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9월 23일(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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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인기사> 죽기도 힘들었던 조 선비의 운명
호랑이에게 물려 죽으려다 오히려 호랑이를 잡게 되고
사냥꾼에게 스승으로 대접받으며 가난에서 벗어나다
입력시간 : 2021. 09.09. 15:13


명종(1534~1567)때 전라도 어느 시골에 조씨 성을 가진 가난한 선비 한 명이 살고 있었다. 어려서 일찍이 부모를 잃은 그는 어른이 되자 이번에는 애써 얻은 아내마저 자식 하나 낳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게다가 의지할 만한 일가친척 한 명 없는 조 선비는 그야말로 혈혈단신 외로운 신세가 되었다. "이런 삶을 살 바엔 차라리 죽느니만 못하다!" 조 선비는 견디다 못한 끝에 죽기로 결심을 했다. 하지만 막상 죽으려 하니 그 방법이 여간 어렵지가 않았다. 그런데 그때 마침 장성 땅 뒷산 깊은 곳에 사나운 호랑이가 나타나서 낮에도 사람을 잡아 먹는다는 소문이 떠돌았다. "옳지, 호랑이 밥이 되면 되겠군!" 조 선비는 험한 삼십리 길을 서둘러 기어 올라갔다. 그리고 수목이 울창한 곳을 골라 바위에 걸터 앉았다.

밤이 차츰 깊어 달빛이 어렴풋이 비추더니 늦가을 찬바람이 나뭇잎을 흔들어 떨구기 시작했다. 그러나 죽음을 각오한 조 선비에게 두려움 따윈 없었다. 조 선비는 숲속의 어두운 곳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어서 빨리 호랑이한테 물려 죽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게 얼마쯤의 시간이 지났을까. 앞쪽에서 무언가 시커먼 그림자가 나타나더니 한번 멈칫했다가 다시 차츰 가까이 오기 시작했다. 조 선비는, '이제야 올것이 왔구나!' 하고 생각하고 꿈쩍도 하지 않은채 조용히 앉아 있었다. 그런데 앞으로 다가온 그림자는 호랑이가 아닌 활을 맨 사냥꾼이었다.

"대체 뉘신데 이런 위험한 곳에 혼자 앉아 계십니까?" 사냥꾼은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며 조 선비를 향해 물었다. "그저 지나가는 나그네요, 다리가 아파서 잠깐 쉬고 있을 뿐이오" 너무도 태연스러운 조 선비의 말과 태도에 포수는 무척 놀라워 했다. "이곳은 사람을 잡아먹는 호랑이가 나온다는 곳인데, 아니 무섭지도 않습니까?" "무섭지 않소. 걱정 말고 어서 볼 일이나 보시오" 무섭기는 커녕 그 호랑이를 기다리는 중이라고는 차마 말하지 못하고 조 선비는 귀찮다는 듯 손을 저었다. 그런데 사냥꾼은 조 선비를 보고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어깨에 매고있던 활을 내려놓고는 덥석 무릎을 꿇었다.

"뵙자니 예사로운 분 같지가 않습니다. 필시 무슨 신통한 재주를 가지셨거나, 아니면 천하의 장사이심이 분명합니다. 그러니 부디 저를 좀 도와주십시오!" "대체 무슨 일을 도우란 말이오?" 갑작스러운 상대의 태도에 조 선비는 어리둥절했다. "다름이 아니라, 저는 이 고을에서 이름있는 포수이온데, 오늘이 호랑이를 잡아다가 관가에 바쳐야 하는 날입니다. 제가 숲에 들어가서 호랑이를 이쪽으로 몰아낼 터이니 다음은 이렇게 저렇게 해 주십시오" 사냥꾼은 손짓발짓을 하며 호랑이를 도망가지 못하게 잡아달라는 시늉을 해 보였다. 그리고는 조 선비의 대답도 듣지 않고 후다닥 산 위로 달려 올라갔다. 사냥꾼의 어이없는 행동이 우습기도 하고 맹랑하기도 했지만, 조 선비는 오히려 잘 됐다고 생각했다. 사냥꾼이 호랑이를 몰아오면 자신은 그만큼 빨리 죽을수 있게 되기 때문이었다. 조 선비는 전보다 더욱 태연하게 앉아 기다리고 있었다.

얼마가 지나자 저만치 보이는 숲속에서, "어흥!"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더니 곧바로 황소보다 더 커보이는 호랑이 한 마리가 바람을 일으키며 이쪽으로 내달아 오는 것이었다. 조 선비는 지금이 바로 죽음의 순간이라 여기고 눈을 꼭 감았다. 그러나 의당 와야할 죽음의 순간은 오지 않았다. 바로 코앞까지 불어닥친 바람기가 느껴지기는 했는데, 그 다음으론 아무런 기척도 나지 않았던 것이다. "해괴한 일이로군?" 조 선비는 중얼거리며 눈을 떴다. 그런데 참으로 해괴한 일이 눈앞에 벌어졌다. 원래 조 선비가 앉은 바위 밑에는 아름드리 나무가 두 그루 서로 얽히듯이 서 있었다. 그런데 호랑이는 그 좁디좁은 틈바구니로 뛰어들어 허리가 꽉 끼여서 옴짝달싹도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조 선비가 그 꼴을 발견했을 때 호랑이는 무서운 비명을 지르며 온 힘을 다해 빠져나가려 몸부림을 쳤다.

그러나 육중한 무게에 나무만 흔들릴 뿐 몸은 여간해서 빠지지 않았다. 게다가 호랑이는 새끼를 배었는지 나무 틈에 끼인 배가 앞뒤로 유난히 불룩 올라와 보였고, 무척 고통스러워 했다. 조 선비는 기가 막히기도 하고 일변 또 우스운 생각도 들어 마음놓고 호랑이의 앞으로 다가갔다. 그런데 이때 호랑이는 고개를 한번 크게 흔들어대더니 제 힘에 지쳤는지 축 늘어져 버리고 말았다. 조 선비는 잠시 망설이다가 칡덩굴을 뜯어 부지런히 밧줄을 꼬았다. 그리고는 밧줄을 호랑이 목에 칭칭 동여맨 다음 이번에는 굵직한 작대기를 구하여 나무 사이에 끼워 힘껏 비틀었다.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약간 틈이 생기자 호랑이도 최후의 힘을 다하여 몸부림을 쳤다. 이리하여 호랑이는 겨우 빠져 나오게 되었다.

그러나 이미 기진맥진해진 호랑이는 그 자리에 엎드려 숨만 거칠게 헐떡였다. 마치 조 선비에게 고삐를 잡힌 소처럼 양순하기 짝이 없어보였다. 그러는 사이 앞쪽 숲에서 사냥꾼이 뛰어왔다. 사냥꾼은 그 모습을 보더니 눈이 휘둥그래져서 말도 못하고 있더니만 이내 꿇어 앉아 절을 꾸벅했다. "역시 저의 짐작이 맞았습니다. 참으로 놀라우십니다! 저도 실상 힘 꽤나 쓰는 사람입니다만, 이렇게 호랑이를 사로 잡을 순 없습니다. 아니, 생전 보지도 듣지도 못하였습니다. 오늘부터 스승님으로 모시겠습니다!" 사냥꾼은 조 선비가 말할 사이도 없이 혼자서 멋대로 지껄여댔다. 그리고는 다시 한번 큰절을 올렸다. 이렇게 해서 사냥꾼은 잡은 호랑이를 그 자리에서 죽인 뒤 가죽을 벗겨서 조 선비와 함께 우선 산 밑 주막으로 내려갔다. 그러나 조 선비는 사냥꾼이 밥을 시키는 동안 달아나듯 몰래 주막에서 빠져나왔다.

'아, 나는 죽을 팔자도 못되나 보다!' 조 선비는 한탄을 하며 힘없이 집으로 돌아왔다. 한번 죽으려다 묘하게 일이 꼬여 뜻을 못 이룬 조 선비는 그후 여러 날을 끼니도 잇지 못한 채 지냈다. 그러다가 문득 한가지 생각 나는 것이 있었다. '그래. 이웃 마을에 살고있는 곽 부자는 실은 우리 조상때부터 대물려 내려오던 종이었지. 마침 그의 종문서가 내게 있으니 그걸 갖고가서 한 5천냥쯤 받고 돌려주면 형편이 필 거야' 그러나 그건 조 선비의 착각이었다. 원래 곽 부자는 조 선비의 집을 도망쳐 달아난 종놈이었다. 어떻게 요행으로 부자가 되긴 했지만, 한번도 주인집을 찾아본 적이 없는 고약한 인간이다. 아니나 다를까, 곽 부자는 조 선비의 요구에 코웃음을 치며 거절을 했다. 먼 길을 고생하여 찾아온 전 주인에게 식사대접은 못할 망정 매몰차게 쫓아 냈다. 그러면서 곽 부자는, '앞으로도 또 종문서를 가지고 떼를 쓸지 모르니, 차라리 감쪽같이 죽여버리는게 낫겠군' 하는 끔찍한 행각까지 하였다.

며칠 후 곽 부자는 힘센 장정 열 명을 사들였다. "아무개는 우리 부친을 죽인 원수다. 한 사람 앞에 1백 냥씩 줄터이니 쥐도 새도 모르게 그놈을 없애 버려라" 이 말을 믿은 장정들은 어느날 밤 조 선비의 집으로 몰려갔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고 칼, 몽둥이를 든 이들의 습격을 받았지만, 조 선비는 조금도 당황하지 않았다. 진작부터 죽으려고 한 사람이 칼, 몽둥이가 두려울리 없었다. 오히려 조 선비는 잘 되었다고 생각했다. 어쨌든 조 선비의 너무나도 태연한 모습에 어리둥절한 장정들은 순간 맥이 빠져버리고 말았다. 그때 패거리 중에 몸집이 가장 우람한 사람이 깜짝 놀라며 조 선비 앞으로 나와 무릎을 꿇었다. "아, 아니, 스승님 아니십니까? 이게 어쩐 일이십니까?" 누가 나를 스승이라고 부르나 하여 조 선비가 자세히 살펴보니, 그는 바로 다름아닌 호랑이를 잡던 그날의 사냥꾼이었다. 사태가 이쯤 되고보니 일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게 되었다. 모든 사실을 알게 된 사냥꾼은 그제야 곽 부자에게 속았다는 것을 깨닫고는 일당들에게 조 선비를 소개했다. "너희들은 잘 모르겠지만 이분이 바로 호랑이를 사로잡은 나의 스승님이시다!" 말을 마친 사냥꾼 일당들은 재촉하여 곽 부자집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애초 조 선비의 요구대로 5천 냥을 요구해 종문서와 바꾸게 했다. 이후 사냥꾼은 조 선비를 정말로 스승으로 섬겼다고 한다.


고운석 주필 gnp@goodnewspeople.com        고운석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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