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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비의 정신<150> 3·1운동 100년의 역사 현장
독립운동가 김수길 등 10인
“어째서 무고한 동포를 검거했느냐” 일경 향해 일갈
조선총독부, 3·1만세운동 억압위한 친일단체 ‘자제단’ 조직
김수길, 이기명 등 비밀결사 단체 결성 ‘혜성단’으로 맞서
입력시간 : 2019. 11.22. 10:02


완공된 조선총독부(서울시사편찬위원회 제공)
“피고 김수길 징역 2년 6개월에 피고 이종식 징역 2년 피고 이영옥 동이명건 동 허성도 동 이기명 동 이정헌 동 최재화 동 이수진 및 동 이덕생을 각 징역 1년 6개월에 처한다”(1919년 7월 19일 혜성단원 김수길 등 10명에 대한 당시 대구지방법원 판결) 경북지역에서 3·1만세운동이 처음 시작된 곳은 대구였다.

1919년 3월 8일 시작된 대구만세운동은 3월말까지 이어졌다. 대구고등보통학교, 계성학교, 신명여학교 등의 학생들이 주축이 됐다. 하지만 일제의 강경 진압과 친일 단체의 준동으로 만세운동은 쉽지 않았다. 이때 학생들을 중심으로 결성된 비밀결사단체가 ‘혜성단’이다. 당시 재판부는 혜성단원인 김수길(당시 19세·계성학교 4학년) 등에 대해 ‘비밀결사를 조직해 대구에 본부를 두고 경성, 상주 기타 각지에 지부를 설치해 동지를 규합하고 경고 인쇄물을 각 관공서장 앞으로 보낸 죄’로 이같이 판결했다.

‘1919년 조선총독부는 3·1만세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자 이를 억누르기 위해 ’자제단‘이란 친일단체를 조직했다. 당시 전북도 장관을 지냈던 친일파 이진호(후에 조선인으로는 처음으로 총독부 학무국장을 지냄)는 데라우치 마사타게 조선 총독에게 ’민간 유지자들이 자발적으로 독립운동을 진정할 방법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만세운동을) 유혹하는 자를 검거할 것을 서약하게 만들자‘는 내용을 담은 서한을 보냈다. 친일파 들이 ’독립운동을 자제하자‘며 스스로 자제단을 만든 것이다.

제단은 지역에 따라 ‘자성회(自省會)’ 라고도 불렀다. 주로 남한지역에 집중적으로 조직됐다. 설립목적은 3·1만세운동 참가자 검거, 관련 정보 수집 및 대민 설득을 통해 민중들을 만세운동에서 차단하려는 것이었다. 당연한 이유로 자제단 단원들은 모두 밀고 의무가 있었다.

1919년 11월 6일 결성된 대구 자제단 규약(제3조)은 ‘만세(운동)에 부화뇌동하지 말도록 부민(府民)을 굳게 타이르고 만일 불온한 행위를 감행하는 자를 발견하였을 때에는 당장 경무 관헌에 보고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당시 대구 자제단 발기인 67명 가운데 신원이 파악된 27명 대부분이 지주, 관리, 자본가 등 친일인사들이었다. 지주와 자본가들은 다시 자신의노비와 소작농, 노동자들을 강제로 가입시켰다. 또 이들을 이용해 만세운동 참가자와 조직을 색출했다.

자제단 조직은 1919년 7월까지 울산, 전북, 수원 등 전국적으로 확대됐다. 이들은 만세운동을 자제할 것을 촉구하고 일본경찰 대신 만세운동을 진입하거나 시위 참여자를 귀가시키는 일을 했다. 초기 전국에서 들불처럼 번진 만세운동에 당황했던 일제가 전열을 가다듬을 수 있었던 데는 이들 자제단의 역할이 있었다. 자제단 지도부는 기회주의적인 친일파가 아니라 친일을 종교처럼 신봉한 골수친일파들이었다. 특히 자제단을 조직했던 박중양(후에 조선총독부 중추원 부의장을 지냄)은 자신의 회고록에서 ‘한말의 암흑시대가 일제시대 들어 현대조선으로 개신되었고 정치의 목표가 인생의 복리를 더하는 것이 있었고 관공리의 업무도 위민정치를 집행하는 것 외의 것이 아니었다. 일정시대에 조선인의 고혈을 빨았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정치의 연혁을 모르고 일본인을 적시하는 편견이다’라고 적을 정도로 골수 친일파였다. 그는 자제단 설립으로 훈장을 받고 중추원 부의장까지 지냈다.

자제단에 맞서기 위해 1919년 4월 17일 김수길, 이기명 등 대구 계성학교 재학생들과 졸업생들이 만든 비밀결사 단체가 혜성단이다. 만세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면서 대구에서는 학생들이 주축이 돼, 3월 8일과 10일 2차례의 만세시위가 벌어졌다. 이에 따라 일제는 대구보고, 신명여학교, 계성학교 등에는 휴교령을 내렸다. 시내에는 일본군 보병 80연대를 출동시켰다. 이런 삼엄한 분위기 때문에 독립운동은 지하에서 전개할 수밖에 없었다. 그 중심에는 혜성단이 있었다. 혜성단은 당시 대구경찰서장인 시라이 요시사부로 앞으로 “어째서 너는 3월 8일 한국독립민세를 부른 무고한 동포를 검거했느냐. 너는 생사 어느 쪽을 원하느냐. 너희들 같은 사람은 경무부장과 함깨 암살할 기회가 있을 것이니 각오해야 한다”는 내용의 협박 편지를 보냈다. 또 자제회 설립에 앞장서던 박중양에게 “시세에 적응하기 위한 자제회를 설립하고 다수의 사람을 강제 권유하여 입회하게 함은 조선민족으로서 유서(宥恕·너그럽게 용서함)해서는 안되는 놈들이기 때문에 암살해야한다”는 내용의 경고장을 보냈다.

혜성단은 대구에 본부를 두고 경성과 만주에도 지부를 설치했다. 인쇄책으로는 최재화·김수길, 인쇄물 배달책으로는 허상도·이덕생·이종식·이종헌·이기명이 각각 활약했다. 자금 출납책은 이수건, 만주 출장책은 이영옥 등이었다. 혜성단의 목표는 유인물 배포를 통해 독립정신을 고취시키고 다른 한편으로는 민족 자산가들에게 독립운동 자금 헌금을 호소하는 것이었다. 일반 민중에게는 독립운동참여를 촉구했다. 공장 노동자들에게는 파업을 요구했다. 상인들에게는 철시 및 일본인과의 거래 중지를 호소했다. 또 궁극적으로 독립을 달상하기 위해서는 국내·외가 함께해야 하기 때문에 만주에서 활동하는 독립 운동가들의 연결도 모색했다.

혜성단원을 만주에 파견해 항일투쟁을 이어가려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런 혜성단의 활동은 당연히 일본 군경의 눈엣가시였다. 결국 결성 한 달여 만인 5월 중순까지 주축 인물들이 차례로 검거되는 아픔을 맞는다.

모 신문사 조사부장을 지낸 이여성(1901~?·월북)도 혜성단원 출신이었다. 그는 대구에서 혜성단을 조직하고 만세운동을 계획하다 체포돼 3년형을 받고 복역했다. 후에 일본 릿쿄(立敎)대 정치경제학과를 졸업하고 1932년 신문사에 입시해 조사부장을 맡았다. 조사부장 재직시절 식민지 조선 민중들의 열악한 실상을 숫자로 표현한 ‘숫자 조선연구’(전 5권)를 출간해 식민치하의 아픔을 고발하기도 했다. 신문사 퇴직 후에는 조선역사화 제작과 복식사 연구에 매진했다. 광복 후 조선건국준비위원회 선전부장을 맡다가 1948년 월북했다.

혜성단은 기존 만세운동과 함께 시장 상인들을 설득해 철시투쟁도 이끌어냈다. 1919년 1월부터 6월까지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파리강회 회의에 대한 기대감에서였다. 당시 파리강회회의에서 미국 윌슨 대통령은 어떤 민족도 다른 민족을 간섭해서는 안된다는 ‘민족 자결주의’를 주창해 국내 3·1운동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실제로 당시 유럽에서는 독일이 알자스로렌지역을 프랑스에 돌려주고 오스트리아는 헝가리와 체코슬로바키아를 독립시켰다. 또 불가리아는 그리스와 유고슬라비아 영토의 일부를 돌려줬다. 이런 분위기 때문에 국내외 독립운동가들은 이 회의에 대힌 기대가 켰다. 혜성단 또한 당시 대구에 와있던 서양 신문기자들을 통해 파리강회회의에 대구는 물론 조선의 독립운동을 전 세계에 알리려고 했다.

혜성단원이던 이종식은 그해 4월 7일경 자신의 집에서 ‘서양 신문기자가 시내를 순찰하는데 우리들이 독립자유를 원하고 있다는 의지를 보이기 위해 내일 8일 아침 일찍부터 철시하고 폐점하라’는 내용의 유인물 300통을 작성해 배포했다. 이종식은 유인물에서 ‘철시 및 폐점상황이 신문기자들 손에 들어가 기사로 우리의 독립목적이 전달되기 위해서다. 하지만 사실은 국내외 독립운동가들은 제1차 세계대전 후 전승국의 축제회의에서 한국의 독립을 보장받을 수 있으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다. 당시 일본은 전쟁에서 이긴 연합국 쪽에 서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독립운동가들은 자발적 만세운동이 세계 여론을 움직이는 데 보탬이 된다는 신념으로 죽음을 각오한 항쟁을 전개한 것이다.


고운석 주필 gnp@goodnewspeople.com        고운석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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