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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 나주학생독립운동기념관 이명한 관장
독립운동가 후손... 애국애족 정신함양 앞장
학생독립운동 90주년 기념행사 다채롭게 진행
현충 관련 과업 충실히 수행‘나주시민의 상’수상
“기념관은 시대를 초월한 청년정신의 산실입니다”
입력시간 : 2019. 12.27. 14:33


올해는 3·1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과 학생독립운동 90주년을 맞은 해이다.

지난 11월3일, 학생독립운동 90주년을 맞아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기념식이 열렸다. ‘함께 한 역사, 함께 할 미래’ 라는 주제로 거행된 기념식은 학생들이 만들어낸 위대한 역사를 기억하는 시간이 됐다.

일제강점기 학생운동의 산실인 나주학생독립운동기념관에서도 학생독립운동 90주년을 맞아 지난 10월30일부터 11월3일까지를 학생독립운동 기념주간으로 설정하고 기념식, 문화제, 공연, 학술대회 등 다양한 독립선양행사를 진행했다.

학생독립운동의 진원지인 옛 나주역 옆에 위치한 나주학생독립운동기념관은 일제강점기 3대 독립운동 중 하나로 평가받는 학생독립운동의 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건립됐다.
나주학생독립운동기념문화제 기념식


나주학생독립운동기념관 중심에 서있는 이명한 관장은 지역사회에서 현충과 관련된 지역보훈사업·문화보급사업·전시개최·청소년교육 등의 과업을 충실히 수행해 지난 10월30일 열린 제25회 나주시민의 날에서 국가발전과 지역사회 개발에 이바지한 공로가 현저한 사람에게 수여하는 ‘나주시민의 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

독립운동가 후손으로 지역민들의 애국애족 정신함양에 크게 기여하며 독립정신 전달에 힘써온 이명한 관장을 만나 그의 주요 업적과 90주년을 맞은 학생독립운동을 다시 되돌아본다.



▶ 먼저 관장님의 독립운동과 관련된 주요 활동에 대해 말씀해 주세요.

저는 아버지가 중학교시절 독립운동을 펼치신 독립운동가 후손입니다. 이후에도 진보단체 등에서 민주운동과 사회운동을 꾸준히 해 오시며 정의구현을 위해 앞장서셨습니다. 이런 아버지의 정신과 뜻을 기리기 위해 2012년 나주학생독립운동유족회를 발족했습니다. 이어 2013년 나주학생독립운동기념사업회를 설립해 학생독립운동과 나주지역의 항일운동 및 나주출신의 독립운동가를 기념하고 선양하기 위한 각종 기념행사와 학술대회 등을 개최했습니다.

2016년 나주지역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념상 건립 공동대표로 활동해 그해 11월 나주 ‘평화의 소녀상’을 건립했습니다. 2015년부터 나주학생독립운동기념탑 건립추진위원단장을 맡아 지난 10월30일 열린 ‘제25회 나주시민의 날 기념식 및 10·30문화제’에서 나주학생독립운동기념탑 제막식을 가졌습니다.

이 밖에도 민족통일과 관련해 6·15 남북공동선언 상임고문으로 활동했으며, 나주학생독립운동기념관장으로 나주학생독립운동기념식 및 문화제개최 등 지역 보훈사업 발전을 위해 노력했습니다. 더불어 나주학생독립운동 헌정음악회 등 지역 문화보급 사업 활성화에도 주력했으며, 특별전시 개최 등으로 근현대사의 주요 사실을 대중과 공유하도록 했고, 아동 청소년 대상 역사체험프로그램 운영 및 강의 등으로 독립교육 기반을 마련했습니다.
3·15 100주년 기념행사장서 단체장들과




▶ 학생독립운동의 의의에 대해 설명바랍니다.

학생독립운동은 3·1운동, 6·10만세운동과 함께 식민지 시기 국내에서 전개된 3대 독립운동의 하나입니다. 특히 이 운동은 그 주역이 학생들이었다는 점에서 3·1운동이나 6·10만세운과는 다른 특징을 지니며 일제의 식민지 노예교육에 대한 반발로써 1920년대 중반 이후 국내에서 광범위하게 전개된 항일학생운동의 결정판이라는 의미를 갖습니다. 즉, 식민지 노예교육의 철폐, 조선인 본위의 교육실시를 주장하면서 1920년대 중반 이후 전개돼 온 각급 학교의 동맹휴학은 11·3 학생봉기를 통해 독립운동으로써 한단계 더 승화된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또 11·3 학생독립운동은 1920년대 중반 이후 각급 학교에서 전개돼 온 학생들의 독서회, 사상연구회 등의 비밀결사 운동이 기반이 돼 일어났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이 운동은 일회적 분사적인 운동이 아닌 조직적이고 지속적인 운동으로 전국적인 연계를 갖고 전개됐던 것입니다. 또 이때 비밀결사 운동에 참여한 이들은 1930년대 이후 각 방면에서 민족운동과 사회운동의 주역으로 활동하게 됩니다.

결국 1929년 11월3일부터 1930년 봄까지 전개된 11·3 학생독립운동은 전국적이고 조직적인 학생독립운동으로써 1920년대 학생운동을 총 결산하는 것으로 1930년대의 민족운동, 사회운동을 준비하는 것으로 평가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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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강점기 학생운동의 산실인 나주학생독립운동기념관은 어떤 곳인가요?

학생독립운동은 1945년 8·15 해방과 함께 역사의 장으로 넘어갔습니다. 하지만 그 이후에도 학생층은 1960년대의 4·19혁명, 1980년대의 5·18, 1987년의 6월 항쟁 등을 통해 한국의 민주화를 이끈 주역이 됐으며, 학생독립운동의 정신은 그 발상지인 나주에 깊숙이 뿌리내려 미래의 희망찬 나주발전과 대한민국 건설의 밑거름이 되고 있습니다.

나주학생운동기념관기념관은 일제강점기 3대 독립운동의 하나인 학생독립운동 진원지인 옛나주역에 당시의 역사를 생생하게 일깨울 수 있도록 학생독립운동의 과정과 나주지역의 식민지적 상황과 11·27나주농업보습학생과 나주보통학생의 만세사건, 나주출신 학생운동지도자 등을 주제로 구성돼 있습니다.

나주학생운동기념관기념관은 시대를 초월한 청년정신의 산실로써 중국과 일본의 역사왜곡으로 상처받은 민족의 자존심을 회복하고, 자주독립국가의 위상을 지키는데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또한 청소년의 역사의식과 사회참여 의식고취에도 노력을 다하고 있습니다.



▶ 나주학생독립운동기념관 시설을 어떻게 꾸며져 있는지요.

기념관은 제1전시실 ‘민족항쟁의 땅, 나주’와 제2전시실 ‘나주학생독립운동’으로 마련돼 있습니다. 제1전시실은 2층, 제2전시실은 1층에 있어 2층부터 관람하셔야 합니다.
찾아가는 독립기념관 개회식에서


제1전시실에 들어서면 학생독립운동을 연도별로 정리해놓은 전시가 있어 한눈에 살펴볼 수 있습니다. 제1전시실 ‘민족항쟁의 땅, 나주’는 11월3일 학생독립운동의 진원지가 나주였던 역사적 배경을 시작으로, 학생독립운동의 발단과 배경을 자세히 볼 수 있습니다. 벽면을 따라 걷다 보면 당시 일제의 식민지 교육, 나주 학생들이 전개했던 민족운동 등에 대한 자세한 설명과 사료들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제2전시실은 10월30일 나주역에서 조선인 학생들과 일본인 학생들의 충돌 이후 불꽃처럼 번져간 11·3학생독립운동의 전개과정을 소개하는 공간으로 조성돼 있습니다.



▶ 나주학생운동의 단초가 된 당시 나주학생들의 광주통학 상황에 대해 말씀해 주세요.

1920년대 후반 나주에서 광주로 통학하던 학생은 일본인이 약 30명가량 됐고, 조선인은 그보다 많았다고 합니다. 영산포에서 통학하는 학생은 그 보다는 적었으며, 대부분 일본인 학생들이었습니다. 당시 통학열차는 아침 7시경에 나주에서 출발하는 등교를 위한 열차와 저녁 광주에서 출발하는 하교를 위한 열차가 있었습니다.

당시 통학열차는 여러 량이 연결돼 있었고 한국인 학생들과 일본인 학생들은 각기 다른 칸을 사용했습니다. 하지만 가끔 섞여서 타는 경우가 있었고 이 경우 양쪽 학생들 간에 갈등이 빚어지기도 했습니다. 양측 학생들은 송정리 부근 딸기밭에서 싸움을 하기도 했고, 또 운암역 부근에서 개고기 파는 것을 일본인이 보고 “조선 사람들은 더럽다”고 말해 조선인 학생과 일본인 학생이 열차에서 싸움을 벌이기고 했다고 합니다.

1929년 10월30일 광주로 통학하고 있덩 조선인 학생과 일본학생들 사이에 충돌이 일어나 전국적인 민족운동으로 확대됐고 3·1운동을 이은 가장 격렬하고 범위가 넓은 민족운동이었습니다.

나주의 학생들을 싣고 광주를 출발한 열차가 오후 5시35분 나주역에 도착해 승객들이 개찰구를 빠져나오고 있을 때, 일본인학교인 광주중학교 일본인 재학생이 조선인 여학생을 얕잡아 희롱하는 것을 보고 광주고보 학생이 나섰고, 이렇게 시작된 충돌은 이튿날까지 계속되다가 확대되면서 전국으로 이어지고 국제적으로 파급됐습니다.

나주 통학생들은 당시 광주고보를 비롯한 광주 소재 중등학교에서 치열하게 진행됐던 동맹휴학의 불길 속에서 항일의지를 키워나가고 있었으며 30명여의 통학생 중 10명은 비밀 학생 조직인 독서회에 가입해 활동했습니다. 특히 독서회에서 활동하던 통학생들은 일반 통학생들에게 사회과학 서적을 권하거나 대화를 나누는 방식으로 민족의식과 항일의식을 높이는 한편 나주역 사건에서처럼 일본인 학생들의 멸시나 도전을 응징하는데 앞장섰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인 학생들과 한국인 학생들이 이용하던 통학열차는 움직이는 화약고나 다름없었습니다.



▶ 학생독립운동 90주년 기념해 다양한 독립선양행사를 진행했다고 하던데요.

나주학생독립운동기념사업회가 학생독립운동 90주년을 맞아 지난 10월30일부터 11월3일까지를 학생독립운동 기념주간으로 설정하고 10월30일 나주역 사건 당일에는 나주시와 공동으로 ‘제25회 나주시민의 날 기념식 및 10·30문화제’를 진행, 나주학생독립운동기념탑 제막식과 나주시민들에 대한 시상식과 독립정신을 계승하는 각종 공연이 진행됐습니다.
나주출신 독립운동가 후손들과


30일과 31일 양일에 걸쳐 먹거리마당과 체험마당, 공연마당이 이어졌으며, 30일 저녁에는 역사적 현장인 나주역에서 제11회 헌정음악회가 열렸습니다.

11월1일에는 나주시청 대회의실에서 ‘나주학생독립운동 90주년 기념 학술행사’가 열려 나주학생독립운동의 계승과 해방공간에 대한 내용을 주제로 진행됐습니다. 또한 10월30일부터 11월3일까지 태극기 사진전시회가 나주시 죽림동 학생운동로에서 개최돼 약 100여점에 달하는 다양한 태극기의 모습과 그에 담긴 우리 역사를 선보였습니다.



▶ 끝으로 하시고 싶은 말씀 있으시면 부탁드립니다.

1992년의 학생독립운동은 임진왜란과 한말의 의병투쟁 등 끊임없이 전개됐던 선구자들의 치열한 민족운동의 바탕위에 핀 꽃입니다. 이처럼 숭고한 나주의 항쟁정신은 근·현대사를 관통하며 면면이 이어져 대한민국 민주주의 발전의 자양분이 됐습니다. 자랑스러운 나주의병과 학생독립운동의 역사를 기억하고 계승하는 것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책무입니다.

나주학생독립운동기념관은 올해로 90주년을 맞은 학생독립운동을 기념하며, 나주에서 시작한 학생독립운동을 끝까지 발전·전파시켰던 나주학생들의 불굴의 의지를 이어가기 위한 다양한 사업을 준비해 나가겠습니다.

나주지역 독립운동가 후손들과 학생들뿐만 아니라 광주·전남지역의 뜻있는 단체들과 시민, 혁신도시 이전기관을 포함한 다양한 기업들이 동참하고 소통해 나주학생독립운동의 뜻과 정신을 함께 기려나가길 바랍니다.

나주학생독립운동가 후손 대표로 나주지역 독립운동선양사업에 더욱 매진할 것을 약속드립니다. / 박은정 기자



≫약력≪

- 나주학생독립운동유족회장( 2012~2013 )

- 나주학생독립운동기념사업회이사장(2013~현재 )

- 6·15남북공동선언 상임고문 외 다수(2000~현재 )

- 나주학생독립운동기념관장(2014~현재 )


박은정 기자 gnp@goodnewspeople.com        박은정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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