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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비정신을 찾아서<151> 독립운동 100년 역사의 현장
북간도 지역 33인 비밀회합... 수만 한인‘조선독립만세' 외쳐
일제와 결탁한 中 군벌 무력진압에 공덕흡 등 19명 순국
입력시간 : 2019. 12.20. 14:27


북간도 3.13 항일 독립운동으로 희생된 열사들의 묘소 앞에서 묵념중인 학생들.
약 100년 전인 1919년 2월 중순 독립만세운동의 열기는 두만강과 압록강을 넘어 용정과 연길 등 만주 벌판까지 달구어 나갔다. 두만강 대안 북간도의 민족지도자들은 그해 2월 8일 일제 심장부 동경에서 본국의 젊은 유학생들이 독립선언을 거행했다는 감격적인 소식을 들은 데 이어, 본국 수부인 경성에서도 만세운동이 곧 시작된다는 비밀통신도 접했다.

용정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민족운동 지도자들은 일제강점 10년 만에 맞이한 절호의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그간 북간도의 한인들은 친일파 중국인 장쭤린이 이끄는 군벌세력과 실제적으로 만주를 지배하는 일제로부터 이중 압박을 받아오면서 움츠러들어 있었다. 자연히 항일 독립운동도 크게 위축돼 있던 터다. 그런 상황에서 본국과 일본에서 발화된 만세운동은 간도에서 독립투쟁을 활성화시킬 수 있는 훌륭한 ‘불씨’였다. 이에 따라 가만히 있기를 처녀같이 처신하던 북간도 인사들이 ‘달리는 토끼’처럼 날쌔게 움직이기 시작했다.(계봉우의 ‘북간도, 그 과거와 현재’ 독립신문 1920년 1월 10일자)

1919년 2월 18일과 20일 연길현 국자가 하장리 박동원의 자택에서 연길, 용정 등 북간도 지역을 대표하는 33명의 지도자가 모였다. 이 비밀회합에서 간도지역의 모든 한인단체와 지역이 연대해 독립만세운동을 펼칠 것을 결의했다.

만세운동 집결지로는 용정이 지목됐다. 용정은 한민족의 북간도 개척사에서 가장 오랜 도시이자 한인들의 정치·경제·문화의 중심이라는 상징적 의미가 컸기 때문이다. 일제도 본방인(조선인과 일본인)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이곳에 총영사관을 설치한 뒤, 만주침략의 본거지로 삼고 있었다.

일제는 총영사관 내에 막강한 경찰 조직과 수감 시설까지 갖추고 밀정들을 부리면서 한민족의 독립운동을 탄압했다. 그렇기에 북간도 지도부는 의도적으로 이 지역에서 독립선언을 함으로써 일제 통치를 정면으로 거부하는 점을 분명히 보여주고자 했다. 지금도 이곳 용정 주민 중 대다수는 우리와 같은 핏줄인 조선족이다. 일제강점기에 피땀 흘려 옥토로 바꿔놓은 땅이라 더욱 더 그러는데, 용정이 독립만세운동은 본국 및 러시아 연해주와 연대해 펼치는 것으로 계획됐다. 이를 위해 김약연, 정재면, 강봉우 등을 본국과 연해주에 파견해 놓고 있었다.

달이 바뀌어 3월의 첫날 경성에서 만세운동이 시작됐으나 북간도 지도부는 알지 못했다. 파견된 동지들의 소식도 없었다. 그 며칠 후인 7일 본국의 독립만세운동 동향을 파악하기 위해 두만강을 건너갔던 강봉우가 드디어 돌아왔다. 용정의 영신학교 교감인 강봉우는 간도의 주요 동지들에게 격문을 보내 연길 국자가로 모이라고 했다.

그는 회의에 참석한 동지들에게 자신이 보고 들은 본국 만세운동과 향후 계획을 상세히 보고했다. 북간도의 지도자들은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간다고 판단했다. 즉시 ‘독립운동기성회’라는 조직을 결성, 3월 13일 용정에서 단독으로 시위를 벌이기로 확정했다.(일본 외무성 ‘본방인재류금지관계잡건 기물 제19호’) 용정 북쪽의 서전벌(서전대야)에서 ‘조선독립축하회’라는 이름으로 독립선언식을 거행한다는 결정이 내려지자 용정의 한인들은 바쁘게 움직였다. 독립선언서와 대회 개최 통지서들의 문건들은 은진중학교 지하실에서 등사된 후 북간도 전역으로 릴레이식으로 전달됐다.

각급 학교의 교원과 학생들을 중심으로 대회 경비와 안전을 책임지는 ‘충렬대’ ‘자위단’ 등이 조직되고, 군중을 대상으로 항일운동을 선전하는 ‘강연단’까지 가동됐다.

용정에 거주하는 의병출신 한학자 김정규는 일기장(양력 3월 11일자)에서 당시 상황을 기술했다.

“지사(志士)와 인인(仁人)들이 비밀리에 회의를 갖고 오는 12일(양력 3월 13일) 갑자일에 사람마다 태극기를 들고 곧장 일본영사관이 있는 용정시로 가서 대한독립만세를 부르기로 하였다. 그리고 이날 일본과 경성·평양·원산·부산·대구 그리고 블라디보스톡 등에서도 같은 소리로 이 거사를 하기로 하였다. 이는 우리 이천만 동포가 기사회생하는 날이니 어찌 맹렬히 일어나 각성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나는 환호작약하여서 동쪽을 향해 머리를 조아리고 ‘황천이 우리 한인을 불쌍히 여겨 운수를 열어주는구나’라고 했다”

1919년 3월 13일, 바로 그 운수의 날이 왔다. 그런데 아침에 개었던 날씨가 갑자기 급변했다. 황진과 굵은 모래바람까지 휘몰아쳤다. 회오리바람이 어찌나 세차게 불던지 하늘의 구름떼가 모였다 흩어졌다를 반복했다. 그럼에서 서전벌에는 수많은 한인들이 조금의 동요도 없이 모여들었다. 사람들의 얼굴은 오히려 밝은 화색이 감돌고 있었다. 용정에서 30리 거리의 동명학교 학생들은 인근의 농민들과 함께 천여 명의 대오를 이뤄 서전벌에 도착했다. 두만강변의 자동에 위치한 정동중학교 교사와 학생들은 북을 울리면서 하룻밤을 꼬박 걸어 당일 아침에 도착했고 용정시내의 은진중학교를 비롯한 동흥학교, 대성학교 학생들도 속속 대회장으로 모여들었다. 훈춘과 안투 등 먼거리 사람들은 거사 전날 이미 도착해 용정사람들과 함께 행사준비를 했다. 소수의친일파를 제외하고는 각지의 모든 한인들이 태극기를 앞세우고 서전벌로 모여든 것이다.

인산인해를 이룬 이날의 군중 수가 중국 당국의 기록에는 2만여 명으로 집계돼 있다. 분명한 것은 북간도의 궁벽진 산촌에 사는 아낙과 초동목아까지 한마음으로 나선 거족적 운동이라는 시실이다. 정오가 되자 시내 교회당에서 울리는 종소리를 신호로 ‘조선독립축하회’가 시작됐다. 대회 부회장 배형식의 개회선언과 함께 대회장 김영학이 ‘간도거류조선민족 일동’ 명으로 된 ‘독립선언 포고문’을 낭독하였다.

독립을 ‘선언’하는 게 아니라 ‘선포’하는 자리이기 때문에 행사는 당연히 조선 독립을 기념하는 축제 분위기였다. 포고문 낭도기 끝나자마지 군중은 ‘기뻐서 흐느끼고 흐느끼면서 뛰며’ 태극기를 흔들었다. 한인 가옥에 내걸린 태극기들은 광풍 속에서도 힘차게 펄럭였다.

군중은 천지가 진동하듯 ‘조선독립만세’를 소리 높여 외쳤다. 독립축하회를 마친 군중은‘대한독립’이라 크게 쓴 깃발을 앞세우고 거리 시위에 들어갔다. 명동학교와 정동학교의 교원과 학생 320여 명으로 조직된 충렬대(총대장 김학수)가 앞장서고 북과 나팔을 멘 악대가 시위대를 이끌었다. 시위 군중이 태극기를 흔들고 ‘조선독립만세’를 외치며 일본총영사관이 있는 쪽으로 행진했다.

일제는 마냥 구경만하고 있지 않았다. 일본 외무성과 군부에서는 간도의 조선인 거사 정보를 일찌감치 입수해, 중국 정부에 압력을 가했다. 이를 빌미로 군대까지 투입하려는 일제 동향을 파악한 동북군벌 장쭤린은 한인의 독립운동에 대해 강경한 조치로 탄압할 것과 일본영사관과 거류민 보호를 지시했다. 이에 따라 행사를 마치고 커다란 파도같이 밀려드는 시위대를 맞아 어쩔 줄 모르던 멍푸더는 휘하 군사들에게 발포명령을 내리고 말았다.

시위대 중에는 용정 동산학교와 연기 도립중학교에 다니는 한족학생들도 다수 끼어 있었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총성이 한동안 울렸다. 순식간에 무수한 시위군중이 쓰러졌다. 중국 군대의 무차별 사격으로 현장에서 13명의 시위대원이 희생되고 30명 이상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체포된 사람만도 300명이 넘었다. 부상자들은 즉시 제창병원으로 옮겨져 응급치료를 받던 중 숨졌다.

결국 이날 시위운동으로 공덕흡을 비롯한 19명이 순국하였다. 이와 관력 일본영사관에서 파견한 사복경찰들도 중국 군경 틈에 숨어 있다가 총질에 가담했다는 증언도 있다.

만세운동에 참여한 허춘림은 “(일본)순경들은 멍푸더 부하의 헛총질에 시위대가 혼란해진 틈을 타, 권총으로 시위자들을 쏴 죽이고 부상을 입혔다”고 말했다(김동화, ‘연변역사연구’)

3·13시위운동 희생자들의 유해는 3월 17일 5천여 한인의 애도 속에 용정 동남쪽 교외의 양지바른 언덕에 안장되었다.



고운석 주필 gnp@goodnewspeople.com        고운석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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