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1월 16일(토)
HOME 커버스토리 정치 경제 사회 문화 환경 국제 스포츠 여성.가정 건강 이웃 전국

이동하기
<새로 나온 책> 가을 호수를 닮은 서정적 산문집-단정한 기억
입력시간 : 2019. 10.09. 15:26


가을 호수를 닮은 서정적 산문집-단정한 기억

가을 호수는 그 잔잔한 수면에 하늘을 떠가는 구름을 비춘다. 이때 수면은 명경지수(明鏡止水)의 상태가 된다. 밝은 거울과 정지된 물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실제 수면은 정지되어 있지 않다. 구름의 자취와 물방울을 뽀글거림이라는 외부와 내부의 압력을 스스로 견디고 있는 상태를 유지할 뿐이다.

1999년 서울신문으로 등단해 20년 동안 필력을 과시해온 비평가 유성호(한양대 국문과 교수)의 첫 산문집 '단정한 기억'에 손을 갖다 대면 짙어가는 가을 호수의 물이 묻어 나올 것만 같다.

"비평가가 이렇게 재미있게 울림 깊게 쓰면 안 되는 거잖아!"(소설가 김종광)의 애정 어린 발문에서도 알 수 있듯 유성호라는 가을 호수는 깊이를 모를 기억으로 침잠한다. 그 침잠은 '문학적'이 아닌 '인간적'인 자전의 기억으로 더욱 푸르다.

아버지를 그리워했던 유년이며, 중3 때 백일장에서 상을 받으며 문청으로 들어서게 된 이야기, 그리고 기억의 고고학자가 되겠노라 마음먹고 근대 문학의 정전을 파헤치며 연구자가 되고 학자가 되기까지의 진솔하고 감동적인 이야기가 담겨 있다. 특유의 단아한 문장에서 오는 따스함은 각별하다.

"이번 산문집을 계기로 나는 어쩌면 에세이스트를 꿈꾸는 도정에 접어들었는지도 모르겠다. 딱딱하고 규준이 정해져 있는 논문이나 평론에서 조금 비켜서면서, 나는 이러한 글쓰기가 비교적 자유롭고 또 경험적인 부분을 많이 개입시키면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최대한의 장점으로 누렸다. 이제는 실험하며 물어보고 반성하고 몰두하며 집중하고 음미하는 과정으로서의 에세이를 가파르게 선호하게 될 것 같다."('작가의 말')

오랜 시간 문학을 사랑해온 사람이 쓴 산문이기에 문장의 결이 지닌 섬세함이 어느 문학작품 못지않게 아름답다. 한 꼭지를 읽어본다. 근대 초기의 걸출한 화가이자 여성운동가였던 나혜석과 동경유학생 최승구의 사랑에 대한 글이다.

"그때 나혜석은 두말할 것 없이 귀국하여 최승구가 요양중이던 전라도 고흥에 가서 무려 열흘 동안이나 정성스런 간호를 한다. 방을 치우고 화분을 들이고 깨끗이 그의 몸을 씻기고 그의 얼굴을 스케치하는 등 열흘 동안 이들은 병중의 로맨스를 완성한다. 병세가 나아지자 나혜석은 동경 길에 올랐고, 동경에 도착한 지 닷새 만에 최승구의 사망 소식을 접한다."('연애란 무엇인가'에서)

사망 전보를 차마 볼 수 없어 동생더러 뜯어보라고 하고 나서, 나혜석은 애도의 답전을 보내고, 다시 그 답전을 관 속에 넣었다는 소식이 고흥으로부터 온다. 답전의 마지막 구절은 숨이 막힐 지경이다.

"간단하고 명백하고 심오하고 철저한 그 말. '오해 없이 영원히 잊어주시오.' 이는 내 초련(初戀)의 최초요, 최종 말이었다."

5부로 짜인 이 책의 갈피들은 나혜석, 정지용, 채동선, 서정주, 윤동주, 마광수, 황현산, 기형도 등의 삶과 작품을 다루고 있다. 마지막 5부는 종교적 관심에서 출발한, 성서에 관한 에세이나 인간 존재의 보편적 조건에 관한 성찰의 글을 담았다. 저자의 실존적 탐구와 고백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진 올 가을의 결실이자 수면에 잔잔하게 번지는 동심원이다.

교유서가, 1만4000원.



현장에서의 소회를 담은 사진산문집-조선 의용군의 눈물

“올해는 3.1운동과 상해 임시정부수립 100주년이고 광복군과 조선의용대 창설 80주년 되는 해다. 일제 강점에서 벗어나 해방된 지도 70년이 훌쩍 넘었다. 그러나 여전히 조국은 두 동강이 나 있고 목숨 바쳐가며 조국의 해방과 독립을 위해 헌신했던 독립군들과 그 후손들은 제대로 된 평가와 예우를 받지 못하고 있다.”

사진가 박하선이 고대사의 진실을 찾아 만주벌판을 누비다 늦게나마 또다른 진실, 잊혔거나 몰랐던 독립군들의 이름을 찾아 나선 결과물을 책으로 펴냈다. 흑백사진 90여점과 현장에서의 소회를 담은 사진산문집 ‘조선 의용군의 눈물’이다.

일제 식민 지배를 벗어나기 위해 혹독한 고문을 견디고 목숨 바쳐가며 독립운동을 이어갔던 부류는 크게 세 집단이었다. 먼저 김구선생이 이끈 임시정부의 ‘광복군’이 있고, 태항산과 연안에서 활동한 ‘조선의용군’과 만주와 연해주에서 활동했던 ‘항일빨치산’이 있다. 조직에 조금씩 차이가 있었으나 모두가 일본군을 상대로 한 독립군이다. 저자는 “많은 사람들은 임시정부 산하의 광복군만이 독립군이었던 것처럼 인식하고 나머지는 거론조차 꺼려왔다”며 “두 단체는 이념을 달리해 해방 후 북조선을 선택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하지만 북조선 유일 사상의 뿌리인 항일빨치산은 그렇다 치더라도 조선의용군은 사정이 좀 다르다는 것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세 단체 중 조직 면에 있어서는 조선의용군이 가장 탄탄했을 뿐 아니라 가장 최전선에서 일본군과 싸워 희생도 많았다. 시작부터는 아니지만 단지 중국 공산당의 ‘팔로군(八路軍)’과 함께 했다는 점에서 이념론자들에게 비난의 화살을 받는다. 또한 해방 후 살아남은 자들이 북조선을 선택해 들어갔다는 것이 문제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그토록 바라던 해방 조국에서 친일파들의 처단 없이 또다시 그들을 날뛰게 해준 곳을 선택한다는 것은 그들로선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을 것이다.

조선의용군의 흔적은 주로 중국 화북성 태항산 자락과 중국 공산당의 성지인 연안에 몰려 있다. 꽤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도 그곳에 가면 그들이 기거했던 ‘야오동’이라는 토굴들이 부서진 채 남아있고 교육장으로 사용한 건물들의 일부도 살펴볼 수 있다. 박하선은 우리에게 잊힌 것이나 다름 없는 조선의용군들에 관한 흔적들을 더듬어 보면서 많은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잡초속에 묻혀 외롭게 남아있는 무명용사 무덤, 호가장 전투에서 희생된 4명의 희생자들, 그리고 십자령 전투에서 순직한 윤세주와 진광화, 지금도 중국에서 칭송하는 음악 천재 정율성, 이들을 비롯한 모든 의용군들 또한 이념을 떠나 조선의 어머니 자식이었고 조국의 해방과 독립을 위해 싸웠다는 사실이 분명한데도 우리는 왜 그들을 잊고 있어야 했던가에 그의 사진들은 의구심을 던지고 있다.

그는 책 말미에 이렇게 적었다. “이념의 차이로 인한 과오가 있다면 그건 모두 해방 이후의 일들이라 생각하자. 지금도 친일파의 잔재 세력이 설치고 있는 세상이어서 나는 지금 독립군을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이고 그들의 눈물을 닦아 주고 싶은 것이다”

173쪽, 2만2000원, 눈빛.



헌신과 과로 사이에서, 의료계 민낯-하우스 오브 갓

최상위권 이과생의 목표는 의예과가 많다. 취업난이 심각해지면서 직업 안정성과 사회적 지위, 소득 수준 등을 중시하는 학생이 늘어나서다.

그러나 의사는 인간에 대한 사랑·존중 없이는 할 수 없는 직업이다. 무엇보다 몸이 고된 일이다. 과로가 일상다반사이며, 환자에 의한 폭력·폭언에도 노출되어있다.

'하우스 오브 갓'은 의사에 대한 환상을 정면으로 깨부수는 소설이다. 엘리트 의사 사회의 모순이 담겼다. 하버드 의과대학 교수로 30년간 재직한 사무엘 셈(본명 스테판 버그먼)이 자신의 경험을 녹여냈다.

미국 일류병원 '하우스 오브 갓'에 내과의 연수를 위해 인턴 5명이 모이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헌신과 과로 사이에서 신경안정제, 진료기록 날조 등 각자 다른 방법으로 극복해나고자 분투한다. 이들은 과연 진정한 의사가 될 수 있을지 궁금증이 더해진다.

인턴인 로이 바슈의 눈을 통해 의료실습에 의한 심리적 고충과 병원 시스템의 비인간화가 적나라하게 묘사됐다. 태움, 의료 봉사자들의 인권, 의료 시스템의 부조리 등 우리가 외면했던 불편한 진실들도 마주하게 된다.

출간 즉시 미국 의료계에 큰 파장을 불러 일으키며 베스트셀러에 등극했다. 세계 26개 언어로 번역됐으며 300만부 이상 판매됐다. 의대에서 훌륭한 의사가 되는 법 뿐만 아니라 좋은 인간이 되는 걸 배워야만 한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116호실 문 앞에 섰을 때 다시금 외로움과 두려움을 느꼈다. 나는 심호흡을 하고 방으로 들어갔다. 벽은 초록색 타일로 덮여 있었고, 스테인리스 장비에서 네온 등이 밝게 빛났다. 마치 무덤 속에 들어와 있는 것 같았다. 하기는 가엾은 주검과 마주할 게 틀림없기 때문에 그런 기분을 느낄 만했다. 방 한가운데에 스트레치카가 놓여 있었다. 그리고 스트레치카 위에 애너 오가 누워 있었다. 그녀는 꼼짝도 하지 않았는데, 구부린 무릎 쪽으로 어깨를 바짝 굽히고 있어 베개를 베지 않은 뻣뻣한 머리가 허벅지에 닿은 것처럼 보였다. 옆에서 보면 W자 같았다. 혹시 죽은 건 아닐까? 나는 그녀 이름을 불렀다. 대답이 없었다. 맥을 짚어보았다. 맥박이 뛰지 않았다. 심박동은? 없었다. 호흡은? 숨을 쉬지 않았다. 애너 오는 숨을 거두었다. 몸통 전체가 그녀의 매부리코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환자가 죽은 사실에 안도했다. 환자를 돌보아야 한다는 압박감에서 해방되었기 때문이다."

감수를 맡은 남궁인 이대목동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는 "의학이 환자를 오히려 악화시키거나 병원에서 떠나지 못하게 한다는 회의감은 현재에도 진행중인 이슈다. 이 책이 충만하게 읽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정회성 옮김, 640쪽, 1만6000원, 세종서적


NP gnp@goodnewspeople.com        NP의 다른 기사 보기

기사 목록     프린트 화면     메일로 보내기     뉴스 스크랩    


굿뉴스피플 만평
<시사 논평> 홍콩 사태 세계경제 충격
<칼럼> 문 정부, 역사에서 교훈 얻어야…
<청강의 세상이야기> 부부관계
한 청년이 고해성사를 하면서 신부님에게 고백을 했다. 저는 매일 부부관계를 갖고 싶…
<선진 조합을 찾아서> 삼향…
농촌 지역에서 농업과 농촌의 발전을 담당하는 데 농협의 역할을 빼놓을 수는 없다. …
이 사람/공무원 화가 윤창숙씨
만화를 활용한 지방자치단체의 홍보기법과 효과 등을 종합 분석한 을 펴내 관심을 모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