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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비정신을 찾아서 154> 미암 유희춘과 덕봉 송종개 부부
유배 남편 찾아 삼천리 길 시 짓고
개인 문집 가진 최초 여성 지식인
미암은 보물 제260호 '미암일기' 남겨
입력시간 : 2020. 03.18. 14:45


국립광주박물관은 금남 최부(1454∼1504)의 13세손 최안범 선생으로부터 '금남최선생표해록'과 '금남최선생문집' 등 5점의 문화재를 기증받았다고 밝혔다. 사진 왼쪽은 기증받은 책, 오른쪽은 최부 선생의 표류와 귀환 지도.
미암 유희춘과 덕봉 송종개 이 부부를 말하려면 먼저 미암의 외조부이자 '표해록'의 저자인 금남 최부(1454~1504)가 생각나고, 따라서 보물 제260호 '미암일기'의 저자 유희춘(1513~1577)이 생각난다. 한데, 그의 부인 덕봉 송종개(1521~1578)는 학문 높은 여류시인이다. 이렇다보니 미암과 덕봉이라 부르는데, 특히 덕봉이 양반가 여인이자 선비로 모자람이 없어 '미암과 덕봉'이라는 평가를 하기도 한다. 미암은 16세기 대표적 성리학자이자 관인이다.

해남에서 태어났고 24세에 덕봉 송종개와 혼인했다. 2년 뒤 과거급제하여 홍문관 수찬, 무장현감 등을 지냈다. 그러나 35세에 뜻하지 않는 사건에 연루되어 귀양을 떠나 21년간 유배생활을 하게된다. 선조때인 50대에 해배되어 홍문관 부제학, 사헌부 대사헌, 전라도관찰사 등을 지냈다.

미암은 호남의 거유이기도 하지만 '미암일기'의 저자로 더욱 유명하다. 덕봉의 자는 성중(成中), 이름은 종개(棕介), 호는 덕봉이다. 담양에서 태어났으며 사헌부 감찰을 지낸 송준의 딸이다. 덕봉은 자질과 성품이 영민하여 성장하면서 서사(書史)와 경서를 두루 섭렵했고, 일찍이 문재를 드러냈다. 문학에 대한 소질은 집안내림으로 '매창월가'라는 조선전기 대표적 '

은일가사'를 남긴 이인형이 외조부다. 미암은 외조부 최부가 있고, 덕봉은 외조부 이인형이 있는 셈이다.

덕봉이 동해바다를 바라보며 지은 시(詩) 한 수.

걷고 또 걸어 마천령에 이르니/동해는 평평한 거울처럼 끝없이 펼쳐있구나/부인의 몸으로 만리 길 어이 왔는가/삼종의 도는 무겁고 이 한 몸은 가벼운 것을.

1560년 덕봉이 남편을 찾아가면서다. 미암은 을사년 사화에 연루되어 함경도 종성에 유배되어 있는데 그곳에 가는 길이다.

홀로 시어머니 삼년상을 치르고 저 땅끝 해남에서 출발하여 머나먼 여정을 나섰다. 함경남북을 가르는 마천령고개에 서서 회한을 담은 시를 한 수 읊는 중이다. 오랜 유배의 세월, 남편에 대한 그리움이 천리 길도 아니고, 이천리 길도 아니고, 장장 삼천리 길의 대장으로 이끈 것이다. 바람이 세고 일기가 고르지 않아 맑은 날을 찾아보기 힘들다는 마천령 고개를 넘으면서 쓴 '마천령상음'에는 무서운 삼종지도를 벗어날 수 없는 여인의 회환과 유배로 고생하는 남편을 지켜주고자 하는 아내의 마음이 담겨있다. 덕봉은 그때 먼 길에 찬바람 쐬고 병을 얻어 훗날 오랫동안 고생하기도 한다.

그로부터 10년이 흐른 1570년(선조3년) 유배에서 풀려 한양으로 돌아오게 된다. 미암은 홍문관 관리 벼슬을 하면서 덕봉에게 편지를 쓰는데, 그동안 일체 여색과 음악을 가까이 하지 않았다고 자랑하면서 "당신은 이런 훌륭한 남편의 은혜를 입은 줄 알라"는 내용이었다. 그에 덕봉의 답이 걸작이다. "겉으로 인의를 베푸는 폐단과 남이 알아주기를 서두르는 병폐가 있다"고 지적하면서 "당신은 금욕적 삶을 강조하지만, 내가 홀로 시어머니 상을 치르고 삼천리 길을 걸어 당신을 찾아간 것과 비교하면 무엇이 더 무거운 줄 아느냐"고 따져 묻는 것이다.

사랑스러운면서도 당찬 덕봉의 일면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거기에 미암은 당신의 지적이 맞는 말씀이라고 화답한다.

서로 우대하고 존중하면서 오고간 수많은 삽화들이 미암일기에 잘 남아있다. 덕봉이 살았던 조선 중기에는 과도기였다. 남자가 여자집으로 가서 혼례를 올리고 처가살이를 하는 풍습이 일반적이었고, 딸이 부모를 모시고 재산을 균등하게 나누며 조상의 제사를 주관하기도 했다. 이처럼 고려부터 내려오던 전통적 모계질서와 새롭게 가부장적 사회로 변화해가는 성리학적 질서 속에서 덕봉은 스스로 결정하고 가정을 이끌어 나가는 강인한 여성의 모습을 보여준다.

남편이 유배 가 있는 동안 홀로 집안살림을 꾸려 나갔고, 시어머니 사후에 혼자 상을 치르고, 남편의 유배지까지 삼천리 길을 다녀온 것이며, 그리고 유배를 떠날 때 딸려 보냈던 첩(방긋덕)이 함경도에서 낳은 네명의 딸을 가족으로 품어 키우고 시집 보내는 일까지, 어진 마음, 넓은 아량, 높은 부덕(婦德)을 잘 보여준다. 반면에 덕봉은 친정 아버지의 묘에 비석

세우는 일과 관련하여 바르고 당찬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덕봉은 남편이 전라감사로 있을 때 비석 일을 도와달라고 부탁한다. 친정아버지의 소원을 이루기 위해 덕봉은 석물은 마련했으나 돈이 부족하여 애를 태우고 있는데도 남편이 형제끼리 알아서 하라고 나몰라라 하는 것이다. 덕봉은 글(착석문서, 착석문)을 통해 미암의 태도를 논리정연하게 비판한다.

첫째, 미암이 장가오던 날 친정아버지가 '금슬백년'이란 시구를 보고 어진 사위를 보았다고 좋아하던 일, 둘째, 내 형제는 과부가 된 사람도 있고 가난하여 끼니를 걱정하는 사람도 있어 그 비용을 거둘 수 없다는 점, 그리고 셋째, 시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나는 있는 힘을 다해 장사 지내고 제사를 모셔 남의 며느리로서 부끄러운 점이 없이 행했다고 역설한다. 그런데 미암은 장인이 돌아가셨을 때 오직 소식(素食)만 하고 삼년 안에 한번도 제사를 지내지 않았다고 지적하며, 만일 자신이 이런 평생의 소원을 이루지 못한다면 죽더라도 눈을 감지 못할 것이라고 한 것이다. 덕봉의 이러한 일화는 아내와 여인의 나약한 모습에서 벗어나 자신의 떳떳한 행동과 논리를 근거로 자신의 요구를 관찰시키고자 하는 당당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덕봉은 신사임당, 허난설헌 등 조선의 여류 유명 문인들과 달리 그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이 많지 않지만, 그래도 남편과 대등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학문과 문학을 통해 소통하고, 우리나라 여성문학사에서 개인문집을 가진 최초의 여성지식인으로도 손꼽힌다. 덕봉은 1577년 미암이 숨을 거둔지 8개월 후 향년 57세로 남편의 뒤를 따라갔다. 미암은 해남 해촌사와 담양 미암사당에 배행되어 있으며 담양에 미암박물관이 건립되어 부인 송덕봉과 함께 담양군, 선산유씨종가, 홍주송씨발전사업추진위원회에 의해 다양한 현충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우리는 세상에 머무는 동안 필연적으로 인연을 맞이한다. 부모와 자식과의 만남, 그리고 억겁의 연이 닿아야 만날 수 있다는 부부의 가약을 맺는다. 특히나 남끼리 만나는 부부의 인연은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기적과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는 어떤 부부를 가장 이상적으로 생각할까? 나를 알아주는 마음, 다들 친구같은 부부가 되길 월할 것이다. 조선시대 부부들고 마찬가지였다. 그들 역시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서로 대등한 관계를 유지하며 소통하고 마음을 나누는 친구같은 관계를 원했을 것이다. 그 가부장적 시대의 굴레 속에서 대등한 부부관계를 실천한 이가 미암과 덕봉이다. 지금도 이루지 못한 그것을 벌써 5세기 전에 실천적 삶으로 산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미암과 덕봉은 시대를 앞서간 인물이다. 살아있는 역사서, '미암일기'는 미암 유희춘이 유배에서 풀려나 다시 관직에 등용될 무렵인 1567년 10월부터 죽기 전인 1577년(선조 10년) 5월까지 11년에 걸쳐 매일같이 한문으로 기록한 것으로 1963년 보물206호로 지정돼 담양군 대덕면 장산리 미암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임진왜란으로 1592년(선조25) 이전의 '승전원일기'가 모두 불타 없어져 '선조실록'을 편찬할 때 '선조실록' 첫 10년간의 사료(史料)가 되었다. 미암일기에는 조선의 공적, 사적인 일부터 아래로는 미암 개인의 사생활, 견문내용, 관아의 기능, 관리들의 생활, 당시의 정치, 사회경제 상태와 풍속 등을 기록해 놓았다. 특히 '미암일기'는 선조 초년의 조정에 대한 대소사와 일반 백성의 사회경제사, 문화사를 이해하는데 필수자료로 이용되고 있다. 우슬재 넘어 해남으로 향하면 선비의 불꽃에 솟는 '해촌서원'이 있는데 거기에는 최부, 유희춘, 임억령, 윤선도 등 6현이 배향되어 있다. 한데, 여기 이야기는 해남출신 미암 유희춘과 담양 출신 덕봉 송종개에 관한 내용임을 밝힌다.


고운석 주필 gnp@goodnewspeople.com        고운석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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