락부 골동 열기를 이끌다
입력시간 : 2019. 10.09. 15:09


서울역사박물관에서 박제가 '북학의', 박지원 '열하일기' 등 북학 관련 자료 역사문화특별전 '탑골에서 부는 바람' 개막식에서 참석자들이 전시물을 관람하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고미술품을 수집하고 감상하는 취미를 제한하는 ‘완물상지(玩物喪志·쓸데없는 물건을 가지고 노는 데 정신이 팔리면 소중한 자기의 의지를 잃게된다)’라는 유가(儒家)의 금기관념이 있었다. 이러한 금기관념은 조선후기 들어 명나라 말기의 심미적이고 탈속적인 문인문화가 유입되면서 달라진다.

1700년경을 전후하여 서울 북촌의 안동 김씨 집안을 중심으로 확산되던 회화 애호 풍조는 박지원·박제가 등 북학파 계열의 문인들과 서울의 부유하고 권력있는 가문에 의해 더욱 심화되고 확산되었다.

조선 후기의 회화 애호 풍조는 의관·역관 등의 기술직 중인과 하급관리들에게까지 퍼지면서 그 절정을 이루었다. 18~19세기에 들어 미술의 생산과 소비도 과거와는 다른 양상의 변화를 보이게 되었다. 미술품을 거래하는 전문적인 공간이 형성되고 유통에 종사하는 부류들이 출연하였으며, 회화 역시 판매를 목적으로 하는 상품적 성격을 띠고 제작되는 등 ‘예술품 시장’이 성립하였다. 특히 19세기 중반에는 서울의 광통교(광교: 서울 종로 네거리에서 남대문으로 가는 큰 길을 잇는 청계천 위에 걸려 있던 조선시대의 다리) 일대에 서책과 서화·골동시장이 형성되었다.

1892년에 내한하여 주한 프랑스공사관의 통역관으로 근무한 프랑스의 동학학자이자 언어학자인 모리스 크랑(1865~1935)은 그의 저서 ‘조선서지학’에서 서울의 서점은 “종각으로부터 남대문에 이르기까지 기다란 곡선을 그리고 나아간 큰길가 특히 광통교 부근에 집중되어 있었다”고 묘사했는데 이 장소는 골동품과 사치품을 파는 장소와 겹친다.

1880년경에는 고려자기가 일본으로 건너가 애호가들에 의해 수집되기 시작했고 동경국립박물관의 소장품 목록에서 1885년에 농상무성박물관이 “조선 반도의 토기(경주 월성 출토품과 경남 김해 출토 유물)를 최초로 일괄구입”했다는 기록은 일본이 고미술상들의 한반도 왕래가 1880년대 전후에 이미 진행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게 해준다. 이런 내용에 주목할 필요가 있지만 한국 근대기에 고미술품의 매매가 본격화된 시기는 대체로 청일전쟁 이후 일본인 유입이 증가하면서 부터로 추정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1895년 4월 청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한 후 일본인들에게 조선은 ‘제2의 조국’으로 조선으로의 도항은 “내국여행과 다름이 없다”고 표현할 정도였다.

한국 근대기 미술시장의 가장 큰 특징은 고 미술상과 경매시장을 중심으로 한 고미술품 거래가 압도적으로 시장을 주도했다는 사실이다.

1906년에 일본인에 의해 서울에서 시작된 경매와 경매회는 판매를 우선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전근대시대에서의 고 미술품 감평·향유활동과 현격한 차이가 있다.

전통시대 남성들의 공간이 사랑방에서 향유되던 서화가 전람회 미술로 바뀌며 근대적 감상물이 된 것처럼, 고 미술품 역시 매우 제한된 기일 동안이지만 대중에 공개되었다는 점과 매매의 대상으로 ‘출품’되었다는 것은 획기적 변화이다. 이제 고 미술품은 전통적인 완상 대상에서 냉혹한 시장에 상품으로 출품되어 금전적 가치로 환산되었다.

일제시기 미술시장의 유통을 주도한 것은 일본인들이었으나 1930년대 이후는 점차 조선인의 수가 증가하여 고객층이 일본인과 조선인의 이중구조를 이루게 되었다. 그러나 이 시기 작품 유통 경로는 극히 제한되어 있었다. 작가와 고객을 연결하는 전문화상도 존재하지 않았고 화랑도 발달하지 않았다. 따라서 일제시기 미술시장에서는 휘호회. 전람회, 개인전 등이 화랑의 판매기능을 겸하는 과도기적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일본 고 미술상의 조선 진출에 따라 시작된 한국 근대의 고 미술품 거래와 유통은 대략 1900년에서 1910년까지의 ‘고 미술품 거래의 시작기’, 1910년에서 1920년대까지의 ‘고려청자시대’, 1920년에서 1930년대 이후의 ‘고 미술품 거래 호황기’로 구분된다. 이런 변화를 간략히 정리하자면 개성을 중심으로 고려청자의 거래가 시작되었다가 점차 전국적으로 확산된 것이라 할 수 있다. 특히 1906년 3월 초에 조선통감에 취임한 이토 히로부미의 고려청자 애호에 따라 고려청자에의 관심이 폭발적으로 증가하여 이른바 ‘고려청자광시대’가 출현하였다.

1920년대 이후 특히 1930년대의 ‘고 미술품 거래 호황기’는 ‘만주 특수’와 ‘황금광시대’로 요약되는 투기의 시대였다. 1930년 1월부터 일본이 금본위제로 북귀하면서 총독부가 추진한 산금(産金)정책에 따라 한반도에 금광개발 열기가 불어 닥쳤고 금값이 폭등했으며, 1931년부터 시작된 일본의 만주침략으로 1930년대 중반에 본격적인 만주 특수가 일어나 주식이 최고의 호황을 맞게 되었다. 이와 같은 사회상 속에서 고미술품수집 열기는 고조되었고 미술시장은 활성화되었다.

1935년에서1940년까지 경성부에서 조사한 경성의 ‘물품판매업 조사’에 따르면 1935년 일본인 골동상점이 73개 조선인 골동상점이 107개였고, 1940년에는 일본인 골동상점이 83개 조선인 골동상점이 296개로 일본인에 비해 조선인이 더 많으며 증가율도 3배에 가깝다. 1930년대 경성의 인구는 40만 남짓했는데 1930~1940년대 당시 경성에서 고미술품 교환회 및 경매회가 자주 열렸고 많은 골동상들이 활동하고 있었음을 보면 당시의 골동 열기는 매우 높았음을 알 수 있다.

일제강점기 당시 조선의 대표적인 미술시장은 경성·평양·대구의 3곳이 꼽힌다. 이 세 도시는 일본인 유력자 등 수집가들이 많이 살고 거래도 활발해 전국 고 미술품의 집산지로 유명했다. 1906년 이후 서울을 중심으로 간헐적으로 개최되던 미술품 경매회는 1922년에는 제도로서 정착되었다.

1922년 일본인 골동상회에 의해 미술품 경매회사인 경성미술구락부가 조직되어 당시 고 미술품의 교환 및 거래에 중요한 몫을 담당하게 된 것이다. 경성미술구락부는 일제시기 경성에서 고미술을 경매한 대표적이자 유일한 단체로서 나고야(1905), 도쿄(1907), 교토(1908), 오사가(1910), 가나자와(1918)에 이어 6번째로 설립되었다. 근대 조선에서 경매제도가 빠르게 정착되게 된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는 당시 많은 고 미술품이 쏟아져 나왔다는 사실을 꼽을 수 있다. 경성미술구락부는 남산초등학교 바로 앞쪽에 위치한 현제의 프린스호텔 자리(서울시 중구 남산동 2가 1-1)에 있었다.

1922년부터 1941년까지 20년간 경성구락부에서 이루어진 경매회는 260회, 매상은 165만7287엔이다. 1년에 적을 경우 4회(1939), 많을 경우 24회(1923)의 경매회가 개최되었다. 1911~1925년에는 조선시대의 물건이었는데도 팔리지 않았지만 당시에도 고려청자의 인기는 높아 경매에 출품되기도 전에 들어오는 대로 팔렸다고 전한다.

경성미술구락부에서 조선의 고미술품이 본격적으로 경매에 출품되고 매매되기 시작한 것은 대체로 1925~1926년 이후 부터이다. 일제강점기 경성의 고미술상권은 일본인들이 장악하여 조선인 상인들의 활동은 미약하였다. 당시 조선인이 경영한 고미술상점 가운데 주목할 만한 활동을 보인 곳은 배성관 상점과 이희섭의 문명상회, 오봉빈의 조선미술관 등에 불과하다. 조선인 수장가 역시 관송미술관을 세운 전향필 등 몇몇을 제외하면 일본인들에 비해 열세를 면치 못하였다. 일본인들은 주로 골동상을 통해 물건을 사들였지만 조선인들은 거간을 통해 물건을 구입하였고 일본인들에게서 ‘수적(水滴, 연적)패’라는 비칭을 듣곤했다. 주로 연적·필통 등 값나가지 않는 물건만 모으는 변변치 못한 고객이라는 의미였다. 하지만 박지원·박제가 같은 애호가가 있었고 전형필·이병철 같은 수집가는 거금을 투자하고 있었다.


고운석 주필 gnp@goodnewspeople.com        고운석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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