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奇人奇事<107> 난을 일으킨 이자겸과 묘청
이자겸-외손자 인조를 죽이고 왕이 되려고 하다 실패
묘청-서경 천도 계획이 중단되자 1135년 난을 일으킴
입력시간 : 2020. 03.18. 14:54


고려 인종의 능에서 발견된 시책. 아들 의종이 선왕인 인종의 생전의 여러 업적과 인품을 서술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고, 말미에 시호와 묘호를 기록하였다.
세상에는 딸을 이용하여 권세를 잡은 집안도 있다.

바로 이자겸의 집안이 그 좋은 예다. “내 딸은 왕비이니라!” 이자겸은 걸핏하면 이렇게 큰소리를 쳤다. 더 나아가서 이자겸은 “장차 나는 왕의 외할아버지가 될 사람이다. 어흠!”하고 거드름을 피웠다. 딸을 왕비로 들여보낸 덕으로 이자겸의 벼슬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라갔다.

백성들은 이자겸을 보고 수군거렸다. “저 집은 대대로 딸 팔아 먹는 집안이야” “할아버지 이자연도 세 딸을 고려 문종의 왕비로 들여보내어 수십 년 동안 권세를 누렸어” 사실이었다. 이자연은 딸을 셋씩이나 바쳐가며 아첨을 한 자였다.

예종이 세상을 떠났다. 이때 왕위를 이은 태자의 나이는 13살밖에 안되었다. 이자겸은 대궐 경비를 튼튼히 하였다. 혹시 예종의 동생인 대방공이 왕의 자리를 넘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15살이 된 태자가 왕위에 오르니 이가 인종이다. 이자겸은 외손자를 잘 보호하였다가 왕의 자리에 앉혀 놓자, 권력을 한 손에 거머쥐게 되었다. 감히 이자겸에게 대적할 무리가 없었다. 그래도 이자겸은 마음을 놓을 수가 없어서 어명을 앞세워 대방공을 경사부로 귀양보내고 그의 무리를 싹 쓸어버렸다.

뿐만이 아니었다. ‘딸 하나만 가지고는 안되겠다’ 이자겸은 권세에 눈이 어두워 셋째와 넷째 두 딸을 한꺼번에 인종의 왕비로 들여보냈다. 백성들이 수군거렸다. “이자겸의 족보는 희한하군 그래. 딸을 층층이 기어이 셋이나 팔아먹는군!” 인종이 꺼리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이자겸은 딸 둘을 궁궐로 우겨넣었던 것이다. 그런 뒤 이자겸의 횡포는 날이 갈수록 심해졌다.

“이자겸은 과인의 외할아버지이지만 예의가 하나도 없구나” 어머니의 형제, 즉 이모들을 왕비로 삼아야 했던 인종은 아무리 외할아버지 덕으로 왕이 되었다하지만 메스껍지 않을 수 없었다. 더욱이 자신을 젖혀 놓고 제맘대로 나라를 다스리는 이자겸의 행패는 눈뜨고 볼 수가 없었다. 인종은 신하들을 불러 의논을 하였다.

“요즘 우리 외할아버지의 행위가 심한 것 같소. 경들은 어찌 생각하시오” 김찬, 안보린 등은 바른 말을 하였다. “이자겸을 그대로 두었다가는 왕의 자리까지 넘볼 것 같습니다. 그러고도 남을 위인입니다” 김찬, 안보린 등은 인종에게 이자겸을 몰아낼 것을 맹세하고, 상장군 오탁과 최택, 대장군 권수 등과 힘을 합쳐서 이자겸을 몰아낼 계획을 세웠다. 인종 4년인 1126년 2월 그들은 마침내 거사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아무리 대궐 안을 뒤져도 이자겸이 보이지 않았다. 척준경도 없었다. 김찬과 안보린 등은 눈에 띈 척준경의 동생인 준식과 아들 우와 이자겸의 무리들만 죽였다.

“무엇이 우리를 죽이려 한다고” 이자겸은 이 소식을 듣고 불같이 노했다. 사정은 뒤바뀌었다. 이번에는 이자겸과 척준경이 군사를 이끌고 대궐로 쳐들어가서 김찬, 안보린, 오탁, 최택, 권수 등을 마구 죽였다.

이자겸의 눈에는 왕도 보이지 않았다. “상감은 이리 나오시오” “외할아버지….”인종은 바들바들 떨었다. “상감은 처음부터 나를 죽이려는 무리들의 소행을 알고 있었지요? 누구 때문에 상감이 왕이 되었소” “외할아버지 진정 하십시오” 이자겸을 인종을 자기 집에 데려다 가두고는 마침내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내가 왕이 될 아주 좋은 기회가 왔다” 외손자고 뭐고 따질 이자겸이 아니었다.

이자겸은 인종을 몰래 죽일 계획을 세웠다. 이때 최사전이라는 충신이 척준경의 집을 찾아갔다. “최공 어서 나오시오. 큰일 났습니다. 일이 아주 급하게 되었습니다” “대체 무슨 일인데 그러시오” “이자겸이 장군을 없앤 뒤 상감마저 죽이고 스스로 왕이 되려고 합니다” “무엇이” “지난번에 궁궐에서 장군의 아우님과 아드님을 죽인 것도 사실은 이자겸의 군사들이 한 짓입니다. 지금 상감께서는 오직 장군 한 분만을 믿고 계십니다” 최사전은 왕이 내린 백마와 은병 수십 개를 척준경에게 주었습니다.

척준경은 본래 윤관 장군과 여진족 정벌에 공이 큰 장군이었으나 이자겸의 꾐에 빠졌던 것이다. 척준경은 결연히 일어나서 군사를 이끌고 이자겸의 무리를 사로잡거나 죽였다. 이자겸은 벼슬과 재산을 잃고 멀리 귀양가서 그 곳에서 죽었다.

조정 대신들은 이자겸의 딸인 두 왕비를 궁 밖으로 쫓아냈다. 이제는 척준경이 권력을 잡고 날뛰는 세상이 되었다. 게다가 금나라까지 위협을 하였다. “대체, 이 나라를 어찌하면 좋을 것인가” 왕은 한탄을 하였다.

이때 왕의 신임을 받고 있던 스님 묘청과 백수환, 정지상 등이 도읍을 서경으로 옮길 것을 주장했다. “개경은 기운이 다하였습니다. 서경으로 천도 하옵소서. 먼저 척준경부터 없애야 하옵니다” 왕은 그들의 말을 믿고 척준경을 귀양보냈다. 이제는 묘청이 슬슬 꿈틀거렸다. “서경으로 천도를 하시고 황제의 칭호를 쓰시면 북쪽의 금나라는 물론 30여 나라가 대왕께 공물을 바치게 되어 고려의 운이 트일 것이옵니다. 서경으로 도읍을 옮기소서” 묘청은 북진정책과 자주정신의 뜻을 펼 생각이었다. 하지만 대신들이 반대하였다. “태조 이후 대대로 이어온 도읍을 옮긴다는 것은 말도 안됩니다” 이리하여 왕은 천도 문제를 뒤로 미루고 궁궐부터 짓기로 하였다. 인종은 묘청의 주장에 따라 서경의 대화궁 용상에 임금의 옷인 어의를 걸어 놓았다.

인종이 새로 맞은 왕비의 아버지 임원후가 상소를 올렸다. “묘청과 백수한은 터무니없는 말로 상감을 현혹시키고 민심을 어지럽히고 있사옵니다. 그들을 처형 하옵소서” 이 소문을 들은 묘청은 가슴이 뜨끔했다. 서경으로 도읍을 옮기자고 주장하다가 자기의 계획이 중단되자 묘청과 그의 무리는 1135년에 난을 일으켰다. 이것이 ‘묘청의 난’이다.

묘청은 그의 무리들에게 외쳤다. “이곳 서경은 새로운 왕의 기운이 뻗치는 곳이니, 대위국이라 하노라” 스스로 나라까지 세운 묘청은 자비령 이북의 땅을 차지하였다. 조정에서는 서경파의 정지상, 김난, 백수한 등을 죽이고 김부식으로 하여금 묘청의 반란군을 무찌르도록 하였다. 한편 반란군 안에서 또 반란이 일어났다. 그들은 묘청과 유달의 목을 잘라 관군에게 바쳤다.

관군의 평원수 김부식은 항복한 그들을 용서하지 않자, 그들은 서경백성들과 함께 대항했다. 반란군과 관군은 1년가량 싸움을 계속했다. 그러나 반란군은 식량부족으로 더 버티지 못했다. 반란군의 지휘자 조광이 자기 집에 불을 질러 가족과 함께 목숨을 끊음으로써 묘청의 난은 가라앉았다.


고운석 주필 gnp@goodnewspeople.com        고운석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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