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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인기사> 참판을 지낸 황해도 평산고을 신임원
혼자 된 며느리 욕심대로 손녀딸의 신랑감
영의정에 오른 유척기를 찾아냈다
입력시간 : 2020. 12.29. 14:42


조선시대 향연·의례 전시회, 회혼례첩.
조선시대 참판벼슬을 지낸 신임원은 원래 황해도 평산고을 사람이었다. 신임원은 평소 사람을 알아보는 통찰력이 뛰어났다. 그러나 정작 자신이 아들 복이 없었던 것은 몰랐던지 하나밖에 없는 외아들이 장가든지 얼마 안되어 그만 세상을 뜨고 말았다. 그러나 유복녀로 태어난 손녀딸의 더 없는 총명함과 귀여움에 신임원은 아들을 잃은 시름을 달래었다. 어느덧 애지중지하던 손녀가 자라 혼인할 나이가 되자 누구보다도 며느리가 재촉을 했다.

“아버님께서 어서 빨리 저 아이의 사윗감을 골라주셔야 혼인을 시키지요” 며느리의 간곡한 부탁에 신임원이 물었다. “그래 어떠한 사람이면 만족하겠느냐?” 그러자 며느리가 말했다. “나이 여든 살이 될 때까지 두 내외가 의좋게 살 수 있으면 좋겠구요, 벼슬은 영의정에 집안은 부유하고 또 아들 딸 많이 낳을 수 있는 사람이면 좋겠습니다” 며느리의 욕심에 신임원은 어이가 없었다. “허허 세상에 어찌 그토록 많은 것을 다 갖춘 사람이 쉽게 있겠느냐? 꼭 그런 사람이라야 한다면 당장에 구하기는 어려우니 서서히 수소문을 해보도록 하자꾸나” 신임원은 말뿐이 아니라 실제로 그러한 신랑감을 늘 염두에 두고 물색했다.

어느 날 신임원이 초헌이라 하여 높은 벼슬아치가 타는 수레에 실려 장동거리를 지나가게 되었다. 문득 주위를 둘러보니 마침 여러 아이가 길에서 신나게 놀고 있었다. 아이들의 노는 모습을 본 신임원은 무엇을 발견하였는지 초헌을 멈추게 하고는 한 소년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열 살 남짓되어 보이는 소년은 더럽기가 이를데가 없었고 옷도 여기저기가 찢어져서 꼴이 말이 아니었다. 그러나 몸채와 얼굴 생김새는 너무도 반듯해보였고 두 눈에서는 슬기가 넘쳐 보였다.

“음 저 아이는 장래 큰 인물이 될 상이 분명해. 어서 이리로 불러 오너라” 신임원은 하인들에게 명령했다. 그런데 소년은 으리으리한 고관 하인의 부름에 조금도 움츠림 없이 오히려 고개를 가로저었다. 신임원이 다시 다른 하인을 시켜 거의 강제로 데려오게 하였으나 소년의 고집은 보통이 아니었다.

“어떠한 관원인지는 모르겠으나 죄없는 사람을 이렇게 함부로 잡아가는 법이 어디있소?” 소년은 당돌하게 호통을 쳤다. 그래도 어른 여럿의 힘을 당하지 못하고 소년은 결국 신임원 앞에 글려오게 되었다.

“내 한 가지 묻겠다. 너의 집 문벌을 알고 싶으니 말해 보아라” 신임원이 부드럽게 물었다. “저의 문벌을 알아서 무엇하시렵니까? 저는 유가 성을 가진 양반의 자손입니다. 이제 아셨으면 속히 저를 놓아주십시오” 소년은 여전히 반항하는 투로 말했다. “허 참, 고집이 매우 센 아이로구나! 그래 어서 가보아라” 신임원은 할 수 없다는 듯이 소년을 놓아주었다. 그리고는 자신이 직접 소년의 뒤를 따라가 보았다. 소년의 뒤를 따라간 곳은 지금으로 말하자면 빈민들이 사는 판자촌 정도라고나 할까, 소년의 집은 거기서도 제일 형편없는 오막살이었다. 신임원은 상관않고 집주인을 찾기로 했다.

신임원은 우선 하인에게 일렀다. “너 이 댁 부인께 가서 ‘어디어디 사는 신 아무개가 나이 찬 손녀딸이 있으니 도령과 혼인을 시키고자 하니 부디 허락하여 주십시오’ 하고 전하거라” 안으로 들어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하인이 나왔다. “처음에는 그저 놀라워하는 듯한 모습이었습니다만 소인이 잘 말씀드렸더니 황송해하며 더 이상 아무 말도 못하시었습니다” “그러면 승낙을 받았다는 말이냐” “예 그러하옵니다” “알았다. 그럼 다시 들어가서 혼인 날짜와 그 밖의 모든 것은 신부 집에서 알아서 준비할 터이니 그리 알고 기다리시라고 여쭈어라” 이렇게 소년의 집을 찾아가 혼사를 결정하고 돌아가는 길에 신임원은 하인들에게 다음과 같이 이르며 다짐을 해 두었다. “오늘 일은 누구에게도 말해서는 안된다. 너희들 중 한 놈이라도 이 일을 입밖에라도 내는 날에 내 결코 용서치 않으리라. 큰 벌을 내릴 것이다”

신임원이 집에 돌아오자 며느리는 또다시 재촉을 했다 “어버님 오늘은 좋은 신랑감을 찾으셨습니까?” 며느리는 벌써 수십 번을 입버릇처럼 묻고 또 물었다. 그러자 신임원은 지긋이 웃으며 말했다. “그렇다면 나도 한번 네게 물어보자. 너는 어떠한 신랑감을 원한다고 하였지?” 물론 뻔히 알고 있었지만 신임원은 일부러 다시 물었다. 며느리의 대답은 한결같이 똑같은 말이었다. 그러자 신임원은 얼굴 가득 환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럼 안심해라. 오늘 비로소 너의 뜻에 합당한 인물을 찾았고 또 뿐만 아니라 그쪽의 허락까지 받아왔으니 말이다” 신임원의 말에 며느리는 뛸 듯이 기뻐했다. “네, 그러셨어요. 그럼 아버님께서 찾으셨다는 그 인물은 뉘 댁의 자손이며, 그 집은 어디에 있습니까?” 신임원은 이 물음에는 대답하지 않고 그저 빙그레 웃기만 했다. 그러다 며느리의 성화에 “그것까지는 아직 알 필요없다. 어차피 자연히 알게 될 것이다”하며 더 이상은 알려주지 않았다. 며느리는 평소 자기가 한 말도 있고 한데 시아버지가 어련히 알아서 딸아이 신랑감을 찾았을까 하고 더는 묻지 않았다.

이윽고 납폐(신랑집에서 신부집으로 예물을 보내는 일)날 신임원은 며느리에게 모든 사실을 말해주었다. 그러자 며느리의 낙심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미 때는 늦어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그래도 마음 한구석에 설마하는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급히 늙은 여종을 시켜 몰래 사위의 집을 엿보고 오게 했다. 얼마 후 사위의 집을 다녀온 여종이 와서 하는 말은 며느리의 기대를 여지없이 무너뜨렸다. “아니 세상에 이런 변괴가 어디 있습니까. 글쎄 집은 세 칸 초가에 서까래가 드러나 있는데다 부엌에는 이끼가 끼고…, 어디 그뿐이겠습니까. 신랑감의 눈은 광주리처럼 쾡하고, 머리는 쑥대밭 같고 아무튼 무엇 하나 볼품도 없지 뭡니까. 그러니 우리 아씨, 꽃같은 우리 아씨는 이제 어쩌면 좋습니까”

그 날 이후 신임원의 며느리는 낙심한 나머지 눈물로 날을 지세웠다. 그렇다고 혼례식 날은 다가오는데 가만히 있을 수만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야말로 눈물을 머금고 정성껏 온갖 채비를 갖춰주었다. 이윽고 신랑이 장모에게 인사를 드리게 되었는데 신랑을 대면한 며느리는 마음이 으스러지는 것만 같았다. 가난하고 못생긴 사위에 대한 실망은 더 나아가 사위를 원수보듯 미워하는 마음이 싹텄다. 그뿐인가 그렇잖아도 무엇 하나 마음에 드는 구석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사위는 아예 처가에 눌러 살며 진종일 놀고먹기를 일삼았다. 그런가 하면 또 사위는 체면도 불구하고 대청마루에 벌렁 누워서 말이 아닌 꼴로 잠을 자며 해가 중천에 떠도 일어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이밖에도 장모를 비롯한 처가 식구에게 구박받고 천대받을 만한 짓은 이루 헤아릴 수 없다.

얼마 후 신임원이 황해감사의 명을 받고 황해도로 가게 되었는데 무슨 생각에선지 신임원은 손녀사위인 유낭을 함께 데리고 갔다. 황해도에 간 유낭은 갑자기 성품이 변한 듯 관가 아래 웃사람과 정답게 사귀고 또 그들의 존경을 받았다.

그 해 조정에 먹을 진상하게 되었을 때 신임원은 유낭을 불렀다, “이 중에서 네가 쓸 만큼 골라서 가져도 좋다. ”예 고맙습니다“ 유낭은 서슴치 않고 진상할 먹에서 큰 것 100동(1동은 10개)을 골라 가졌다. 진상품 중에서 제일 좋은 것들을 모두 뺀 셈이었다. 신임원은 놀랐지만 하는 수 없이 다시 그 수효만큼을 만들어 채워 넣었다.

유낭은 먹을 모두 관가 벼슬아치들에게 나눠주었다. “오라 이제 보니 내 대신 아랫사람들을 위해 내주려는 뜻이었구나” 신임원은 혼자 말을 하며 감탄했다. 이 유낭이 바로 영의정에 오른 유척기인 것이다. 유척기는 신임원이 본대로 또 며느리가 원하던 대로 나이 80살까지 내외가 모두 복을 누리고 슬하에는 아들 4형제를 두었으며 부유하게 살았다고 한다.


고운석 주필 gnp@goodnewspeople.com        고운석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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